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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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는데도 어머님께서는 20리밖의 또 다른 마을로 옮겨가시였다. 거기서도 또 어머님께서는 방안에서 말씀을 하시고 영숙이는 아궁앞에 앉아 사이문으로 흘러나오는 말씀을 들었다.

불을 지핀 아궁앞에는 어머님의 신과 목도리가 놓여있었다.

영숙이는 물기가 돌기 시작한 어머님의 짚신에서 손톱으로 얼음덩이를 뜯어내였다. 바닥에도 얼음이 얼고 신총사이에도 눈이 한벌 끼여있었다. 신을 세워놓고난 영숙이는 고드름이 매달린 목도리를 펼쳐들고 불에 쬐였다. 처음에는 김이 피여오르더니 이윽해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머님의 버선도 홈빡 젖었겠지, 벗어 말리자고 하면 좋겠는데, 신이 이러니까 버선은 솜까지 몽땅 젖었을거야. 그러니 발이 오죽 시릴가, 속탈이 계시다는 어머님께서는 아침에도 낮에도 한술가량 뜨다 마시고 그저 빈속으로 하루를 견디여내신다. 이런 일이 한평생이시라는데 왜 병인들 나지 않겠는가? 나같이 못난건 왜 이렇게 병도 없고 발도 시린줄 모를가. 어머님의 속병을 뚝 떼서 내가 대신 앓아드릴수는 없을가? 차라리 나같은것이 죽어서 한컬레의 버선으로라도 되여 어머님의 언발을 포근히 감싸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영숙이는 소원대로 할수 없는것이 안타까워 눈굽이 알알한것을 참으면서 두무릎사이에는 목도리를 걸어놓고 신은 한쪽손에 하나씩 들고 말리였다. 어머님말씀처럼 나도 총을 들고 싸워서 나라를 찾고 공부도 하고 사람답게 살아갈수 있을가?

내가 그렇게 해낼수 있을가? 아니야, 난 그렇게 못할거야. 부엌데기가 어떻게 총을 메고 군대가 될수 있담. 그럼 요꼴대로 당대 살터인가? 그렇지, 내가 하지 않으면 부엌데기신세를 면할수 없다지. 더구나 고생하신 어머님을 따뜻한 곳에 모셔드릴수 없지. 고생 많으신 우리 어머님을 잘 모시기 위해서도 내가 뭐든지 맡아해야지. 나같은것이 뭐게, 난 죽어도 좋아, 내 하고싶은 일 하다 죽어두 좋아, 까짓거 오래 살기만 하면 대순가.

닭이 두홰째 울었을 때 어머님께서는 부엌으로 나오시였다.

졸음이 실렸던 영숙의 눈이 금시 맑아져서 사뿐히 일어나 아궁앞에 놓인 어머님의 신을 옮겨놓고 목도리를 어깨우에 얹어주었다.

영숙이, 이젠 돌아갈가? 졸리는 모양이지?》

《아니, 그저…》

촉촉히 젖은 눈섭이 들리면서 까만 눈이 반짝 빛을 내였다.

어머님께서는 토방에 내려서서 잠간동안 눈보라치는 들길을 바라보며서 신과 목도리에서 미쳐오는 온기를 느끼시였다.

그 순간 어머님께서는 목도리를 당기여 영숙이의 어깨너머로 감아주시였다.

《춥지?》

《어머니! 난 추운거 몰라요. 춥지 않아요.》

《그래, 참자! 춥더라도 참자. 그래서 길을 더 걷자. 우리는 이런 길을 아직 많이 걸어야 한단다.》

어머님께서는 목도리를 영숙에게다 감아주시고나서 손목을 잡아끌며 앞서걸으시였다. 영숙이는 이때 가슴이 높뛰는것을 느끼면서 어머님의 뒤를 따라 눈오는 밤길을 걸었다. 어머님과 함께 걷는다면 이런 눈보라 밤길이 천리도 좋고 만리도 좋았다. 굵다란 눈송이들이 볼을 때리고 바람에 멀리 날아가군 하였다. 홧홧 달아난 영숙이의 볼에 산뜩한것이 스칠적마다 그는 그 무엇이라고 표현할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것이였다. 한껏 흥분된 영숙은 물기어린 눈을 쳐들고 어머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그 순간 영숙이는 어머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목을 꽉 그러안았다. 그리고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얼굴을 들고 말하였다.

《어머니, 알았어요. 내가 왜 눈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았어요.》

하루건너끔 물푸레부지깽이가 동강이 나게 매를 맞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도록 지주년놈들한테 뜯기면서도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참고 견디던 그가 이때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울었다.

《됐다, 알았으면 됐어. 넌 그저 꼭 응석받이같구나.》

어머님께서는 샘솟아오르는 영숙의 눈굽을 훔쳐주면서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시였다.

영숙아! 다시는 울지 말아라. 울어서는 안돼.》

영숙이는 얼굴을 들고 꽃잎처럼 흩날리는 눈송이들을 쳐다보았다. 그것들은 다 곱고 이때의 자기처럼 행복해보이였다.

《어머니!》

고함을 지르는 순간 환상에서 깨여난 그는 자기가 어머님을 부둥켜안은것이 아니라 사정없이 꽛꽛하고 차디찬 나무그루를 안고있는데 놀라 뒤로 흠칫 물러났다.

그때 총소리가 울렸다.

중대장 진일만이 권총을 들고 한쪽옆에 나서고 횡대를 지은 다섯명의 대원이 일제히 보총을 허공에다 올려대였다.

!》

진일만의 구령에 의해 그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였다.

따다당!》

조선의 어머니 강반석어머님에 대한 추모의 조총소리이다.

방아쇠를 당길적마다 최칠성의 눈에서도, 진봉남의 눈에서도 그리고 또한 숲속에 배좁게 들어선 전체 대원들의 눈에서도 눈물방울이 굴러떨어졌다.

검고 번들거리는 진일만의 볼우로 또 한줄기의 눈물이 줄줄 흘렀다. 눈을 질끈 내리감고 팔을 떨면서 그는 또 구령을 쳤다.

!》

총소리는 숲을 울리면서 멀리멀리 메아리쳐나갔다. 영숙이의 가슴속에 또 한번 강한 파동을 일으키면서 슬픔이 물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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