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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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자 두 대원도 따라 일어섰다. 숲을 빠져서 등성이에 이르렀다. 백두산줄기에서 우줄우줄 물결쳐내린 산발들이 발밑에까지 와닿았다. 그이께서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듯하더니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실상 지하공작이 어떤 의미에서는 재미있다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나도 한때 농촌공작을 하기 위해서 변장을 하고 들어간적이 있었습니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깊숙이 박혀있으면서 사회생활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려다보는 재미도 괜찮았습니다.》

이때 박흥덕이 차기용에게 의미있는 눈짓을 하였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이 지난봄 량강구에서 이야기되던것을 상기시킨것이였다. 차기용이도 알겠다는투로 턱을 약간 들어보인다.

박흥덕은 손을 뒤덜미로 가져가며 한마디 물어도 괜찮겠는가고 말씀을 드려보았다.

《말해보시오, 무슨 말입니까?》

그이께서는 웃으면서 동시에 두 대원의 어깨에 손을 다시 얹으시였다.

《별거 아닙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지하공작을 하시기 위해 어데선가 머슴으로…》

《오, 머슴! 하하, 그걸 어떻게 동무들이 압니까?》

《소사하에서 강연을 하신 날 밤에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마을에서 머슴을 사신분이 유격대대장이 되셨네 하질 않겠습니까. 그래 엉터리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더니 틀림없다고 우기질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이께서는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으시였다.

《그 아주머니가 남의 비밀을 탄로시켰군, 하하하.》

호탕한 그이의 웃음소리가 숲속을 쩌렁쩌렁 울리였다.

천천히 숲속을 돌아나오니 중대에서는 마침 오락회를 하려고 모여들고있었다. 여느 대원들은 흔히 있는 오락회인줄 알았지만 전광식이만은 오늘 이 오락회에 일정한 의의를 부여하고있었다.

차기용이와 박흥덕이 래일 떠난다는것을 안 그는 무엇으로든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싶었던것이다.

노래와 춤도 있었고 세걸이의 요술도 있었다.

세걸은 코수염을 그리고 나와 약장사처럼 류창하게 일장 광고를 하고 요술을 하였다. 보총알을 들고나와 입에 넣고 꿀꺽 삼킨 다음 대원들이 모인데로 가서 코등에 기름을 묻혀다 바르고 《.》하고 기합을 넣으며 신바닥에서 끄집어내였다. 같은것을 두번 반복하는동안에 손이 빠른 그가 모자에 감추고 돌아간다는것을 알았다. 코기름을 바르며 돌아갈 때 진봉남이 모자에 끼운 철알을 살짝 뽑아내여 세번만에는 신바닥에서 나오지 못하고말았다.

그래 모두 배를 그러안고 웃었다.

다음에 씨름이 시작되였다.

팔다리가 굵고 어깨가 쩍 벌어진 대원들이 안고 돌아갔다. 모두 주먹에 땀을 쥐고 응원하였다.

그중에도 차기용이와 박흥덕이 맞붙은것이 제일 볼만하였다.

박흥덕은 허리를 굽히고 느릿느릿 옆으로 돌아가다가 화닥닥 달려들어 안다리를 걸려고 하였다. 그것이 잘 안되면 즉시에 수를 달리 써서 모두걸이를 쳤다. 그러면 어깨너비가 한발이나 되는 차기용이 띠뚝거리며 뒤로 물러서다가 두발을 떡 버티고선다. 그렇게만 되면 재주가 있고 엉큼한 수를 쓰는 박흥덕이도 어떻게 하는수가 없다. 차기용은 박흥덕이보다 동작이 빠르고 매우 결정적이였다. 왼쪽으로 휙 나꾸채면서 그와 동시에 닝큼 들어올려 어깨우까지 박흥덕을 추어올린다. 그다음부터가 골치거리다. 박흥덕은 허궁 들리워서도 날파람있게 발을 뻗쳐 차기용의 무릎에 다리를 걸었다. 들어도 올라 안 가고 메치재도 떨어 안진다.

《좀더 떠라, 좀더…》

《메치면서 걸어라, 걸어.》

《어깨너머로 쏟아라!》

모두걸이쳐라! 모두걸이.》

누가 누구의 편을 드는지 알수 없게 고아댄다.

그중에서도 세걸이가 제일 떠들었다.

그는 앉아 보다못해 씨름을 하고있는 두리를 빙빙 돌면서 량쪽을 다 훈수했다. 한쪽이 기울면 그쪽에 가서 들어일굴것처럼 손짓, 발짓을 하였다. 전체 대원들이 와와 떠들었다. 손벽을 치기도하고 발을 구르기도 한다.

박흥덕은 적수의 맥을 빼는 방향으로 나갔다. 이따금씩 걸것처럼 달려들어보는것은 기만전술이지 그것으로 이기자는것은 아니였다. 차기용은 가만 섰다가 적수의 약점을 노려서 결정적인 공격을 들이대군 하였다. 그러다가 다리를 벌리고있던 차기용이 발을 모으면서 배지개를 뜰것처럼 동작을 취하다가 혹 덜미를 잡아끌며 발을 내대였다. 박흥덕이 모두걸이에 걸려 벌렁 넘어졌다.

와아 함성이 올랐다.

씨름은 3판 2승으로 승부를 가리게 되여있었다. 첫판에 진 박흥덕은 일어서는 참 안다리를 걸고 허리를 폈다. 차기용의 턱밑에 머리를 들이밀고 허리를 늘구며 다리를 들어올렸다. 걸린 다리가 들리게 되자 차기용은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허리를 굽히려고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박흥덕의 단단한 다리가 밑을 떠올리면서 차기용의 허리를 휘여놓고야말았다. 차차 뒤로 기울더니 쾅하고 넘어졌다. 또 환성이 일었다.

박동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있소?》

차기용은 박흥덕의 어깨를 툭 다치며 먼저 말을 걸었다. 명상에 잠기였던 박흥덕이 벌씬 웃으며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되새겨본다고 하였다. 신통하게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있어서 차기용이도 같이 웃을수밖에 없었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황로령 오솔길을 걸으면서 줄곧 사령관동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같은 중대에서 생활했던것만큼 그들은 서로 다 알고있는 사건이나 일화밖에는 말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차기용이가 한마디 하면 또 박홍덕이가 다른것을 보태고 그것이 다시 가지를 뻗어서 다른 이야기로 번져나갔다. 백두산밀림속을 행군하시며 쉴참마다 백로지를 접어서 공책을 매시던 이야기, 보초를 서다가 졸았다는 이야기, 진봉남이 곰을 잡아 인기를 끌던 이야기, 3년후에 갚는다던 식량채용증 이야기, 천상데기에서 차기용이 딩굴리우던 이야기, 실로 얼마 안되는 사이에 그들은 이때까지 한당대 겪은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였다.

해가 져갈무렵 그들은 령을 다 넘어서서 헤여질것인가 하루 어데서 더 같이 잘것인가를 토의하다가 차기용이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다시 만나기 위해 빨리 헤여지자.》

《그러자.》

그들은 아이들처럼 눈물이 글썽해서 서로 목을 꽉 그러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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