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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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였다.

망태기가 없다면 좀더 헐할것이였지만 그것을 버릴수는 없었다. 벼랑등에 그가 올랐을 때 총알이 귀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개가 짖고 와와 떠드는 소리가 났다. 최칠성은 벼랑에서 내리뛰였다. 그밑은 물이였다.

최칠성은 물살이 빨라 얼지 못한 강줄기를 따라 계속 올리달렸다.

날이 다 밝자 그는 자국을 메우고 바위짬에 숨어있었다.

그날밤 다시 물줄기를 따라 처음에 약속한 지점까지 가보았으나 영숙이는 보이지 않았다. 날이 거의 샐무렵까지 최칠성은 강줄기를 따라 오르내리면서 영숙이를 찾았다. 군견이 추격한다는것을 알고있기에 영숙이도 물에 들어섰을것이였다. 날이 밝았을 때 거의 실신상태에 빠진 영숙이를 바위틈에서 찾아내였다.

영숙동무!》

그들은 부여잡고 한참동안이나 말을 못하였다.

그때로부터 닷새만에 그들은 부대와 만나기로 약속한 첫번째 지점에 이르렀는데 부대는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다시 두번째 지점을 향해 숲속에 들어가서 방향을 가리지 못하고 헤매게 되였다. 어림짐작으로 목표를 정하고 사흘동안 동남쪽으로 나갔다. 대체로 방향만 옳게 잡으면 부대와 딱 마주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행군한 흔적은 쉬 찾을수 있으리라고 타산한것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걷고걸어도 그냥 눈이요, 숲이요, 진대통뿐이였다. 눈보라는 길을 잃은 그들을 더 골려줄 모양으로 더 심술궂게 휘몰아쳐서 앞을 가릴수 없게 하였다. 먹을것이 떨어져서 이틀동안이나 굶었지만 오래지 않아 부대를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기운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사흘만에 영숙은 떨리는 목소리를 내였다.

《이러다가 부대를 찾지 못하게 되는거나 아닐가요?》

그러나 입을 꾹 다물어버린 최칠성은 완강성을 잃지 않았다.

《하루나 이틀 더 참으면 되겠지.》

어딘가 성이 난듯한 최칠성의 무뚝뚝한 대답에 영숙은 그만 얼굴을 붉히고 앞장서 걸었다.

또 하루가 지나자 그들은 둘 다 맥이 없어 걸을수도 없게 되였다. 최칠성의 눈에도 차차 불안한 빛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영숙이는 최칠성이 보지 않을 때 눈물을 떨구고는 곧 팔소매로 훔치군 하였다.

바위밑에 웅크리고앉아 최칠성은 불을 일구었다. 종이로 두세겹 싸고 그것을 다시 유지로 감고 헝겊으로 둘러감아서 가슴에 깊숙이 품고있던 세가치밖에 남지 않은 성냥중에서 한가치를 또 써버렸다. 마지막 남은 두가치의 성냥을 다시 싸고 또 싸서 가슴에 품는것을 보자 영숙의 눈길은 절로 어수선한 노을이 스러져가는 먼 하늘가로 하염없이 달렸다. 다시는 저 성냥을 켜게 되지 말았으면…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보이느니 막막하고 썰렁한 하늘이요, 첩첩한 산과 괴물같은 숲이 겹겹이 둘러싸고있을뿐이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최칠성의 표정은 이전그대로 태연하였다. 좀 부은데다 얼어서 검푸르게 질린 그 얼굴에는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어찌보면 이 모든 심상치 않은 사태를 미리 다 예견하고있었다는듯 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침착한 태도로 서둘지 않고 삭정이를 하나하나 집어서 불길을 돋구어놓더니 배낭에 달아맨 밥통을 천천히 풀어서 눈을 한줌 집어넣고 꼼꼼히 닦아냈다.

영숙은 그러한 최칠성을 보는것이 매우 서글펐다. 무엇을 생각하고있을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걱정이라도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평소에 과묵한 그는 이 숲속에서 길을 잃자 말하는 법마저 잃어버린듯 모든 일을 묵묵히 제 혼자료량으로 해내고만다.

영숙은 최칠성이 몰래 한숨을 내쉬고 우등불가에 앉았다. 밥통에다 눈을 녹여 끓이고 소금 몇알을 넣어서 휘휘 저어 마셨다. 그것이 요기가 돼서 그런지 우등불에 몸이 녹자 두사람 다 노그라지고말았다.

이튿날이였다. 영숙이가 은근히 느끼게 된 불안한 예감이 마침내 현실로 되고말았다. 최칠성의 태연한 표정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였다. 그는 몸집이 큰만치 체력의 소모가 빨라서 갑자기 맥을 추지 못하게 되였다. 앉으면 일어나지 못하고 서면 앉지 못한다.

이제부터는 영숙이가 최칠성을 끌어야 하였다.

《짐들을 벗어서 발구를 만들어 끄는것이 힘이 덜 들것 같아요.》

영숙이가 생각다 못해 이렇게 말했으나 최칠성은 공허하리만큼 눈을 크게 뜨고 물끄러미 바라볼뿐이였다.

영숙은 칠성의 배낭을 나무가지에 올려놓고 끌었다.

밤이 되여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두가치 남은 성냥중 또 한가치를 켜서 불을 일구었다.

영숙동무! 미시가루도 없지?》

최칠성은 혀끝으로 꺼멓게 마른 입술을 추기면서 번연한것을 물었다.

《없어요.》

영숙이는 좁쌀이 든 둥실둥실한 망태를 넘겨다보며 떨리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럼 또…》

최칠성은 부시럭부시럭 배낭을 뒤져 얼마되지 않는 소금주머니를 꺼냈다. 영숙이는 떨리는 손으로 끓인물을 따라서 내밀었다. 최칠성은 그것을 받아쥐고앉아 무엇인가 북받치는것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무는 영숙이를 멍하니 바라보고있다.

영숙이는 너무나 태연한 최칠성을 보는것이 더구나 괴로왔다. 그들은 앞으로 하루나 고작해야 이틀이면 모든것이 끝장나버리라는것을 똑똑히 알고있었다. 그러나 어느쪽에서도 그런것을 입밖에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불무지곁에 비스듬히 누워서 최칠성은 샘골등판에서 짚신 삼던 이야기를 하였다. 추위와 굶주림과 피곤에 못 견디는 자신을 이런것으로라도 얼마간 위안해보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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