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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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어쨌든 백광명선생은 용케 이 혁명지구를 찾아들어오셨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용단입니다.》
《그저 창파에 뜬 검불처럼 혁명의 파도에 밀려서 왔다고나 할수 있을는지요.》
이렇게 은유적으로 말씀을 올리고는 소사하때 이야기를 다시 계속하였다.
《계절조가 하나의 절기를 넘기고있다고나 보아야 할는지 저
《재미있는 비유입니다. 하지만 철새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제비와 기러기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십니까?》
《어떤것은 북극에서 남극으로 옮겨가는것도 있습니다.》
백광명은 담배를 빠는것인지 긴 한숨을 쉬는것인지 알수 없게 어깨가 높이 들리군 하였다. 몇모금 담배를 빨고나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닌게아니라 겁이 납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자주
《그러기에
《제가 그렇게 해낼수 있을가요? 하긴 〈우주의 중량을 가지고도 나를 분쇄하지 못한다〉는것을 저는 여태 좌우명으로 삼고있습니다만…》
《알만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원쑤가 투항하지 않으면 죽여버리라!〉 그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변인철이 38식보총을 내여드리였다.
《자! 이것을 받으시오. 이건 이번 전투에서 뺏은것입니다.》
백광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는 하였지만 너무나 뜻밖이여서 어리벙벙해서 서있기만 하였다.
《어서 받으시오. 이걸 가지면 대담해질수 있을것입니다. 자, 어서!》
백광명은 가느다란 두팔을 동시에 내밀어 총을 받아들었지만 그 순간 그는 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드는것을 겨우 바로잡았다. 우주의 무게를 가지고도
격해진 그는 무엇인가 할말이 많았지만 종시 입을 열지 못하고마는것이였다.
《고장이 없는가 한번 쏴보시오.》
백광명은 총을 벗어들고 격발기를 당겼다 놓고 공중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정적이 깃든 밤하늘이 찢기였다.
《좋습니다. 그거면 능히 적을 명중시켜낼수 있을것입니다.》
백광명은
총을 가슴에 안은 백광명은 강기슭을 따라 무턱대고 올라갔다. 지난날 물을 건느던 목에서 다시 돌아서 내리걸었다.
가슴속에서는 거센 흐름이 일어났다. 풀잎에 달려 한들거리던 하나의 물방울이 대하에 떨어져내린것이다. 쾅쾅 여울을 치며 흘렀다. 다시 한걸음 내디딘 한 지성인의 발걸음소리인가 아니면 낡은 과거가 꺼꾸러지는 장엄한 진동인가?
아! 생이여, 너는 영용하여라.
혁명이여! 혁명이여!
백광명은 총을 안은채 자갈밭이건 가시덤불이건 물탕이건 가리지 않고 마구 밟아뭉개면서 강기슭을 오르내리였다.
물안개에 홈빡 젖은 그는 날이 새도록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해가 솟았다. 평범한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찬란한
그는 고개를 번쩍 들고 가슴을 내밀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