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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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소식은 곧 전 부대에 알려졌다.

비애에 잠긴 대원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지휘부앞 우등불가로 모여왔다. 차광수와 전광식이 한쪽에 나란히 앉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넋없이 바라보고있었다. 불빛이 활짝 밝아질 때면 풀숲에 들어앉은 유격대원들의 슬픔에 잠긴 얼굴들이 드러나보이였다.

모든것이 숨을 죽인듯이 끝없는 정적속에 잠겨들어갔다. 바람이 잔잔할 때에도 우듬지만은 여전히 설레이던 이깔나무들도 꿈속같이 정적 지키고있었다.

침묵속에 끝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보총을 무릎에 가로눕혀놓고 고개를 떨군 대원들도, 무릎을 싸안고 마주앉은 지휘원들도 모두 그대로 굳어진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긋고 흑흑 느끼는 소리가 들리였다.

이윽해서 차광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원들이 꽉 들어찬 숲속을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나직이 말을 떼였다.

《동무들! 우리는 오늘 슬픈 소식을 받게 되였습니다.》

차광수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이나 어깨를 들먹이다가 다시 머리를 들었다.

《지난 7월 31일 우리의 어머니 강반석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였습니다.

강반석어머님! 우리의 어머님께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세상을 떠나시였습니다. 우리들가운데 그 누구 한사람도 어머님께서 마지막시간을 보내시는 자리에 있지 못했습니다. 지어는 사령관동지께서도 계시지 못하시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어머님께서 그렇게 되시리라는것을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습니까? 동무들! 우리는 이 가슴아픈 소식마저 제때에 들을수 없었습니다. 지어는 사령관동지께서 벌써 아시였지만 우리들에게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머님에 대하여 너무나 무관심하였던것입니다. 우리가 어머님을 더 잘 모시였던들 이렇게까지 일찌기 돌아가시지 않았을것이며 이날까지 소식조차 모르고있지도 않았을것입니다. 어머님께서 우리들에게 돌려주신 사랑의 백분, 천분의 하나라도 우리가 어머님을 생각하였던들 우리는 오늘과 같은 이런 비통한 소식을 받지 않을수도 있었던것입니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께서는 우리를 두고 떠나가셨습니다. 동무들이 잘 알고있는것처럼 어머님께서는 비록 짧으신 한생이였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일생을 보내시였습니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의 탁월한 지도자이시였던 김형직선생님을 모시고 험난한 가시덤불길을 한생 같이 걸어오시였고 우리의 사령관이신 김일성동지를 낳아키우신 위대한 어머님이십니다. 너무도 일찌기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의 생애는 중첩되는 곤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간고한 일생이였으며 조선혁명을 안아키우시기 위해 가시덤불길을 헤쳐오신 빛나는 일생이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모든것을 오직 혁명을 위해 바쳐오신 영광에 찬 일생을 보내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김일성동지께서 조직하신 공산주의조직의 첫 성원이였으며 조선녀성해방운동을 공산주의운동과 결합시켜 새로운 길로 들여세우고 이끌어주신 탁월한 녀성혁명활동가이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만경대로부터 봉화리, 중강, 림강, 8도구, 무송 그리고 안도에 이르기까지의 어머님의 생활은 혁명을 위해 한시도 휴식을 모르고 줄곧 달음박질해오신 로정이였으며 조선독립운동이 공산주의운동에로 전환을 가져오며 그것이 다시 무장투쟁으로 발전하는 시기에 있어서 하나의 위대한 보금자리로 되였으며 다함없는 샘물터로 되였습니다. 조선독립운동이 공산주의운동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반일혁명투쟁이 무장투쟁과 결합되는 시기에 옹근 두 세대가 어머님의 보살핌에 의해서 힘을 키웠고 마른 목을 추기였습니다. 저도 역시 동무들과 함께 그중의 한사람입니다. 길림에서는 밤을 새워 삯빨래를 해서 보내주신 돈으로 종이를 사서 일제를 타도하라는 첫 삐라를 써붙였습니다. 적들에게 포위되였을 때 어머님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가져오신 말리허의 권총을 들고 우리는 살아날수 있었습니다. 싸우다가 기운이 진하고 병이 들면 아무때나 우리는 어머님을 찾아가 무릎을 베고 누웠습니다. 열에 뜬 머리를 어머님께서는 손으로 짚어 식혀주셨고 찢어진 옷을 꿰매입혀주셨습니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 시장하면 길가에 나앉아 어머님께서 싸주신 강낭떡을 씹으면서 어머님의 말씀을 되새기군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가노라면 끝장날 때가 있는 법이라네. 천리길도 한걸음씩 내떼서 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 동무들!》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차광수는 뒤를 잇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였다.

목구멍으로 뜨거운것이 올리밀고 꽉 목이 잠겨들었던것이다. 그의 눈앞에는 강낭떡보자기를 내들며 웃던 어머님의 얼굴이 커다랗게 확대되여 나타났고 그것과 엇바뀌여 숲이 거꾸로 서고 불무지들이 사방으로 흩어져나가는것 같은 환영을 보게 되였다.

차광수는 고개를 숙이면서 손으로 눈을 가리웠다. 그 순간 숨이 흑 들이그어지며 울음이 터져나왔다.

잠간동안 말을 중단하였던 차광수는 갈린 목소리로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지금 우리 무장대오는 수백수천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첫시작은 아버님과 어머님의 고귀한 넋이 스민 두자루의 권총에서부터 시작한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광대한 지역에 유격근거지를 내오고있습니다만 그 첫 시작도 역시 어머님의 그 따뜻하고 자애로운 품에서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님의 품, 그것은 우리의 첫 혁명근거지였으며 또한 영원한 근거지입니다. 지금 우리 대오는 수많은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등 각계각층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그의 첫 서렬에는 어머님께서 몸소 가져다주신 〈새날〉창간호를 읽은 사람들, 야학방에서 우리 글을 받아 익히던 그들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멀고먼 길을 찾아오시여 등잔불밑에서 밤을 새워가시며 조용조용히 혁명에 대하여 들려주시던 그 성원들이 서있습니다. 실로 어머님의 품은 다함없는 샘물터와도 같았습니다. 어머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피곤한줄 몰랐고 지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였기에 우리는 어떤 곤난도 서슴없이 막아나설수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계시면서 조용조용히 타일러주시였습니다. 〈용감하여라. 중도에서 주저앉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거라!〉 , 〈앞으로만 나가거라! 너희들뒤에는 왜놈들때문에 눈물 가실 날이 없는 어머니들이 서있느니라.〉 하고 격려해주시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님께서 계시지 않는 아픔과 허전한감을 날이 갈수록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될것입니다. 동무들! 소사하에서부터 전국각지로 부채살처럼 퍼져나간 그 수많은 조직들-반제동맹, 청년동맹, 농민협회, 부녀회, 아동단조직들이 지금 어머님의 심장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그 뜨거운 파동이 일시에 멎어 커다란 비애에 잠겨 부르르 떨고있습니다.…》

차광수의 눈에서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내려서는 턱밑에 맺혔다가 땅에 떨어지군 하였다. 그는 처음에 한두번은 손으로 훔치였지만 그다음부터는 전혀 그것을 감각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발을 모으고 서서 그는 때로는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눈을 감고 얼굴을 뒤로 젖히기도 하면서 울음섞인 말을 그러나 한마디한마디 힘을 주어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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