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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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반전이니까 칠월그믐께였다.

어머님께서는 이날도 편안히 아래목에 누워계시였다. 벌써 사흘째 한결 숨돌리기가 헐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시였다.

봉애아주머니는 대야에 물을 끓여다가 수건을 적셔 손과 얼굴을 씻어드리였다. 며칠만에 머리도 빗으시였다.

그러고보니 봉애아주머니는 어머님의 병이 한결 덜린것 같아 마음이 놓이였다. 며칠동안 구질구질 궂히던 날이 아침에는 건뜻 들리고 건들건들 바람이 불었다.

점심때가 되여서 봉애아주머니는 미음을 권하였는데 한종발이 골숨한데서 한 절반이나 받아 잡수시였다. 전에는 며칠씩 곡기를 전혀 하지 않으시더니 그만하면 사흘몫은 단꺼번에 잡수신셈이다. 이렇게 얼마간 날이 가노라면 차차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앉으시게 될것이고 몇달 추서면 바깥출입도 겨울안으로 하게 됨직해보이였다. 그래도 헐잡아 몇달은 병구완을 해드려야 할것이였다.

그러느라면 몇번은 집에도 다녀와야 할것이라고 봉애아주머니는 혼자 타산을 세워보는것이였다.

봉애아주머니는 오래전부터 강반석어머님에게서 극진한 사랑을 받아오는터이였다. 이전에는 고작해서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씩 찾아와 문안을 올리고 밀린 일을 이것저것 거들어드리고 가군 하였다. 빨래도 해드리고 약도 달여드렸다. 그러다가 한 보름전에 와보니 어머님께서는 아주 누워 일지를 못하시였다.

봉애아주머니는 그때 너무 안타까와 눈물을 떨구며 말했었다.

《이렇게 되실 때까지 혼자서…》

봉애아주머니는 강반석어머님의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드러누우신것이 너무도 분하고 안타까와 눈물을 머금는것이였다.

어머님께서는 그때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떨구는 봉애아주머니의 손을 잡아주며 말씀하시였다.

노여워마시우, 미안해서 그러지요. 아무리 믿는 사이라도 하루이틀도 아닌데 어떻게 늘 그러겠소. 그대신 내 이제 얼른 일어나리다.》

어머님께서는 귀밑머리를 쓸어넘기며 이전에 흔히 볼수 있었던 그런 환한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이시였다.

이렇게 시작한것이 닷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서 보름이 되였다.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지만 어머님의 병세는 좀체로 덜리지 않았다. 그러던것이 오늘은 뜻밖에 기운을 내시는것이였다.

이 며칠동안은 밤이고 낮이고 줄창 어머님의 머리맡을 지키고 시중을 들던 막내도 두번이나 마을에 나갔다왔다.

점심때가 지났을 때였다. 막내는 책을 읽고 봉애아주머니는 빨래를 걷어다가 다림질을 하고있었다.

어머님께서 고개를 돌리며 물으시였다.

《얘야, 지금 맏형이 어데쯤 갔음직하니?》

《전번날 반제동맹 구책임자아저씨가 그러는데 이제는 돌아오실 때가 됐을거라구 해요.》

막내는 손에 들었던 책을 밀어놓고 돌아앉으며 어른답게 대답을 하였다. 어머님께서는 막내의 말에 어떤 충격을 느꼈음인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물으시였다.

《둘째형은 언제 온다던?》

《떠날 땐 연길에 갔다 인차 온다구 했는데 알수 없지요뭐, 그전에 화룡에도 가봐야겠다구 늘쌍 그랬댔으니깐.》

다시 무슨 말씀이 있을것 같았지만 그이상 더 어머님께서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였다. 책을 읽다말고 막내는 밖으로 나가더니 마당에서 나무를 패였다. 힘이 약하다보니 통나무는 해오지부터 못하고 진대통의 거죽을 뜯어서 지게에 져다가 짬이 생기면 그것을 잘게 끊어서 때게 만든다. 하루건너쯤 봉애아주머니도 나무를 해오건만 그것은 굴뚝모퉁이에 가려놓고 기어이 제가 해온것을 때게 하였다. 어머님께서는 반나마 열린 문틈으로 막내의 뒤모습을 내다보시였다. 다리를 벌리고 도끼를 어깨우까지 힘있게 들어올렸다가 메치군한다. 대개는 나무에 맞거나 모태에 맞지만 어떤 때는 도끼가 땅에 박히군 한다.

물끄러미 내다보고계시던 어머님께서는 봄에 맏아드님과 함께 둘째가 쉬땅나무단을 지고 마당에 들어서던 때를 회상하시였다.

왜 그런지 여느때와 같지 않게 가슴이 찌르르 울리면서 코마루가 저려오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눈덕을 내리깔며 봉애아주머니에게 말씀하시였다.

보금이가 올 때 되지 않았소?》

《련락이 갔으니 곧 오겠지요.》

대답을 해놓고도 봉애아주머니는 곧 애원하듯이 말하였다.

《부녀회사업도 중하지만 몸도 돌봐야 할것이 아닙니까. 늘 혁명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러자면 몸을 돌려세우셔서 많이 하고 오래 하실 생각도 해야 되잖겠습니까, 참.》

걱정마시우, 내 몸이라는거야 늘 이런걸 가지구, 어서 또 우리 애를 보내서라도 좀 불러주시우, 내 오래 그러지 않고 딱 한마디만 하고말겠으니.》

막내가 나가서 얼마 안있어 부엌문쪽으로 발자취소리가 났다.

막내가 무어라고 말을 하는 모양이더니 곧 문소리가 난다.

《어머니, 제가 왔어요.》

귀익은 목소리가 새문으로 넘어오자 어머님의 눈은 금시 빛을 내였다. 보금이가 방안에 들어오자 어머님께서는 상반신을 일으켜세우고 그의 손을 잡아앉히시였다.

《또 오래서 안됐소. 어찌겠나, 우리 녀성들도 부지런히 일을 해야 나라를 빨리 찾게 되겠는걸. 내가 찾아가야겠지만 그러지 못해 수고를 끼쳐 미안하네.…》

눈매가 억실억실한 스무살 갓 넘은 보금이는 바삐 어머님의 머리를 짚어보았다.

《어머니, 오늘은 한결 기운이 좋으신것 같아요.》

《그래, 그래서 내가 불렀지.》

중요한 사업은 늘 이곳 부녀회장인 보금이와 의논하였고 긴급한 련락도 그를 시켰다.

부녀회사업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였다.

앓아누우셔서도 날마다 빠짐없이 몇명의 부녀회간부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머님의 문병을 위해 찾아왔다가 걸리기가 일쑤지만 또 이렇게 어머님께서 연줄 사람을 띄워 부르기도 하시였다. 한쪽으로는 나가고 한쪽으로는 들어오는 식으로 사람출입이 언제나 그치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지 누구나 알리 없었지만 어쨌든 어머님께서는 이지간에 더 일을 서두르시는것이 분명하였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직된것과 관련하여 그에 적응하게 부녀회사업을 개편하시자는것이였다. 어머님께서는 명월구회의가 있은 후부터 그렇게 사업방향을 돌리시였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아직 이전 방법대로 끌고있어서 그에 마음을 쓰고계시는것이였다. 어머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부녀회사업은 첫째 목표가 남자들과 같이 총을 잡고 싸울수 있게 준비되는것이라고 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그것을 위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사업하시는것이였다.

녀성들이 유격대에 나간 남편이나 오빠를 대신해서 근거지를 지키며 가정을 맡아보게도 해야 하였다.

유격대에 식량도 대고 군복도 대고 일체 필수품들을 구해보내야 한다. 그래야 유격대가 싸워이길수 있다.

어머님께서는 이와 같은 거창한 사업을 처리하기 위해 병석에 누워계시면서도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두만강지구, 백두산지구의 그 광대한 지역에 널린 부녀회조직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돌보고계시는것이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과 그를 강화하기 위한 안받침으로서 이해에 다시한번 추켜올려세워야 할 부녀회사업은 바야흐로 어머님의 능숙한 지휘에 의하여 나래를 펴고 솟아오르고있었다. 이제는 이미 해놓은 사업들에 잘 매듭을 짓고 다음고리를 붙잡고 넘어가야 할 때가 된것이다.

보금이, 이제 우리 나라가 독립되고 압박과 착취가 없는 사회주의제도가 되였을 때 우리 조선녀성들이 어떤 처지에 있게 될는지 생각해보았나?》

사업토의를 끝마친 어머님께서는 느닷없이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맡은 임무가 크기도 하였지만 줄곧 어머님의 수고가 념려되여 신경을 쓰고있던 보금이는 덤덤히 앉아 어머님의 다음말씀을 기다렸다.

《그때 조선녀성은 세상에서 제일 크고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될거야. 일제를 몰아내고 지주, 자본가의 억압과 착취가 없게 되면 우리 녀성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것 같은가? 보금이는 이런걸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지 않나? 우리 철주 형은 이전에 내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네. 〈녀성해방운동은 평등권만 찾는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부엌일에서까지 해방되여야 합니다. 재물을 받아 손으로 비벼 빨래를 하고 끼마다 불을 때 밥을 짓고 등잔불밑에서 밤을 새워가며 바느질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앞으로 이 모든것을 물리쳐버리는 그때까지 혁명을 계속 끌고나갈 작정입니다.〉 이렇게 말한것이 지금도 생각나네.》

어머님께서는 잠간 숨을 돌리시면서 뜻깊게 고개를 끄덕이고있는 보금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수고하겠소. 오늘 내가 말한것을 잊지 마오. 우리끼리야 이렇게 만나면 속을 훤히 들여다볼수 있지. 그래 래일 떠나겠나? 수고해요. 그렇게 한걸음씩 걸어야지. 천리길도 한걸음씩 걸어서 가닿게 되는 법이니까.》

보금이 돌아가자 저녁때가 되였다. 봉애아주머니가 좁쌀미음이 담긴 놋바리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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