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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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여름.
중서부에 위치한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시찰하신
집무실의 탁자우에는
먼저 눈에 뜨이는것이 조명록총정치국장의 편지였다.
《…
하지만 우리 군대와 인민은
그런데 이 전사는
집채같은 파도가 갑판을 들부시던 초도의 풍랑세찬 바다길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는 이런 위험한 길에
오늘도 병사들은 우리에게 다시는 이런 험한 길에
조명록이 병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것이 기억되신다. 고지식한 사람이니 병사들의 눈물어린 당부를 들으며 자기를 반성했을것이고 그래서 편지를 썼을것이다.
그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것이 1979년
그 회의에서 절대적이고 투철한 립장으로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를 백방으로 옹호해나선 일군이 조명록이였다. 그런 일군이 곁에 있으니
하지만 그의 부탁을 아니, 전체 군인들과 인민들의 절절한 당부를 들어주실수 없는것이 오늘의 준엄한 정세이다. 공화국의 조기붕괴를 목적으로 여지없이 강화되고있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대조선고립압살책동, 걷잡기 어려운 자연재해, 숨죽은 공장, 기업소들, 점점 늘어나는 절량가들… 이제껏 승승장구해온 우리 혁명에 붙어 서식하다가 시련이 겹쳐들자 서슴없이 가면을 벗어던진 배신자들…
조명록은 그 소식을 듣기 바쁘게 집무실에 달려왔었다. 중풍을 만난 사람처럼 온몸을 푸들푸들 떨며 당과
《놔두오. 지어먹은 마음 사흘 못 간다고 고난이 겹쳐드니 겁이 났겠지. 혁명위업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아무리 품어주어도 따라서지 못하는 법이요. 붙잡지 맙시다.》
조명록이 고개를 떨구었다.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에서 눈물이 끓었다. 그를 위로하지 못하는
그날
앞에는 분명 고난과 시련이 놓여있다. 하지만 준엄한 혁명의 길은 가고싶으면 가고 가고싶지 않으면 그만두는 그런 길이 아니다. 희생을 치를수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가야 하는것이 혁명의 길이며 바로 그 길을 걸어야 우리는 최후승리를 이룩하게 된다. 세상만물이 다 변해도 혁명전사의 신념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신념에 금이 가면 다시 붙이지 못하고 설사 붙인다 해도 허물을 없애지 못한다. 그러니 혁명전사의 신념은 꿈에서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마른 길을 갈 때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지만 진길, 눈길을 갈 때에는 뚜렷한 흔적이 남는다. 이것은 어려운 때에 사람의 진속이 나타나고 준엄한 때에
우리는 혁명투쟁이 간고해질수록 혁명적신념을 더욱 굳세게 다지고 혁명의 붉은기아래에 더 가까이 다가서며 백번 죽어도 붉은기를 놓지 말고 끝까지 혁명을 해야 한다.
터놓고 말해서 나도 힘들 때가 많다.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는 붉은기를 끝까지 지킬것이다, 이것이
나는 《적기가》를 끝까지 주장한다.
조명록이 다진 맹세는 소박하였지만 거기에는 진심이 담겨져있었다.
그렇다,
강력한 군대가 없이는 인민도 없고 사회주의국가도 당도 없다. 총대로 개척되고 총대에 의해 승리의 길을 걸어온 우리 혁명의 력사와 오늘의 준엄한 현실은 군대를 단순히 혁명을 보위하기 위한 무장력이 아니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울것을 요구하고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던
조용하면서도 천만근의 무게를 실은 소고소리가 들려온다. 무엇인가 강한 위협을 느끼게 하는 가락맞은 소리가 정적을 깨치며 계속 울린다. 소고의 무거운 리듬을 타고 목관악기의 선률과 현악기들의 피치카토소리가 잇달린다.… 국립교향악단에서 연주한 쇼스따꼬비츠의 《레닌그라드교향곡》 제1악장 서주였다.
이전 쏘련의 레닌그라드음악대학 교수였던 쇼스따꼬비츠가 쏘도전쟁시기 도이췰란드침략자들에게 봉쇄된 레닌그라드의 준엄한 환경에서 창작완성한 교향곡은 쏘련인민의 불굴의 투쟁정신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서사시화한 작품이였다.
《나는 이 교향곡을 창작하면서 우리 인민의
작곡가가 교향곡의 창작과 관련하여 발표한 수기의 한 대목이다.
봉쇄, 기아, 무너지는 건물들과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시체들, 고막을 째는 폭음과 하늘을 메우는 불길들…
언론전이나 외교전의 테두리에 머무르고있는 미제와의 대결전이 언제 물리적힘을 동반한 실전으로 번져질지 누구도 예측 못했다. 그때면 레닌그라드봉쇄와는 비할바없는 엄혹한 시련이 우리 인민앞에 닥쳐들수 있었다.
계속 들려오는 소고소리… 격전전야의 무서운 정적이 떠도는 도시는 공포에만 사로잡혀있는것이 아니다. 복수, 부자비한 징벌, 죽어도 사랑하는 도시와 운명을 함께 하려는 수호자들의 비상한 각오와 맹세를 형상한 금관악기소리…
교외에 굴설된 참호들에서는 병사들의 철갑모가 해빛에 번뜩인다. 마라초연기만 조용히 피여오를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속에서 무언의 눈길들이 서로 오가며 하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 병사들과 시민들은 정적이 깨여지는 순간에 온 시가지가 피의 결전장으로 화할것이며 전호와 포석우에 피가 랑자히 흐를것이라는것을 느끼고있었으며 자기자신도 죽을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시시각각 덧쌓이는 주검을 바리케드삼아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것도 모르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동기소리… 피아노로부터 포르테로 확대되는 소고의 트레몰소리, 드디여 팀파니, 대고들이 둔중하게 쿵쿵 울리고 관악기들의 째지는듯한 불협화음이 정적을 깨친다. …
우리와 미국과의 대결에서 세계의 관심사로 되고있는것이 《조선반도에네르기개발기구》(케도)가 맡게 될 경수로문제였다.
론난이 많던 경수로문제가 마침내 일단락되여 이해의 8월에는 동해의 금호지구에서 착공식을 하기로 되여있었다.
경수로제공을 실현하기 위한 대미외교전에서 가장 날카롭게 제기된것이 미국의 책임을 명백히 하고 공약리행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것이였다.
미국이 우리에게 제공하기로 되여있는 경수로대상과 중유납입은 결코 인심좋은 선사품이 아니였다. 우리의 자립적핵동력공업인 흑연감속로체계를 동결시키는것에 대한 응당한 대가였다.
클린톤행정부가 자국의 법률을 어기고 보수세력으로부터 《지나친 양보》를 했다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경수로를 우리에게 제공하겠다는데 동의한것은 그들나름의 랭정한 타산이 있기때문이였다. 이 엄혹한 제재와 압박속에서 우리가 더이상 버티여내지 못할것이며 그때에는 경수로가 바로 저들의 자산으로 될것이라는 음충스런 속구구가 근저에 깔려있었던것이다. 기실 적들은 우리 공화국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경제제재완화와 관련한 공약의 어느 한 조항도 성실히 리행하지 않은채 시종일관 지연전술에 매달리고있었다.
만일 외교전에서 패한 적들이 극도의 단말마적발악으로 전쟁의 불집을 일으킨다면 어느 정도의 력량으로 어떻게 침략해올것인가? 정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격파분쇄해야 하며 그 기회를 어떻게 리용하여야 하는가?…
기필코 그것은 우리 혁명위업의 종국적완성을 위한 정의의 성전으로 이어질것이며 그 성전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