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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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개울이 나졌다. 그이께서는 징검다리를 디디고 물밑이 알른거리는 내물을 건느시였다.

불현듯 어머님생각이 다시 떠오르시였다.

병세는 지금 어떠하신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시였다. 무슨 수로 몸을 추세울수 있을것인가. 살림은 더욱더 쪼들려가는데 정신적부담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있다. 몸이 그러하다고 혁명투쟁을 놓으실 어머님이 아니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어떤 곤난이라도 물리치고 꿋꿋이 서계실것이며 이전과 다름없이 시간과 분을 쪼개가면서 혁명사업에 열중하고계실것이다.

이제 개울을 건느고 밭두렁에 올라서서 마당으로 접어들무렵이면 그때는 벌써 문이 덜컥 열리고 어머님께서 《인제 오느냐.》하시든지 밖에 있는 동생을 불러 《형이 온다.》하며 방문을 열고 나오실것이다.

웃으시는 어머님의 얼굴이 커다랗게 확대되여 떠오르는가 하면 이제는 한결 더 거칠어진 손으로 팔목을 잡으며 《왔구나!》하고 한마디 하고는 끝없이 얼굴을 쳐다보실 어머님이 보이시였다.

혹시 오늘은 어떻게 되여 개울가까지 나와계실는지도 모를것이다.

자주 엇바뀌는 추억들과 또 앞날에 대한 끝없는 자랑과 확신으로 해서 그이께서는 즐거워지기도 하시고 혹은 비장한 결의도 다지면서 줄곧 앞을 내다보며 기운차게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이런 가운데 한가닥 집의 일이 걱정되는바가 있기는 하셨지만 어쨌든 어머님을 뵈옵게 된다는 기쁨을 안고 바삐 걸음을 옮기시였다.

씨가 다 여문 길짱구가 발밑에서 가볍게 밟히기도 하였고 활개치는 팔소매에는 가막사리가 잔뜩 달라붙기도 하였다. 언덕에는 함함하고 도톰한 잎을 펼친 들국화가 한벌 널리여서 푸른 초원의 드넓은 바탕에 흰무늬가 아롱지게 만들어놓았다.

해가 어느덧 산마루에 걸려 연분홍빛노을이 누리를 곱게 물들일무렵 그이께서는 토기점골 동구밖에 다달으게 되시였다.

개울을 건느신 그이께서는 이미 낯익은 그 두렁길에 들어서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시였다. 군모를 밀어올리고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윽토록 마을길을 바라보시였다.

정답고 아늑한 집이 바로 앞에 놓여있었다.

마당에는 석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빨래가 두세가지 걸리고 매양 어머님께서 나서시는 방문은 반나마 열려있었다.

분명히 동생같은데 이쪽을 바라보다가 무엇때문인지 급히 부엌으로 달아들어간다.

이때 그이의 뇌리를 치는 불길한 예감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동생이라면 왜 알아보지 못하였을가?

여느때같으면 벌써 알아보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와 안기던 동생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이께서는 한초도 되나마나한 사이에 얼핏 스치고지나간 좋지 못한 예감을 애써 지우려고 하시였다.

알아보지 못할수도 있지 않는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향했던것은 지금 한창인 저 노을을 황홀하게 쳐다보았을수도 있지 않는가.

또 그것이 동생이 아니고 어느 다른 아이일수도 있지 않는가.

그이께서는 다시 걸음을 내떼며 공연한 걱정을 했다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였다.

어머님께서 계시는 집앞에 서기만해도 어느사이에 이렇듯 어린시절의 심정으로 돌아가버리는 자신을 알게 되신것이였다.

발걸음을 크게 떼여 누가 떠다심었는지 애련한 들국화가 한창 다투어 피는 마당을 향해 다가가시였다.

사위는 괴괴하였다.

분명히 방안에 사람이 있는데 인적기는 나지 않았다.

어머님께서 계신다면 벌써 문이 덜컥 열렸어야 할것이다. 동생이 있더라도 달려나와야 할 거리이다.

어머님께서 방에 계시지 않는것이 틀림없었다. 몸이 좀 나으셔서 마을에 나가셨을수도 있다.

단꺼번에 몇가지의 의문이 떠오르시였다.

기대와 불안이 맞잡고 밀고당기고 한다.

그것은 순식간의 일이였지만 숨가쁠만큼 긴장된 추리가 물결쳐나갔다. 심장이 몹시 뛰는가 하면 뚝 하고 소리를 내며 멎는듯도 하고 몸이 화끈해지는것 같고 싸늘해지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침내 문고리를 잡아당기시였다. 덜컥 열리는 순간 방안에서는 괴괴한 정적이 확 내불리였다. 문을 열어잡으신채 방안을 들여다보시였다.

어머님께서 계시리라고 생각했던 방안이 텅 비여있었다.

방안을 휘둘러보셨지만 벽에 어머님 옷가지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으신 손이 걷잡을수 없이 떨리시였다.

금시 온몸의 피를 얼구는듯한 전률이 그이의 온몸을 휩쓸고 불길한 예감이 번개같이 뇌리를 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철주동생이 소리없이 다가와 김일성동지의 어깨에 왈칵 매여달린다.

《형, 왜 인제야 오우?》

김철주동지께서는 몸부림을 치면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로 형님의 가슴을 적시시였다. 맏형이 온것을 안 막내동생이 그 누가 만류할새도 없이 맏형의 허리를 연약한 두손으로 그러안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두 동생의 울음소리로 하여 심장이 터지는것만 같으시였고 전신의 기력이 그들의 눈물로 연소되는듯싶으시였다.

그이의 앞은 금시 밤중처럼 캄캄해지면서 공허감이 가슴으로 해일처럼 밀려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동생의 어깨를 가슴에 와락 당겨안으며 눈을 내리감으시였다.

최대의 불행이 이미 기정사실로 느껴지셨지만 그이께서는 한사코 그것을 부정하시였다. 상상만 하셔도 너무나 놀라운 일이였다.

문밖에서 어떤 녀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을 굳게 잡숫고 참고 견디셔야지요.…》

녀인도 말을 채 맺지 못하고 문밖에 돌아앉아 흐느껴운다. 흥륭에 사는 봉애아주머니였다.

이윽해서 녀인은 눈물을 닦으며 방안에 대고 또 한마디 하였다.

《그만 울어라. 너희들이 그러니까 형님이 오죽하겠니?…》

녀인은 짤막한 단 두마디말로써 가슴을 파헤쳐버리는듯 한 그렇게도 비통한 소식을 다 설명해버리고말았다.

그이께서는 숨을 모두어쉬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시였다. 벽이 아니였더면 그이께서는 서계시지 못하였을것이다.

《아! 어머니!》

연줄처럼 팽팽히 켕기였던 마음속의 금선이 사정없이 탁 끊기고말았다.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져내려가는것 같이 아찔하고 막막한것이 엄습해왔다. 그이께서는 떨리는 팔로 바람벽을 힘있게 그러안고 겨우 몸을 가누시였다.

참아야 한다던 봉애아주머니도 토방에 돌아앉아 어깨를 들먹이며 그냥 울고있다. 처음에는 고름끈으로 눈굽을 훔치더니 다음은 옷소매로, 그다음은 머리수건을 벗어서 얼굴을 묻고 헉헉 느끼며 울었다. 그는 달포전에 이 집 이 아래목에서 강반석어머님의 림종을 겪은것이였다.

그때 그 사연을 어떻게 다 이야기할것인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자체를 아직 믿지 못하고있는 그는 울고있으면서도 금방 방안에서 어머님의 말소리가 들릴것만 같고 그 모습이 언뜻 보일것만 같아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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