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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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지방에 유격대원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것 참 대단하오. 하기야 차기용동무가 갔으니 유격대원이 가긴 간셈이지, 하하하.》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며 크게 웃으시였다. 그이보다 한걸음 뒤떨어져 차광수와 전광식이 따라오고있었다. 전광식은 그이곁으로 나서며 함경남북도지방에서 들어온 보고를 계속해서 말씀드렸다. 쏙새골에서 파견한 정찰조가 돌아왔는데 두만강상부지구와 함경북도일부의 소식을 가져왔다.

라남사단은 강변에 빈틈없이 덮이였고 오랑캐령 저쪽에는 어데나 《토벌대》가 씨글거린다고 하였다. 그런 가운데 함흥과 회령과 무산방면에 유격대가 나타났었다는 여론이 쫙 퍼져있었다.

《두고보시오. 차기용동무는 앞으로도 계속 욕심스럽게 일을 해제낄것입니다.》

《벌써 대단히 폭을 넓힌셈입니다.》

전광식이 대답을 올리고 고개를 드니 때마침 나무잎이 뱅글뱅글 돌며 머리우로 떨어져내렸다.

지난봄에 왔을 때는 잎이 방금 피고 까치가 둥지를 틀고있던 그 느티나무가 이제는 단풍이 들어 바람이 잔잔한 때도 무시로 잎이 떨어져내렸다.

박흥덕동무는 지대가 지대이니만큼 좀더 빠를것 같은데 어떻게 하고있는지?》

별이 총총한 밤하늘로 손을 뻗치여 나무잎을 붙잡으려 하시면서 그이께서 또 말씀하셨다.

《평소에는 굼뜬것 같다가도 요긴한 대목에 가서는 대단히 민활해지는 축이니까 벌써 판을 크게 벌렸을수 있습니다.》

차광수가 나직이 대답하였다. 항상 정중하게만 표현하기에 습관된 차광수도 이때는 그에 어울리지 않게 약간 과장된 기분을 나타내였다.

밤은 깊고 사위는 고요하였다. 또글또글 여문 뭇별들이 흡사 느티나무에 달린 어떤 신비스러운 열매처럼 가지마다에서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전우와 함께 오래간만에 밤길을 걸으셨다.

쏙새골전투가 있은 후에 급히 부대지휘관들과 정치공작원들의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열흘가까이 줄곧 방안에 계시면서 보고도 받고 회의를 지도하시였다.

그러던중 오늘은 아침일찌기 떠나 근방 농촌부락에 나가 저물도록 각계층 군중들과 담화를 하고 돌아오시였다.

이때 그이께서는 자못 감회깊은 정서에 잠겨계시였다.

금년 로정을 처음 시작했던 이 안도땅에 다시 들려 그간 사업을 총화하고 다가오는 겨울을 어떻게 지낼것인가를 토의하게 되여있기때문이였다.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씨를 뿌린 농민이 낫을 들고 황금파도를 바라보는 그런 정서에나 비길수 있을는지, 혁명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천리길을 걸어 압록강지구로 나갔던 일도 예정한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방금 시작한 반유격구창설도 그렇고 통치구역공작도 거침없이 확대되여나갈것이 확연히 내다보인다.

《들어가시지 않겠습니까?》

전광식이 며칠밤 새우신 그이의 건강을 념려하여 말씀드렸다.

《좀더 거닙시다. 혼자서 추억이나 하며 쳐다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가을밤이 아니요. 같이 걸읍시다.》

그이께서는 느티나무밑에서 떠나 나무다리를 건너 뽕나무가 촘촘히 잇대선 둔덕길로 나가시였다.

얼마간 걸으시다 그이께서는 들국화가 한벌 피여난 언덕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시였다.

군모채양을 손끝으로 밀어올리고 허리에 손을 짚으시였다.

《동무들 생각에 어떻습니까? 우리가 겨울을 어떻게 지내야 할것 같습니까?》

불쑥 이렇게 서두를 떼고나서 그이께서는 회의에서 토의될 몇가지 의견을 내놓으시였다.

혁명정세는 다시 급격히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유격대가 방금 창건되였다고 하던 그때와 사정이 달랐다. 지금은 넓은 지역에 근거지가 나오고 전투행동이 개시되고 혁명적영향이 전국에 거센 파도처럼 미쳐가고있다.

이에 따라 적들은 초기에 당황하던것으로부터 점차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한해여름 어리벙벙해서 지내는 동안에 이렇듯 적들은 놀랄만한 정황에 부닥치게 되였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결정적인 행동에로 넘어가면서 유격대와 함께 근거지를 일시에 말살해치우는 방향으로 나오고있다. 그런데 우리 사정은 지금 어떤가?

지구별로 나온 중대들은 근거지를 방위할만치 준비되지 못하였다. 근거지는 지역을 겨우 확보하였을뿐 자기 사명을 다할만치 공고하지 못하다.

쏙새골전투에서 첫 시도가 좌절된 적들은 일정한 준비기간을 거쳐서 일격에 혁명을 압살할 준비를 하고있다.

한해겨울을 나도록 온갖 준비를 갖춘 관동군과 간도림시파견대는 출동명령을 기다리고있다. 모름지기 놈들은 이 겨울에 조선혁명력량을 완전히 소탕해버리든지 그렇지 못한 경우라 하더라도 적어도 10년이나 20년내에는 다시 반항할만 한 력량이 남아있지 못하게 할 목표를 내세우고있다.

《어떻습니까? 이런 정세하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격대와 근거지를 유지할뿐아니라 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수 있게 더욱더 강화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이에 대해서 동무들의 의견을 듣자는것입니다. 이번에 회의에 부르게 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세가 긴장하다는것은 적들이 우리에게 무력으로 공격하게 될것이라는 거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동무들이 알고있는것처럼 혁명근거지와 적통치구역내에서는 계급투쟁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습니다. 말그대로 우리 나라는 민족해방투쟁과 계급투쟁의 도가니로 변하였습니다. 그의 전형적실례는 리광동무가 공작하고있는데서 벌어진것과 같은 그런 사태입니다. 계급적원쑤들은 곡식밭에 불을 지르고 정치공작원들을 밀고하며 정탐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일부 우리 동무들이 일정한 제한성을 가진 반일구국군들의 약점을 극복해주지 못하여 그들과 관계가 좋지 못하며 반제련합전선에 인입할 대상과 대치해있습니다. 지어는 그것을 원쑤들이 악용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또한 민족주의자들과의 관계도 다 풀렸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실태는 이렇습니다. 차동무, 그리고 전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중단하고 두 동무의 어깨에 일시에 손을 얹어 가볍게 떠밀면서 풀숲을 걸어나가시였다.

고개를 쳐들어 은하수가 찬란히 비낀 머리우를 바라보시는 그이의 안광에서는 강렬한 빛이 뿜어나왔다. 자주 그러하신것처럼 그이의 안광에는 이때 고도의 정신적긴장성이 력력히 나타나있었다.

얼마간 걸어가시다가 허리를 굽혀 들국화 한송이를 꺾어드시였다. 모든 시름을 잊은듯이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보시다가 냄새를 맡아보시였다.

《제 생각에는 각 지구에 나온 중대를 급속히 확대하여 도처에서 군사활동을 벌려 적의 력량을 분산시키는것이 어떨가 합니다.》

차광수는 미간을 팽팽히 하면서 계속하였다.

《그리고 해방지구는 더 늘이지 않으면서 반유격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는것이 어떨가 합니다.》

《역시 저도 동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첨부할것은 쏙새골의 경험을 살려 몇차례의 전투를 효과있게 단행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전광식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어느 정도 미타한 생각이 들었던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그이께서는 허리를 또 굽히여 풀숲을 헤치더니 무슨 풀인가를 뜯어들고 좌우를 둘러보시였다. 더는 보탤것이 없다는것을 알자 그이께서는 천천히 말씀하시였다.

《력서장에서보다 자연계에서는 훨씬 가을이 늦어지고있는것 같습니다. 매우 좋은 가을입니다. 회의를 빨리 끝내고 동무들을 속히 돌려보내 해방지구에서 가을걷이를 다그치도록 합시다. 한알의 식량이라도 더 확보하게 합시다. 그리고 산나물도 많이 뜯게 합시다. 봄에만 나물을 뜯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먹을수 있는것이면 무엇이든 걷어넣게 합시다. 자, 이걸 보시오. 아직 이렇게 미타리잎이 싱싱합니다. 하긴 이러다가 갑자기 눈이 오고 추위가 닥치는 북방이니까. …》

그이께서는 손에 들었던 풀잎을 전광식에게 넘겨주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내 생각엔 그렇습니다. 적을 분산약화시키는것도 좋고 반유격구를 확대하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또 전동무가 생각하고있는것처럼 몇차례의 효과있는 전투를 단행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적아의 력량을 정확하게 타산하는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최근에 거둔 성과에 도취돼서 자기 력량을 과대평가하고 무모한 길에 떨어져도 안되며 그와 반대로 적의 공세에 겁을 먹고 위축되여도 안됩니다. 터놓고 말하면 지금 우리의 력량은 적과 대결할만치 아직 준비되지 못하였습니다. 전략적견지에서 보면 지난봄에 소사하에서 평가한 그것과 다른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적은 봄에 비해 수십배나 더 많은 력량을 이쪽에 집중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출로가 없는가? 그런것도 아닙니다. 지금 적들은 커다란 약점을 드러내놓고있습니다. 관동군이요, 간도림시파견대요 하는것들은 모두 정규전에만 준비되였지 유격전에는 전혀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적들은 수량을 증가할수록 기동에서나 작전에서나 보급에서 배가의 난관에 부닥치게 됩니다. 우리가 애초에 유격전의 형식을 선택한것이 론의할 여지없이 정당했다는것이 실증되였습니다. 다음 적들의 결정적약점의 또 하나는 정황과 대상의 판단에서 착오를 범하고있다는 그 점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그것을 잘 리용만 하면 적들이 맥을 못 추게 할수 있습니다. 쏙새골전투가 있기전까지 적들은 불의에 이 두만강지구에 동원되여오기는 하였지만 공격대상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유격대를 소멸하려는것이였지만 어데도 유격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적들은 인민들을 향해 위협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우리는 쏙새골전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적들은 〈옳다. 유격대가 나타났다.〉하며 저들의 대실패에도 불구하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놈들이 기다리던 전투대상이 나타났다는것입니다. 대상이 나타났다는것 자체가 승리를 가져올것으로 믿고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적들은 자기들이 우세하다고 믿고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적들은 아직 항일무장투쟁에서 혁명근거지가 가지는 의의를 모르고있다는것입니다. 유격대만 없애면 근거지는 스스로 소멸될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것인가? 전술적우세로써 적을 타승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전술적우세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적을 끌고 한겨울을 산중에서 빙빙 돌면 됩니다. 그 사이에 근거지에서는 제볼장을 봐야 합니다. 중대를 대대로 늘이고 근거지는 난공불락의 보루로, 지탱점으로 다져놓아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사이를 두고 이쪽에서 사색할 여유를 주신 후에 다시 계속하시였다.

《래일 회의를 열고 토론해봅시다. 혹시 동무들가운데서 더 좋은 의견이 나올수도 있으니까.》

계속해서 그이께서는 이 겨울에 주력부대를 인솔하고 지난여름과는 반대쪽으로 로야령을 넘어 북쪽으로 동기행군을 하실 구상을 말씀하시였다.

상반년에는 남으로 갔지만 이 겨울에는 북으로 가야 한다. 여름에는 적을 감쪽같이 떼놓고 우리끼리 행동했지만 이 겨울에는 적을 달고 다녀야 한다. 여름에는 마을과 거리를 찾아갔지만 이번에는 순 산중으로 빙빙 돌아야 한다. 될수록 가장 춥고 가장 험한 산으로 끌고가야 한다.

어느사이에 민틋한 등성이를 넘어 강줄기가 내다보이는 초원에 나가있었다. 돌아오시는 길에 그이께서는 이 며칠사이에 동기원정을 두고 생각하던 끝에 떠오른 우스운 동화를 하나 말씀하시겠다고 하시였다.

《나비가 닭을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나비가 꽃에 앉아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닭이 부리를 들고 달려가 쪼으려 하였습니다. 나비는 냉큼 날아올라 몇걸음앞에 있는 꽃에 옮겨앉았습니다. 그러자 닭은 그곳으로 또 달려가 쪼으려 했습니다. 부리끝이 나비의 몸뚱이에 거의 닿게 될 순간에 나비는 또 사뿐히 날아올라 저쯤에 옮겨앉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몇번 실패하게 된 닭이 약이 올라 계속 따라갔습니다. 잡힐듯잡힐듯 하면서 앉았다가는 날고 또 앉았다가는 또 날고 하면서 벼랑턱으로 끌고갔습니다. 한참 그렇게 하다가 닭이 지치게 되였을무렵에 벼랑낭떠러지에 이르러 나비가 공중으로 홀짝 날아올랐습니다. 맥이 빠진 닭은 마지막힘을 다해서 뛰여올랐다가 그만 벼랑에 굴러떨어져 죽었습니다. 대체로 이런것입니다. …》

전광식이도 차광수도 허리를 그러잡고 웃었다.

사령관동지앞에서는 좀체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던 차광수도 허리를 굽히고 눈물이 질끔 나게 웃었다. 두 지휘관이 웃는것을 보고 그이께서도 두팔을 벌려 통쾌하게 웃으시였다.

끝없이 깊어가던 가을밤의 고요한 공기가 불의에 흔들리여 마을 저쪽까지 느물느물 물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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