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 회)
12
(10)
한편 홍령감은 방아간집에 대고 갱충머리없는 녀편네가 말을 잘 안듣더니 꼴좋게 되였다고 욕을 하면서 달려나갔다.
몇명의 척후대가 앞서고 그뒤에 장사진을 이룬 부대가 산허리를 가로질러 마을을 향해 내려왔다. 저녁해를 받아 어깨의 총들이 눈부시게 빛을 뿌렸다.
《만세! 만세!》
마을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송정혁은 쭉지가 떨어져나갈만치 급히 활개를 저으며 맞받아나가고 그뒤로 각 조직의 책임자들과 청년들이 따라나갔다.
산발에서 벗어나 달구지길에 들어선 유격대원들은 잠간동안 대렬을 수습하고 렬을 지어 마을로 행진해들어왔다.
대오의 첫머리는 벌써 개울을 건너 한길에 들어섰고 그 꼬리는 방천을 지나 아득히 건너편 산기슭까지 잇닿아있었다. 대렬 맨끝에는 밤빛말 한필이 꼬리를 두르며 걸어오고있는데 그우에 앉으신
《여러분!
송정혁은 뒤에 대고 고함을 쳤다. 그는 이때까지 유격대가 온다는것만 알렸지
《
모두 탄성을 질렀다. 이곳 사람들은 이른봄부터 유격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드디여 유격대 선두대렬이 마을에 들어섰다.
《
《반일인민유격대 만세!》
환호성이 련거퍼 울리였다.
아이들이 두팔을 흔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낙네들은 한쪽손을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였고 늙은이들은 손을 앞으로 내들고 머리를 연신 끄떡이였다. 홍령감은 앞에 막아선 젊은이 하나를 떠밀어내치고 밭두덩에 올라서서 팔을 흔들었다.
《
오매에도 그립던
동구밖에서부터 말에서 내리여 걸어들어오시는 키가 후리후리한분께서 그의 앞에 이르렀을 때 홍령감은 허리를 굽혀 정중히 절을 하였다.
뒤늦게 달려나온 강계집아주머니는 걷어올렸던 팔소매를 내리우고 빽빽이 나선 군중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섰다.
이미 지나간 선두대렬로부터 쭉 훑어보았지만 어느분이
《아니, 어느분이시오,
그는 앞에 있는 어느 청년을 떠밀며 대렬앞으로 썩 나섰다. 그때 키가 보통이나 되고 얼굴이 검실검실한 유격대원이 아주머니의 어깨를 잡아 삑 돌려세우며
강계집아주머니는 허겁지겁 뒤로 달려갔다. 그렇지만 어느분이신지 알길이 없는데 이미 대렬은 그것으로 끝날 대목이 되여 송정혁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많이 뒤섞이여있었다. 그는 다짜고짜로 유격대원 한명을 붙잡고
그가 몇사람뒤에서 걸어오면서 군중들에게 답례를 하시는
강계집아주머니는 풀색군복을 입고 키가 크고 얼굴이 환한분을 보자 땅에 가볍게 꿇어앉으며 고개를 숙여 큰절을 올리였다.
《모두 안녕들 하셨습니까?》
우렁우렁한 음성이 머리우에서 울리는것을 들으며 강계집아주머니는 허리를 펴고 앞을 내다보았다.
《아!》
그 순간 아주머니는 입을 딱 벌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우물길의 얼음을 깔 때 도끼를 들어올리면서 웃던 그 얼굴이였다. 아니, 그보다도 잔치집마당에서 떡그릇을 들고 나갔을 때 이쪽을 바라보던 그 얼굴이 틀림없고 목소리도 귀에 익다. 얼마동안 아주머니는 멍청히 서서
《저
말을 해놓고도 엄청난 자기 판단에 놀라서 마치 누가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하는가 하는 투로 큰 눈을 번뜩이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니, 무시기요?》
목청이 챙챙하고 덤비는데서 이름난 북청집아주머니가 어깨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성님, 내래 지금 정신이 똑똑하디요?》
《그래 무시김메?》
《이봅세, 오새있습메?》
《그러니끼니 내 정신이 있나 묻딜 않소.》
그러는 사이에 유격대원들은 송정혁이네 널다란 앞마당에 이르러 뭐라뭐라 구령이 울리더니 일제히 흩어져 휴식을 하게 되였다.
반제동맹회장, 부녀회장을 비롯한 부락책임자들이 몇집씩 담당해 나서서 유격대원들의 숙소를 준비하였고 한편 홍령감은 유격대구경을 나간 아낙네들과 젊은이들을 소리쳐 불러다가 음식을 준비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집집마다 부엌문을 열어제끼고 나무단을 끌어들여 불을 때였고 우물마다에 아낙네들이 둘러서서 물을 길어들이였다. 아이들은 자기 집에 들게 된 유격대원을 둘러싸고 웃고 떠들며 이야기판을 벌리였다. 뒤마을에 들어갔던 홍령감이 막 방아간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강계집아주머니가 동이를 끼고 나오다가 그와 마주쳤다.
《홍아바니,
《뵈옵다뿐인가, 인사도 올렸지.》
아주머니는 이런 투로 슬쩍 중을 뜨려 하였다.
《낯이 익다뿐인가. 난 이전부터
홍령감은 불도 없는 대통을 입에 물었다 뺐다 하면서 온갖 유식한 표현을 다 끌어내였다.
《난 꼭
《아하!》
한걸음 움쭉 나서면서 홍령감은 덮쳐잡을것처럼 두손을 내들고 갑자기 씨근거렸다.
《왜 그리 놀라시우, 홍아바이?》
《왜 그러느냐구? 고 주둥아릴 쭉 뽑아버리구 말가부다.》
《에그마나.》
《내가 진작 그러루 점을 치긴 했지만 녀편네들이란건 정말 한심하다니까. 아까부터 그런 가을뻐꾸기소리같은 뛰뛰한 소문이 돌길래 만나는것마다 욱박아줬는데도 또 그 모양이야. 내가 그것때문에 겸사해서 뒤마을에 들어갔던거요. 이러다간 우리 마을에서 큰일치겠소.》
한매 칠것처럼 주먹을 들먹들먹하는통에 강계집아주머니는 기가 움츠러들어 부리나케 우물길로 달아나갔다.
담배대를 문채 얼굴이 익은 호박빛이 되여 혼자 투덜거렸다.
《귀들이 보밴 보배다. 혁명은 못살던 사람일수록 잘한다는 말은 어디서 주어들은 모양인지. 그렇다기로서니 아, 그래
아무리 바빠도 단단히 욱박질러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녀인이 물을 길어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또 한마디 하였다.
《다시 그런 소릴 어데 가 내봐라, 허리갱일 분질러놓지 않나.》
《그만하시우, 홍아바니.》
《그러니까 부녀회는 농민협회한테 배워야 한단 말이 그런걸 두고 하는 소리야.》
《그만하시우, 홍아바니두 〈반동〉이란 별호로 불리운것이 엊그제 아니요.》
강계집아주머니는 입을 비쭉해보이며 그앞을 힝 하고 지나가버렸다. 물을 다 긷고난 강계집아주머니는 양념장이 모자랄것이라고 핑게를 대서 사발 하나를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