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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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돈화거리는 발칵 뒤집혔다.

관동군련대가 들어있던 벽돌집 2층과 길다란 병실에서 왝왝 고함소리가 울렸다. 정문에 선 보초놈은 머리를 살모사대가리처럼 일궈세우고 말을 타거나 싸이드카를 타고 분주히 드나드는것을 지켜보고있었다. 위수구역일체가 봉쇄되였다.

일본군병사들에게 고함》이라는 삐라장이 날아든 북쪽담장에는 총을 멘 병졸놈이 살기띤 눈을 굴리며 지켜섰다.

해질녘에 풍을 씌운 쉰두대의 화물자동차에 총을 안은것들을 가득 싣고 다리를 건너 산으로 향하였다.

거리에는 경찰이 한벌 덮이였다. 장거리에서는 장사군들과 장군들이 내쫓기였다. 사람이 모일곳은 다 딱지를 붙이고 영업을 중지시켰다. 술집이건 국밥집이건 야장간이건 려인숙이건 지어는 구멍가게와 땜쟁이네 문짝까지 모두 닫아버렸다.

장사군들과 장보러 온 사람들이 간데마다 모여서서 수군거렸다.

김일성장군님께서 큰 부대를 거느리시고 거리를 쳐들어온다구 했다는거요.》

《그런게 아니라 저 일본군대 련대병사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 하루사이에 물러가지 않으면 산채로 다 붙잡아가겠다고 했대요.》

《우리가 봐서는 모르지만 거리에 온통 유격대가 벌써 깔렸다면서? 저기 저런 신사두 유격대인지 모르지.》

《칼치장사 옵네다.》

경찰이 나타났다는것이다.

모두 뿔뿔이 헤여졌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전체 조선인민은 한사람같이 일어나자!》 라는 삐라는 주로 장거리 앞거리와 골목들에 뿌려져있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벌써 길가에 삐라가 널려있었던것이다.

이마가 훌렁 벗어진 《평양면옥》이라는 간판이 달린 국수집 주인은 삐라를 두장이나 얻어다가 감춰두고 짬이 생길적마다 고방에 들어가 읽었다.

촌에서 왔다가 한장씩 주어가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웅덩마을사람들도 소금을 사러 갔다가 삐라 한장씩 허리띠에 말아넣고 돌아왔다.

굉장합데다. 온 세상이 부글부글 끓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선군대를 데리고 당장 쳐내려온다는거지요. 돈화에선 왜놈군대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 뺑소니를 쳤다우.》

앞이가 두개나 빠진 정로인이 온 동네에 소문을 펴며 돌아갔다.

《이 집에 저 청진서 내외손님이 왔다지요?》

최칠성이 토방에 나서며 인사를 하고 정로인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청진서 왔습니다.》

《아! 그렇소. 오는 날이 장날이라구 참 잘 오셨소. 내 좋은 소식 하나 알으켜주겠소. 내가 엊그제 돈화장에 갔더랬지요. 가니까 길바닥에 하얗게 종이가 깔려있질 않겠소. 아, 그래 이게 뭔가 하고 집어드니 그게 삐라라는 글쪽지였지요. 우리 유격대가 뿌린거라우. 난 지난봄부터두만강쪽에 우리 군대가 있다 하는 소문이 돌기에 그저 그러나 부다 했지 이렇게 우리 있는데까지 올줄 꿈에나 생각했겠소? 우리 조선동포가 일어나서 왜놈들을 내쫓자는겁데다. 모르긴 해두 청진에 가면 아마 거기두 그런 삐라가 떨어졌을겁니다.…》

정로인은 구팡돌에 걸터앉아 담배를 잡은참 석대나 피우며 한바탕 떠들었다.

《할아버지, 그러시다 왜놈들한테 붙잡혀가면 어찌겠습니까?》

최칠성은 슬쩍 떠보았다.

《붙잡아갈새가 있나요. 이제 우리 군대가 그놈들을 먼저 죽사발탕을 먹여놓을판인데, 흐흐흐.》

그날 밤 최칠성은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선전을 하였다.

그가 유격대군복으로 갈아입고 방안에 들어섰을 때 마을사람들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중에 누구보다 놀란것은 정로인이였다.

《하, 이것봐라. 돈화거리에 왔다갔다하는건 양복쟁이건 달구지군이건 다 유격대라구 하더니만 이제 보니 우리 웅덩마을에도 벌써 와있었구만. 청진서 왔다기에 난 그런줄만 알고… 하하하.》

삼간방이 터지게 군중들이 들어앉았다. 부엌에는 녀성들과 함께 영숙이가 앉았다. 가운데방과 맏웃방사이에 서서 최칠성이 연설을 히였다. 최칠성은 군모를 벗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정중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반일인민유격대입니다. 이번 장군님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나왔습니다. 우리 유격대는 여러분과 같은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로 조직되였습니다. 우리는 한몸을 바쳐 우리 나라를 왜놈들에게서 찾아낼 결심으로 나섰습니다.…》

최칠성은 침착하고 꾸준하게 계속해나갔다. 마실방에 온 이웃집 젊은이같은 그의 말은 누구에게나 다 리해되였다. 듣기 헐하고 평범한 말로 혁명의 기본문제들을 척척 풀어나갔다.

《조선은 어데로 가야 합니까?》 이렇게 물어놓고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였다. 그는 유격대에 입대해서 이날까지 보고들은 모든것을 다 털어놓았다.

《여보시오, 유격대어른! 지금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어데 계십니까?》

누덕누덕 기운 솜저고리를 입은 한 쉰살가량 나보이는 어머니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어머니, 장군님께서는 지금 산에 계십니다.》

산에요? 이 추운 겨울에 산에서 고생을 하고계신단 말씀입니까?》

머리수건밑으로 반백이 된 머리카락을 내리드리운 어머니는 무슨 말인지 하려고 망설이다가 그만두고 옷소매로 눈굽을 훔치는것이였다. 이미 들은 소리도 있어서 최칠성은 두손을 내들었다가 꽉 마주잡으면서 높은 소리로 웨치였다.

《여러분!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무고하십니다. 왜놈들한테 속지 마시오. 그분께서 우리를 이끌고계십니다.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의 두리에 이렇게 굳게 뭉칩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원쑤라도 쳐물리치고 제 나라를 찾을수 있습니다.》

최칠성의 연설이 끝나고도 마을사람들은 닭이 두홰나 울 때까지 헤여지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최칠성이 입대를 청원하는 청년들에게 당장은 같이 가기 곤난하니 이제 준비하고있으면 곧 련락을 보내겠다고 설복하고있을 때 아까 그 어머니는 먼저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군중들과 헤여진 최칠성이와 영숙이는 그길로 길을 떠났다. 다음지점으로 급히 옮겨가야 하기때문이다.

아직 날이 어둑어둑한데 그들은 동구밖길에 나섰다. 마을사람들이 떨쳐나와 바래주었다. 그때 어딘가 사라졌던 그 어머니가 머리에 임을 이고 급히 뒤를 따라와 길을 막아섰다.

《젊은이! 이걸 장군님께 전해주소. 이 늙은것의 지성이지 아무것도 아니요.》

그러면서 짚신 두컬레가 달린 망태를 내려놓았다.

《어머니!》

《어서 받아주시우다. 이안에는 좁쌀이 몇되 들어있수다. 나라를 찾기 위해 이 추운 겨울에 산속에서 고생하시는 장군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밥을 먹을수 없고 잠을 이룰수 없수다. 젊은이가 돌아가거든 이 늙은것을 대신해서 더운밥 한그릇을 차려 장군님께 대접해주시우. 난 그것밖에 소원이 없소. 나두 젊은이같은 아들이 있었수다. 돈화에 가서 공부를 한다고 했지요. 그런줄 알았는데 지난봄에 왜놈들이 잡아다가 죽였수다. 공산당이라는거지요. 나는 젊은이들을 보자 문득 우리 아들 생각을 했지요. 아마 우리 창식이도 살아있었더면 젊은이들처럼 산에 가서 총을 멨을겁니다. 붙잡혀가기 며칠전에 집에 와서 저두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 총을 메고 싸우겠다고 말했었지요. 그런걸 난 무슨 소린지 모르고 그저 듣고만 있었수다. 어서 받아주시우다. 가까운 길이면 내가 찾아뵙기라도 하련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 망태는 그 애가 만들어서 돈화에서 올 때마다 메고 오던것이랍니다.》

어머니는 무슨 말인지 더 보태려다 그만두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였다. 갈길이 바쁘지 않다면 어머니를 붙잡고 위안의 말이라도 오래 할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몇마디 인사를 남기고 곧 길을 떠났다.

최칠성은 그길로 엄동무를 찾아갔다. 삐라공작임무를 성과적으로 끝냈으니 이제는 차광수를 만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엄동무는 우선 삐라공작을 마치고 기타 문제를 토론하자고 했으니 지금쯤은 무슨 조치를 취했을것이다.

차광수와의 접촉을 미루는것은 모름지기 그가 지금 만나기 어려운 곳에 가있든가 아니면 련락을 취할 일정한 시간이 엄동무에게 필요했기때문이였을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가닥 의혹이 사라지지 않는것은 그날 엄동무가 어째서 그렇게도 침울한 표정을 지었던지 알수 없는것이였다. 혹시 차광수가 앓고있거나 조직에 무슨 불상사라도 생긴것은 아니였을가. 생각이 이에 미치자 최칠성은 스스로도 방정을 떠는것 같은 자신이 역겨워져서 도리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하지.…)

최칠성은 우야 기운을 우쩍 내며 엄동무와 약속한 비밀아지트로 찾아갔다. 엄동무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며 이번 삐라공작이 큰 성과를 거둔데 대해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러나 차광수를 만나는 문제에 이르자 엄동무의 낯색은 또다시 흙빛으로 변해가며 품속에서 꼬깃꼬깃 접은 편지쪽지를 꺼내들더니 침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진작 말했어야 하는건데 공작에 지장이 있을것 같아 그만두었댔습니다. 이 편지는 차광수동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럼 차광수동지가?!…》

최칠성은 몸을 솟구며 눈이 둥그래서 부르짖었다. 엄동무는 눈길을 떨구며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며칠전에 놈들에게…》

숨이 막히는듯 한 뜻밖의 소식이였다. 최칠성은 흰자위 많은 눈을 번뜩이며 넋잃은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멍해 앉았다가 급기야 어깨를 떨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세상에 이런 변도 있는가? 차광수동지가 잘못되다니, 아니, 아니야! 이럴수 없어!

그의 눈앞으로는 떠나올 때 사령관동지께서 신신당부하시던 간곡한 말씀이며 인자한 영상이 방불히 그려졌다. 그이께서는 지금 이 시각도 차광수동지에게서 기쁜 소식이 올것을 기다리고계실것이였다. 그런 사령관동지께 이 비보를 전해야 하다니…

갑자기 몸이 떨려오고 설음이 북받쳐올라 그는 한손으로 턱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꽉 다문 이짬으로 내장을 찢는듯한 괴로운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 목도리는…》

엄동무의 목소리도 차츰 울음에 젖어들었다.

《장군님께 꼭 전해달라고…》

얼마후 최칠성은 꿈속에서 들려오는듯 한 그 목소리를 들으며 엄동무가 내주는 편지와 목도리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었다.

이날 엄동무는 그를 데리고 비밀장소에서 얼마 멀지 않은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얼빠진것처럼 멍청해진 최칠성은 그의 뒤를 따라 거의 본능적으로 발을 옮겨짚었다. 언덕밑에 내려서니 양지쪽에 무덤이 하나 있었다. 솔가지로 위장해놓았기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것이 새로 지은 묘라는것이 알리였다.

《잘 기억해두시오. 나도 여기에 오래 있지 못하겠습니다. 후날에 우리가 차광수동지를…》 토막토막 끊기는 음절을 겨우 이어나가던 엄동무는 오열이 북받쳐 종시 말끝을 맺지 못한다.

최칠성은 무릎을 꺾으며 땅에 털썩 엎드렸다.

《차광수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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