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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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환이가 쓰고있던 비밀장소는 바다가에 치우친 하수도 토관속이였다. 그도 청진에 있는 박동무와 마찬가지로 명월구회의직후에 전국도처에 파견된 공작원중 한사람이였다. 눈이 크고 웃기를 잘하는 홍일환은 밥집에서 물도 긷고 장작도 패는 인부노릇을 하고있었다.
공사판에 나가는것보다 핑게를 대서 로동자들을 많이 만날수 있으며 경찰들의 주목이 공사현장보다는 덜 쏠려 유리하다는것이다. 문맹자로 가장한 그는 몇해만에 붓을 쥐여보는지 모른다면서 삐라를 쓰던 손을 멈추고 웃었다.
가마니를 깔아놓은 널판장밑에서는 하수도물이 소리를 내며 흘렀고 기름등잔이 걸린 콩크리트벽에서는 쉴새없이 물방울이 떨어졌다. 차기용으로부터
《3호동무야 나같이 속을 썩이지야 않았겠지. 난 여기 와서 두번에 걸쳐 보고를 했을뿐이고 그쪽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거던. 자, 유격대가 조직되였다는 소문이 떠돌기는 하는데 딱히 알수 있어야지. 어떤 땐 훌쩍 자리를 떠서 한번 가보고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럴수도 없는 노릇이고…》
《5호동무 심정을 나도 짐작할만 합니다. 난 부대에서 떠난지 얼마 안되는데도 소식이 궁금해 못살겠는데…》
그들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서로 이름대신에 호수로 불렀다.
말재주가 별로 없었던 차기용은 반일인민유격대창건과 그후의 압록강지구 원정을 생각나는대로 말하고나서 우선 용건부터 앞세웠던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창건에 대한 력사적사변을 하루빨리 전체 인민에게 알리자는것이다. 아직 등사기로 찍을만 한 준비가 없었던 그들은 밤을 새며 한장한장 붓으로 삐라와 선동문을 써야 하였다.
차기용이 대곡탄광에서 자기가 해본 경험에 의해서 이 대산업지대에 소식이 퍼지는 날이면 어떤 결과가 오리라는것을 미리 상상하면서 흥분된 매 시각을 보내고있었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글을 썼다. 동해를 뚫고 솟아오른 해살이 하수도구멍으로 희미하게 비쳐들무렵 그들은 일을 거두고 거리로 나왔다. 하던 일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날이 밝기 전에 철수해야 하였다.
홍일환은 술에 취한것처럼 비딱비딱 걸어 밥집에 들어가 물지게를 지고 수도칸으로 나왔다. 이곳 토목공사장 기요하라구미의 현장감독이면서 밥집을 차려놓고 경찰의 앞잡이노릇을 하는 정가를 길가에서 만났다.
《우리 복두꺼비가 벌써 일어났구만. 요새 용돈이라도 떨어지지 않았나?》하고 굴뚝같은 상아물주리를 뽑아들며 말을 걸었다. 키에 비해 몸집이 굵고 무릎까지 내리드린 로동복웃도리를 걸친 홍일환은 더 이를데없이 어수룩하고 일밖에 모르는 어진
《전 밥이나 먹으면 되지 돈이 필요없습니다. 이담에 고향 갈 때 로자나 좀 보태주십시오.》
《왜? 돈이 필요없어? 임잔 허리 잘룩한 색시한테 장가갈 생각은 없나?》
《누가 가라는 장갈 안 갑니까?》
한편 차기용은 일공군으로 고용되여 밥집 웃목에 누워있었다. 정신이 말짱하지만 눈을 감고 코를 골아야 하였다. 앞에도 뒤에도 사람이다. 삿으로 앞뒤를 가리고 이영을 덮은 날치기 밥집인데도 발을 들여놓을수 없이 비좁다. 아직 날씨가 춥지 않기때문에 잘수도 있었지만 꼭 여기서 자고 먹어야 정가란 놈이 만보를 주기때문에 울며 겨자먹기판이다. 방 한가운데는 굵다란 새끼줄을 늘여놓아 등과 머리만 바닥에 대이고 다리는 그 줄에 올려놓아야 하였다.
인부들의 말에 의하면 《콩나물시루》라고도 하고 《성냥갑》이라고도 하며 《사람졸임통》이라고도 하는 눈 없으면 코 떼간다는 공사판 본연의 특징이 모든 면에서 잘 살아난 곳이다. 담배내, 술내가 코를 들지 못하게 지독하다.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나는데 그에 섞여 신음하는 소리도 들린다.
웃목에는 다리를 부러뜨린 두명의 인부가 절구통처럼 부어오른 다리를 달아매고 신음하고있다.
어디선가 양철통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모두 일어나 밖으로 뛰여나갔다. 일을 나가야겠다는 신호이다. 마당에서 떠드는 광경이 참으로 가관이다. 조선 13도에서 다 모여온 모양이다. 걷잡을수 없이 달달 굴리는 함경도사투리가 본바탕인데다 할낙할낙하는 전라도 개땅쇠, 경상도 문둥이, 황해도 난봉, 없는것이 없다. 모두 벌겋게 흙물이 든 로동복을 입고 삽이며 괭이며 질통 그리고 목도채며 멈춤대를 들고나서서 선채로 밥이라는것을 받아먹는다. 법랑그릇에 냄새나는 황정미밥을 한덩이 담고 그우에 된장국을 찔끔 끼얹은 다음 손가락같이 툭한 나무저가락을 가로놓았다. 한쪽에는 된장통이 놓였는데 나무박죽으로 한덩어리씩 뚝 떠서 털썩털썩 밥우에 얹어준다.
받아드는것과 거의 동시에 양치물을 떠마시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고된 로동으로 얻게 되는 하루혜택의 3분의 1인것이다.
(아, 이것은 노예다. 이들에게 서광을 안겨주고 갈길을 밝혀주어야 한다.)
밥그릇을 받아안은 차기용은 눈물이 글썽해서 작업현장으로 흩어져나가는 로동자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신음하고있는 조선의 전모가 력력히 눈에 보이였다. 북부국경지대에서는 총칼이 울고 마을이 불타는가 하면 이런데서는 화약과 연기가 없이 사람들이 떼를 지어 죽음터로 끌려가고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차기용 자기자신이 저런 무리속에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온몸을 꼼짝 못하게 비끄러매서 끌고가는것이 누구인지, 무엇때문인지 잘 몰랐었다. 때로는 울분을 참지 못해 탄차나 권양기를 깨뜨려버리기도 하고 십장놈을 패주기도 하였지만 그런짓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살아갈수 없어 그다음에는 발바닥에서 술내가 날 때까지 독한 술을 퍼마시였지만 그것도 역시 부질없는짓이였다.
혁명! 그것만이 그에게 빛을 주었고 생의 보람을 주었으며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