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1 회)

11

(8)

 

김일성동지께서는 동생이야기를 내놓으면 김철주동지가 곧 리해할줄 아시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김철주동지께서는 의지를 굽히려 하지 않으시였다.

사실상 그이께서 동생을 남겨두시려는 의도는 여러가지였다.

그이의 구상에 의하면 이해 겨울에 두만강지구에 쏟아질 그 대부분의 적탄을 주력부대에 집중시켜 근거지에서의 희생을 적게 하고 인민을 보호하며 항일구국군과 련합전선을 잘해서 유격대를 성장강화시키자는것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이 한겨울의 시련을 어떻게 이기는가 하는것이 조선혁명의 전도에 크게 영향을 줄것이였다.

이것이 곧 김철주동지가 유격대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리유로는 되지 않겠지만 이제 나이 열여섯인 동생이 그것을 이겨내려니 오죽하며 그것을 또 목전에 두고보아야 하는 형의 심정인들 어떻겠는가.

동생을 혼자 두어서야 되겠느냐 하는것도 그렇다. 김철주동지의 말대로 그애는 능히 혼자서 이겨낼수 있을것이다. 그 애를 그렇게 두게 되는 형들의 심정이 찢길것은 더 말할나위도 없겠지만 그도 역시 참는다치자. 사실이 두 리유는 그것이 제아무리 심각한것이라 할지라도 어차피 사사로운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이께서는 무겁게 입을 떼시였다.

《철주야!》

그이의 음성은 약간 갈린듯하였다.

《털어놓고 말하면 내가 너를 데리고가고싶지 않아 그런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힘들기는 하지만 유격대생활을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구 네가 말하는것처럼 동생을 잘 타이르면 그애가 너를 못가게 붙잡지도 않을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딱한 사정이 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여기에는 어머님께서 그렇게도 고생하시며 내온 혁명조직들이 있지 않느냐. 부녀회도 그렇고 반제동맹이나 농민협회 같은것도 그렇다. 그 조직들은 어머님께서 직접 내오셨고 마지막순간까지 지도를 주셨다. 그런데 어머님이 계시지 않는데 너까지 뜨고나면 여기는 아무도 없게 된다. 잘 생각하여라. 우리가 아버님과 어머님의 뜻을 잇자면 할 일이 많다. 그러나 많은 일중에서도 조직을 키우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끊고 동생의 동정을 살피시였다.

명랑하고 활달하던 동생도 이때만은 심중해진듯 아무말없이 창문쪽을 내다보고있다. 그이께서는 이때 불현듯 동구밖까지 따라나오던 어린 동생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철이 없어 그런지, 모든 물계를 다 환히 알고있어 그러는지 그애는 형님이 떨어져있으라니 별말이 없이 따라나설 궁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길을 떠나 나오게 되자 형님을 배웅하느라고 자꾸 따라왔다.

어린 버릇대로 길가의 풀을 뜯어 날리기도 하고 돌멩이를 차굴리기도 하면서 앞서걸었다.

그이께서는 차마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지 못하고 묵묵히 걸음만 옮기시였다. 형님의 심정을 리해하고있는 김철주동지는 다리목에 이르자 잘 다녀오시라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떨어졌다.

다리목에 서있던 김철주동지는 무턱대고 그냥 따라가는 동생을 소리쳐불렀다.

《그만 가, 그만. 형님이 빨리 가셔야지.》

그러면서도 손을 저으며 인사를 보낸다.

그만하고 돌아서라는 김철주동지의 고함소리가 들릴 때면 동생은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아무 생각도 없는듯이 그냥 앞서서 걸어나갔다.

동구밖에 이르자 그이께서는 철주형이 기다리고있으니 그만하고 들어가라고 하려다가 차마 그 말씀을 하지 못하시였다.

어린것은 이렇게 끝없이 같이 갈 작정인것처럼 아무런 꺼리낌없이 혹은 앞서기도 하고 또 뒤에 떨어지기도 하면서 따라왔다.

길이 멀어질수록 그이께서는 더 난처해지시였다.

한참씩 걸어가다가는 문득 돌아서서 허리를 그러안고 말끄러미 올려다보고 또 저만치 앞질러 껑충껑충 뛰여가기도 한다.

동생이 지나간 뒤로 다 말라버린 풀잎이 대굴대굴 굴러 언덕밑으로 사라진다.

길과 함께 등을 휘여넘어간 콩밭에서는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콩꼬투리들이 톡톡 소리를 내며 터진다.

그이께서는 앞서가는 동생을 바라보시며 저 어린것을 어떻게 두고 가나 하고 막막한 생각을 쫓으시였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길이다.

혹시 운명의 그 어떤 부질없는 장난에 의해 이것으로 영원한 리별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헤여져야 할것이다. 그이께서는 서두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늦잡지도 못하며 생각에 잠기신채 들길을 걸어나가시였다.

동생이 문득 돌아섰다. 형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빛나는 눈으로 말끄러미 쳐다본다. 실로 어린것의 넋이란 별빛과도 같은것이여서 왜 이렇게 문득 서버렸는지 알수 없었다. 그이께서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짚으려고 하실 때 《형, 안녕히 갔다오세요》하고 꾸벅 고개를 숙이였다. 순간 그이께서는 가슴이 뿌지지 끓어오름을 느끼면서 당황해지시였다.

《들어가라, 들어가라.》하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빨리 떨어지기를 바라시던 그이이시건만 그 순간에 이르러서는 정반대의 정서로 돌아간것이였다.

그때 동생은 조끼주머니를 들추더니 무엇을 꺼내였다.

《형! 이거.》

자그마하나 손바닥우에 두알의 군감자가 놓이였다.

그이의 시선이 감자알로부터 눈물이 가랑가랑해진 동생의 얼굴로 천천히 옮겨갔다.

형이 오면 드린다고 버들치새끼를 낚아다 말리고 어머님께서 힘들어하신다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매일 나무를 꺾어오던 동생이였다. 하지만 이 기막힌 리별을 앞두고 감자알을 내놓을줄은 차마 모르시였다. 차라리 가지 말라 발버둥치며 울었던들 이다지도 가슴을 허벼내지는 못하였을것이다. 동생은 감자알을 받지 못하는 형을 말끄러미 쳐다보며 바르르 입술을 떨고있었다.

다음순간 그는 가느다란 팔을 뻗쳐 형의 주머니에 감자알을 밀어넣어주었다. 그이께서 주머니를 움키였을 때 동생의 손과 함께 감자알에서 미치는 따끈따끈한 온기를 느끼실수 있었다.

손을 뽑고난 동생은 잠간 서서 형을 쳐다보다가 삑 돌아서더니 김철주동지께서 서있는 언덕쪽으로 냅다 뛰여가는것이였다.

길가에 자라오른 새초가 바람에 설레이는데 짚신을 신은 동생의 발이 언뜻언뜻 멀어져갔다.…

흠칫 놀라 회상에서 깨여나신 그이께서는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끔하는 순간 탁자에 놓인 술잔을 와락 당기여 쭉 들이마시시였다.

김철주동지께서도 형의 마음을 알았다는듯이 잔을 내였다. 형의 표정을 지키고있던 김철주동지께서는 공연히 찾아와 형을 괴롭혀 안됐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쾌활한 성미대로 시원시원하게 말을 하였다.

《형님, 그럼 난 여기 남겠어요. 우리 걱정은 말고 부디 건강하세요. 가끔 어머니산소도 내가 돌봐야겠으니까. 하지만 래년쯤엔 날 꼭 데려가야 합니다. 약속하지요?》

《그래, 약속한다.》

마침 한줄기바람이 휘익 불어와 양철지붕을 덜렁덜렁 흔들어놓았다.

문풍지는 또 흉물스럽게 어린애울음같은 소리를 내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이때 종이에 싼 꾸레미를 하나 내놓으시였다.

어머님께서 아무때고 형이 오거들랑 주어야겠다고 마련해둔것이라고 한다.

《어머님께서?》

놀라는 기색을 지으시며 그이께서 종이를 펴보니 그것은 이때 흔히 볼수 있었던 로동화였다.

한컬레의 로동화, 아무 모로 보나 전혀 특이한데가 없는 한컬레의 신, 그것이 아들에게 물려주는 어머님의 온 가산일수 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그것을 받아드시고 어머니의 후더운 입김과 뜨거운 체온을 느끼며 오래오래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군복을 지어주시며 모자로부터 신발에 이르기까지 일식으로 해입히지 못하는것을 아수해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생시와 같이 선명하게 떠오르시였다. 다음날 새벽 부대가 량강구마을을 떠났다.

김철주동지께서는 형과 헤여지기 위해 언덕에 올라서시였다.

아침이였다.

방금 솟아오른 아침해가 대렬의 흐름을 잘 바라보이게 하였다.

그이께서도 자주 돌아서서 손을 흔드시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수 없으나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앞날을 일일이 예견할수가 없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혈육간의 영원한 리별과 같은 가슴아픈 일도 극히 평범하게 이루어지는 때가 드물지 않다. 이때도 그이 두형제분들이 그것으로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리라는것을 알았던들 이렇게 무심히 헤여지지는 않았을것이였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