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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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이였다.

이날도 아침녘부터 여러 사람이 병문안을 왔다. 역시 그중에는 어머님께 사업에 대한 보고를 올려야 할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지시를 받아야 할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중태에 빠진 어머님의 병을 념려하여 병문안만 하고 돌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어머님의 병이 더 위중해졌다는것을 알고 마을에 묵으면서 약도 구해들이고 의사를 불러오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어머님의 병세를 지키는 사람들이 한둘씩 들었다.

그중에는 수백리밖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어머님의 병세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그들은 매일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한둘씩 와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봉애아주머니의 입을 통해서 소식을 알아내서는 한입두입 건너 온 마을에 소식을 전하군 하였다.

어느덧 부녀회나 기타 농민협회, 아동단조직들에까지 어머님의 병세가 알려졌다.

근방 혁명군중들은 모두 침울한 분위기에 잠기였다. 무슨 말을 시작했던지 관계없이 그 이야기끝에는 의례히 어머님의 병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혁명조직의 회의들에서, 가을걷이를 서두르고있는 밭머리에서, 혁명조직을 련결하는 각처의 통신련락초소에서, 야학방에서, 혹은 우물길에서, 마실방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좋다는 약이나 유명한 의사들을 찾아떠났다.

이날 아침은 어머님의 병세가 덜린것 같다는 소식에 의해 마을은 한결 명랑해졌다. 봉애아주머니가 마을에 두부망질을 하러 나갔다가 어머님의 병세를 말했던것이다.

벌써 이틀째나 하루에 둬번씩 미음을 잡수시였고 기력도 얼마간 생기여 벽을 의지해서나마 잠간씩 앉아계신다고 하였다.

반가운 소식은 전파처럼 삽시간에 퍼졌다.

밭머리에서 듣게 된 젊은이들은 무릎을 치면서 기뻐하였다.

《됐다! 어머님께서는 차차 일어나실거야. 자! 기운을 내자구.》

《우리 어머님이 얼마나 강의한분이시라구 병에 지겠나? 일어나실건 뻔하지.》

《그런데 의사들은 무슨 기술이 없나. 거 참, 답답해서 못견디겠군.》

이러한 때 한낮 어머님께서는 자리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벽을 의지해 일어나앉으시였다.

막내를 불러 선반에서 빗접을 내려달라 하시더니 무릎앞에 펼쳐놓으시였다. 낭자를 틀었던 머리를 풀어 빗으로 내리빗으시였다. 병고때문에 한결 숱이 성글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윤이 나는 머리태는 무릎까지 길이가 나갔다.

어깨우를 휘여넘고 가슴에서 확 퍼진 함치르르한 머리카락은 얼레빗으로 내리빗을 때마다 물결이 지어지군하였다.

몇번 그렇게 하시다가 손을 멈추고 창문을 내다보시였다. 때마침 해빛이 아늑하게 비쳐들고있었다.

《지금은 어데쯤 왔는지?》

어머님께서는 혼자소리를 하시였다.

이전에도 그러하였지만 이즈막에는 아드님의 소식이 못견디게 그리우시였다. 병으로 인해서 의지가 약해진것도 아니고 근심이 더해지셔 그런것도 아닌데 하루에도 몇번씩 문득 아드님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군 하시였다.

지난봄 길떠나기에 앞서 집두리를 돌면서 무엇인가 생각하고있던 아드님의 모습을 그려보시였다. 귀를 기울이면 지금도 그때 뚜벅뚜벅 울리던 그 발걸음소리가 들릴것만 같으시였다.

방문을 덜컥 밀어놓으며 《그런 집근심을 하면 혁명을 못한다.…》 하였을 때 발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였던 아드님의 그 모습이 지금도 저 문틈으로 내다볼수 있을것만 같으시였다.

어머님께서는 그때 그 일이 가슴에 아픈 인상을 남기시였다. 이미 그런것을 다 알고도 남을터인데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될것이 아니였던가.

따져놓고보면 응당 그래야 하고 그럴수 있는것이였지만 아드님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섰을 때 어머님께서도 가슴에서 무엇이 툭 떨어지는것 같은 충격을 느끼시였던것이다.

혹시 지금쯤 철주형은 어데서 그때일을 생각하고있을는지도 모른다. 숲속을 행군하거나 대원들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또는 어느 낯설은 마을에 들어서면서 이 어머니의 그때 그 말을 되새길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후회할것은 못된다. 온 나라가 피바다에 잠기고 수천만의 겨레가 애타게 구원을 부르고있는 때에 어찌 걸음을 지체하고있을것인가.…

어머님께서는 빗을 쥐신 손을 흠칫 뒤로 당기시였다. 창문밖에 우렷이 나타났던 아드님의 영상이 가뭇 사라지고 문살이 뚜렷한 창호지로 가려있는것을 보신것이다.

어머님께서는 다시 빗질을 하면서 또 혼자소리를 하시였다.

《기왕 떠난 길을 끝까지 걸어야지. 천리건, 만리건 가닿을 때까지 가야지. 그 길에 아버님의 소원이 깔려있고 그 길만이 겨레를 건지는것이니까.…》

빗을 놓고 다음에는 바느질고리에서 가위를 집어드시였다. 손을 뒤로 가져가 머리태를 자르시였다. 어머님의 손이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한생을 소중히 길러온 머리카락이 뭉턱뭉턱 끊어져나갔다. 덜커덕하고 새문이 열리였다.

《뭘 좀 잡수셔야겠어요.》

봉애아주머니가 놋바리를 소반에 받쳐들고 들어왔다.

어머님께서는 전혀 알은체를 하지 않고 가위질을 계속하시였다.

《아니, 저런.》

봉애아주머니는 뜻밖의 광경을 보자 허둥지둥 소반을 내려놓으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봉애아주머니는 급히 다가앉으며 가위를 뺏으려 하였다.

놔두시우.》

《머리태는 왜 자르세요?》

《숱이 너무 많아서인지 머리가 가려워 좀 솎아내느라고 그러는데.》

이렇게 태연히 말씀하신 어머님께서는 입모습에 좀 어색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이렇게 하면 머리가 한결 시원한걸요.》

《난 모르겠어요, 왜 그러시는지.》

봉애아주머니는 너무나 태연하신 어머님의 기상에 질려 더는 만류하지 못하고 머리맡에 나앉아 한숨만 내쉬였다.

어머님께서는 그냥 가위질을 계속하시였다. 물론 다 자르는것은 아니였지만 숱을 줄인다고 보기에는 너무 과하였다. 툭 하는 마지막가위소리와 함께 소담한 머리태가 한웅큼이나 빗접우에 사리져내려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봉애아주머니는 리해되지 않았다.

《머리태를 자르시다니?》

조선녀성들에게 있어서 치렁치렁한 머리태는 하나의 큰 자랑이며 굳은 절개의 상징이다. 그러길래 부모들은 어려서부터 딸자식의 머리태를 잘 길러준다.

아침이 오면 어린 딸을 무릎에 앉혀놓고 혹은 할머니나 어머니, 때로는 아버지가 빗을 들고 손수 빗겨주고 땋아준다. 나이들면 댕기를 드리고 명절이면 창포물로 감아 빗는다.

너무나 아수해난 봉애아주머니는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이 수북이 담긴 빗접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었다.

《다른 생각을 마시우. 내가 그러고싶어 그러는데 상심할것 없어요.》

빗접을 접어 머리맡에 밀어놓으시고 어머님께서는 태연히 상을 가져오라 하며 자신의 손으로 미음을 뜨시는것이였다.

상을 물리고나신 어머님께서는 기분이 좋으셔서 오래간만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시였다.

《형님은 어데가 제일 살기 좋았소?》

이렇게 시작한것이 거의 두시간이나 시간을 보내였다.

베개를 높이 고이고 누우신 어머님께서는 이전처럼 식후고통을 느끼는것 같지도 않으시였다. 한두번 돌아눕기는 하시였으나 그래도 가벼운 기분으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이때까지 많은 곳을 다녀보았지만 만경대만한 곳이 없다고 하시였다. 누구나 나서자란 자기 고향을 자랑하지만 강반석어머님께 있어서 만경대는 남다른 뜻을 가진 곳이였다.

만경대초가집, 앞으로는 순화강이 대동강과 합치는 물어름이 보이고 뒤로는 청청한 소나무숲이 우거졌다.

벌써 10여년전 혁명의 길을 떠나시는 김형직선생님을 따라 한식구가 고향을 떠나게 되였다. 다박솔짬으로 북으로 뻗은 좁다란 길에 식구들이 다 들어섰다. 재등을 하나 넘고 또 하나 넘게 되였을 때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모자를 벗고 정중히 절을 하시였다.

김보현선생님과 리보익녀사께서 허리를 숙이며 《잘 다녀오너라.》하고 인사를 받으시였다. 뒤따라 강반석어머님께서 어린 아드님을 업으신채로 큰절을 올리시였다.

《고생이 막심하다. 이제 가면 언제 오겠느냐?》

리보익녀사께서 며느리의 팔을 들어 일으켜주며 눈물이 글썽해지시였다.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고향을 뒤에 두고 차차 멀어져가시였다.

개개의 소나무들도 이제는 푸른 등판으로 되여보이고 손을 들어 바래주던 부모님들도 아스라하니 멀어졌다. 구릉이 져 휘여넘어간 달구지길을 걸어 북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이제 언제 다시 이 길을 밟게 될것이며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과 정든 산천을 다시 보게 될 그날이 과연 언제일가? 조국을 광복하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한 길이였다. 이 길을 걸어 김형직선생님께서 떠나시고 또 이 길을 밟고 김일성동지께서 고향을 떠나시였다.

지금 고향 만경대에는 늙으신 부모님들이 행여나 소식이 있을가 해서 기다리고계실것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때 그 길이 마지막길이 되시였다.

어머님의 눈앞에는 그때 그 다박솔짬의 오솔길이 선히 떠오르시였다. 손을 들어 바래주시던 부모님들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이 나타나는것이였다. 얼굴에 주름이 한벌 덮이였던 시아버님! 아래우 흰옷을 입고 흰수건을 쓰셨던 시어머님!

《어머님!》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고향 만경대자랑을 하다말고 문득 이렇게 부르시였다. 봉애아주머니는 눈물이 핑 돈 어머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였다.

《나 물 좀 주시우.》

어머님께서도 공연한 핑게를 대여 격정을 가라앉히려 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림박한 자신의 최후를 똑똑히 내다보고계시였지만 그런 티를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지금 침착하고 아늑한 시간을 보내고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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