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회)
9
(12)
이튿날 산으로 피난 올라왔던 마을사람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사령부에서 토의된대로 유격대원들은 군중들의 생활을 안착시키는 사업에 착수하였다. 불탄 집을 일궈세우고 살림세간들을 주어모았다. 한편 십여리 사방으로 요소요소에 망원보초를 배치하고 적들을 감시하였다.
해가 져서 풀벌레가 울고 강기슭으로 물안개가 떠돌무렵, 숲속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있는 전체 유격대원들과 쏙새골혁명조직 책임자들과 열성자들이
오른쪽으로 약간 언덕진 곳에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이 없는 조건에서 진행되는 우리의 무장투쟁은 이 근거지에 의해서 유격대도 강화하며 당창건에 대한 준비도 추진시키며 통일전선을 기초로 한 대중적지반도 마련하게 될것이다.
여기서 전국의 혁명을 지휘하게 될것이며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정권문제, 사회적개혁문제 등 모든것의 시범을 만들게 될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된 후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계급적구성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두만강연안에 일제히 유격구를 내올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지역을 차지했다는것만으로는 근거지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수 없다.
우선 우리는 유격구를 보위할 력량이 준비되여야 하며 유격구가 우리 전략이 요구하는 모든것을 능히 감당할수 있게 준비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근거지를 두개의 형태로 갈라서 내와야 한다. 그 하나는 해방지구형태인 완전유격구이며 다른 하나는 해방지구주변에 내오는 반유격구이다.
반유격구는 형식상으로는 일제의 통치가 그대로 미치고있는듯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혁명세력이 모든것을 장악한 지구로서 낮에는 적들이 그냥 통치하고 밤에는 혁명조직이 제 마음대로 활동할수 있게 되여야 한다. 이것은 해방지구를 보위하는 믿음직한 후방기지로도 될것이다. 이를테면 나무통을 보호하고있는 두꺼운 껍질처럼 해방지구를 둘러싸야 한다.
이와 함께 적들의 통치지구에도 혁명적영향을 강화해야 한다. 여기서는 모든것이 지하활동으로 진행될것인바 판도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이 지역이 차츰 반유격구로, 해방지구로 점차 전환되도록 하여야 한다.
물론 혁명근거지들은 거세찬 혁명의 파도속에 놓여있는것만큼 고정불변할수 없으며 하나의 틀에 맞추어놓을수 없을것이다.…
이렇게 근거지창설에 대하여 이전부터 구상해오던것을 내놓으신 후에
이런 형편에서 그들의 생활을 안착시키고 그들을 묶어세워 유격구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완전유격구내에 정권이 나와야 한다. 혁명정권은 일체 반동통치를 마스고 새로운 혁명적질서를 세우며 인민들의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고 질병과도 싸우며 교육도 펴야 한다.
혁명정권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 상응한 인민의 정권으로 되여야 하는데 우선 그 과도적단계로서 각 혁명조직 대표로 혁명위원회를 내오도록 하는것이 좋겠다.
이것은 지체할수 없는 혁명의 요구이다. 지금 이곳 쏙새골과 같은 실정이 바로 이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다.
혁명위원회의 첫번째 회의에서는 적들의 《토벌》이 계속될것이기때문에 샘물골치기로 주민들을 이주시킬 대책이 토의되였다.
차광수는 회의를 마치고 중대로 혼자 돌아오고있었다. 하루종일 뛰여 다녀서 얼마간 지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활기있는 걸음으로 속새가 우거진 덩굴을 와삭와삭 밟으며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풀벌레가 사방에서 요란스레 울고있다. 오늘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간단한 지휘관회의가 있었다. 어떤 문제든지
오전에 토의된것은 혁명위원회를 내오는 문제와 관련한 각종 조직적 대책들이였다. 작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간고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없이 영예로운 항해는 능란한 타수에 의해 거침없이 진행되고있다.
돛폭이 찢기고 배전이 깨여질수 있지만 그래도 혁명은 전진할것이다.
차광수는 매우 장쾌한 감정에 휩싸여 자기가 어데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걸었다. 정신을 차리고 발길을 중대숙영지로 돌린 그는 팔을 뻗쳐 잡히는대로 풀잎을 뜯어 씹었다. 휘파람을 후이후이 불면서 바위와 덩굴들을 훌훌 넘어뛰였다. 마을에는 불빛이 보인다. 어제저녁에는 그토록 암흑이 뒤덮여 무덤같던 마을이 벌써 혁명이 준 안식을 맛보고있는것이다.
컹컹 개짖는 소리도 들린다.
아무 일도 없은것 같고 또 있을상싶지도 않은 예전그대로의 마을이다. 여기는 꼼뮨을 선포한 한복판에서처럼 배외주의와
머리우에서 류성 하나가 찬란한 빛을 뿌리며 마을 웃켠으로 흘러내리였다.
차광수는 하늘을 안아볼듯이 팔을 벌리고 빙그르르 돌면서 《하하.》 소리내여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