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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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새골에서 사령관동지로부터 임무를 받은 차기용이와 박흥덕은 벌써 사흘째 길을 걷고있었다. 차기용은 함경북도에 있는 대곡탄광으로 가게 되고 박흥덕은 반유격구를 내오기 위해 라흥쪽으로 가야 하였다. 그들은 마치 무성하는 거목을 위해 보이지 않는 깊은 땅속을 뚫고 들어가는 한가닥 나무뿌리와 같이 솟아오르는 우듬지와는 반대방향으로 가야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대를 창건하고 그것을 강화하시는 한편 오래전부터 포치한 국내공작과 적통치구역의 지하활동 그리고 반유격구사업을 추진시키시였다.

특히 이것은 적들이 근거지에 대한 《토벌》 전면적으로 진행하고있는 조건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해방지구는 반유격구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또 그것들은 적통치구역, 특히는 국내 각처에서 움직이는 혁명조직들과 련계를 가져야 하였다.

이것은 반일인민유격대가 보다 더 튼튼히 군중적지반우에 놓여야 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에게 나무뿌리에 비겨 말씀하셨던것이다.

차기용은 이제 하루쯤 걷고 기차로 두만강을 끼고 청진쪽으로 내려가야 하였다. 탄광에 가서 우선 자리를 잡고 함흥, 원산, 웅기 등지와 기타 중요산업지대와 련계를 가져야 하였다.

박흥덕은 황로령을 넘고 돌재 웃목으로 해서 왕청뒤골로 빠져야 하였다.

량강구에서 차기용은 하루 앞서 떠났고 박흥덕은 다음날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이틀만에 우연히 도중에서 만나게 되였던것이다. 이제 헤여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그들은 다문 하루라도 같이 가기로 하였다.

차기용은 원래 생김새부터가 로동자같은데다가 허줄한 풀색양복을 걸치고 로동화를 신고 머리를 기울사하고 걷는것이 누가 보든지 아무런 의심을 주지 않을만 하였다. 박흥덕이도 그만못지 않은 토착농민 차림을 하였다. 흙물이 벌겋게 든 잠뱅이에 미투리를 신고 머리수건을 동였다. 어깨에는 망태를 메고 다리를 좀 벌리고 느릿느릿 걷는것이 뉘집 나이먹은 머슴을 방불케 하였다.

그들은 길을 걸으면서 줄곧 지난 유격대생활을 이야기하였다. 불과 다섯달만에 부대를 떠나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그들은 유격대생활을 하면서 조국이 해방되는 그날까지 부대를 뜨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다섯달이라는 세월은 매일 매 시각 그들에게 상상도 할수 없었던 새로운 생활들을 펼쳐놓았었다. 그래서 매일이다싶이 흥분된 감정으로 살았고 또 그만치 보람차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가장 큰 영예와 행복은 바로 김일성동지를 몸가까이 모시고있다는 그것이였다. 그이께서 계심으로 하여 혁명이 있고 미래가 있으며 또한 생의 보람이 있는것이다.

이런 행복을 뒤에 두고 두사람은 대오로부터 멀어져가고있었다.

들길에 단풍잎이 굴러간다. 불이 달린것처럼 빨간것이 달랑달랑 굴러서 아늑하고 웅뎅이진곳을 찾아 분주히 가고있다. 물푸레숲을 지날 때엔 그 새노란 잎들이 굴러 흩어지는것이 마치 병아리떼가 기여흩어지는것 같았다. 북방의 가을은 참으로 아름답다. 다홍색단풍, 검푸른 분비, 노란 이깔, 은백색백양과 사시나무들이 산허리에 휘감겼고 그뒤로 오리알빛하늘이 끝없이 드리워있다.

《그래도 차동문 사령관동지앞에서 과업을 받을 때 보니 매우 대범하던데.》

그렇잖으면 어찌는가, 듣고보니 형편없이 중요한 일인데. 여태 교양받았다는 유격대원이 〈부대를 떠나고싶잖습니다.〉 그러겠나?》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여 그들은 사령관동지앞에서 과업을 받던 때를 회상하게 되였다. 차기용이가 사령부앞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는 벌써 박흥덕이가 와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대원을 량쪽에 앞세우고 자신은 한 반걸음 뒤떨어져서 천천히 숲속을 걸으시였다. 발밑에서는 빨간 단풍잎들이 가볍게 소리를 내였다.

이깔나무사이에는 간간이 고로쇠나무와 사시나무들이 끼여섰는데 석양을 받아 얼룩진 그림자를 눅눅한 땅우에 던지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두 동무의 어깨에 하나씩 팔을 올려놓고 걸으시다가는 이따금씩 손에 잡히는대로 풀잎을 뜯어 뿌려던지며 말씀하시였다. 처음에는 건강들이 어떤가 물으시였다. 두 동무가 일제히 건강하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더니 박흥덕이더러 신을 벗으라고 하시였다.

《동무는 평발이지? 왜 거짓말을 합니까. 오늘 종일 걸었으니 발탈이 났을게 아니요? 어서 벗어보시오.》

사양을 하다가 끝내 박흥덕은 왼발을 한쪽 벗을수밖에 없었다. 뒤축과 엄지발가락 앞코에 생긴 물집이 터져서 빨갛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진대나무통에 걸터앉으며 성냥을 꺼내시였다. 성냥류황을 몇개 뜯어 부스러뜨린 다음 그 가루를 물집에 놓고 불을 그어대시였다. 뜨끔하는 바람에 낯을 찡그리며 윽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나서 박흥덕은 얼마나 망신스러웠던지 얼굴이 벌겋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이전에 농촌을 혁명화하기 위해 다니실 때 걸음을 많이 걸었다고 하시면서 발탈이 났을 때 치료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말씀해주시였다. 물론 이에 대해서 박흥덕은 처음 듣는것은 아니였다. 그렇지만 직접 발을 잡고 손수 처치를 해주시니 얼마나 죄스러운지 몰랐다. 다음은 차기용의 차례가 되였다.

《저는 몸에 아무 고장도 없습니다. 사령관동지.》

《하긴 동문 온몸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해서 좀이 들데가 없지.》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벌써 숲이 깊어져서 어둠이 발부리까지 덮이였고 깃을 찾아드는 새들이 여기저기서 푸드득거렸다.

《졸지 말아야 합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차기용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존다는 말씀에 차기용은 전류에 닿은 사람처럼 흠칫하였다. 보초서다가그때일을 그는 일생을 두고 잊을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초소에서 졸아서는 안됩니다. 적들은 우리가 졸기를 바라는것이니까. 차동무는 고향이 어데요?》

《고향이 없습니다.》

《고향이 없다니? 나서자란 고장이 있잖소?》

《나기는 전라도 남원에서 낳았다는데 아버지가 저를 지게에 올려놓고 늘쌍 걸어돌아다니다나니 딱히 자란데가 없습니다. 일곱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는 저도 내처 걸어서 온 조선의 로동판을 다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니까 동무는 조국이자 곧 고향이구만. 하긴 어떤 나라에서는 그 둘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데도 있지. 좋습니다. 동무는 고향을 찾는다는것이 곧 조국을 찾는다는것으로 되니까. 그러니 누구보다도 더 많이, 더 잘 싸워야겠습니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풀밭에 앉으시였다. 차기용이도 박흥덕이도 그이옆에 앉았다.

그이께서 공작임무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차기용은 적통치구역에 들어가 로동계급을 각성시켜 반일투쟁을 조직하며 핵심들을 뽑아 유격대로 보내는 한편 로동군중을 동원하여 유격투쟁의 공고한 후방으로 전환시켜야 하였다. 박흥덕은 농촌에 들어가 반유격구를 만들어야 하였다. 해방지구와는 달리 적들의 통치를 그냥 두고 우리의 지하혁명조직들을 광범히 무어 그것으로써 사실상 그 지구를 틀어쥐고 운영하여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놈들이 판을 치는것같지만 내용으로는 우리가 틀어쥔 유격구역으로 만들어야 하였다.

그이께서는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때문에 살고있는것인가? 누구나 이런것을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반드시 한번은 문득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이 생활의 물음을 회피할수는 없습니다. 아마 이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 문제이기때문에 동서고금의 많은 사상가들이 이렇게나저렇게나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고 많은 글도 썼고 많은 말도 남긴것 같습니다. 비근한 례로서 유럽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희생물이 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나는 나외에 누구에게도 종속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나를 위해서만 살고 세계를 향유할 권리를 요구한다.…〉 이렇게 말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향락을 위해 산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것이 없습니다.》

이때 그이의 음성은 약간 높아졌고 안광에는 심히 혐오의 빛이 어려있었다.

《향락은 침략자들의 철학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목적이 다릅니다. 우리는 인류에게 가장 고귀한 위업인 민족과 계급의 해방을 위해서 살아가고있습니다. 로동계급을 해방하고 피압박민족을 해방하는것이 우리의 생의 목적입니다. 또한 나아가서는 근로인민을 고된 로동에서도 해방하여 사회와 자연이 주는 온갖 고통에서 인민들을 해방하자는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차례지는 행복과 영예와 보상은 혁명가라는 고귀한 칭호입니다. 그것이 금문자로 새겨진 표창장이나 번쩍거리는 훈장보다 몇배 더 훌륭한것입니다. 그러길래 우리는 이 길에서 죽음도 영광으로 된다고 생각하는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동무들의 생각은? 동무들이 앞으로 사업하다가 목표물이 뚜렷치 않을 때 혹은 곤난에 부닥쳤을 때 항상 자신에게 인민을 해방하는 길, 인민에게 리익이 되는 길에 내가 서있는가 물어보군하면 됩니다. 우리의 투쟁은 록록치 않습니다. 우리는 힘을 가지고도 일제와 싸워야 하지만 높은 정신을 가지고 놈들을 압도해야 합니다. 일제는 굉장한 능력을 가진 고속도륜전기로, 고성능방송으로 저들이 고용한 그 숱한 입과 붓을 가지고 우리에게 대항해오고있습니다. 마치 비를 퍼붓듯이 우리에게 악담을 쏟아붓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와 사정이 다릅니다. 책자나 삐라를 등사기에 찍거나 지어는 밤을 새워 펜으로 옮겨베끼기도 하고있습니다. 총칼로 덮인 촘촘한 그물을 헤치고 한명의 동지를 만나기 위해 길을 걸어야 합니다. 큰소리로 웨치는것이 아니라 마실방이나 탄캐는 막장이나 가대기를 메는 부두에서 조용히 한사람씩 만나 귀속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떤 승산이 있는가? 그것은 명백합니다. 원쑤들은 불의와 거짓을 목청껏 부르짖고있지만 우리는 정의와 진리를 말하고있습니다. 놈들은 요란하게 떠들면 떠들수록 자기들의 허위를 그만치 드러내놓게 되지만 우리의 한마디의 말과 한장의 삐라와 한사람의 동지는 수천만사람의 가슴속으로 힘있게 미쳐 가게 되는것입니다. 공산주의사상이란 참으로 위력한것이여서 들이대면 무엇에나 뚫고들어갑니다. 어떻습니까? 해낼수 있을것 같습니까? 동무들이 투쟁을 잘하면 적들의 발밑에서 폭발을 일으킬수 있습니다. 자! 그럼 또 걸어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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