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 회)

12

(12)

 

유격대원들의 오락회가 벌어졌다. 춤과 노래가 연방 나왔다. 웃어대고 손벽을 치고 환호를 올리고 하여 마당이 들썩하였다.

그런 흥겹고 복잡한 통에서도 제가끔 제볼장을 보기마련인 모양이였다. 팔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난 강계집아주머니는 기세가 등등해서 마루에 앉아 구경을 하는 홍령감을 찾아가 주둥아리를 뽑아볼테면 뽑아보라고 손짓을 하며 들이대였다.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다니까. 눈에 명태껍질이 씌워져 그랬네. 사람이 살아가다가 그런 실수쯤 할수 있는거지 뭘 그러나. 설마 장군님께서 〈머슴〉이 되실줄이야 꿈에나 누가 생각했나. 그렇지 않나?》

《그러니 이제 다시한번 부녀회가 어떻다는걸 말씀해보시라요.》

《우리가 졌네, 우리가 졌어. 나이 먹으면 다 그런거야. 난 열흘이상이나 문병을 받으면서도 그런 기미를 몰랐댔소. 이제 나만치 나이 먹어보라구. 그럼 알게 돼.》

홍령감은 난생처음 이런 맥빠진 소리를 하였다. 그러고나서 그도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를 찾아 떠났다.

송정혁은 마냥 기분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다. 그때 박수를 치고있는 송정혁의 팔을 밀어제끼며 홍령감이 전광식이 앞으로 뚫고나왔다. 그는 전광식이 유격대에서 높은 사람이라는것을 눈치채고 그를 끌어내여 통사정을 하려들었다.

《나 좀 봅시다.》

침중한 얼굴을 한 그가 팔소매를 잡아 대문밖으로 전광식을 끌어내였다. 두그루의 배나무가 높다랗게 올리솟은 담장밑에 이르러서 씨근거리며 말하였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 그럽니다. 렴치없는 행실을 널리 용서해주시오. 장군님께 저의 말씀을 좀 전해주십시오. 저의 별호는 〈반동령감〉입니다. 이건 송정혁이가 지어준겁니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내가 그더러 공산주의를 할라면 딴데 가서 하지 우리 마을에서는 절대 하지 말라, 그런짓을 하다간 아이, 어른 할것없이 씨종자도 남지 않고 다 〈토벌〉맞아 죽는다, 그랬더니 송정혁인 글쎄 단박 〈반동령감같으니라구.〉 하고 욕을 퍼붓지 않겠습니까. 내가 정혁이 아버지 송별장과 이만저만한 사이가 아니니 참긴 했지만 그땐 정말 미칠 지경이였답니다. 안윤재네 집에서 잔치가 있은 며칠후에 저는 몸져누웠습니다. 몸이 불덩이같이 달고 숨이 차더니 그다음에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후에 알았지만 아마 못된 열병인 모양인데 근처 사람들도 문병오는것을 꺼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며칠안으로 언땅을 파서 무덤을 만들 걱정을 했다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날 송정혁이와 그 집 〈머슴〉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이거 입이 못돼서 자꾸 실수를 합니다. 〈머슴〉이 아니라 장군님이시지요. 그후에도 열흘이상이나 오셨습니다. 초저녁에 같이 왔던 송정혁이 돌아간 뒤에도 장군님께서는 밤을 새며 약도 사다 입에 떠넣어주고 몸간수도 해주며 계속 밤을 밝히시였습니다. 장군님덕분에 내가 살아났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야 나같은것이 벌써 저승에 가서 귀신된지 오랬을것입니다. 그때 죽었더면 장군님도 유격대도 못 볼번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장군님과 서로 친해졌습니다. 하루는 내가 기왕 〈머슴〉 살바엔 정혁이 같이 나쁜 놈네 일을 해주지 말고 어데로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차차 주의자가 마을에 없어야 한다는 말도 안하게 되고 송정혁일 죽일 놈이라 된욕도 하지 않게 되였습니다. 내 본성이 그닥 나쁜 놈은 아니웨다. 장군님께 제가 죽을 죄를 졌다고 사과를 하더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장군님덕분에 살아났으니…》

홍령감은 저고리앞섶을 헤치고 몸에 품었던 자그마한 꾸레미 하나를 꺼내였다.

《별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냥을 좋아해서 산에 다니다가 얻어본건데 장군님께 드려주십시오.》

그는 쭈그리고앉아 꾸레미를 무릎우에 놓고 펼치였다.

천으로 싸고 그안에 또 두겹세겹 종이로 쌌다.

《나이는 착실히 먹은것 같은데 크지는 못합니다.》

종이를 다 끄르고나서 그는 무릎에 가로놓인 물건을 들어올리였다. 한발이나 되는 줄기가 그냥 달린 산삼 한뿌리가 달빛에 허옇게 드러났다.

《장군님께서 그저 천세만세 장수하시도록 전해주십시오.》

산삼뿌리를 받쳐든 그의 손이 알릴듯말듯 하니 떨리였다.

전광식은 자세를 바로잡고 홍령감과 마주섰다. 보잘것 없는 농촌령감의 초상이 몹시 숭고한 모습으로 나타나 앞으로 다가올 때 그는 뒤로 물러나며 두손을 내대였다.

《저는 그것을 받을수 없습니다. 장군님께 저와 함께 가서 직접 드려주십시오.》

한편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락회가 끝나자 곧 뒤산으로 오르시였다.

간절한 추억이 깃든 그 자그마한 옹달샘같은 바위굴을 돌아보기 위해 나오시였다. 《머슴》살이를 하면서 발구를 끌고 오셔서는 이 굴에서 글도 썼고 각처에서 오는 공작원들도 만나시였다.

하기는 이러한 곳이 이 하나뿐이 아닌데 오늘따라 왜 이런 곳이 그렇게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되살아나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산등을 혼자 천천히 거닐으시였다. 굴어구에 선 낯익은 분지나무 한그루가 역시 그때 그 모양으로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굴속을 돌아보고 바위등에 올라 우줄우줄 물결쳐나간 아득한 산발을 바라보시였다. 달빛을 받아 뽀얗게 흐려진 공간으로 때마침 한줄기 바람이 눈보라를 몰고 북쪽으로 사라져갔다. 허리를 짚고 어둠속에 펼쳐진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고계시는 그이의 존안에 숭엄한 기상이 깃들어있었다.

멀찍이 서서 송정혁이 그이를 지키였다.

어찌보면 과거와 현실이 한데 어울린 이곳 이 동굴 그리고 그 나날을 감회깊게 회상하시는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바야흐로 다가오기 시작한 혹한의 한겨울이 가져올 시련을 상상해보시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쨌든 그이의 안광에는 이때 숨길수 없는 희열과 신념이 비쳐있다는것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산을 내리시면서 그이께서는 이전에 있던 발구길을 찾기 위해 사위를 살피다가 송정혁을 보고 걸음을 멈추더니 손짓해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송정혁이와 함께 나란히 걸으면서 별로 중요하다고 볼수 없는 이곳 겨울철 계절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때 정혁은 발을 빗디디여 미끄러져 넘어질번 하다가 사령관동지의 팔을 불잡고 겨우 몸을 일으켜세웠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의 걸음은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부터 미끄러져 넘어지면 어찌겠는가고 하며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그통에 정혁은 또 발을 미끄러뜨려 나무를 붙잡고 겨우 몸을 지행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