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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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세봉은 참모부앞마당을 거닐고있었다. 이제는 밤도 깊어 싸늘한 랭기가 서서히 기여들었으나 량세봉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채 내처 걷기만 하고있었다.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누워야 할 시간도 퍼그나 지났다. 하지만 오늘 저녁 늦게까지 진행한 참모부회의의 여운속에서 아직도 깨여나지 못한 그였다.
지금도 엄치환을 비롯한 여러명의 선동자들의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회의장의 담배내 짙은 공기가 페장에서 빠지지 않아 숨이 갑갑한 그였다.
황참모와 그에 추종하는 두명의 중대장들은 당장 엄치환이네를 총살해야 한다고 피대를 세우며 우겨댔고 최참모를 위수로 하는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처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량세봉은 회의 전기간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그것은 량켠의 주장들이 다 어느 정도 론리가 있어서만이 아니였다.
그들을 총살하여 공산당쪽으로 기울어져가는 병사들에게 경종을 단단히 울려야 부대의 기강을 바로잡을수 있다는 황참모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었다. 량세봉자신이 바로 몇달전에 공산당선동을 하던 박아무개를 제 손으로 처단해버리지 않았는가.
허나 최참모의 주장도 소홀히 할수 없는 심중한것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군세가 약해지는 때에 여러명의 사병들을 죽이면 스스로 자멸의 함정으로 빠져드는겁니다. 우리가 유격대에 대한 찬사를 몇마디 했다고 하여 왜놈을 죽이라고 백성들이 사준 총으로 동포들을 처단한다면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민족을 뵈올 낯이 없을겁니다. 더우기 그들은 다른 공산당도 아니고
《그러기에 애초에 작두날로 꼴을 잘라버리듯 싹둑 해야 한다는게 아니요?》
황참모가 두툼한 손바닥으로 무엇인가 잘라내는 시늉까지 해보이며 어성을 높이자 우선우선하던 최참모의 목소리에서 뼈대가 서기 시작했다.
《작두날로 무엇을 자른단 말씀이시오? 그래 황참모좌하는 몇명의 머리를 자른다고 하여 부대안에 퍼진 유격대에 대한 동경심까지 모두 끊어내칠수 있다고 봅니까?》
량세봉은 그들의 말을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만약 그가 부대에 기강을 세워 흐트러지는 군세를 바로잡으려 한다면 혹 황참모의 의견을 받아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최참모의 말대로 몇명을 죽인다고 하여 반일인민유격대에 대한 장병들과 백성들의 공경심을 부셔버릴수는 없는것이였다. 그도 지금 자기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주변에서 풍겨오는 냄새들을 맡지 못한것이 아니였다. 반일인민유격대가 다녀간뒤 통화의 민심만이 아니라 군심까지도 온통
그것을 막을수도 없었거니와 막고싶지도 않은 량세봉이였다.
어떻게 막을수가 있으며 또 왜서 막겠는가. 존함 그대로
그는
《이젠
그때는 그 말이 넉두리처럼 들렸댔으나 지금은 되씹어볼수록 의미가 칼날같이 예리해져 가슴속깊이 상처를 내며 마쳐들어오는 량세봉이였다. 안해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후회심만이 가득하였다.
그때는 왜 그렇게 우유부단했던지…
하여 제자신에게 화가 난 량세봉은 회의장에서 아웅다웅하는 참모들에게가 아니라
《사령으로써 령하는것이니 이 문제를 가지고 누구도 벌하지 않을것이요. 그리고…》
그답지 않게 말끝을 얼버무리고 회의를 결속한 량세봉이였다.
《그리고…》 다음엔 뭐라고 말하려고 했던가. 사실 그는 욱하고 끓어오르는
허나 지금 되씹어보면 그것은
실지로 이번에 통화에 온 반일인민유격대를 보니 비록 인원은 많지 않았으나 광복의 성업을 떠메고나갈 력군들임이 확실하여 렬세한 자기의 군세에 대한 창피감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뿌듯해지는 부러움과 기대감도 가졌던 량세봉이였었다.
그래도 독립군의 일개 사령이라는
뒤에서 인기척이 나 뒤돌아보니 최참모였다.
《아니, 사령님께서 아직도 들어가지 않으시고 웬일이십니까. 사모님께서 근심이 크시겠습니다.》
량세봉은 언제보나 듬직해보이는 최참모를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참모는 이 량세봉이 겉늙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거요.》
《원, 당치도 않으실 소리입니다. 늙다니요. 아직 마흔고개가 바라도 보이지 않는 년세인데…》
《아니요.》
량세봉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세월에 늙은것이 아니라 대세에 늙었소그려. 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번에 련합을 하자고 찾아오셨던
그의 말에 최참모도 잠시 대답이 없었다.
하늘에서는 별들이 반짝이고있었다. 가을이 가까와오는 계절이라 은하수가 하늘 한가운데 쭉 건너가있었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던 최참모가 잔기침을 깇고나서 말했다.
《사령님, 너무
《만약 그런 때가 온다면 이번에는 내가 먼저 김장군의 손을 덥석 잡겠소.》
최참모를 바라보는 량세봉의 눈가에는 물기가 흐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