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0 회)

11

(7)


김일성동지께서 량강구에 도착하셨을 때는 부대는 이미 예정한대로 먼길을 떠날 차비를 갖추고 기다리고있었다. 출발을 하루 앞두고 바삐 일을 돌보고계시는데 불쑥 김철주동지께서 찾아오시였다.

《왜 왔느냐?》

사령부에서 서너집 떨어진 남의 집 웃방이 조용하여서 그리로 데려가시며 번연히 알면서도 물으시였다.

《유격대가 어떤가 보려구요.》

동생 역시 선뜻 자기 속을 내비치지 않았다.

《공청사업은 잘되느냐?》

《형님 떠나신 후 또 한바퀴 돌았습니다. 이번에 형님이 말씀하신것두 있구 해서 금년 5. 1절을 잘 쇠지 못한것을 10월혁명기념때 봉창하자고 그럽니다. 청소년들의 사기가 대단은 한데 〈토벌대〉놈들 성화에 잠을 못 잘 형편입니다. 어데 가나 연기가 자욱합니다. 총소리는 간데마다 콩튀듯하고 〈토벌대〉는 개싸다니듯합니다. 〈토벌〉맞은 동네에서는 그자리에 집을 또 일궈세웁니다. 그러면 또 와서 불을 놓습니다. 그래 마을사람들은 낮에는 산에 가있다가 밤에 〈토벌대〉놈들이 간 다음에 내려와 자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산에다 초막을 지어놓고 살 작정들을 하고있지요. 그리구 형님, 이번에 저 복동골에서 룡정거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 말을 들으니 〈민생단〉이라는게 없어지고 그대신 〈협화회라는것이 나왔는데 거기서 선전하기를 일본군대가 〈토벌〉 자꾸 하는건 유격대가 생겨났기때문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거기 있는 조직들에선 어떻게 대답한다더냐?》

《좀 떨떨해들 있어요, 그래 내가 가는데마다 그에 대해 말해줬지요, 왜놈들은 유격대 없을 때에 벌써 조선을 먹었다고 말이죠. 유격대는 이제 〈토벌대〉놈들을 다 잡아 없애치울것이라고 했더니 모두 좋아했습니다.》

《거참 잘했다. 그런건 공청에서 맡아서 잘 선전해주어야 하겠다.》

《각처에서 지금 근거지가 나오고있더군요. 오다가 쏙새골지구에 들렸는데 참 별천지 같습니다. 헌병이나 경찰 하나 없고 정말 해방지구가 됐습니다. 그런 식으로 점차 조선을 다 해방시키겠지요?》

《그렇게 할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새 너 퍼그나 의젓해진것 같구나.》

서로 어머님이야기를 피하려고 될수록 먼데로 이야기를 끌어가려 하시였다.

그러는사이에 그 집마당에 들어서게 되였다. 방안은 좀 침침하여서 해가 잘 비치는 벽모퉁이가 더 좋았다. 형제분은 마주서서 이야기를 계속하시였다.

《이번에 안경을 끼고 변장하지 않았더라면 큰일칠번 했습니다. 화룡에 갔다오는데 불쑥 순사놈이 나타나더니 저를 끌고 경찰서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놈은 〈너 어데서 오니?〉하고 반말질부터 하길래 나도 〈화룡서 온다. 무슨 상관이냐?〉하고 맞섰지요. 그러니 그놈은 〈으음, 대단허다. 그래 뭘하러 다녀?〉하며 한대 칠것처럼 을렀습니다. 내가 〈손만 대봐라, 네 밥통을 뗄테다.〉하니까 그놈이 흠칫 놀라며 〈넌 누구냐?〉 했습니다. 그래 내가 〈눈이 있으면 똑똑히 봐, 네 목이 떨어지지 않게.〉하고 을러메니까 그놈이 얼떨떨해졌습니다.

그놈은 안경을 낀 내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다가 〈공산당 조심해, 빨리 집에 가!〉 하잖아요. 그래 됐다 하고 나오려다가 〈전화 좀 걸수 없소?〉하고 골려주니까 〈고장이야, 고장.〉하며 떠밀어서 나왔지요.》

하하하.》

그이께서 웃으시는것을 보자 김철주동지께서는 보란듯이 안경을 껴보인다.

그이께서는 한결 말수가 늘었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아직 응석이 보이는것 같은 동생을 두고 많은것을 생각하시였다. 어린 동생은 하는수없이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쳐도 열여섯살 잡힌 철주동생은 자기의 독자적인 생활을 요구할것은 뻔하다.

그래도 여태 공청사업을 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어머님께서 뒤받침해주셨기때문이였다. 우선 어린 동생이 있는 집안살림을 어떻게 유지할것인가가 문제였다. 해가 져서 저녁을 치르고 방안에 두분이 마주앉게 되였을 때 김철주동지께서는 거침없이 속심을 털어내놓았다.

《형! 나두 인젠 형을 따라다니자고 왔어요.》

《나를?》

그것은 뜻밖의 청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것을 무슨 수로도 거절해낼수 없었다. 너무나 진정이 담기였고 또 그렇게밖에 나올수 없는 동생의 처지였다. 그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딴데로 말씀을 돌려버리시였다.

그 이튿날 저녁이였다.

헤여져야 할 절박한 시간을 앞두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동생과 함께 객주집으로 가서 술 한병을 청하시였다. 안주로는 언두부 두모가 호박잎같이 넙적한 접시에 댕그렇게 놓였다.

그이께서는 두개의 잔에다 각각 술을 부으시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김철주동지께서는 잘 알고있었다. 그래 벌써부터 눈물이 글썽해서 외면을 하고 앉았다.

서로 말이 없었다. 바람이 욱 불어올 때마다 문풍지가 부웅부웅 청승스럽게 울어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이때 이역땅에 홀로 묻힌 어머님을 생각하고있었다. 어머님만 계셨더라면 이런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될것이였다. 앓아서 몸을 가누지 못하더라도 오래오래 앉아계셔주셨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졸지에 의지가지 없는 외로운 신세가 되고말았다. 김정룡이네가 고맙게 대해주기는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둘씩이나 주인없는 집에서 무턱대고 페를 끼칠수는 없는것이다. 동생은 이제 열살 방금 넘어 어려서 할수 없다쳐도 자기는 어떻게나 형님이 데리고가줄수 있으리라 믿었던것이다. 그런데 형님은 리별의 술을 마시자고 하신다.

자기는 물론 형도 술을 마실줄 모르신다.

이래저래 김철주동지께서는 끝없이 구슬픈 생각에 잠기시였다. 형님도 오죽하면 나더러 쓰디쓴 술을 마시자고 할가.

김철주동지께서는 돌아앉아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셨다.

그이께서도 동생의 이런 심정을 모르시지 않았다. 사정은 딱하고 어데 앉아 조용히 이야기할데도 없어 여기로 오신것이다. 오고보니 술을 청하게 되고 마주앉게 되시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다음 그이께서 드디여 말씀하시였다.

《철주야! 네가 나를 따라 같이 가겠다는 마음을 나도 잘 알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네가 떨어져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형! 내 나이 지금 열여섯인데 왜 유격대생활을 못하겠습니까. 난 어떤 곤난도 이겨낼수 있습니다.》

《아니다. 유격대생활이 곤난하고 힘들어서가 아니다. 너마저 떠나면 동생은 어떻게 하겠니?》

김철주동지께서는 얼른 대답을 못하신다.

《형님! 나는 그애가 어리긴 하지만 사정을 이야기만하면 넉넉히 알아들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견디기 어렵겠지만…》

김철주동지께서는 뒤말을 더 잇지 못하신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