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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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개울을 끼고 민틋하게 번져나간 이깔나무숲속에 숙영지를 정하였다.
대원들은 나무를 찍어 막을 준비하는 한편 불을 피워 옷과 배낭들을 말리웠다.
전광식은 사령부가 자리잡은 둔덕으로 올라갔다. 사령부출입구에 다달은 그는 앞으로 밀린 목갑총을 뒤로 돌려놓고 초막안으로 들어서면서 절도있게 경례를 붙이고 숙영준비가 다 되였다는 보고를 하였다. 통나무걸상에 앉아 지도를 펼쳐보고계시던
《차광수동무로부터 행군준비가 불철저하다고 보고해왔는데 전동무 보기엔 그 정도가 어떻습니까?》
《네! 이제부터 잘 준비하면 될것 같습니다.》
전광식이 애매하게 대답하였지만 그의 심리를 벌써 읽고계신
《내가 보기에는 지금상태에서 하루나 이틀 준비를 시켜보았대야 크게 나아질것 같지 못합니다. 군복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고 모든것이 겨울을 나기에는 매우 불충분합니다. 그러니 차동무와 토의해서 푸르허에 미리 련락을 띄워 겨울차비를 잘하도록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푸르허에 들리시겠습니까?》
《그곳 신세를 져서 겨울차비를 잘합시다. 하긴 그곳에서도 갑자기 련락을 받게 되여 이 많은 인원을 먹이고 입히는것이 곤난하겠지만 이미 그런 일에 준비된 곳이기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것 같습니다. 더구나 행군로정을 바꾸지 않고 들릴수 있고 그런것을 감당할만 한 곳이 그외는 이 근방에 별로 없지 않습니까?》
《알았습니다.》
푸르허는 명월구회의이후에 농촌혁명화를 위해서
전광식은 박흥덕이 대신 후방을 담당한 진봉남을 보낼 안을 가지고있다는것과 밤에는 정치학습토론을 하게 된다는것을 보고하고 사령부에서 물러나왔다.
숙영막으로 돌아온 전광식은 출입구앞에 삐여져나온 돌을 파내고있었다. 여느때 같으면 무심히 지낼수도 있을것인데도 몹시 신경이 씌여서 끝내 나무꼬챙이로 파기 시작한것이 그 밑뿌리가 커서 시간이 걸리였다.
숲속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을 때 차광수가 찾아왔다.
역시 침울해진 차광수는 가다가 되돌아서서 무슨 말인지 할듯할듯 하다가 종시 입을 열지 못하고 그냥 가버렸다.
밤이 들어 전광식은 우등불가로 나가 대원들의 정치학습을 지도하였다. 학습은 이날 카륜회의로선중의 하나인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을 토론하게 되여있었다. 전광식은 반일민족통일전선문제를 반제통일전선문제에까지 확대시켜 현재 제기되고있는 현실적인것을 놓고 토론케 하였다. 그 과정에 그는 이 겨울에 있게 될 동기원정을 례를 들어가면서 될수 있는껏 락천적인 기분으로 끌어가려고 애를 썼다. 그는 학습을 맺으면서도 토론과정에 론의된것들을 흥미있게 상기시켜가면서 분위기를 흥성거리게 하였다.
학습을 끝낸 전광식은 대원들이 오락회를 벌리는것을 보고 차광수를 찾아내려갔다. 원래 건강하지 못한 그가 몸이 편찮아 그럴수도 있기때문이였다.
맞은편 언덕밑에서 터벅터벅 발걸음소리가 나기에 내려다보니 마침 차광수가 이쪽으로 올라오고있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 걸음걸이가 차광수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허리는 구부정하였고 다리는 벌려디디였으며 몸은 중심을 잃고 비칠비칠하였다. 걸음을 멈추고 잠간 지켜본 전광식은 그것이 차광수가 틀림없다는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차광수뒤에는 량강구에서 용무를 알 필요가 없다면서 떠나보낸 련락원이 따라오고있었다. 전광식은 급히 언덕을 내려서서 금방 땅에 엎어질것 같은 차광수의 팔을 붙잡았다.
《누구요?》
떨리는 차광수의 목소리는 꽉 잠겨든 목에서 겨우 울려나오는데 앞으로 쳐든 그의 얼굴은 모진 고통을 당하는것처럼 몹시 이그러져있었다.
《나요, 전광식이요. 몸이 괴롭잖소?》
전광식은 어깨를 그러안으며 그를 돌려세웠다. 그 순간 차광수의 눈굽에서 강한 빛을 내는것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전동무! 날 좀 놓소. 그리구 여기 앉소.》
취한 사람처럼 차광수는 전광식의 팔을 잡고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소사하에 갔던 련락원이 방금 도착했소. 그것을 기다리느라고 오늘도 갑자기 숙영을 하자고 했던것이요. 전동무한테 여태 말하지 못하고있었는데 사실은 량강구에서
그는 숨이 차서 헐썩거리다가 겨우 뒤를 또 이어대였다.
《전동무, 어떻게 우리가…》
《뭐요? 빨리 말하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찡하니 울리는 순간 전광식은 차광수의 어깨를 와락 그러잡으며 다그쳤다.
차광수는 팔을 벌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소.》
《뭐요? 똑똑히 말하시오.》
차광수는 땅우에 털썩 드러누워버렸다. 뒤따라 전류에 닿은것처럼 몸을 훌쩍 솟구어올린 전광식은 다음순간 맥을 잃고 차광수의 옆에 쓰러졌다. 앞이 캄캄하고 수천수만개의 별찌가 가로세로 날더니 온 세상이 산산쪼각나는것처럼 공허감이 휩쓸어들었다.
가슴이 흔들리였다. 천길나락으로 꺼꾸로 떨어져내리는것만도 같았다. 그들은 부둥켜안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