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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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 다들 들어갑시다. 오늘은 이만합시다. 예정했던 평수는 됨직합니다.》

박기남이 명령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어서!》

키가 구척같은 돌격대장 서국보가 금실이의 등을 떠밀었다.

《못가겠어요.》

《못가면 어떻게 해?》

서국보는 코멘소리를 내였다.

《저놈들이 좋아하라고 가요?》

저쯤앞에서 우렁찬 젊은이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돌격대장! 우리더러 가라구요?》

부엌녀아주머니가 대피호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대들었다.

《버덩 하나를 거두는데 이게 무시기요? 한사람은 죽고 오늘은 다리가 부러지고 이런데 가길 어델 감메?》

세걸은 이때 가슴이 뿌지지 끓어오름을 느끼였다. 밭이랑에 떨어진 피자욱이 내려다보이였다. 그는 후두두 몸을 떨었다.

박기남동지! 저놈들을 습격합시다.》

《습격한다구요?》

《저놈들을 쳐야 마음놓고 일을 할거 아닙니까? 이 사람들을 보시오.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습니다.》

《놔둡시다. 오늘은 이쯤하고 들어갔다가 또 기회를 봐서 나와야지요.》

《칩시다.》 세걸은 주먹을 흔들며 주장하였다.

《그곳에는 우리보다 우세한 적이 있습니다. 두개 중대나 되지요. 그것을 치면 더 우환거릴 만납니다. 따벌둥지를 쑤시는 격이 되지요. 그뒤에는 〈토벌대〉놈들이 물밀듯이 밀려올겁니다. 그때엔 추수투쟁만이 아니라 이 골안에 있는 모든것이 죄다 없어지게 되지요.》

《칩시다. 뒤에 밀려올 놈들은 없습니다.》

《왜 없어요?》

《글쎄 없습니다. 산으로 기여올랐지요, 사령관동지의 전술에 넘어가 다 떴습니다.》

《정말 그래요?》

군중들이 여기저기서 적을 치자는 세걸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토벌대〉놈들을 끌어갔다는데 이런 때 안 치고 언제 치겠소?》

《어쨌든 칩시다. 더는 참을수 없소.》

그때 뒤에서 인적소리가 났다. 때마침 리광이가 소대를 데리고 전투를 도우러 나왔다. 박기남이가 세걸을 소개하자 세걸은 통신쪽지부터 전달하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진 리광은 전지를 켜들고 밭뚝에 앉아 통신을 읽었다. 사령관동지의 친필로 된 짤막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라남사단과 관동군으로 이루어진 일제의 《토벌》무력은 지금 백두산동북부줄기에 거의다 올라붙었다. 이 기회에 유격구-완전해방지구를 적극적으로 확대할것이다. 우리가 해방지구에 혁명군중을 더 많이 포괄할수록 적은 그만치 분산약화될것이다.

지역별로 내온 중대들을 하나의 체계에 망라해서 지구별로 대대를 편성하는것이 좋겠다.

편지를 다 읽고난 리광은 너무 감격해서 한동안 말없이 서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눈을 빛내이였다.

홀연 그는 사령관동지앞에 선것처럼 온몸이 긴장되고 경건한 심정에 잠겨들어갔다.

이윽해서 리광은 크고 무뚝뚝한 사나이답지 않게 가슴에 두손을 붙이고 먼산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세걸은 웃동을 벗어 잔등의 안을 뜯더니 종이에 싼것을 꺼내였다.

《이것도 전하라고 보내시였습니다.》

리광은 그것을 곧 펼치였다. 종이로 두겹이나 싼것을 펼치니 붉은 가위를 씌운 학습장이 두개 나왔다.

첫장에는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 라고 씌여져있었다.

박기남동무, 이것을 받으시오. 하나는 박동무것이 틀림없소.》

박기남은 두손으로 받아들었다.

리광은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먼산만 바라보며 서있었다.

《사령관동지!》

약간 벌어진 그의 입새로 떨리는듯한 외마디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후 그들은 눈이 한벌 덮인 언덕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경찰대를 습격할 작전을 짰다.

사령관동지의 편지에서 고무를 받은 리광은 소대를 정렬시켜놓고 대렬앞으로 기운차게 걸어나갔다. 그는 오늘밤중으로 5키로밖에 있는 토성골경찰대를 섬멸할데 대한 전투를 진행할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나서 앞장서서 걸어나갔다.

세걸이도 박기남이도 그의 뒤를 따랐다.

토성골경찰대가 녹아난 이튿날 중낮이나 되였을 때 세걸은 다시 길을 떠났다. 동구밖을 나서자 전날에는 밤에 가을을 하던 그 골짜기에 사람들이 하얗게 덮이였다.

그중에도 아동단대렬이 제일 볼만 하였다. 목에 붉은넥타이를 맨 열살안팎의 아동들이 모두 낫을 들고 밭에 들어섰다. 세걸이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 밭둔덕에 서서 총을 메고 적을 감시하던 도수높은 안경을 낀 백광명선생이 리광에게 인사를 하였다.

한번도 대면한적은 없지만 리광이 사령관동지께서 보내신 통신원이라는것을 설명하자 그는 세걸이앞으로 다가서며 정중히 거수경례를 붙이였다. 아동단원들이 노래를 불렀다.


왔고나 왔고나 혁명이 왔고나

《기세가 대단하군요.》

세걸이가 한마디 하자 백광명은 긍지높은 어조로 대답하였다.

《이만하면 괜찮습니다.》

푸른 양복에 각반을 치고 총을 멘 그는 이전과는 전혀 모습이 달라졌다. 옷차림새로 본다면 이전에 비해 한결 더 소박해졌고 간편해졌다. 항상 우울한 그늘이 비꼈던 그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긍지가 지나쳐 약간 도고한듯 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전혀 어색한감을 주지 않았다. 그중에도 유독 두드러진것은 맑은 하늘처럼 깨끗하고 선량한 그러면서도 정기가 도는 그의 눈빛이였다. 은테안경이 번쩍 빛을 내면서 그의 얼굴이 밭으로 향해졌다. 그것은 마치 장쾌한 가을걷이, 투쟁으로 얻어낸 수확이 얼마나 값비싼것인가를 자랑하는듯 한 몸가짐이였다. 세걸이 리광이와 헤여지게 되였을 때 백광명은 뒤에 따라서며 나직이 말하였다.

《장군님께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세걸은 밭가운데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걸었다.

아동단원들이 일하고있는 반대쪽 산기슭에서는 부녀회원들이 수수가을을 하고있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들리였는데 뛰여난 부엌녀아주머니의 걸걸한 목소리를 곧 알아들을수 있었다.

세걸은 자못 상쾌한 기분에 잠겨 길을 걸었다. 위태롭게 걸린 모자는 방금 미끄러져떨어질것 같고 좀 삐여져나온 그의 이마는 끝이 들린 코와 함께 웃고있는 그의 얼굴을 한결 더 보기좋게 만들었다.

그는 출판물을 구하기 위해 룡정으로 가는중이였다. 그는 근간신문이나 잡지 등을 구하기로 되여있었는데 또한 박기남의 부탁도 겸해 들어주기로 하였다. 어제밤 그는 박기남이와 밤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전날 부대에서 유격전술에 대한 굉장한 토론이 있었다는것을 말하였다.

그때 박기남은 유격전술을 기록한 좋은 책이 있더라고 하였다. 구미가 부쩍 당긴 세걸이 그런것이 어데 있느냐고 물으니 박기남은 《빨찌산전투경험집》이라는 책을 본 일이 있는데 오래전이여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되지 않으나 이러저러한 전투들이 자세히 소개되였더라고 하였다.

그것은 지금도 룡정에 사는 장두만이라는 친구가 가지고있을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을 구할수 없느냐고 하니 가서 만나기만 하면 될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어느때나 항상 생활이 자극적이기를 바라는 세걸은 대번에 불같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것을 손에 넣기만 하면 동무들을 또 한번 놀라게 할수 있을것이였다. 수동골짜기에서 물고기를 잡던 그런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커다란 정치적수확물로 되여 어느때나 좋은 평가를 내리기에 그렇게도 린색한 차광수도 두손을 들어 환성을 지르게 될것이였다.

활기를 띤 그는 해가 질녘에 룡정거리 30리를 앞두고 하루 묵기로 하고 산막 외딴집으로 찾아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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