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1 장

3

(4)

 

《그래서 아직 가족을 데려오지 못하고있구만. 그렇게 심하게 앓고있는 아버님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겠소.》

안동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 일이 다시금 눈앞에 밟혀왔다.

그는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저를 떠밀어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쓰러진지 꼭 달반이 지나서야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아버지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그런대로 바깥출입까지 할수 있게 되자 안동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러나 밤에는 여전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궁싯거리기만 했다.

신문에서 본 조선의 소식들이 자꾸만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토지개혁법령발포, 중요산업국유화법령발포, 로동법령, 남녀평등권법령발포, 보통강개수공사…

조국은 들끓고있었다. 빨리 가서 그 무슨 일이든 꽝꽝 해대고싶었다. 소원대로 교원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로동자가 되든 농민이 되든 있는 힘을 새 조국건설에 깡그리 다 바치고싶었다.

하지만 앓는 아버지를 모시고야 어떻게 그 먼길을 간단말인가. 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도저히 예상할수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러고있을수도 없고…

그러던 어느날.

그가 잠을 못 들고 궁싯거리는데 아래방에서 아버지가 찾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있었다.

아애비야, 난 이젠 케가 글른것 같구나. 아무래도 너희들만이라도 조선에 가야겠다. 우리 집안에도 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어야 할게 아니냐.》

《아버님…》

그는 목이 꽉 메여와 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그토록 두고온 고국산천이 그리워 술만 한잔 들어가도 가슴을 치며 울군하던 아버지가 자기를 두고 가라고 하다니… 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만 같아 저절로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아버지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나도 조국에 가고싶다만… 어찌겠느냐.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어서 짐을 꾸려가지고 떠나거라.》

그는 완강히 도리머리를 했다. 아버지의 그 마음은 리해되였지만 응할수가 없었다.

《그건 안됩니다. 어머님도 건강이 좋지 못하신데… 두분 다 누우시면 어쩌자구…》

《넌 내 말뜻을 그렇게도 모르겠느냐?》

아버지의 섭섭해하는 목소리.

안동수는 금시 눈굽이 따가와졌다.

《정 그렇다면 애어머니라도 떨구겠습니다.》

《그럼 혼자 가겠다는거냐?》

《예, 그래야 저도 좀 마음을 놓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의 단호한 말에 아버지는 또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 애빈 너희들께 부담만 되는구나. 후유- 할수 없지. 아애비야, 이제 조국으로 나가면… 꼭 금덕이를 찾아보거라… 가능하면 나가는 길에… 찾아보던가…》

온 가족이 모여앉을 때면… 그리고 무슨 색다른 음식이 하나 생겨도 멀리 떼두고 온 딸이 생각나서 남몰래 눈물을 짓군하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아닌게아니라 옆에 앉았던 어머니가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얼른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그는 불시에 코안이 매워옴을 느끼며 눈을 슴벅거렸다.

《알겠습니다. 제 조국으로 나가는 길에 어떻게든 찾아서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부모처자를 다 이역땅에 두고 홀로 떠난 그였다.


그가 하는 말을 신중히 듣고있던 김일은 불쑥 이렇게 물었다.

《조국으로 올 때… 간첩들과의 문제가 있었다는건 또 뭐요?》

그는 허구픈 미소를 지었다.

《뭐 그러루한 일이 있었습니다.》

안동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산들은 마치 그림이라도 그려놓은듯싶다. 왼쪽으로는 푸른 바다가 철썩이며 장쾌함을 뽐내는듯싶다. 끼익끼익 파도우를 넘나드는 흰갈매기들… 멀리 수평선쪽으로 떠가는 하얀 돛배들…

《야!》

처녀애는 난생처음보는 아름다운 바다풍경에 홀딱 반해버린듯 차창가에 아예 달라붙었다.

남의것을 빌려입은듯한 후렁후렁한 치마와 하얀 적삼… 노랑꽃이 핀 여윈 얼굴… 누가 저애를 열다섯살처녀애라고 하랴.

안동수는 금덕이를 쳐다보며 조용히 눈물을 지었다.

이번 조국으로 나오는 길에 안동수는 길림에 들려 그 영배 할아버지를 찾아갔었다.

그 집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있었다. 영배 할아버지네 일가는 10년전에 왜놈들에게 다 피살되였다는것이다. 혹시 그 집에서 살던 금덕이라는 처녀애는 어떻게 되였는지 모르는가고 하니 도리머리질뿐이였다. 며칠간 묵으며 수소문을 해서야 그때 영배 할아버지가 자기네들은 다 죽으면서도 금덕이만은 살려냈는데 그 애가 지금 왕가라는 지주놈의 집에서 머슴을 살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한달음에 왕가네 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금덕이는 물지게로 물을 긷고있었다.

그는 갑자기 눈물이 쿡 솟구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누덕누덕 기운 몽당치마에 역시 팔굽이며 어깨를 기운 슬가리가 나슬나슬해진 낡은 저고리를 입고 물지게를 진 처녀 아니, 그는 열다섯살이 아니라 겨우 열살이나 될가말가하게 작고 여윈 소녀애였다. 노랗게 뜬 얼굴… 가느다란 목…

이 애가 그렇게도 눈물겹게 그려보던 내 동생이란 말인가.

그는 목이 꺽 메여오르는것을 느끼며 동생에게 다가갔다.

《애, 금덕아!》

동생은 흠칫 그자리에 섰다. 낯선 사람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데 몹시 놀란듯 가뜩이나 큰 눈이 잔뜩 공포에 질려 허둥거린다. 금덕은 물지게를 진채 비실비실 뒤걸음질을 쳤다.

그는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든자들에 대한 분노로 또다시 속이 왈칵해지는것을 느끼며 한걸음 더 다가섰다.

《애야 금덕아, 무서워말아. 내가 네 오빠다.》

동생은 겁기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자꾸 도리머리를 했다. 아버지, 어머니도 다 죽고 자기 혼자뿐인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웬 남자가 나타나 오빠라고 하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정말… 나를 찾아왔나요? 나를?》

그는 눈물이 핑 도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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