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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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무세살인 송정혁은 오래전부터 푸르허에서 살았다.
안도에서 돈화로 넘어가는 도중에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 있고 그보다 한 5리 떨어진 곳에 송정혁이가 살고있는 또 그만한 마을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통털어 푸르허라고 불렀다. 어느 모로 보나 푸르허는 별로 신통한것이 없을것 같은데도 송정혁은 기회가 있을적마다 푸르허를 자랑하였다.
차광수와 담화를 끝낸 송정혁이 우등불가에 이르렀을 때 3소대동무들이 마침 전광식을 둘러싸고 이야기판을 벌리고있었다. 오래동안 지하공작에서 단련된 송정혁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곧 적응될수 있었고 인차 사람들과 친숙해질수 있었다. 전광식이 옆에 앉은 그는 기회를 보아가다가 슬며시 푸르허에 대한 자랑을 내놓았다. 얼핏 보건대는 외형이 전광식이와 매우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성격은 전혀 딴판이였다. 전광식은 빈틈이 없고 침착하고 용의주도한 편이라면 송정혁은 거칠게 듬성듬성 뛰여가면서 커다란 륜곽을 그어 하나의 구도를 이루어놓았다.
한쪽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같은 규격의 돌로 쌓아올린 성벽에 비길수 있다면 다른 하나는 막돌을 주어다가 틈새를 맟추어 그만 못지 않은 견고하고 보기 좋은 성벽을 만든것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이 지방에서 흔히 볼수 있는 산간지대 농민차림으로 토스레덧저고리를 걸치고 눈섭이 시꺼먼 송정혁은 우선 푸르허가 안도와 돈화의 두어름에 놓였다는것외에 혁명사업을 위해, 특히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의 하나였다는것에 모를 박았다.
좌우로 삑 둘러앉았던 10여명의 대원들은 이제 부대가 곧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다는것을 알고있었으므로 송정혁의 말에 큰 흥미를 느끼였다. 이미 그러리라는것을 짐작한 송정혁은 적당한 대목에서 말을 뚝 끊고 주머니를 들추어 담배쌈지를 꺼내 누릿누릿한 잎담배를 손바닥에 놓고 부서뜨려 종이에다 큼직하게 말아물었다. 굴뚝처럼 연기가 물물 나는 코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그는 우선 푸르허가 얼마전, 정확히 말하면 작년 명월구회의가 있기 전만 해도 반동의 손에 들어 꼼짝 못하던 마을이였다는것을 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하였다.
집을 떠나 룡정거리 근방에서 빙빙 돌면서 한 3년동안 공작을 하다가 조직의 부름에 의해 자기 마을에 들어간 그는 지난 몇해동안에 네번째로 파견되는 푸르허의 지하공작원이였는데 앞서 세명은 이곳 반동들의 밀고에 의해 한달도 못가 체포되였다.
지하공작에 얼마간 경험은 있었지만 별로 남들보다 특이한 점이 없었던 그는 불안하고
《기가 막힙디다. 이런 판인데 내라고 무슨 용빼는수 있습니까?》
송정혁은 옆에 앉아 수첩에 무엇을 적고있는 전광식의 무릎을 흔들어 동의를 구하고나서 말을 계속하였다.
《작년말에 집에 들어간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매일 산에 가 나무를 한짐씩 해다가는 함실에 불을 때고 누워서 닭알낟가리를 올리가려 내리가려 했습니다. 원래 우리 집은 화전농이기는 했지만 로력자가 많아 착실하게 농사를 지어 과히 구차하지 않게 살았었는데 우리 형제들이 제뿔내기로 다 흩어져나가는 바람에 즉 다시말해서 좀 〈몰락〉했던거지요. 이런 형편에서 공작을 해야 되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를 못내고있었습니다. 얼마간 그러고있노라니 벌써 마을의 보위단장 안윤재란 놈이 거미줄을 늘여놓고 냄새를 맡자고 하지 않습니까. 안윤재란 놈은 이 일대에서 제일 악질로 소문난 놈인데 그한테 걸려 숱한 사람이 희생되였습니다.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조직에서 련락이 왔습니다. 급히 20리밖에 있는 련락장소에 가보니 글쎄
송정혁은 불이 꺼진 담배를 훅훅 불어보더니 불무지에서 불꼬치를 하나 집어들어 다시 담배불을 붙이였다.
《아하, 그렇지. 알만 하웨다, 알만 해. 여보 최칠성동무, 지난봄에 그러루한 이야기가 돌았댔지. 소사하에 있을 때 차기용동무가 들었다는 어느 아주머니 이야기 말이요.》
진봉남이 활기를 띠며 옆에 앉은 최칠성의 어깨를 툭툭 갈기며 한마디 보태였다.
《나야 그때 그런걸 들을 겨를이 있었소? 〈공산당선언〉을 잘 대지 못해 박흥덕동무한테 골탕을 먹고 정신이 얼떨떨해있던 판인데…》
공책에 국문을 쓰고있던 최칠성은 꺼칠꺼칠하게 수염이 자란 턱을 손등으로 슬슬 문대면서 송정혁의 다음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