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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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용은 이날 하루 홍일환의 주선으로 만보를 타고 석벽을 쌓는데서 목도를 하였다. 밤에 다시 그 하수도구멍으로 기여들어가 전날에 못다한것을 마저 해치우고 3시경에 둘이 거리로 나왔다. 홍일환은 밥집들이 널린 동쪽거리로 나가고 차기용은 공사현장쪽으로 나갔다. 허리에는 풀자루를 차고 삐라뭉테기는 양복저거리소매에 밀어넣었다.

공사장복판마다에는 출면표를 보고 작도를 매주는 판자집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사위는 고요하였다. 차기용은 자루안에서 풀을 움켜내서 광고판에 쭉 문대고 팔소매에서 삐라를 꺼내 턱턱 붙이였다. 그다음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살살 기여 철근이 숲처럼 일어선 구축물현장으로 나갔다. 잠간 땅에 엎드려 주위를 살폈지만 삐라를 붙일만 한 적당한데가 눈에 띄지 않았다. 다시 몇마장 기여나가니 휘틀을 세운 널벽이 나타났다.

그가 풀자루에 손을 넣으면서 휘틀벽에 다가서는데 저쪽에서 몽둥이를 집은 당직순사가 걸어왔다. 인기척을 느낀 안경쟁이는 이쪽저쪽을 살피면서 고함을 쳤다.

《또 널판자도적이야? 쌍간나새끼들!》

그놈을 돌을 집어 쑥대가 우거진쪽에 허턱대고 던지였다. 물도랑에 엎드린 차기용은 승마바지를 입은 그놈의 발에 채여 흙덩이가 목덜미에 굴러떨어지는것을 참아야 하였다.

잠시후에 투덜투덜하며 그놈이 저쪽으로 뚜걱뚜걱 걸어간 뒤에 차기용은 벽에 붙어 풀칠을 하였다. 낮에 보니 여기는 그중 로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여서 휘틀벽마다 돌아가며 여러장 붙이였다. 네댓개소의 작업장을 그런 식으로 한축 돌고난 그는 거리쪽으로 나왔다. 마침 경찰서 뒤모퉁이에 무사히 들어설수 있었다. 정문에 보초가 서고 몇분동안에 한번씩 이동순찰이 지나가군 하였다. 벽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돌다리밑으로 기여들어갔다. 희미한 외등이 걸린 그쪽에서 총을 든 놈이 구두발을 울리면서 달려왔다. 어둠속인데도 그놈이 노리는 지점은 차기용이 엎드린 다리밑이라는것이 알리였다. 그리고보니 방금 내려설 때 돌이 하나 굴렀던 생각이 났다. 순간 머리카락이 오싹 일어났는데 그때는 벌써 10메터간격으로 거리가 가까와졌다.

차기용이 땅바닥을 더듬어 돌을 집어들고 휙 담장쪽에 올려뿌렸다. 포물선을 그으며 담장을 넘어간 돌은 텅 하고 소리를 내며 경사진 언덕에 드르르 굴렀다. 달려오던 놈이 발을 멈추고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담장을 뛰여넘었다.

《잘 놀아난다, 자식!》

차기용은 재빨리 다리밑에서 기여나와 담벽에 붙어서 삐라를 붙여나갔다. 캄캄한 밤이여서 벽에 붙은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외등이 달린곳까지 대여섯장 붙이고나니 삐라가 얼마 남지 않았고 풀도 다 떨어졌다. 그는 일여덟장이나 되는 삐라에다 돌을 싸서 경찰서앞마당을 향해 내던졌다. 뒤미처 담장안에서 개가 짖더니 정문쪽에서 호각소리가 나고 자갈을 밟는 구두발소리가 어지럽게 들리였다.

《행차뒤에 나발이라! 실컷 떠들어봐라.》

거리에서 빠져나온 차기용은 바다쪽으로 나가 미역을 감고 슬금슬금 밥집으로 올라왔다.

홍일환이 물초롱을 지고 내려오다가 만났다. 그도 위험한 고비를 한두번 겪기는 하였으나 무사히 끝내고 왔다는것이였다.

차기용이 전날처럼 인부들 틈에 끼워 자는척 하고있다가 아침을 먹고 공사장으로 나갔다. 아직 날은 다 밝지 않았는데 삐라가 붙은데마다 사람들이 모여섰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셨다. 이거 굉장한 소식이구나.》

얼굴이 시꺼먼 청년이 환성을 지르며 단숨에 내리읽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압박받고 착취받는 조선동포여러분! 총칼로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하여…》

삽시간에 수십명의 로동자가 삑 둘러섰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던 그들은 서로 귀뜀을 해가며 내용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의 눈이 순식간에 전혀 딴사람처럼 달라져서 강한 빛을 뿌리였다. 생에 대한 피로를 일시에 떨어버리고 기운이 솟아 어쩔줄을 모르는것이 알려졌다.

헌 중절모자를 눌러쓰고 군중속에 끼운 차기용은 자기가 손수 써붙인 한장의 글이 그렇게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있는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꺼칠꺼칠한 턱을 슬슬 문지르면서 군중들속에 섞여 이쪽저쪽 밀려갔다. 가슴은 높이 뛰고 눈시울이 화끈해졌다.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렸던 소식인가.

김일성장군님께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셨다.》 이 한마디 소식을 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로동자들속에 불덩이같은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여기저기서김일성장군》이란 말이 들리였다.

《감독놈 온다.》

《이거 그냥 둬 안되겠는데.》

《까딱 손대지 말아.》

《뭔데, 나도 좀 똑똑히 봅시다.》

차기용이 목도채로 앞사람을 떠밀며 한마디 하였다.

군중속에 뚫고 들어온것은 감독이 아니라 이곳에 자주 나타나 가끔 사람들을 한둘씩 붙들어다《학춤》 취여 내보내군 하던 형사놈이였다. 그놈은 다른데서도 이미 그런 봉변을 당했었는지 후들후들 경련을 일으킨 두손을 쳐들고 삐라를 향해 달려들어갔다. 그 몰골이 어떻게나 가관이였던지 로동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헤쳐가지 못할가!》

덧이를 드러내놓으며 옹노에 걸린 짐승처럼 그놈은 울부짖었다. 그럴수록 로동자들은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작업장들과 골목들에서 군중들이 설레였다. 별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 그중에서도 추석대목장인 장마당이 제일 볼만하였다. 장군들이 골목마다 모여서서 삐라이야기를 하였다. 국수집에서도 포목상점에서도 고무신장사군들도 일을 거두고 이야기장을 폈다.

이날은 아침부터 누구나 일손을 잡지 않았다. 비료공사장이나 부두축조장들 모두가 숨죽은듯 고요한데 사람들은 떼를 지어 거리로 몰려나왔다. 하나같이 그 얼굴들에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무장경찰이 골목마다 뛰여다녔고 기마헌병들이 눈을 번뜩이며 왔다갔다하였다.

밥집앞마당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다. 장정들이 웃동을 벗어던지고 윽윽 소리를 지르며 맞잡고 돌아간다. 문을 열어제낀 방안에서는 술동이를 들여다놓고 사발로 퍼마신다.

《오늘같은 날 안 마시고 언제 먹어!》

《고향 떠나 십년만에 처음 듣는 기쁜 소식 하나 들었네.》

《두만강을 향해 줄행랑을 놓아야겠어!》

《술 넘는다.》

구레나릇이 잔뜩 자란 중년사나이가 머리를 숙이며 입을 내밀고 술잔으로 다가간다. 숨이 막힐듯이 악취가 풍기고 랭기가 스며오르던 밥집구들장우에 당장 꽃이라도 필것처럼 아늑하고 따사로운 기운이 흘렀다.

차기용은 해질무렵 대곡탄광을 향해 길을 떠났다. 조직의 지시를 전달할것과 이곳 보고자료들을 수집할데 대한 과업을 다 끝내였고 홍동무를 도와 삐라공작도 그만하면 괜찮게 된셈이다. 그는 정거장으로 나가기 위해 전날 걸었던 그 언덕길에 나섰다. 먹물동이를 내다놓고 일장 연설을 하던 그 거리에도, 흙밀차가 하늘로 튕겨오르던 그 고르롭지 못한 철길에도, 어깨를 비벼대며 자갈을 추던 바다가에도 일하는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와ㅡ 함성이 터졌다. 밥집마당에서 누군가가 또 배지개에 들렸는지 안낚시에 걸린 모양이였다. 맞은편에서 쌍지팽이를 디딘 젊은이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언덕을 톺아올라왔다. 얼굴을 마주쳐보니 밥집웃목에서 다리를 안고 신음하던 그 평안도내기다.

《어데 가오?》

《내 고향 가오.》

차기용이 벌씬 웃으며 대답했다.

《고향 가디 말구 함경도루 들어가소. 두만강에 가면 반일인민유격대에 모셔갈 사람이 쭉 늘어섰다싶이 하답데다.》

《사실이 그렇다면 가볼만두 하지.》

《사실이 아니구 거짓말을 내래 왜 하겠소. 간밤에 거리에서 순사놈들이 호각을 불며 와당탕퉁탕한거 왜 그런지나 압네께? 유격대원이 장마당에 나타나 연설을 했대요. 거리에 소문이 짜합데다.》

하하하.》

차기용이 부러진 앞이를 드러내놓으며 통쾌하게 웃었다.

《꽤나 좋아한다, 이 낭반.》

담배를 붙여물고 작대기를 내짚으며 평안도내기도 하늘을 쳐다보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북행렬차에 몸을 실은 차기용은 창밖에서 흘러가는 동해며 마을이며들을 내다보고있었다.

조선의 얼굴, 조선의 표정이 하루사이에 달라진듯 하였다. 학대와 오뇌에 시달려 음산한 아침처럼 침침하고 랭랭하던 얼굴들이 하루아침에 생기를 띠였고 밝은 빛을 뿌렸다. 장군님을 맞이한 긍지와 자부심, 조국광복이 오래지 않았다는 기대와 열망, 그것이 한줄기 빛을 이루어 온몸으로 확확 내뿜는것이였다.

이렇듯 김일성장군님에 의한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이라는 놀라운 소식은 망국의 운명에 부대끼여서 바삭바삭 마른 가슴들에 생기를 부어넣었던것이다. 사막에 물이 흘러들듯, 어두운 밤에 홰불을 밝히듯, 폭풍에 드몰린 난파선이 뭍에 닿은듯이 사람들의 한가슴을 뒤설레이게 하면서 입으로 그 소식이 번져나갔다.

렬차가 바다기슭을 달리면서 길다란 기적소리를 올릴 때 차기용은 담배를 한껏 빨아들였다가 창밖으로 훅 내불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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