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7 회)
12
(6)
량강구에서 급한 통신련락이 왔다.
차광수는 푸르허에서 온 송정혁이와 담화중이여서 전광식이 련락원을 만나게 되였다. 전령병이 돌아나가자 몸이 약하게 생기고 눈이 커다란 사나이가 허름한 중절모자를 벗어들고 초막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왔다. 수수하게 차린 전광식을 쳐다본 그 사나이는 그렇게도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였는가 하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약간 모로 틀고 앉았다가 덧저고리앞섶을 뜯어 련락쪽지를 꺼내였다. 그는 이 쪽지 하나를 전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것이다. 처음에는 유격대의 행로를 알아내기 위해 며칠동안 산중에서 헤매였고 다음에는 세겹, 네겹으로 둘러싸인 보초를 통과해야 되였기때문에 다 와서도 몇시간이나 기다려서야 비로소 전광식을 만날수 있었다. 통신은 반제동맹 량강구책임자 윤동무가 보낸것인데 글자를 너무 잘게 써서 불을 켜지 않고는 읽을수 없었다. 잉크병으로 만든 기름등잔에 불을 켜서 초막기둥에 달아매고 쪽지를 펼치였다.
《동무는 거기 앉아 불을 좀 쬐시오. 신도 말려야겠습니다. 온통 젖었군요.》
《이자 개울을 건느다가 돌을 빗디뎌놔서 그만…》
긴장한 분위기에서 얼마간 풀린듯 한 눈이 큰 사나이는 우등불에 담배를 붙여 뻐금뻐금 빨았다.
윤동무는 첫머리에 통신을 띄울것인가 말것인가를 여러번 망설이다가 하는수없이 몇자 적게 되였다고 하면서 통화에서 온 량세봉독립군부대의 사병인 엄치환의 글을 같이 보낸다고 하였다.
《…저를 유격대에 보내줄수 없다면 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서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그밑은 읽어보나마나하였지만 전광식은 꼼꼼히 쪽지를 다 읽어내려갔다. 황참모를 보복한 엄치환은 그날밤으로 여러명의 동무들과 함께 유격대를 찾아떠났다는것이다.
통신원을 숙소로 보내고나서 전광식은 잠시동안 초막안에서 서성거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이 놀라운 사실을
전광식은 사령부가 자리잡은 이깔나무숲속으로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불빛이 빤히 바라보이는 언덕에 올라섰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이것을 보고할수 있을것인가?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그 참기 어려운 슬픔을 한가슴에 안고계시는
차광수도 열번, 스무번 거듭 말하였지만 어머님께서 그렇게도 일찌기 세상을 떠나신데 대해서도 뼈저린 후회를 많이 남기였다. 진작 어머님께서 더 무리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드릴수도 있었고 더 좋은 약을 구해볼수도 있었다.
량세봉의 사건을 놓고보더라도 역시 그렇다. 어찌 보면 독립군문제는 이미 통화에서
우리들이
전광식은 발길을 돌려 차광수 있는데로 내려갔다. 그러고보니 차광수와 사전에 토의해야 한다는것조차 잊을만치 그는 안정을 잃었던것이다.
한편 차광수와 송정혁의 담화에서는 부대가 곧 푸르허로 들어가게 합의되고 막 밖으로 나오는중이였다. 강대통밑에서 마주친 전광식은 량세봉의 소식이 왔다고 하면서 쪽지를 내밀었다.
《무슨 소식입니까?》
어떤 예감에서인지 차광수는 약간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쪽지를 급히 받아들었다.
《량세봉사령이 부상을 당하였답니다. 엄치환이가 찾아왔군요.》
《부상을 당했다?》
《내가 일을 잘못해 그렇게 되였소.》
초막안에 들어간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다가 드디여 전광식이 입을 열었다.
차광수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못하겠소. 전동무가 가시오. 난 못하겠소. 그것은 큰 죄악이요. 지금
차광수는 우등불두리를 빙빙 돌면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이것은 차광수에게 있어서 과거에 거의 볼수 없었던 조잡하고 당황하고 거치른 행동이였다.
전광식이 역시 자기 심정을 미루어보아 차광수가 그럴수도 있다고 충분히 리해가 갔다. 그렇지만 전광식도 차광수만 못지 않게 딱하게 되였다.
얼마후에 끝내 전광식이 혼자 사령부를 향해 언덕을 걸어올라가지 않을수 없었다.
《전동무 아니요?》
《네! 접니다.》
그 순간 전광식은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앞을 내다보았다.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그는 경례를 붙인채 움직이지 못하였다.
여느때와는 전혀 다른 전광식을 보시게 된
《어제 저녁에 동무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별로, 별일이 없었습니다.》
이때 전광식은 소사하에서 돌아온 통신원과 차광수가 한 어머님에 대한 추모의 말들이 피뜩 떠올랐지만 짐짓 모른다고 하였다.
《내 기억에는 동무가 와서 학습을 한다고 했던것 같은데 밤중에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그래 변인철동무한테 알아보라고 했더니 갔다와서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딱 잡아뗐습니다. 그런데다 오늘은 아무 일감도 동무들이 가져오지 않았고 진종일 나를 혼자 있도록 따돌렸단 말입니다.》
전광식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꽉 잠겨든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전광식의 눈은 강한 빛을 뿌렸고 그 어조는 거의 항의하는 투였다.
《섭섭합니다. 어머님께서…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것을…》
이때 전광식은 자기의 용건이 무엇이였던지, 자기가
설음이 북받친 그의 가슴속에서는 더 많은것이 소용돌이치고있었지만 그것을 종시 말로 표현하지 못하였다. 그는 눈물이 솟아오른 얼굴을 들고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확 달아남을 느끼신
가슴에 안긴 전광식이 무어라고 웅얼웅얼대구 말하였지만
이윽해서 전광식의 높은 숨소리만이 들리였다.
바람이 불었다.
나무우듬지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쏴 하고 대기를 흔들었다. 늦가을이라고 할수 있고 초겨울이라고도 할수 있는 쌀쌀한 숲속을 뒤설레이게 하면서 바람은 더욱더 세차게 불었다.
나무잎이 후두두 떨어져내려 한덩어리로 된 두어깨우에 내려앉았다가 곧 미끄러져 땅에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