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1 장
3
(2)
생각해보면 볼수록 꿈만같았다.
나를 안다고 하던 사람들까지도 보증을 못하겠다고 하던 내가 아니였던가. 박영욱이, 허가이…
문득 인민군신문사에 있을 때 민족보위성 부상이며 문화훈련국장인 김일이 신문사에 내려와 담화를 하던 일이 떠올랐다.
김일은 신문사 사업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불쑥 박영욱선전부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고 묻는것이였다.
《원래 박영욱동무네가 조국으로 나올 때 주필동무도 함께 나오기로 되여있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일이요?》
안동수는 박영욱의 이름을 듣자 어쩐지 생리적인 거부감 비슷한것이 생기는것을 느끼며 눈길을 떨구었다.
《그때 제가 함께 나오지 못한것은…》
안동수는 직속상관인 문화훈련국장과의 담화라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이 눈에 선했다.
따슈껜뜨철도역앞에서 치르치크구역당지도원인 박영욱을 만나 래일 조국으로 나가는 일행과 함께 떠나기로 약속한 안동수는 흥분된 마음을 안고 뻐스에 올라 집으로 가고있었다.
이제 하루밤만 자면 조국으로 가게 된다는 생각으로 자꾸만 가슴이 울렁거리였다.
조국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였다. 그가 태여난곳도 조국땅이 아니였다.
선조들은 대대로 함경북도 길주에서 살았지만 그가 태줄을 끊은 곳은 중국의 훈춘현 룡정시의 천도구 남의 집 웃방이였다. 일제의 날강도적인 《한일합병》후 《토지조사령》때 강기슭자갈밭을 일구었던 한뙈기 땅마저 떼우고 고향에서 살수가 없어 두만강을 건너갔던것이다. 아버지는 용약 총을 들고 나라를 찾는 길에 뛰여들었으나 일제군경들과의 싸움에서 독립군부대가 전멸되고 몸에 부상까지 입게 되자 할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말았다.
일제는 단숨에 만주를 강점하고 자기들의 괴뢰국가를 세웠다. 비행기며 땅크며 대포를 앞세운 일제침략군대는 광대한 아시아땅을 다 제것으로 만들려고 령토를 넓혀나갔다. 온 세상이 일제놈의 세상으로 되는듯싶던 그때 불쑥
아버지는 유격대원호를 시작했다. 독립군에서 머리와 허리에 부상을 당했던 몸이라 직접 총을 들고 싸우지는 못할망정 자기의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주고싶었던것이다.
그러나 유격대를 원호한 사실이 발각되고 놈들의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게 되자 할수 없이 숨어다니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어느날 일제놈들의 습격을 받았는데 추격을 피해 산을 넘고 숲을 헤치며 가고 또 가다가 마침내는 쏘만국경을 넘어가게 되였다. 놈들의 마수는 가족들에게도 뻗쳐와 안초산(중국에 살 때 그의 이름은 안초산이였다.)네도 룡정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겨우 길림에 물러앉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젖먹이인 금덕이가 열을 내며 앓기 시작했다. 애기를 안고 병원을 찾아다니던 어머니는 공교롭게도 룡정에서 옆집에 살던 원가라는 밀정놈의 눈에 띄게 되였다. 아버지를 고발한 그 원쑤놈은 그때 어째서인지 길림에 와서 돌아치고있었다.
그놈이 어머니의 뒤를 밟는다는것을 알게 된 주인집(안초산이네가 동거를 살던 주인집) 영배 할아버지는 일이 심상치 않다면서 어서 피하라고 권고했다. 그놈이 아버지를 놓친 분풀이로 무슨 흉악한짓을 할지 모른다는것이였다. 얼마전에도 옆마을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씨종자를 말리워야 한다면서 아들애를 둘 다 불태워죽였다는것이다. 그는 앓는 젖먹이 금덕이는 먼길을 가다가 어찌될지 모르니 자기에게 맡기고 떠나라고 했다.
어른들끼리 어떤 말이 더 오가고 어떻게 의논되였는지 초산은 알지 못했다.
찬비내리던 그밤… 처음에는 엄마와 영영 헤여지게 된다는것도 모르고 영배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손가락을 빨며 해족해족 웃던 금덕이가 엄마가 돌아서자 무엇을 예감했는지 급작스레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으앙- 울어대며 발버둥질을 쳐댔다. 어머니는 그 소리를 못들은듯 아니, 더 듣지 못하겠는지 두손으로 귀를 막고 허둥지둥 뛰여갔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계속 뒤따라왔다.
《엄마, 왜 금덕이를 데리고 가지 않나요?》
어머니는 말을 못하고 채머리만 흔들며 초산의 손을 잡아끌었다. 초산은 마지못해 끌려가면서 울먹울먹 졸라댔다.
《엄마, 금덕이를 데리구 가자요. 저렇게 그냥 울잖나요.》
《초산아, 난들 왜 데리고가고프지 않겠니. 우리가 이제 어떤 험한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앓는 애기를 어떻게 데리고 가겠니… 아버지가 간 그 원동은 예서 멀기두 하구 또 그렇게두 춥다는데… 그 넓으나넓은 땅에 가서 아버지를 찾겠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늘 업고다니면서… 저렇게 앓는데…》
《그래두 데리고가자. 내가 업구가겠어. 내가 업구다니문…》
어머니가 초산을 와락 그러안고 안타까이 웨쳤다.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초산아, 너 왜 자꾸 그러니. 이 엄마 가슴이 터져 죽는걸 보자구 그러니? 내 오죽하면 젖먹일 떼여두고 가겠니. 이제 아버지를 찾은 다음에… 그때 데려가자꾸나. 영배네 할아버지가 잘 봐주겠다면서 두고 가라는데… 원동엘 가자면… 국경을 넘기도 헐치 않다는데… 어떻게 젖먹일… 이제 아버지를… 그때… 꼭…》
어머니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끅- 끅- 하면서 울음을 삼키다가 마침내 비뿌리는 진탕판에 퍼더앉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아- 아- 금덕아- 널 떼여놓고 내 어떻게 산단말이냐…》
초산은 몸을 떨었다. 엄마가 이렇게 몸부림치며 통곡하는것을 처음본것이다. 초산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지만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다.
《엄마, 가자요.》
그렇게 길림을 떠나 천신만고를 해서 원동으로 넘어갔다. 무슨 고생인들 없었으랴. 조선사람들이 살고있다는 마을들은 다 찾아가보았다. 고생고생끝에 1년반만에야 겨우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하싼에서 붉은군대의 마사원으로 일하고있었다. 금덕이를 데리러 갈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일제의 교활한 민족리간정책으로 조선사람들은 모두 일제의 간첩이라는 소문이 떠도는 형편에서 왜놈들이 도사리고있는 길림으로 가는것을 모두가 반대했던것이다.
안초산이네는 언제이건 금덕이를 꼭 데려오리라 벼르고벼르었지만 얼마후엔 길림이 아니라 오히려 먼 중앙아시아로 이주하는 대렬속에 끼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모래폭풍이 때없이 들이닥치는 사막을 지나 천산산줄기의 북서변두리 이 따슈껜뜨주로 이주해와 갈대와 쑥대만 우거진 황무지에 삶의 첫 기둥그루를 박을 때 안초산은 골수에 사무치는 망국노의 설음을 피눈물을 흘리며 이겨냈다. 집을 일떠세우고 황무지를 일궈 밀보리를 심고… 꼴호즈를 세웠으나 중학교는 멀었다. 주쏘베트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가 배우자니 어쩔수없이 이름을 로씨야식으로 고쳐야 했다. 안 울라지미르 스쩨빠노비치…
아, 우리는 어찌하여 남의 나라에 와서 남의 나라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가. 나의 조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번 가보지도 못한 조국…
파쑈도이췰란드를 격멸하는 전장에 용약 떨쳐나 군용렬차를 타고 《나가자 나의 조국아 정의의 싸움에…》 하고 《정의의 싸움》을 합창할 때 가슴속에서는 불이 일었다.
정녕 이것이 나의 조국을 위해 가는 길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전쟁이 끝나고 따슈껜뜨로 다시 돌아와 사범대학을 마저 졸업하고 아까데미야에서 공부하던 그는 조국이 해방되였다는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아-
더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