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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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홍령감은 방아간집에 대고 갱충머리없는 녀편네가 말을 잘 안듣더니 꼴좋게 되였다고 욕을 하면서 달려나갔다.

몇명의 척후대가 앞서고 그뒤에 장사진을 이룬 부대가 산허리를 가로질러 마을을 향해 내려왔다. 저녁해를 받아 어깨의 총들이 눈부시게 빛을 뿌렸다.

《만세! 만세!》

마을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송정혁은 쭉지가 떨어져나갈만치 급히 활개를 저으며 맞받아나가고 그뒤로 각 조직의 책임자들과 청년들이 따라나갔다.

산발에서 벗어나 달구지길에 들어선 유격대원들은 잠간동안 대렬을 수습하고 렬을 지어 마을로 행진해들어왔다.

대오의 첫머리는 벌써 개울을 건너 한길에 들어섰고 그 꼬리는 방천을 지나 아득히 건너편 산기슭까지 잇닿아있었다. 대렬 맨끝에는 밤빛말 한필이 꼬리를 두르며 걸어오고있는데 그우에 앉으신 장군님을 송정혁은 대번에 알아보았다.

《여러분!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십니다.》

송정혁은 뒤에 대고 고함을 쳤다. 그는 이때까지 유격대가 온다는것만 알렸지 장군님께서 친히 오신다는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었다.

장군님께서요?!》

모두 탄성을 질렀다. 이곳 사람들은 이른봄부터 유격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지만 직접 뵈온적은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의 흥분은 갑자기 고조되였다.

드디여 유격대 선두대렬이 마을에 들어섰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신다는 한마디 소식은 삽시간에 군중들속에 퍼져나가 일제히 말 한필이 오고있는쪽에 쏠리였다.

김일성장군 만세!》

《반일인민유격대 만세!》

환호성이 련거퍼 울리였다.

아이들이 두팔을 흔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낙네들은 한쪽손을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였고 늙은이들은 손을 앞으로 내들고 머리를 연신 끄떡이였다. 홍령감은 앞에 막아선 젊은이 하나를 떠밀어내치고 밭두덩에 올라서서 팔을 흔들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시다니, 우리 백의민족을 구원해주실 장군님께서 이런 벽지에 찾아오시다니.》

오매에도 그립던 그이를 모시게 된 홍로인은 한평생 처음으로 이런 감격에 싸인것이였다.

《장군님!》

동구밖에서부터 말에서 내리여 걸어들어오시는 키가 후리후리한분께서 그의 앞에 이르렀을 때 홍령감은 허리를 굽혀 정중히 절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홍령감에게 마주 인사를 하시고 앞에 몰켜선 어린것들의 머리를 쓸어주고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뒤늦게 달려나온 강계집아주머니는 걷어올렸던 팔소매를 내리우고 빽빽이 나선 군중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섰다.

이미 지나간 선두대렬로부터 쭉 훑어보았지만 어느분이 장군님이신지 도저히 알수 없었다.

《아니, 어느분이시오, 장군님이?》

그는 앞에 있는 어느 청년을 떠밀며 대렬앞으로 썩 나섰다. 그때 키가 보통이나 되고 얼굴이 검실검실한 유격대원이 아주머니의 어깨를 잡아 삑 돌려세우며 《장군님께서는 뒤에 오십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강계집아주머니는 허겁지겁 뒤로 달려갔다. 그렇지만 어느분이신지 알길이 없는데 이미 대렬은 그것으로 끝날 대목이 되여 송정혁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많이 뒤섞이여있었다. 그는 다짜고짜로 유격대원 한명을 붙잡고 장군님이 어느분이신가고 물었다.

그가 몇사람뒤에서 걸어오면서 군중들에게 답례를 하시는 장군님을 가리켜주었다.

강계집아주머니는 풀색군복을 입고 키가 크고 얼굴이 환한분을 보자 땅에 가볍게 꿇어앉으며 고개를 숙여 큰절을 올리였다.

《모두 안녕들 하셨습니까?》

우렁우렁한 음성이 머리우에서 울리는것을 들으며 강계집아주머니는 허리를 펴고 앞을 내다보았다.

《아!》

그 순간 아주머니는 입을 딱 벌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우물길의 얼음을 깔 때 도끼를 들어올리면서 웃던 그 얼굴이였다. 아니, 그보다도 잔치집마당에서 떡그릇을 들고 나갔을 때 이쪽을 바라보던 그 얼굴이 틀림없고 목소리도 귀에 익다. 얼마동안 아주머니는 멍청히 서서 장군님께서 걸어들어가시는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드디여 옆에 몰켜선 아낙네들쪽에 대고 《아유, 세상에 별일도 있다.》 하고 높은 소리로 웨치며 손벽을 두드렸다.

《저 장군님이 송정혁이네 머슴으로 있던 그 사람 아니요?》

말을 해놓고도 엄청난 자기 판단에 놀라서 마치 누가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하는가 하는 투로 큰 눈을 번뜩이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니, 무시기요?》

목청이 챙챙하고 덤비는데서 이름난 북청집아주머니가 어깨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성님, 내래 지금 정신이 똑똑하디요?》

《그래 무시김메?》

《장군님이 내 보기엔 꼭 송정혁이네 머슴살던 그분같이 생겼길래…》

이봅세, 오새있습메?》

그러니끼니 내 정신이 있나 묻딜 않소.》

그러는 사이에 유격대원들은 송정혁이네 널다란 앞마당에 이르러 뭐라뭐라 구령이 울리더니 일제히 흩어져 휴식을 하게 되였다.

반제동맹회장, 부녀회장을 비롯한 부락책임자들이 몇집씩 담당해 나서서 유격대원들의 숙소를 준비하였고 한편 홍령감은 유격대구경을 나간 아낙네들과 젊은이들을 소리쳐 불러다가 음식을 준비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집집마다 부엌문을 열어제끼고 나무단을 끌어들여 불을 때였고 우물마다에 아낙네들이 둘러서서 물을 길어들이였다. 아이들은 자기 집에 들게 된 유격대원을 둘러싸고 웃고 떠들며 이야기판을 벌리였다. 뒤마을에 들어갔던 홍령감이방아간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강계집아주머니가 동이를 끼고 나오다가 그와 마주쳤다.

홍아바니, 장군님을 보셨소?》

뵈옵다뿐인가, 인사도 올렸지.》

《장군님모습이 낯이 익지 않습데까?》

아주머니는 이런 투로 슬쩍 중을 뜨려 하였다.

《낯이 익다뿐인가. 난 이전부터 장군님이야기를 들을적마다 늘 그런분을 머리에 그려보군 했댔소. 과시 만나뵈옵고보니 우리 백의민족을 건져주실 홀륭한분이시요. 나이가 젊구 인물이 벌써 그렇게 태여났더란 말입니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눈에서는 영채가 돌고 입모습에는 항상 웃음이 깃들어있고 우리 조선은 벌써 독립이 된것이나 다름없소. 하하하, 우리 앞길은 창창하게 열렸소. 천리만리로 앞길이 뻗었단 말이요.》

홍령감은 불도 없는 대통을 입에 물었다 뺐다 하면서 온갖 유식한 표현을 다 끌어내였다.

《난 꼭 장군님을 지난봄에 송정혁이네 집에서 본것 같아요.》

《아하!》

한걸음 움쭉 나서면서 홍령감은 덮쳐잡을것처럼 두손을 내들고 갑자기 씨근거렸다.

《왜 그리 놀라시우, 홍아바이?》

《왜 그러느냐구? 고 주둥아릴 쭉 뽑아버리구 말가부다.》

에그마나.》

《내가 진작 그러루 점을 치긴 했지만 녀편네들이란건 정말 한심하다니까. 아까부터 그런 가을뻐꾸기소리같은 뛰뛰한 소문이 돌길래 만나는것마다 욱박아줬는데도 또 그 모양이야. 내가 그것때문에 겸사해서 뒤마을에 들어갔던거요. 이러다간 우리 마을에서 큰일치겠소.》

한매 칠것처럼 주먹을 들먹들먹하는통에 강계집아주머니는 기가 움츠러들어 부리나케 우물길로 달아나갔다.

《장군님을 송정혁이네 머슴에 비겨? 에익, 고현것들!》

담배대를 문채 얼굴이 익은 호박빛이 되여 혼자 투덜거렸다.

《귀들이 보밴 보배다. 혁명은 못살던 사람일수록 잘한다는 말은 어디서 주어들은 모양인지. 그렇다기로서니 아, 그래 그분을 머슴에 비겨? 에익, 삼대를 멸할놈들.》

아무리 바빠도 단단히 욱박질러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녀인이 물을 길어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또 한마디 하였다.

《다시 그런 소릴 어데 가 내봐라, 허리갱일 분질러놓지 않나.》

그만하시우, 홍아바니.》

《그러니까 부녀회는 농민협회한테 배워야 한단 말이 그런걸 두고 하는 소리야.》

그만하시우, 홍아바니두 〈반동〉이란 별호로 불리운것이 엊그제 아니요.》

강계집아주머니는 입을 비쭉해보이며 그앞을 힝 하고 지나가버렸다. 물을 다 긷고난 강계집아주머니는 양념장이 모자랄것이라고 핑게를 대서 사발 하나를 들고 장군님께서 드신 송정혁이네 집으로 갔다. 부엌으로 들어간 그는 송정혁의 어머니와 이것저것 말을 걸면서 안방 동정을 살폈다. 두런두런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암만 기다려도 장군님을 뵈올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방안에서 물이라도 청했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도 있을상싶지 않았다. 대사에 녀편네들이 끼우면 불길하다는 징조를 누구보다 굳게 믿고있던 그는 방안을 여러번 넘겨다보다가 끝내 뵈옵지 못하고 간장 한사발을 얻어들고 그냥 돌아오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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