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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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덕이와 헤여진 차기용은 그로부터 열흘후에 대곡탄광에 도착하였다. 적들의 경계를 피하느라고 에돌다나니 곱절이나 날자가 걸리였다. 그는 탄광거리가 한눈으로 내려다보이는 재등에 올라서서 걸음을 멈추고 이마의 땀을 훔치였다.
가을날씨지만 길을 걷다보니 매우 더웠다. 검정물감통에 잠그어낸 고깔을 뒤엎어놓은것 같은 버럭산이 가운데 들어앉고 그 두리에 허줄그레한 거리가 펼쳐져있었다. 크고작은 몇개의 굴뚝에서는 검은연기가 쉴새없이 내불리고 어디선가는 신통히도 꿀벌 우는 소리같은 동음이 계속 울리였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어디선가 진한 류황내를 실어왔다.
어느것이나 다 몸에 익은 정취들이였다. 지저분한 거리, 벼락치듯 되는대로 일궈세운 건물들, 밥집, 굴간들, 권양기 그리고 흰이를 드러내놓고 웃거나 침울하게 걸어가는 탄부들, 거리 한복판에 들어선 그는 오래 살필 필요도 없이 밥집들이 들어앉은 모퉁이를 찾아 그리로 겁석겁석 걸어가 길다란 장방형집앞에 멎어섰다.
밥집문턱앞에 석탄먼지가 까맣게 오른 신짝들이 한벌 널려있었다.
《주인 계십니까?》
꽤 크게 고함을 질렀건만 대답이 없다.
《주인 계십니까?》
턱을 쳐들며 더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제서야 찌그러진 부엌문이 덜컥 열리더니 바짝 여윈 검은 얼굴이 나타났다.
《뭐야?》
역시 거치른 로동판투다.
《주인님이신가요?》
《자, 이 량반이 농사군처럼 끈끈하기도 하다. 주인 찾는데 나왔을 때야 누구겠는지 알아차려야지.》
《하하, 그러시군요. 방이 있겠지요?》
두수, 세수쯤 앞지르는데는 누구만 못지 않은 차기용이다.
《방은 있소만 지금 송장이 한구들 누워있는 판이요.》
밥집주인은 한심하다는투로 한마디 비꼬아붙이면서 침을 찔꺽 마당에 내뱉는다. 진담인지 롱담인지 몰라 어정쩡해있는데 방안에서 거치른 말소리가 울려나왔다.
《단숨에 한사발 쭉 들이켜!》
《북망산에 가면야 술도 못 먹고 다지.》
《사람이 파리죽듯하는데 그냥 가만들 있을래?》
《군소리말고 빨리 마셔.》
차기용은 대번에 낯을 찡그렸다.
《저 소릴 들었겠지. 왜 울상을 짓나, 젊은 친구?》
밥집주인은 술내를 확 풍기며 맞갖잖게 쳐다본다.
《세사람의 두달 밥값이면 얼만지 알아? 녹았어. 난 녹았단말이야.》
차기용은 묵묵히 서서 저편이 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방문에서 검은 옷을 입은 몸집이 큰 사나이가 비칠거리며 나왔다.
《뭘 흐지부지하고 섰소? 방이 없다면 갈것이지. 사람이 죽고 매를 맞고 해고를 당하는 날강도판에 어디다 또 머리를 들이밀어. 에익, 풋내기같은것.》
몸집이 큰 사나이는 술내를 확 풍기며 차기용이앞에 와 멎어섰다. 차기용은 그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음! 젊은 친구, 눈은 똑바로 배겼군그래.》
그는 차기용의 아래우를 훑어보며 중얼거리였다. 술에 취한 눈으로 보기에도 차기용은 박달방망이같이 굳고 민출한 사나이다. 꼬리가 들린 눈은 억실억실하고 손은 북두갈구리같다. 얼핏 스쳐보아도 흔한 뜨내기같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끄는데가 있다.
《굴일 몇해나 했소?》
《질통을 지고 뼈를 굳혔소.》
《음! 대답이 구수하군, 한대 피우.》
사나이는 이쪽저쪽주머니를 들추더니 마꼬갑을 꺼내 차기용이앞에 불쑥 내밀었다. 그들은 토방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통성을 하였다.
막장 선산이라는 맹선학의 말을 들으면 어제 낮대거리에 굴이 무너졌다고 한다. 하나는 허리가 부러지고 하나는 버럭에 묻히고 또 하나는 머리를 상해 무리송장이 났다는것이다. 회사측에서 동발을 아껴 굴이 무너졌다고 막장군들이 들이대자 감독놈들이 나와 따귀를 치면서 《돈벌다 죽기도 례상사지 뭘 그러는가? 불온한 말하면 홀쳐가겠다.》고 뇌까렸다 한다.
매를 맞은 막장패 십여명이 그런 위험한데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니 못하겠으면 그만두라고 전부 해고시켜버렸다는것이다.
맹선학은 주먹을 우들우들 떨면서 《개새끼들.》, 《쪽발이들.》, 《모가지를 꺾어놓을 자식들.》, 《게다짝들.》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다.
《그래 이젠 어떻게 할 작정이요?》
차기용은 가슴이 답답해나서 다우쳐물었다.
《어쩌긴 어찌겠소. 오늘까지 술이나 마시고 래일 공동묘지에 내가지요. 그저 그렇지요. 부모처자도 있으련만 주소를 몰라 기별도 할수 없소. 또 편지나 전보 한장 띄워서 누가 와봤댔자 뭘하겠소. 아, 기막힌 일이요. 우리 로동자신세란 어디가나 이렇지요. 사자밥을 먹이는줄도 모르고 친구처럼 제발로 찾아드는 판이니, 한심한 노릇이요. 인생은 온통 막장이요. 앞이 꽉 막혀 캄캄한 막장이라니까. 이 탄광 천여명의 로동자들이 그 막장에서 아글아글 끓고있는셈이지. 하긴 조선땅 어디나 그렇지만 그러다가는 저기로 가고…》
그가 가리키는 맞은편 산기슭에는 아닌게아니라 공동묘지가 펼쳐져있었다.
차기용은 담배를 두대나 련거퍼 태우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북받치는대로 한다면 당장에 파업을 일으키자, 망치면 망치, 괭이면 괭이를 휘둘러 왜놈들을 들이치자, 혁명을 하자 하고 선동을 할것이였지만 지그시 격정을 누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과격한것은 약한자의 조급성의 하나라는 동무들의 비판을 받고 의식적으로 고치고있는중이여서 한마디의 말도 함부로 하지 않기로 작정한 그였다. 그렇지만 아주 감출수는 없어 몸가짐과 낯색에는 어디라없이 흥분이 드러났다. 억세게 생긴 턱은 가볍게 떨었고 목에서는 피줄이 뛰였으며 얼굴은 한껏 붉어졌다. 먹을 묻혀 죽 그은것 같은 검은 눈섭은 쭝깃쭝깃 움직이였다. 밥집주인이 부엌으로 사라진 다음 차기용은 우정 목청을 낮추어 말을 떼였다.
《여보시오, 맹형! 우리 로동자들이 한번 내밀었던 주먹을 맥없이 걸어넣어서야 되겠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범의 굴로 들어가야지요.》
《맨손으루 어떻게 하나?》
《한덩어리가 되면 무서울게 뭐요. 저 버럭산을 보시오. 저걸 다 등으로 쳐낸 우리들이 아니요?》
《아, 이거 보통내기가 아니군. 들어가자구. 들어가 앉아 속시원히 털어놓자구.》
《그것은 좋은데 난 우선 밥탁이 있어야 하구 밥집을 정해야 하겠소.》
《에익, 못난 친구. 덩지가 큼직한게 속은 좁쌀이구만, 어서.》
차기용은 못견디는척하고 맹선학에게 끌려 방안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