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9

(11)


3중대 동무들이 자리잡은 이깔나무밑에서는 박흥덕이 떠들어대고있었다.

《야, 이것 봐라. 하하하하 하하하.》

박흥덕은 최칠성의 두리를 한바퀴 빙 돌면서 흥미있게 바라보다가 고함을 질렀다.

《동무들! 최칠성동무가 왔소. 이거 굉장한 사건이 생겼소. 하하하하.》

밤늦게까지 오락회를 하고 방금 헤여졌던 동무들이 여기저기서 뛰쳐나왔다. 잠시동안에 수십명이 삑 둘러쌌다. 동무들이 둘러선 한복판에 서있게 된 최칠성은 어쩔줄 모르고 빙빙 돌아가고있다.

박흥덕이 말하는대로 최칠성이가 나타났다는것은 그들의 생활에서 실로 커다란 사건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다 그의 몸차림이 또한 놀랄만 한것이였다. 아래우 군복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는데 오른쪽어깨에다는 화승대를 메였고 다른쪽에는 번쩍번쩍 빛이 나는 38식보총을 메였다. 그런데다 가슴우로 엇가로 끈이 내려가고 그밑에 큼직한 야전용 전투가방이 달려있었다. 한쪽손에는 커다란 꾸레미를 들었다.

집에 갔던 최칠성이가 나타났다는 그 자체가 벌써 큰 이야기거리인데다가 그의 차림새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안이 벙벙해지게 만들었다. 항상 그러했지만 이때도 최칠성은 그 모습과 행동이 너무 진지하여 소홀히 범접할수 없었다. 원래 과묵하고 롱질을 하지 않았던데다가 며칠사이에 당하고난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그를 어느 낯선 역경에 훌쩍 옮겨놓은것처럼 얼떨떨하게 만들었던것이다. 전투하던 도중에 사령부가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정황이 정황이니만치 그때 여기저기 찾아다닐수 없었고 적이 물러가고 해가 진 후에도 곧 올라오려 하였지만 또 딱한 사정이 집에서 벌어졌었다.

집에 일을 도우러 온 전령병을 통해 동무들이 온 소식을 알게 되였고 또 그한테 붙잡혀 인차 떠나지 못하고있다가 밤이 깊어서야 같이 돌아오게 된것이였다.

최칠성은 보자기를 든채로 빙빙 돌아가면서 손짓도 하고 고개도 끄떡이면서 인사를 하였는데 그의 얼굴은 마치 못할짓이라도 하다가 들켜난 사람처럼 매우 게면쩍고 쑥스러워져서 낯빛이 수수떡처럼 벌거죽죽하게 되였다. 코를 킁킁 울리고 섰던 박흥덕은 최칠성이앞으로 걸어나가 그의 어께에서 38식보총을 훌 벗겨내여 두손으로 추켜들고 무슨 요지경단지 구경시키기라도 하듯이 동무들앞으로 한바퀴 빙 돌았다.

《호박을 딸라면 이렇게 덩쿨채로 따란 말입니다. 자, 이 총을 보시오. 공장에서 방금 꺼내와서 그리스내가 물컥물컥 납니다. 이걸 저 친구가 글쎄 슬쩍 이렇게 했다지 않습니까.》

박흥덕은 총을 세워놓고 두손으로 자기 목을 비트는 흉내를 내면서 끽끽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다가 드디여 총을 내주고 뻐드러지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과 맞는지 알수는 없으나 그 형상이 너무 생동하고 진실해서 동무들은 최칠성이 무기를 뺏는 장면을 직접 보는것 같았다.

동무들이 손벽을 치고 웃고 떠들어대였다. 아직 웃음이 멎지 않았을 때 박흥덕은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였다.

《그뿐인줄 압니까? 그다음엔 이걸 보시오. 전투가방입니다. 짐작컨대 이건 왜놈의 장교가 메고 거드름을 피우던것일겁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최동무는 이걸 나한테 선물로 주겠다고 합니다. 사실 나는 이런 거치장스러운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동무가 주는 선물인데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박흥덕은 가방을 훌쩍 걸머메고 어깨를 한번 추슬러보는것이였다. 그는 쓸모있다고 본 가방을 이런 식으로 슬쩍 받아내고말았다.

그통에 욕심도 있지만 그만 못지 않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박흥덕을 보고 동무들이 또 웃었다. 박흥덕은 그것으로 일단 최칠성의 사건을 마감지으려 하였는데 뜻밖에 또 하나 문제가 생겼다.

《하, 이 친구 이거 무슨 신이 이 모양이야?》

박흥덕이로서도 그것은 너무나 뜻밖이였다.

최칠성은 황겁히 풀숲에 발을 감추었다. 그러나 이슬에 씻긴 뭉툭한 구두코는 본바탕대로 반들반들 빛을 내였다.

《이 친구가 이거 정말 보통이 아니다.》

최칠성은 총을 앗아내느라고 서로 안고돌아가다보니 신짝이 어느새 벗어져 맨발이 되여 강가에서 아무거나 하나 주어 신었노라고 변명을 하였다.

《필시 그게 왜놈의 앞잡이놈이 백세루양복에 받쳐신고 개화장을 휘두르던것 같소. 바빠맞으니까 벗어팽개치고 달아났지.》

《아무려나 맨발보다야 날테지요.》

최칠성이도 록록치 않았다.

《낫긴 뭐가 나. 그게 그렇게 좋으면 벗어던졌겠는가? 그리구 냄새를 맡아봐. 부르죠아냄새가 물컥물컥 날거란 말야.》

세걸이가 최칠성이에게로 시선을 돌리였다.

최칠성은 얼굴을 잔뜩 찌프리고 풀을 깔고 앉았다.

《아니 최동무, 신이 어떻게 됐다고 그러우. 좀 봅시다.》

《볼것이 못되오.》

최칠성은 절대로 발을 내놓지 않는다.

《저것 보지. 구두를 척 신은걸. 하하하하.》

심술이 바르지 않은 세걸은 끝내 발을 들어보고야말았다.

《하, 그거 굉장하군. 신통히 저 리명수목재판 왜놈감독네 개주둥이 같이 뭉툭하군.》

최칠성은 부르죠아냄새가 난다고 할적부터 갑자기 속이 께름해졌다.

그가 머슴을 살던 황지주네 아들녀석이 일본에서 공부하다 왔을 때 그런것을 신었다는 생각이 났다. 갑자기 속이 메슥메슥해진 그는 신짝을 벗어서 휘익 집어던졌다. 두개의 신짝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으며 저쪽언덕밑으로 날아갔다.

그 바람에 동무들이 또 한바탕 웃었다.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칠성이가 오늘 메주덩이같은 아들을 보았다는것이 부대에 선포되였다.

《아니, 그런데 동무는 왜 그런걸 여직 잠자코 있었소? 참 한심하군.》

매우 못마땅하다는듯이 박흥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부터 그러루 짐작은 하고있었지만 그것이 오늘과 같은 날에 있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갑자기 정중해진 박흥덕은 동무들앞으로 나서서 혁명의 불길속에서 새 세대가 탄생했다는데 대하여 축하를 해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동무들은 일제히 박수를 오래오래 계속하였다.

최칠성은 귀뿌리까지 새빨개져서 무릎사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절절매였다.

그다음에는 담배를 피우며 한담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들을 보았으니 이름을 무어라고 짓겠는가고 토론을 하였다. 그거야 진작 아버지되는 사람이 생각하고있을터인데 곁가마가 끓을 필요가 뭐냐고 하는 축도 있고 그래도 동무한테 경사가 났는데 그렇게 무정하게 지낼수야 있느냐고 하면서 이름을 하나 잘 지어주어야겠다고 고집하는 축도 있었다.

어느덧 글자로 생긴것이면 아무것이나 쌍을 맞추어 불러보게 되였다. 한문자를 아는 동무들은 항렬을 따져가며 좋다는 이름을 몇개씩 내놓았다. 별의별 이름이 다 나왔다. 목숨 수자를 넣어야 좋다는것, 복 복자를 넣자는것, 밝을 명자를 넣자는것, 바다 해자를 넣자는것, 범 호자를 넣자는것 등이 련달아 나왔다.

이것도 저것도 다 퇴맞고 어느 하나도 좋다는것이 없게 되였을 때 세걸이가 나서서 투덜거렸다.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아니래. 거 그러다 이름석자 짓는데 해를 넘길게 아니요.》

차기용이 쐐기를 질렀다.

《그럼 우리들의 후대의 이름을 짓는것이 그렇게 눅거린줄 아셨나, 하하.》

《대문이 열두개야.》

《난 말이요. 얼핏 생각나는것이 지금 우리는 혁명의 시대에 살고있다고 하잖아. 우리모두가 한평생 혁명을 해야 한다고 했지. 그래서 난 혁명하는 때에 낳았고 혁명을 잘하라는 의미에서 최혁명이라고 짓는것이 어떨가 하는거요.》

《옳소!》

《그것 참 좋겠소.》

《우리 기용동무가 이거야!》

박흥덕이 제잡담 성수가 나서 차기용을 덥석 들어안고는 빙글빙글 돌아갔다.

하하하, 그것 참 신통한데.》

만냥짜리야.》

《자, 그만치 토론하고 딴 의견 없으면 가결을 지어볼가?》

허리가 약간 구부정한 진일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동무들앞으로 손을 내들었다.

《동무들! 나는 기용동무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진작 내가 말하려고 했지만 짬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쏙새골전투를 하면서 도중에 어떤 명령을 받았습니까? 샘물골마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적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고 사령관동지께서 명령을 주셨다는것을 동무들도 다 알지 않습니까. 제가 짐작컨대 다른 리유가 또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령관동지께서는 산모가 누워있게 될 최칠성동무네 마을을 생각하신것 같습니다. 명령을 내리실 때 그 자리에 저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로 혁명의 불길속에서 우리 후대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그것을 잊을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옳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최칠성동무와 오늘 태여난 최혁명이를 축하해드립시다.》

진일만이 머리우에 손을 쳐들고 박수를 쳤다. 떠나갈듯 한 박수가 터지고 웃음소리가 숲속을 또 울리였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