(제 1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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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자위가 퍽 꺼져들어가고 입술이 마른 영숙이는 기운을 내서
안마을에 유격대원들이 모였을 때 아래우 흰옷을 입으신 어머님께서 찾아오시였다. 그때 영숙이도 어머님을 동행했었다.
어머님께서는 대원들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하시였다.
《젊은이들, 내가 왜 우는지 아시오? 나는 오늘 기뻐서 웁니다. 많은 어머니들은 한평생 울며 살지요.…》
영숙이는 말을 하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맑은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한동안 움직이더니 끝내 그것이 뽀얗게 흐려지면서 굵다란 눈물방울을 내밀었다. 팽팽한 볼우를 드르르 굴러 턱밑에 잠시 매달렸다가 그의 손등에 뚝 떨어졌다.
그것을 본 최칠성은 고개를 들고 급히 외면하였다.
《나는 세살때 어머니를 잃어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
최칠성에게는 아득히 먼데서 영숙이의 말소리가 들리는듯하였다. 잠시후에 그는 수첩을 꺼내 무릎에 놓고 무드러진 연필꽁다리로 무엇을 적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수첩장을 뜯어내더니 망태멜빵끝에 끼워놓는것이였다.
영숙이는 그가 무엇을 하는것인지 모르고 촉촉히 젖은 살눈섭을 내리깔며 배낭을 안고 고개를 숙이였다.
《영숙이! 우리 노래부르지 않겠소? 자, 어서 기운을 내라구, 응? 차광수동지의 복수를 위해서,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저편에서 응대가 있건말건 상관없이 최칠성은 이깔나무우듬지가 흔들리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거친 목소리로 나직이 노래를 불렀다.
차광수동지의 뒤를 따르자,
영숙이가 고개를 들고 젖은 눈을 비비였다. 사려물던 입술이 방긋이 열리더니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
결심품고 싸워가는 우리 혁명군
천신만고 모두다 달게 여기며
…
그들은 시간가는줄 모르고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해가 져서 어두워진 다음에는 눈을 감고 불렀다.
잠든듯이 눈을 가볍게 내리감은 최칠성은 이때 자기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는 연필을 든 손을 움켜잡고 공책우에 이름을 써주시던
그 순간 그는 흠칫 놀라 눈을 떴다.
숯이 빨갛게 진 고깔불 한무지가 보이고 그옆에 영숙이가 앉아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릴 정도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최칠성은 망태기를 앞으로 돌려 안고 그우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밤이 들자 노래소리도 멎고 그들사이에서 타고있던 우등불도 싸늘하니 식어 재가 날렸다. 배낭을 안고 바위벽을 등지고 마주앉은 그들은 잠들어버렸다.
바람이 불적마다 눈가루가 날려 그들의 얼굴과 등에 뿌려졌다.
처음에는 발목이 묻히고 다음에는 무릎이 묻히였다. 시간이 감에 따라 그들은 추위도 굶주림도 그리고 차차 식어드는 체온도 감각하지 못하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전광식일행이 최칠성을 발견한것은 해가 중낮이 되여서였다.
《최동무!》
《영숙이!》
용택이와 상선이가 달려들며 고함을 질렀다.
두 동무의 체온은 거의 식어있었다. 있는듯마는듯 한 숨결이 그들의 생명이 아직 남아있다는것을 간신히 알릴뿐이였다.
우선 우등불을 일구고 가지고갔던 미시가루물을 풀었다.
전광식은 눈무지에서 파낸 최칠성을 불곁에 내다놓고 가슴을 흔들었다.
《칠성동무!》
몇번만에야 최칠성은 눈을 겨우 뜨고 멀뚱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때 최칠성은 누구인지를 알수 없으나 유격대동무들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최동무!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떡끄떡하더니 눈을 다시 내리감아버린다.
영숙이는 최칠성이보다 약간 더 의식이 명료하였다.
일행은 나무를 찍어 들것을 만들어 두 동무를 메였다.
들것은 하루밤 하루낮을 걸어서야 사령부가 자리잡은 숙영지에 도착하게 되였다.
최칠성과 영숙을 초막안에 눕히고 간호를 하였다. 대원들이 물을 끓여 손발을 씻기고 미음을 쑤었다.
차차 숨소리가 고르로와졌다.
《망태기에 이런것이 끼워있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여기 이 멜빵짬에 끼워있었습니다.》
전광식이 가리키는것은 농사군들이 쓰는 허름한 망태였다. 여기저기 고드름이 맺힌 미투리짚신 네짝이 달려서 흔들리고있다.
좁쌀 한말, 짚신 두컬레.
이것은 돈화에서 15리 떨어진 웅덩마을에 사는 어느 한 어머니가
쪽지를 든
《이것을 지고 그렇게 고생을 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