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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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두 사나이가 쑤군덕거리고있었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걸걸한 사나이는 황창모였고 갱핏한 얼굴에 살기가 흐르는자는 그의 노복인 장가였다.

《혹시 오늘밤엔 사령방에서 자려는것이 아닐가요?》

장가의 목소리가 늦여름의 습한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대처럼 바르르 떨린다. 그러나 여전히 보총만은 꾹 부르쥐고있었다.

《그럴수 없어. 내 그자와 여러해를 겪으면서 보니 집에 꿀단지 묻어놓았는지 아무리 깊은 밤이라 해도 꼭 집에 가더라니까. 하기야 아직 녀편네가 미우려면 먼 나이니까.》

황참모의 빈정거림에 장가가 휜이를 드러내며 비스스 웃었다.

《하긴 그래서인지 언제나 집을 참모부가까이에 두군 합디다. 나야 일개 소대장이니 그런것밖에야 모르지요.》

장가는 엄치환이네 소대장이였다. 일상시 바른말을 잘하는 엄치환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증오하던 그자는 이번에 자기네 소대에서 유격대에 대한 찬사가 터졌을 때 허둥지둥 달려와 그것을 황참모에게 제일먼저 알려준 밀고자였다.

황참모와는 동향이라는 리유로 서로 싸고돌았지만 사실 장가의 고향은 황창모의 고향의 이웃군이였다. 몸에 밴 시기와 분수넘는 제자랑으로 하여 같은 소대장들은 물론 자기 소대사병들에게서조차 신망을 잃은 장가인지라 고향을 바꾸면서까지 물에 빠진자가 짚오래기를 잡듯이 황참모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있었다. 황참모는 그대로 부대내에서 점점 자기의 지지자, 동정자들을 잃고있던 참이라 손가락질을 받는 장가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여서 밝은 낮은 될수록 꺼리며 어두운 밤에만 구석에서 조용히 만나군 하였다. 결국 동병상련의 비참한 관계였다.

그러던 그들의 관계가 몇달전 찍어말하면 반일인민유격대가 통화에 왔다간 이후로는 점점 더 밀접해졌다.

황참모는 유격대가 다녀간 후 량세봉의 얼굴에 나타나는 수심과 이따금 내쉬는 장탄을 엿보고 그가 반일인민유격대와 련합하지 않은것을 후회하고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후회는 곧 뉘우침을 낳게 될것이며 뉘우침은 시정의 전제로 되는것이다.

그것을 생각할 때 황참모는 등골이 오싹하였다.

앉으나서나 졸지에 수백의 사병들을 잃고 한지에 나앉는 악몽에 시달리던 그는 드디여 두개의 결론에 도달했는바 하나는 반공선전의 도수를 높이여 장병들의 갈등을 심화시켜 부대를 사분오렬로 찢어 그중 하나를 물고늘어지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량사령을 없애치움으로써 반일인민유격대로 쏠리는 군심의 조타를 부셔버리자는것이였다. 처음에는 갈등으로 갈라진 하나의 부대의 사령이 되여 독립하자던 생각이 우세했었는데 오늘 오후에 있은 회의에서부터는 두번째 안이 첫번째 생각을 짓뭉개면서 와지끈거리며 솟구쳐올랐다. 그도 그럴것이 유격대를 찬양한 엄치환을 비롯한 여러명의 사병들을 총살하여 장병들 호상간 갈등을 심화시키자던 노릇이 괘씸한 최참모와 얼이 나간듯 한 량세봉에 의해 물거품이 되였던것이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자바람으로 장가를 불러들여 사령암살음모를 꾸민 황참모였다.

그래도 독립군 한개 부대의 사령인 량세봉을 번개불에 콩닦는 격으로 와닥닥 빚어놓은 음모로 살해한다니 거사에 의심을 품어서라기보다는 리해를 미처 못해 황참모가 주절거리는 성공의 여부에는 어리둥절한 눈길만 데룩거리던 장가였지만 일이 끝난 후에 자기에게 차례지게 될 커다란 분배몫에는 혹하여 그저 맹목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정신을 차린뒤 재빨리 생각해보니 해볼만한 모험이였다. 자기는 량사령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 그후의 일은 다 황참모가 맡는다는것이다. 황참모의 많은 씨벌임중에 다른건 다 몰라도 량사령을 살해한 다음에 엄치환이네가 자기들을 총살할것같아 선손을 써서 사령을 죽였다는 소문을 내면 누구나 믿는다는 황참모의 어설프면서도 저으기 교활성까지 느껴지는 말은 그럭저럭 리해가 되였다.

《그러니 결국 돌 하나로 두마리의 새를…》

자기가 생각해낸 속담이 그럴듯하여 헤실거리던 장가는 황참모가 피발이 선 눈앞을 희번덕거리는 서슬에 목을 쑥 움츠렸다.

눈에 든 가시처럼 밉다고 하여 엄치환이같은 사병을 한다하는 독립군의 수장과 꼭같은 《새》로 생각하는 장가의 한심스러운 타산에 버럭 화가 났으나 그래도 자기의 손발이 되여 거사를 수행해야 할 노복이였기에 그저 한마디만 퉁명스럽게 씨벌여댔다.

《난 그런 말은 잘 모르네만 소뿔은 단김에 뽑아야 한다는 속담은 잘 알고있네.》

《예 예, 그래얍지오.》

장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가 둔해 때로 상관의 기분은 거슬리게 해도 충신의 일념만은 변함이 없다는것을 보여주기에 애썼다. 그러는 장가를 내려다보는 황참모의 눈에는 여전히 살기가 번뜩이였다.

장가는 애써 황참모의 눈길을 피했다. 좀 사납긴 해도 붙어있으면 턱찌끼라도 얻어먹을수 있는자여서 복종하기로 마음먹고 따라다니는 장가였다. 이제 자기는 이슬젖은 풀잎우에 누워있다가 량사령을 향하여 방아쇠만 당기면 되였다. 엄치환을 처리한 뒤에 그를 비호했다는 죄명으로 최참모패거리들까지 들어내면 참모자리 하나를 주겠다니 장가는 바짝 흉심이 동해 가슴이 흐물떡거렸다.

바람이 차거워졌다. 벌써 시간이 자정을 가까이 한다는것을 알아차린 황참모는 속이 달아 안절부절했다. 그러던 황참모는 곁에서 불쑥 소리치는 장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움초렸다.

《저기 사령님이 나오십니다.》

저도 모르게 입에 붙은 존어를 뱉아내는 장가를 아니꼬운 눈길로 바라보자 그자도 자기의 실언을 짐작했는지 제꺽 이렇게 씨벌여댔다.

《자식, 오늘은 네가 황천으로 가는 날이다.》

《가만.》

졸개를 제지시킨 황참모는 재빠르게 거사의 전말을 다시 상기시켰다.

《내가 뒤담을 넘어 참모부로 들어가겠으니 쏘자마자 자리를 피해라. 그리고 왁작 소동이 났을 때 나타나 엄가와 비슷한 모색의 사내가 사령을 쏘고 병실쪽으로 달려가는것을 근무순찰중에 봤다고 말하면 네 임무는 끝이다. 다음은 내가 다 한다.》

장가는 벙어리모양으로 되여 눈알만 껌벅거렸다. 엄가와 비슷한 사내를 봤다는 말을 하라는 소리는 여직껏 없었었다. 어딘가 배속 깊은 곳이 꿈틀거렸으나 상황도 바쁘고 또 제가 한 지시에 토를 다는것을 질색하는 황참모인줄알고있는지라 꾹 참고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황참모가 게걸음으로 뒤로 빠져 달아난 뒤 장가는 보총을 으스러지게 잡고 사격좌지를 차지했다.

량사령이 점점 더 다가왔다. 이제 열댓걸음만 걸으면 집대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질것이다.

불쑥 장가는 겁이 솟구쳤다.

어둠속에서도 성이 나면 불이 끓던 량사령의 두눈이 보이는듯싶었다. 황참모가 곁에 있을 때는 나무등걸에라도 기댄것같아 잔등이 썰렁하지는 않았는데 그마저 달아났으니 독립군의 사령과 일개 소대장인 자기가 일 대 일로 맞선것이였다. 결국 범죄현장에는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겁이 자글자글 끓어올랐다. 더우기 소란이 벌어진 뒤 자기가 나타나 엄치환을 고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공포를 북돋아주고있었다. 속이 덜덜 떨려났다. 엄치환이와 자기가 개와 고양이사이라는것을 온 부대가 다 아는데 자기 말을 어느 귀머거리가 믿겠는가.

장가의 눈에는 량사령과 황참모의 얼굴이 엇갈려 떠올랐다.

그러나 결국엔 량사령의 얼굴은 지워지고 독을 품은 이지러진 황참모의 얼굴이 삼바리가 조개를 거머쥐듯 그의 혼맹이를 꽉 틀어잡았다. 량사령은 자기를 기껏 일개 소대장으로밖에는 치부하지 않지만 황참모는 인츰 참모자리까지 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욕심과 불안한 기대, 엄습하는 공포로 하여 총을 틀어쥔 장가의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량사령이 대문을 여는 찌그덩 소리가 울렸을 때 장가는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 순간에 방아쇠에 걸었던 죄많은 손가락이 공포에 질려 뒤걸음치듯이 뒤로 물러났다.

《땅.》하는 요란한 소리가 무거운 밤대기를 깨뜨렸다.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선 장가는 량사령의 생사는 여겨볼념도 못하고 부리나케 병영을 향하여 들고뛰였다.

물구덩이에 빠지는지 돌에 걸채이는지 미처 느끼지도 못한채 허둥지둥 달려가던 장가는 별안간 앞을 떡 막아서는 검은 그림자에 놀라 무춤 멎어섰다. 달빛에 사령의 만또를 거머쥔 최참모를 알아본 장가는 저도모르게 오금을 탁 꺾으며 무너져내렸다.

이발을 떡떡 맞쪼으면서도 그자의 입에서는 이런 넉두리가 쏟아져나왔다.

《그… 글쎄 엄치환이가 사… 사령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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