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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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무렵에 최칠성은 소달구지를 몰고 돈화거리 앞다리를 건느게 되였다. 머리에는 흙물이 든 수건을 동이고 우에는 덧저고리를 걸치였다. 무릎이 나간 바지에 미투리를 신고 허리를 구부정한 그가 채찍을 들고 나무발구를 몰았다.
그는 적들의 경계를 뚫고들어가
《이랴!》
뒤를 살피기 위해 공연히 채찍을 들어올리는 바람에 팔뚝같은 뿔이 돋친 큰 황소가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흠칫 달려나갔다.
그럴수록 속이 끓는것은 영숙이였다. 가뜩이나 걸음이 빠르지 못한데다가 닭알바구니를 이고 따르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바구니밑에는 삐라가 들어있었다.
영숙은 참군문제가 결정되지 않아 부대에 머무르고있던 찰나에 최칠성이와 함께 공작을 나오게 되였던것이다.
자태가 바르고 젊음이 활짝 핀 얼굴은 한껏 붉어졌다. 부부로 가장한다는것때문에 처음부터 창피해서 붉게 달아오른것이 200여리 떨어진 이곳에 올 때까지 그냥 식을새가 없는 모양이다.
웅덩마을이라는 곳에 들려 늙은이부부를 설복해서 방조를 받게 되면서부터는 완전히 부부처럼 보이게 하여야 하였다. 어느 한 고리에서만 튀여도 혁명공작을 망쳐먹게 되는것이고 생명을 바치게 된다. 워낙 마음이 서글서글하면서도 깐깐한 축인 영숙은 아주머니투를 십상 잘 내였다.
《영숙동문 머리를 쪽지는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벌써 많이 배워뒀구만.》
웅덩마을을 나서면서 최칠성은 놀려주기까지 하였다. 영숙은 또 공연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을사람들이 낯선 그들을 내다보게 되였을 때 영숙은 바구니를 이고 최칠성을 바투 따라서며 《왜 그렇게 심중해졌어요? 집생각이 나는 모양이지요?》 하고 말을 건늬였다.
《하긴 지금쯤 벌써 기여다닐지도 모르지.》
《어쨌든 혁명이란 이름은 참 잘 지었어요.》
둘이 마주보며 웃었다. 이 모양이 어떻게나 자연스러웠던지 마을사람들은 나들이온 부부가 일찌기도 장에 간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두시간후에 그들은 돈화거리 앞다리에 이르게 되였다.
다리목에서는 총창을 비껴든 왜놈군대가 버티고 서서 거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단속하였다.
콩크리트다리는 아득히 먼 대안까지 뻗어있고 물은 서서히 북쪽으로 빠져나갔다. 아직 물씬물씬한 길바닥으로 두개의 발구채가 금을 그으며 총멘 놈의 앞으로 미끄러져나갔다. 머리수건을 내리써서 한쪽이마가 살짝 가리워진 촌아낙네차림인 영숙은 가슴이 두근두근하는것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발구가 멎자 《뭐야?!》 하는 왜놈의 역정스러운 고함소리가 다리란간을 울렸다.
《장작이지요.》
미츳미츳한 봇나무장작이 보란듯이 발구채우에 무드기 가로누워있다.
《감춰가지고 가는거 뭐냐 말이야?》
한층 더 적의에 찬 고함소리가 또 울리였다. 영숙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씻었다.
병졸 세놈가운데 그중 키가 큰놈이 영숙에게로 다가섰다. 그 순간 영숙의 가슴속에서는 무엇이 툭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이거 뭐야?》
《닭알입니다.》
그놈은 솜털이 보르르 내돋은 손으로 우에 씌웠던 베보자기를 훌 벗기였다. 총이 있으면 탁 쏴갈길 생각이 치민다. 그러나 참고 견디여야 하였다.
《그밑에 뭐가 있느냐 말이다.》
《아무것도 없어요. 닭알이 깨질가봐 짚을 깔았지요.》
《거짓말 말고 빨리 헤쳐봐.》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편 최칠성은 장작단을 부리고있었다. 놈들은 바구니밑과 장작단속에 삐라가 있다는것을 알기라도 하는것처럼 깐깐하게 파고들었다. 최칠성은 태연하게 팔소매를 올리걷고 크게 묶은 창작단을 훌훌 들어옮겨놓았다. 볼테면 보라는 투다.
영숙은 떨리는 손을 억지로 참아가면서 닭알을 하나하나 보자기우에 내놓기 시작하였다. 우선 이렇게 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그때 최칠성이 버럭 화를 내였다.
《에이. 저런 바보같은것 봤나.》
전류에 닿은것 같이 영숙은 꿈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 나리님들이 목이 컬컬해서 그러는데 한알 맛보시라는 소리도 없어?》
최칠성은 낯을 찡그리며 가래침을 퉤 뱉고 삐라가 든 장작단을 훌 옮겨놓고 그우에 다른 장작단을 슬쩍 얹어놓았다.
영숙은 이때 침착하게 손을 놀려 닭알을 집어들고 치마폭에 닦았다.
그리고나서 반들반들한 닭알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왜놈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한알 맛을 보세요.》
가리마가 곧게 넘어간 머리를 숙이면서 눈덕을 내리깔았다.
먹음직한것이 이쁘게 생긴 조선녀인의 두손에 정성스레 받들리여 턱밑으로 다가오자 입술을 들치고 나온 버드렁이가 우로 들려올라가면서 허 하고 웃음을 내불었다.
《어서 잡숴보세요.》
왜놈은 고양이 기름종지 넘겨다보듯이 영숙의 등에 이루어진 곡선을 내려다보며 시꺼먼 손을 내밀었다. 또 하나의 닭알이 치마폭에 문대지고 그길로 눈첩첩이놈한테로 옮겨갔다.
《아! 맛이나 좋다!》
벌써 버드렁이는 껍데기를 훌 다리밑으로 던져버리고 손바닥으로 턱밑을 훔치며 바구니를 또 노려보고있다.
이번에는 바구니를 땅딸보앞으로 직접 옮겨갔다. 닦을 필요도 없었다. 또, 또 껍데기들이 연방 어깨우를 지나 강바닥으로 날아나고 세놈의 턱밑이 모두 끈적끈적한것으로 한벌 발리게 되였다.
다음은 영숙이의 손이 나들새없이 황토색으로 물든 세놈의 손이 번갈아 바구니안을 움켜내였다.
이렇게 되자 영숙이는 입을 딱 벌리며 《안돼요. 안돼요》 하고 절망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것을 다 털리고나면 그밑에서 삐라가 나질것이였다. 그때 최칠성이 고함을 질렀다.
《저 바보같은것, 냉큼 안고 달아나지 못하고 앉아서 다 뺏기고있어?》
그 소리를 듣고 영숙인 재빨리 바구니를 그러안고 돌아앉았다.
《이젠 안돼요. 쌀을 사야 되는거예요.》
그는 바구니를 안고 이쪽저쪽으로 피하다가 최칠성이 옆으로 내뺐다.
《흐흐흐.》
략탈에 만족을 느끼였고 동시에 아름다운 조선녀성을 골려주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너무 좋아 어쩔줄을 몰랐다.
버드렁이가 입을 벌리고 침방울을 튕기며 고개를 젖히였다.
《히히히.》
눈첩첩이의 눈이 아예 없어진다.
《낄낄낄.》
땅딸보는 아직도 입안에 무엇이 가득 들어있어서 앙바틈한 목을 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친다. 최칠성은 공거라면 양재물도 퍼마실 놈들을 껄껄 비웃으며 장작단을 발구에 올려놓았다.
그사이에 길을 막힌 숱한 사람들이 떠들었다.
《거 촌아주머니 닭알 한광주리를 앉은자리에서 들장냈군.》
《그런대로 행패를 면했으니 다행이요.》
발구를 끌고 앞서나간 최칠성은 뒤를 돌아다보며 의미있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말은 딴식으로 했다.
《바보같은거, 진작 일어나 내뺄것이지.》
장거리모퉁이에 들어섰을 때 최칠성은 어색한 낯을 지으며 손을 뒤덜미로 가져갔다.
《영숙동무! 용서하우. 하는수없이 욕을 했소.》
《난 최동무에게 그런 수가 있는줄 정말 몰랐어요.》
영숙은 아래입술을 깨물며 방긋 웃었다.
그날 최칠성은 해가 다 넘어간 다음에야 장마당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엄동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였다. 그는 최칠성을 데리고 거리에서 한쪽으로 치우쳐붙은 다리밑으로 갔다. 콩크리트다리밑에는 판자집이 몇채 있고 그옆에는 거지아이들이 거처하는 하수도구멍도 있었다.
최칠성은 두사람이 겨우 들어앉을만 한 비좁은 방으로 안내되였다.
두사람이 마주앉자 나이 40이 가까운 엄동무는 먼길을 오시느라 수고했겠다며 인사말을 남기고는 찾아온 용무부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