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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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투쟁이 벌어지고있다. 이것은 총탄을 발사하고 폭발물을 날려보내는것만 못지 않은 하나의 대전투이다. 침락자들에 의해 들씌워진 세기적가난을 털어버리며 굶주림과 추위와 헐벗음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전선이 이루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빛나는 시선으로 최칠성을 한참이나 쳐다보시다가 새끼오리를 놓고 그의 손을 덥석 잡으시였다. 빳빳하고 거치른 손이 줌안에 쥐여졌다.

만리가 될지 10만리가 될지 그 누구도 아직은 헤아릴 길이 없는 머나먼 그 로정, 거기에 놓인 험난한것들을 이 손으로 모두 헤쳐나아가야 하는것이다.

《또 해지면 또 삼으면 됩니다.》

최칠성의 확신에 넘친 이 대답이 다시금 그이의 가슴을 두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최칠성의 손을 힘있게 잡아흔들며 말씀하시였다.

최동무! 어서 하던 일을 계속하시오. 동무의 각오는 매우 좋습니다. 지금 동무는 짚으로 한컬레의 짚신을 만들고있지만 그 정신, 그 기백으로 먼 앞날을 헤쳐가야 합니다. 또한 뒤떨어졌던탓으로 그렇게도 많은 업심을 당한 우리 조국을 해방시켜 현대적공업도 일궈세우고 지상락원을 펼쳐놓아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침략자들때문에 우리 인민이 못 먹고 못 입었고 못살았던 봉창을 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보니 동무의 손에는 지금 세가지가 한꺼번에 쥐여져있는셈입니다. 하나는 총, 다른 하나는 가난을 이겨내는 짚오리, 또 하나는 우리 글을 익히는 공책, 그것들이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동무는 알만합니까?》

최칠성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답도 못한채 가슴이 뛰는것만 감각하였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것 같은데 그렇게도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을 해주시는것이다.

그는 이때 사령관동지의 말씀의 의의를 다는 리해하지 못하였지만 어쨌든 커다란 위업이 자기앞에 가로놓여있다는것과 그이께서 그것을 자신에게 맡겨주고계신다는 높은 책임감과 긍지로 하여 벅찬 감정에 휩싸여있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최칠성의 어깨를 잡아흔들며 말씀하시였다.

《좋소, 어디 한번 솜씨를 내서 만들어보시오.》

그이께서는 대답이 없는 최칠성의 잔등을 두드리며 크게 웃으시였다.

《해보겠소? 그래, 해보시오.》

이때 그이께서는 그런 옹색한짓을 그만두고 로동화를 구해줄터이니 그것을 신으라고 할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길을 다시 떠나고 최칠성은 그 자리에 앉아 다시 새끼를 꼬았다.

시간이 얼마간 흘렀을 때 그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쌈지를 꺼내면서 고개를 들었다.

아래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느릿느릿 움직이고있었는데 유격대원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마을의 어느 누구 같지도 않았다. 온몸을 흰이불로 감싸고 머리도 또한 그런 모양으로 쌌다.

정신이 팽팽해진 최칠성은 옆에 놓았던 총을 집어들고 바위그늘에 몸을 숨기고 누구냐고 고함을 질렀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저편에서는 우물우물 그냥 올라오고있다.

아무래도 수상해서 앞으로 나서며 다시 고함을 질렀다.

《누구야!》

메아리가 일어나듯이 그와 거의 같은 시간에 갓난애기 울음소리가 울리였다.

《아!》

전류에 닿은것처럼 흠칫 놀란 최칠성은 입을 딱 벌리고 감각이 주는 반사대로 앞으로 팔을 벌리며 달려나갔다. 그날 한두번 들었던 그 음향이였다.

그가 검은 그림자앞에 막아섰을 때는 이미 갓난애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보, 어떻게 된 일이요?》

당황해진 최칠성은 보나마나 그것이 자기 안해라는것이 뻔해지자 다그쳐 물으며 쌍가마의 손을 부둥켜쥐였다.

당신이군요.》

몸과 머리를 이불로 감싼 쌍가마는 여전히 제 성미대로 조용히 말하였다.

《무슨 고함을 그렇게 치세요. 애기가 막 놀랐어요.》

당신인줄 몰랐지.》

그는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것처럼 절절매면서 포대기에 싼 아이를 받아안고 아늑한 바위등에 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 몸으로 왜 왔소? 어?》

《난 당신이 어데 가지나 않았나 해서…》

《아! 한심하오. 정말 한심해.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유격대원 안해가 된담.…》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나는 지금 혁명을 하고있는데 당신은 정말… 내가 어제 말하지 않았소. 다시 오지 못하면 떠난줄 알라고.》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벌써 잠들어버렸는지 꼼지락거리던 애기는 잠잠해졌다.

안해를 그렇게 놀려주면서도 결코 싫지 않은 최칠성은 애기를 한번 볼양으로 포대기를 빠끔히 열어보았다.

그때 숨을 돌리고난 쌍가마가 최칠성의 무릎을 흔들며 《이것 보세요.》하며 무엇을 내놓는것이였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겠나 생각해보세요.》

안해의 숨소리는 높아졌다.

《장군님께서 이것을 보내주셨어요.》

《뭐? 장군님께서…》

《이 곰열을 보내주셨어요. 전령병이 아까 우정 왔다갔어요.》

《장군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곰열을!》

그는 아이를 내려놓고 자그마한 종이꾸레미를 두손으로 집어들었다. 잠시 얼빠진 사람모양으로 멍청히 하늘을 쳐다보고있던 그는 《장군님!》하고 목메인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이 핑하니 고인 얼굴에 달빛이 강하게 반사되였다.

《장군님! 저같은 사람때문에…》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격정만이 가슴속에서 소용돌고있는데 목은 꽉 막히고 팔다리가 떨리였다.

한참동안 그러고 서있던 최칠성은 다시 자리에 앉아 안해를 쳐다보았다. 하얀 이불에 싸인 검은 머리카락, 그밑에 타원이 져 돌아간 안해의 얼굴, 가슴에 안긴 어린것, 그것을 마치 어떤 신비한것처럼 바라보고있던 그는 팔을 벌려 그 모든것을 덥석 그러안았다.

《여보! 가슴이 막 뛰누만, 응? 머슴과 아이보개가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게 되니 정말 생각만 해도 막… 난 왜 이렇게 말재주가 없을가.…》

그들은 손을 마주잡고 그저 울었다.

자기를 낳아 길러준 부모외에는 누구에게서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들은 길가에 딩구는 막돌처럼 버림받고 차굴리우기만 했지 이렇게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기는 난생처음이였다. 가슴에서 먼지가 일만치 인정에 주리였던 그들은 순식간에 바다를 안은것 같은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학대와 주림과 굴욕과 멸시가 그 거센 물결에 보잘것없는 검불처럼 떠내려갔다.

쌍가마는 남편을 바라보며 울고 최칠성은 안해를 바라보며 울었다.

《여보, 잘 기억해두라구, 응. 장군님께서 우리들을 항상 보살피고계셔. 알겠나.》

《어찌나, 당신이 잘해야지요. 은혜를 갚아야지요.》

그때 쌍가마의 가슴에 안긴 어린것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 아, 아.》

쌍가마가 얼른 돌려안으며 당황해서 아이를 얼리려 하자 최칠성은 와락 그것을 뺏어들고 공중으로 높이 들어올리였다.

《그래, 너두 한마디 해라.》

그는 목을 젖히고 아이를 허공에 높이높이 들어올린채 선자리에서 한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혁명아! 울어라. 목청껏 울어라. 옳다, 장하다!》

《아, 아, 아.》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것처럼 갓난 최혁명이는 발을 버둥거리며 울었다.

여름밤, 교교한 달빛아래 두 남녀가 넋없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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