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 회)

10

(9)

 

회령에 나가 전보를 쳤는데도 사흘만에야 기별이 왔다.

《야! 네 이름이나 차기용이까?》

간데라를 들고 막장에 나타난 오까다란 십장놈이 정으로 구멍을 뚫고있는 차기용을 향해 딱따구리망치로 동가슴을 내찌를것처럼 훌군거리며 물었다.

감독나리, 이러다 배에 구멍을 뚫겠습니다.》

히히히, 이놈으 새끼가 말이나 잘한다. 묻는 말이나 대답하지 않고 바보같은것이나.》

차기용은 손에 들었던 쌍대가리망치를 동발짬에 끼우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전보나 왔다. 네 에미나 황천에 갔다 말이다.》

《네?!》

그는 우정 놀라는척 하였다.

웃음집이 흔들거리지만 놀라면서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하니 그것도 매우 괴로운노릇이였다. 하지만 차기용은 혀를 깨물며 낯을 찡그리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돌아앉아 《어머니!》하고 목메인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해서 이곳 감독놈들을 감쪽같이 속여넘기고 한편 밥집에 소문을 편 다음 정평에 있는 집에 갔다오겠노라고 하고 길을 떠났다.

청진에 들리니 이미 나가있던 공작원 박동무는 부두에서 가대기군노릇을 하며 사업을 괜찮게 추진시키고있었다.

그는 실업자들이 누워자고있는 토관속에 들어가 박동무와 하루낮 하루밤 통신도 전하고 그동안 반일인민유격대소식도 전하였다. 박동무는 명월구회의직후에 이곳에 와있다나니 그간 소식을 모르고있었다.

그다음 차기용은 흥남으로 기차를 타고 직발 내려갔다.

역에서 내려 바다가로 걸어가는데 그 일대는 온통 공사판을 벌리고있었다. 항구를 만들기 위해 토목공사가 벌여졌고 비료공장확장공사로 간데마다 모래와 자갈이 널리고 흙을 파제끼고 발판목을 세우노라고 자동차들이 욱적거렸다.

《비켜라! 비켜! 밀차 나간다!》

아닌게아니라 경사가 급한 언덕에서 떠난 밀차가 고르롭지 못한 레루를 타고 꼬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굴러내려간다.

밀차군은 멈춤대를 쥐고 뒤로 드러누워 발을 벋디디였는데 머리에 동인 수건이 금방 벗어져나갈것처럼 바람을 일구었다.

차기용이 언덕우에 비켜서서 바라보니 흙먼지가 훌쩍 하늘로 튕겨오르더니 뒤미처 《꽝.》하고 소리를 내며 사람과 밀차와 멈춤대가 제각기 뿌려던져졌다.

《사람 상했다!》

고함소리가 그 복잡한 공사판소음을 가르고 울려퍼졌다.

맹선학이한테 빌려쓴 허름한 중절모를 비뚜름히 쓰고 목에 수건을 동인 차기용은 공사판을 꿰질러서 거리에 들어섰다.

남녀로소가 좁다란 골목에서 아글바글 끓는다. 시계방, 리발소, 술집, 인단광고, 《박가분》, 《중장탕》 등등 집보다 두세곱이나 크고 요란한 간판들이 현기증을 일으킬만치 진한 색채를 띠고 주르르 잇대붙어있다. 하오리를 입고 자전거를 탄 놈이 삐뚝삐뚝하며 사람들 틈을 가르고 나가는가 하면 꼬리치마를 휘감고 분내를 물씬 풍기는 화류계집이 요염한 눈길로 좌우를 둘러보며 걸어오고 거지아이들이 개화장을 짚은 신사앞에 동냥을 조르다가 처량한 얼굴을 하고 빈손을 내든채 돌아서 간다.

시계방에서 울리는 류성기소리는 가슴이 니얼니얼할만치 고약스럽고 노그라지는 소리를 지른다. 금방 나가자빠질것 같이 비뚜름하게 서있는 2층집에는 파리똥이 새까맣게 붙은 참대문발이 드리웠는데 투닥투닥 새장고소리가 나고 간간이 깔깔대는 계집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홍동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직 좀더 가야 하였다.

단추를 터놓고 중절모를 벗어서 훌쩍훌쩍 부치면서 골목을 돌아서니 그쪽에서는 새끼줄로 길을 가로막고 맥고모를 쓴 키꺽다리가 사람들속에 둘러싸여 뭐라뭐라 고함을 지르고있다. 그가 흡사 왜놈처럼 몸차림을 하였는데 말은 조선말을 하였다.

《색의를 장려합니다. 조선사람이 못사는 까닭의 하나는 흰옷을 입기때문입니다. 흰옷으로 말하면 물색옷보다 곱이나 빨리 해지며 비누값이 더 들고 에또…》

맥고모자신사앞에는 먹물동이가 하나 놓였는데 주먹같이 뭉툭한 큰 붓을 꾹 잠그어냈다가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을 붙잡고 두루마기나 치마, 저고리 등에 먹물을 끼얹거나 북북 내리그어놓는다.

《야, 이 후레자식아!》

노랗게 색이 바래진 옥양목두루마기를 입은 령감이 눈이 시뻘겋게 되여 대통으로 맥고모자를 후려칠것처럼 달려든다. 두루마기앞섶에서는 먹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놈아! 네놈들이 내가 흰걸 입건 검은걸 입건 무슨 상관이냐, 엉? 이 개놈들아! 뭐 어찌고 어째? 날 잘살게 만들어주겠다고? 에익, 고약한 오랑캐놈들.》

《어허, 저 령감 봐라. 늘그막에 콩밥맛을 좀 봐야 알겠나. 이건 총독각하께서 백의민족에게 호의를 베푸는 시책인줄은 모르고…》

그때 옆에 서있던 긴칼을 찬 순사가 각반을 팽팽히 감은 다리를 벌려디디면서 걸어나가더니 로인의 기다란 턱수염을 움켜쥐고 천막을 친 안으로 끌로 들어간다.

《아이구, 망했구나, 망했어!》

천막안에서 지끈지끈 볼을 후리는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목안으로 잠겨드는것 같은 로인의 비통한 신음소리가 울려나왔다.

차기용은 주먹이 떨리는것을 겨우 참았다. 총이 있었다면 장차는 어떻게 되든지 천막을 들치고 들어가 그놈들을 내갈겼을것이다.

홍동무가 있다는 밥집뒤 등마루에 이른 차기용은 흥남일대를 내려다보면서 가슴을 치며 한탄하였다.

이것이 조국의 풍경이다. 걸음마다 망국노의 수난이 뒤따르고 머리우에서부터 사정없이 들씌워지는 민족적치욕으로 해서 숨을 쉬기조차 힘든 땅이다. 왜색은 기름처럼 스며들면서 민족의 존엄을 무참히 밟아뭉개고있다.

답답하고 어지럽고 맹목적이며 또 그렇게 피투성이싸움이 벌어지고있는 땅이다.

천상데기를 떠나 어느 숲속을 걸어갈 때 전광식이 현시대의 특징을 몇마디로 알기 쉽게 해설해주던것이 생생히 떠올랐다.

태고적 사람은 굶어서 죽어야 했고 중세에 와서는 역병이 주기적으로 인간을 휩쓸어갔다. 한데 지금에는 인간이 너무 많은 물건을 만든탓으로 굶어죽어야 하고 고통을 당해야 한다.

한때 밀지짐장사들이늘어앉아있던 뉴욕의 거리한복판 주권취인소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공황》이라는 자본주의종창은 차차 불어나 걷잡을수 없는 힘을 가진 《괴물》로 자랐다. 이 《괴물》은 대륙에서 대륙을 뛰여넘어다니며 공장과 농장, 산간과 어촌, 숲속과 들판을 마구 밟아뭉개며 돌아치고있다. 로동자는 거리에 쫓겨나고 농민은 땅을 버리고 류량의 길을 떠난다. 억만장자들은 은행예금이 줄어들어 정신착란을 일으키고있고 실업자는 굶어죽는데 보이라에다는 석탄대신에 밀을 태우게 되였다.

《고명》한 철학가들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의문에 붙이면서 약육강식의 법칙을 인간생활에 끌어들이려고 선반에 얹었던 먼지 낀 말사스론을 다시 뒤적이는가 하면 명배우들은 매춘부를 받아들이는 길다란 행렬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있다.

《전쟁! 전쟁!》

신문과 방송들에서는 살아날 길이 문득 열리기라도 한것처럼 이 한마디 단어를 하루에도 몇십번이나 귀가 아프게 웨쳐대고있다.

서방에서 하나, 동방에서 하나 전쟁을 폭발시킬 불심지가 한치한치 타들어가고있는데 그 첫 발화점을 이룰 일본은 《조선으로! 조선으로!》라는 구호를 웨치며 사람과 상품과 예속의 올가미를 줄을 지어 건너보내고있다. 이런 기회에 값싼 로동력을 굵어모으기에 급급한것이 군수공업을 일으키는 재벌들이다.

전광식은 그때도 평양, 서울, 함흥을 들렸었다. 실제로 하루동안에 볼수 있었던 그 모든것을 가지고도 그때 전광식이 무엇을 말했었던지 알수 있었다. 말그대로 온 세계는 지금 혁명이라는 새 시대를 낳기 위해 모진 고통을 겪고있었다. 차기용이 홍일환을 만나 밥집에 들어간것은 24시경이였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