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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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란 방안웃목에 송진내가 풍기는 세개의 흰 관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앞에 제상이라는것이 차려졌는데 소반우에 술잔 하나와 명태 몇마리에 향불을 담은 사기종발이 하나 놓였다. 그것이 고인을 위한 산
이름도 나이도 고향도 알길없는 령전이였다. 로동자라는 그 하나의 표징이 펄떡이는 차기용의 심장을 움켜잡고 무릎을 꿇고 엎드리게 한것이다. 고개를 들고 허리를 폈다가는 다시 엎드리고 엎드렸다가는 다시 일어났다. 이곳 풍습대로 세번 절하고 뒤로 물러나면서 좌중에다 대고 정중히 배를 하였다.
《상주는 우리모두니까 이만하고 얘기나 합시다. 이 젊은이로 말하면 우리 마을에서 같이 살던 한고향사람이니 그리들 아소.》
맹선학이 차기용을 좌중에 소개하며 둘러대였다.
맞은편에 앉은 눈이 큰 사나이가 밥바리보깨를 내대더니 한되들이 까마귀병을 기울여 껄럭껄럭 술을 부었다.
《자, 후래삼배라는 말도 있지만 우선 한잔 쭉 따소.》
차기용은 명치끝이 갑자기 짜르르해옴을 느끼면서 얼른 보깨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그는 손이 굳어져 움직이지 못하였다. 술을 마셔서는 안되였다.
차기용은 보깨를 상우에 내려놓고 김치 한쪽을 집었다.
《왜 그러시오?》
《난 마실줄 모릅니다.》
《허, 햇내기같진 않은데 돌가루야 이거없이 삭여내나?》
《우린 할아버지때부터 술마시지 못하는 래력입니다.》
《그거참 얌전한 집안이군. 로동군이 술마시지 못하면 바퀴없는 탄차나 마찬가지야.》
밤이 들어서 장의를 어떻게 치르겠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차기용은 자연스럽게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상주없는 로동판장의라 해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된다. 상주는 우리 로동자모두이다. 그러니 부모, 자식이 있는것보다 더 잘해야 한다.
명전을 구하고 만사도 몇틀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꼭 눈에 잘 뜨이는 붉은천으로 하자. 그 돈은 이 밥집에 있는 46명의 로동자가 몇푼씩 모으게 하면 된다. 발인은 12시에 하고 직발 묘지로 갈것이 아니라 생전에 고인들이 걸어다니던 거리와 갱구, 저 버럭산을 한바퀴 돌아가야 한다.
차기용의 안은 로동자들을 단번에 감동시켜놓았다.
억압과 슬픔을 이겨내기에 습관된 이곳 로동자들은 또 하나 불상사가 생겼다는 식으로 대강 절차를 치르어 그것을 빨리 망각속에 묻어버리려하였지 차기용이처럼 로동자를 하나의 귀한 존재로 인정하지를 않았다.
간혹 어떤 사람이
차기용의 말을 듣고난 한 쉰살남짓한 늙은 탄부는 이래저래 설음이 북받쳐 눈물을 떨구며 원래 조선사람들의 상칙 격식을 말하였다. 조선사람은 예로부터 삼악성 즉 사람이 죽거나 도적이 들거나 불이 일었을 때 웨치는 고함소리를 들으면 온 동네가 떨쳐나 그 화액을 막았다. 사람이 죽으면 우선 초혼을 하고 사자밥을 지으며 칠성판을 마련하고 소렴, 대렴을 치르고 상여에 모셔 높고 처량한 곡성을 울리며 온 동리 남녀로소가 다 나와 눈물을 흘리며 영결하였다. 로인의 말을 듣게 된 좌중의 로동자들은 한층 더 처절한 감정에 잠기여 저들이 할수 있는껏 해야겠고 그것이 바로 다름아닌 자기자신의 일이라고까지 하며 나섰다.
이튿날 장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이 탄광이 생겨서 처음으로 그렇게 굉장한 행사로 되였다. 만장이 많다거나 호화로운 상여가 나가서가 아니라 수백명 로동자들이 행렬을 지어 묘지까지 꽉 닿아있었기때문이였다. 관을 묻고 모두 횡대로 정렬해서서 머리를 숙여 명복을 빌 때 맹선학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차기용이 미리 준비시킨것이였다. 이날 숱한 사람이 울며 주먹을 부르쥐였다.
대곡탄광에서의 차기용의 공작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굴뚫기인부로 채용된 그는 자기 일을 제꺽 해치우고는 다른 막장에 가서 일을 도와주면서 반일인민유격대에 대한 선전을 하였다. 이리하여 하나의 갱이 곧 조직에 망라되였다. 혁명후원회라는 조직을 내오고 반일인민유격대를 원호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다른 지방의 반일회나 성질이 비슷한것이였다. 이제 얼마간 있다가 끌끌한 청년들을 골라 유격대에 보낼것이며 화약을 빼내고 돈을 모아 유격대에 필요한 물자를 구해보내야 하였다.
그와 동시에 차기용은 반일선전을 줄기차게 들이대였다.
일제를 타도하지 않고는 로동자들이 해방될수 없다는것과 압박과 착취가 없는 사회주의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로동자들이 혁명의 선두에서야 한다는것을 선전하였다.
막장에 비밀집회장소를 만들고 자주 모여앉았다. 처음에는 《로동자들은 왜 못사는가?》, 《일제는 어떻게 조선을 강점했는가》, 《혁명이란 무엇인가?》,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를 토론하였다.
그다음에는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일인민유격대는 로동자, 농민의 혁명군대이다》 등을 해설하고 토론에 붙였다.
그중에서도 차기용은 심혈을 기울여서
그러던 어느날 아침 졸지에 대곡탄광거리가 발칵 뒤집히게 되였다.
기마경찰대가 거리로 달리고 총을 든 국경수비대놈들이 두만강기슭에 한벌 덮이였다. 그것은 전날밤에 경찰서담벽에 삐라가 나붙고 장거리에 수백장의 삐라가 뿌려졌기때문이였다.
삐라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제목으로 전체 조선동포들이 일어나라는 내용이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 민족의
굴일을 마친 차기용이 간데라를 들고 경비막앞에 이르자 총을 멘 경관놈들이 길목을 지키고있다가 탄부들을 하나하나 수색하였다. 그통에 천여명 탄부들, 시민들과 그의 가족들이 삐라사건을 온통 알게 되였다.
거리는 끓어번지였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막장마다에서
누가 하였는지 며칠후에는
얼굴이 새까맣고 눈이 반들거리는 차기용은 간데라불을 비쳐들고 굴간을 드나들면서 이제 구실만 생기면 곧 파업을 일으킬 궁리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차기용은 아직 유격대생활을 잊지 못해하였다. 거미줄이 그네를 뛰고 류황내가 코를 찌르는 밥집웃방에 목침을 베고누워서 유격대생활을 회상하였다.
지금쯤 사령부는 어디에 있을가?
세걸이, 변인철, 진봉남, 용택이 그리고 차광수, 전광식, 진일만, 한홍권, 리영배, 문청룡… 그들은 지금 어데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숲속을 행군하고있는지? 아니면 숙영준비를 하면서 떠들어대고있는지?
누구보다도 박흥덕의 소식이 궁금하였다. 항상 웃으며 살기마련인 주먹코인 그 친구는 그때 말대로 정말 지주네 머슴으로 들어갔는지? 언제 그들과 다시 만나 숲속을 걸으며 오늘이야기를 해보게 될는지?
환하게 웃으시는
얼마후 그는 비밀막장으로 간데라를 켜들고 터벅터벅 걸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