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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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무와 헤여진 최칠성은 그 이튿날 영숙이와 함께 산협길을 묵묵히 걷고있었다. 차광수의 비보를 들은 영숙이는 낯색이 해쓱하니 질리여서 한참이나 망연히 굳어졌다가 두손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안경알을 번뜩이며 언제나 너부죽한 얼굴에 사람좋은 웃음을 담고 조용조용히 혁명의 원리를 깨우쳐주던 살뜰한 지휘관, 누구보다 자기의 입대청원을 지지해주던 참모장이였다. 명령에 충실하고 혁명을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외우던 그 신념을 실천으로 보여준 그의 고결한 희생이 애석해서만도 아니다. 그의 희생이 우리 혁명에 준 너무나 큰 손실, 그 손실을
얼마후 다시 행군을 시작하였을 때 영숙의 걸음은 정상이 아니였다.
다시는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최칠성은 엄동무에게서 들은 차광수의 최후를 잊을수 없었다.
차광수는 반일련합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순순히 투항하라. 그것이 싫으면 사령부의 위치만이라도 대라. 그러면 넌 살려준다. 너는 독안에 든 쥐야.》
차광수는 자기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인차 간파하였다.
놈들이 노리는것은 사령부이다! 차광수는 싸창으로 적과 결사적으로 싸웠다. 마지막탄알까지 날려보내였다. 마지막 그 순간 차광수는 주영장의 감방에서 썼던 쪽지편지를 한 대원에게 주어 엄동무에게 전하라고 부탁하고는 적들을 맞받아 내려갔다.
마지막순간, 차광수앞에는 여러갈래의 길이 있었다. 투항하는척 하고 일단 체포되였다가 좋은 기회를 노릴수도 있었으며 또 산중으로 유인해가다가 어떤 순간을 노려 몸을 빼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요행수를 바라거나 위태로운 길이 아니라 주저없이 죽음을 맞받아나갔던것이다.…
그들은 걸었다. 혁명의 사령부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차광수동지의 고결한 희생을 절통해하며 그들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한 골짜기를 벗어나 다음골안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뜻밖의 사태에 접하였다.
앞에도 뒤에도 온통 적들이 욱실거렸던것이다.
백포를 뒤집어쓴 최칠성은 성급히 둔덕으로 올라가 눈우에 엎드려 앞을 내다보았다. 놈들은 큰길이나 오솔길을 죄다 차단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단속하는가 하면 몇사람씩 길가에 내다세워놓고 마구 탕탕 쏴죽이는 판이였다.
《포위에 들었구나.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간다?》
속이 두근거리긴 했지만 영숙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칠성은 태연하게 한마디 하였다.
한 둬걸음 뒤에 역시 백포로 몸을 감추고 땅에 엎드린 영숙이는 최칠성의 그 한마디의 말이 몇배로 더 그의 불안을 나타내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숲속에 기여든 적들은 나무를 찍어 불을 일구었다. 오래지 않아 해가 질것으로 보아 놈들은 잠자리를 마련하는것 같았다. 사방에서 꿱꿱 고함소리도 나고 이따금씩 위협사격을 하는 기관총소리도 요란하게 울리였다. 그들은 웅뎅이에 엎드린채로 어둡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발이 시리고 온몸이 꼿꼿이 얼어들었지만 자리를 옮기지도 못하였다.
이윽해서 검은 장막이 숲속을 내리덮었다.
눈에 묻었던 망태기를 살며시 집어 어깨에 메고 뒤에 있는 영숙이에게 눈을 뿌려 신호를 하였다. 놈들이 있는 이 지역에서 밤새로 빠져나가야 하였다.
최칠성은 살금살금 웅뎅이에서 기여나가 진대통에 붙었다. 뒤미처 영숙이가 백포자락을 날리며 따라왔다. 그렇게 둬번 거듭해서 산기슭을 가로질러 몇십메터 나갔을 때 그들은 그런 식으로는 한걸음도 더 나갈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군데군데 피워놓은 우등불은 숲속을 대낮처럼 밝혀놓았고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데는 총을 비껴들고 보초들이 서있었다. 사슬에 매인 군견들은 당장 달려와 물고 늘어질것처럼 으르릉거리였다.
그들은 엎드려 눈속을 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왼쪽손에는 망태기를 끌고 오른손에는 총을 잡고 배밀이를 해서 한뽐씩 기여나갔다. 한 둬시간가량 그렇게 기였지만 아직 적들속에서 빠지지 못하였다. 이제는 손도 발도 감각을 잃었다. 영숙이가 오기를 기다려 잠간 쉬였다.
《영숙동무, 기운을 내오. 날이 밝기전에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니까.》
《내 걱정은 말아요.》
그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실망한 빛을 감추려고 애를 썼다.
동녘하늘이 희멀겋게 되였을 때 갑자기 위험이 닥쳐왔다. 개짖는 소리가 몇번 나더니 곧 인적기가 뒤따르고 전지불이 멀지 않은곳에서 번뜩번뜩하였다. 눈보라가 심해서 기여온 흔적은 곧 메워졌을것이지만 군견은 속여낼수 없을것이였다. 머리카락이 오싹 일어서는 순간 최칠성은 영숙에게 언덕밑으로 먼저 달아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영숙은 고개를 흔들었다.
《같이 가요. 혼잔 안가겠어요.》
《어서!》
《싫어요.》
그러나 한초도 지체할수 없게 되였다. 하는수없이 그는 벌떡 일어나 돌을 집어들고 산밑으로 내리굴리였다. 와지끈거리며 돌이 굴러내리는 때에 최칠성은 산마루를 향해 냅다 뛰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