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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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가 소리없이 내리였다.

잎은 다 흝어버리고 터실터실한 껍질만을 드러내놓은 고로쇠나무가지에, 몇잎 남지 않은 잎을 불안스럽게 한들한들 떨고있는 사시나무우듬지에, 누렇게 마른 이끼를 한벌 뒤집어쓴 바위등에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였다.

아무데도 쓸모없는 늦가을비치고는 너무나 많이 내리였다. 밤새 내리고 또 오늘 한겻을 그렇게 줄줄 내리부었다. 벌거벗은 숲이며 며칠동안에 완전히 황토색으로 물들어버린 들이며 길들이 모두 후줄근히 젖어있었다.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대가 지나간 오솔길은 흙탕이 뭉개져서 발이 쑥쑥 빠졌고 돌등이나 나무그루나 또 풀숲들에 온통 흙이 게발려있었다.

뽀얗게 물안개가 낀 산허리로 장사진을 이룬 부대가 흘러가고있었다. 앞에는 구국군부대가 섰는데 그것은 벌써 골바닥에 내려섰고 그뒤로 차광수가 지휘하는 부대가 따라섰다.

대렬의 중간에는 말이 몇필 끼여있었는데 키가 좀 크고 목이 날씬한 밤빛말에는 김일성동지께서 앉으시였고 그보다 한걸음 앞에 약간 키는 작아보이지만 살집이 실한 점박이말에는 그와 체구가 잘 어울리는 털외투를 뒤집어쓴 구국군 우사령이 앉아있었다.

앞뒤에도 몇필의 말이 더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들은 모두 대렬앞뒤를 분주히 달려다니는 전령병들이였다.

반일구국군과 련합전선을 이룩할데 대하여 량강구회의에서 그렇게도 강조하시더니 김일성동지께서는 곧 린접에 주둔하고있는 우사령부대를 몸소 찾으시여 동기작전을 토의하시였고 오늘은 하루동안 같이 행군하면서 미진한 문제를 더 토의하기로 하신것이다.

량강구에서 사령관동지께서 구상하신 당초의 계획은 관동군부대와 조선주둔군의 협동으로 이루어진 일제의 간도지구 동기《토벌》 막기 위해 그들과 공동행동을 취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그후 알게 된 정보에 의하면 일부 구국군부대가 급격히 사기를 잃고 헤실바실 흩어져버리기때문에 우선 그것부터 수습하도록 해야겠다고 그이께서 말씀하신적이 있었다.

구국군과의 관계문제가 앞으로 어떤 경로를 밟게 되겠는지 아직 짐작키 어렵지만 그이께서는 최근에 이 문제를 두고 매우 심려하시는것이 분명하였다.

령을 넘어서자 북쪽에서 차고 축축한 스산한 바람이 숲을 흔들며 거슬러 올라갔다. 걸음을 멈추고 산밑을 내려다보고있던 전광식이 추위에 퍼렇게 된 얼굴을 돌려 뒤에다 대고 한마디 하였다.

《여느때 같으면 눈이 올 세월인데 올해는 어찌된셈인가? 늦가을에 큰물이라도 내려는가?》

령마루에 방금 올라선 차광수가 턱밑에 매달린 물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버리고나서 대답하였다.

이해겨울에 대한 징조를 말해주는것일수 있지.》

《물론 좋은것이겠지?》

《좋기는 하지만 간고할것이라는 예고가 아닐가?》

이때 전광식은 다른 때와는 전혀 다르게 침울해진 차광수의 얼굴을 볼수 있었다. 벌써 그런것을 느끼기는 량강구에서 출발을 앞둔 때부터였다. 항상 웃으며 사는 락천적인 성격은 못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정서생활에 남달리 민감한 차광수가 이 며칠동안에 보여준 그런 침울한 표정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점이 있었다. 동기원정이 간고하리라는 그것만으로 이렇게 될 차광수는 아니였다. 량강구에서 출발을 앞둔 전날밤 어딘가 련락을 띄우기 위해 두명의 대원을 떠나보내게 되였을 때 전광식이 급작스레 어디에 무엇때문에 보내느냐고 물으니 차광수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알지 않아도 될것이기때문에 말하지 않는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해버렸었다. 이전부터 그들은 어떤 사소한것이라 할지라도 사전토의와 합의를 거치지 않은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어쩐지 우울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빛이 력력하였고 지어는 슬픔에 잠긴듯 한 느낌까지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따지고 물어볼수도 없어 전광식은 자기의 그 어떤 기분에서 온 선입감일것이라고 미뤄두었는데 방금 또 그런 감촉을 느끼게 된것이였다.

그들은 별로 신통치도 않은 계절에 대한것을 두고 몇마디 롱담을 주고받고나서 다시 길을 걸었다.

량강구를 떠나 부대는 벌써 이틀째 행군을 계속하고있었다. 첫날은 구국군부대를 만나기 위해 동북쪽으로 기울어져들어갔었고 오늘은 예정했던 제 길에 들어서서 줄곧 북을 향해 숲을 가르고 나갔다. 어쨌든 방금 걸음을 내뗀 이 길은 실로 간고할것이 예견되여있었다. 일제의 무력을 끌고 산중으로 다녀야 한다는 사정외에도 그 로정은 압록강지구진출에 비해 몇곱 더 멀고 험난하였으며 또한 그것은 겨울철에 단행되여야 하였다.

량강구에서 떠나 줄곧 백두산줄기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치달아오르면서 아득히 먼 동쪽 쏘련국경지대까지 이르게 될것이였다. 그 과정에는 돈화, 액목, 녕안 또는 북부왕청지구를 거쳐 동북방으로 수천리 뻗어나갈것이 예견되여있지만 정황에 따라서는 그것에 어떤 정정이 가해질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기는 그 로정이 간고하고 복잡하며 인가가 없는 산중에서 더구나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는것이 아니였던들 구태여 이 원정이 이때에 그렇게도 절박한 목적을 띠고 이루어지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령을 다 내려서 구국군부대와 헤여지게 되였을 때 전광식이 처량하게 한마디 하였다.

《먼 후날에 가서 우리 인민이 자기 민족의 해방투쟁사를 돌이켜보게 될 때 이해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이라는 위대한 사변과 함께 그 어느때에도 있어보지 못한 간고하고 시련에 찬 해로 되여있었다고 말하게 되지 않을가?》

원래 차광수도 무슨 문제나 앞질러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때만은 전광식의 의견에 머리를 끄덕여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대렬이 돈화쪽으로 넘어가는 산줄기를 타고 얼마간 숲속으로 들어가자 비는 차차 멎더니 건들바람이 불어 서쪽산마루에서부터 검은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하였다. 한데 차광수는 대렬 맨뒤에 따라가면서 얼마동안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듯하더니 사령관동지의 승인을 받고 급기야 숙영명령을 내렸다.

비도 멎고 아직 해가 멀었는데 더구나 적이 멀지 않은곳에서 뒤따르고있다는것을 알고있는데 어찌하여 예정을 변경하는지 전광식은 전혀 리해되지 않았다. 본래 행군준비가 철저하지 못한데다가 비를 맞았으니 숙영을 해야겠다는것이 그 리유인데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차광수는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광식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동의해버린것은 여태 한번도 사태를 빗보지 않았으며 판단에서 착오가 없었던 차광수를 믿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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