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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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불이 타올랐다.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흩어져 불을 피우고 먹을것을 끓이거나 둘러앉아 몸을 녹이고있었다. 푸른 연기가 방금 어둠과 더불어 안식을 찾기 시작한 마을쪽으로 서서히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흘러내려갔다.

아낙네들은 말없이 아이들을 달래거나 먹을것을 마련하느라고 서성거리였고 남정들은 나무를 찍어 잠자리들을 만들기에 바빴다. 여기저기서 자기네 식구들을 부르는 고함소리가 들리였고 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한해동안에 간혹 땔나무를 찍기 위해 나무군이 몇명 드나드는 외에는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던 깊은 산골짜기에 하루사이에 놀랄만 한 생활이 펼쳐진것이다.

유격대원들이 흩어져서 인민들의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정옥이네 아이들을 다 잠재워놓고 돌아오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풀숲에 앉아 최진동이와 담화를 하고계시였다. 최진동은 그동안 소사하에서 떠나 지금까지의 사업정형을 요점을 추려 말씀드리고 오늘전투에 대하여 상세히 보고하였다.

그이께서는 최진동의 말을 들으면서 줄곧 이곳 인민들의 생활안정대책을 생각하고계시였다.

이깔나무장작이 툭툭 튕기면서 불길이 일었다. 우등불이 활짝 밝아지자 그이께서는 가지가 내밀린 분지나무에서 열매를 훑어 손바닥에 놓고 굴려보시였다. 또글또글 여문 분지씨에서 향기가 진하게 풍려났다.

리광동무도 동무처럼 대단히 넓은 지역을 차지하였습니다. 통신원의 보고에 의하면 오래지 않아 몇개 군이 들어앉을만 한 지역으로 확대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 동무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근거지가 형성되였으니까 그것을 곧 튼튼한 보루로 다져야 할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지금 쏙새골과 같은 형편에서는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팔소매 따진것을 가리우기 위해 어색하게 모로 비켜앉은 최진동을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시였다.

원래 괄괄한 성미인 최진동이도 그새 몰라볼만치 침착해졌다. 그는 꼬리가 치켜올라간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하다가 드디여 입을 떼였다.

《저도 그것이 매우 막연해졌습니다. 지역이 몇개 부락정도일 때는 몰랐었는데 단꺼번에 넓어지고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습니다. 지역은 넓고 따라서 군중이 부쩍 늘었는데 그것을 보위할 무력은 적고 또 〈토벌〉은 계속될것이고…》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도 보니까 군중들을 통솔하는것이 매우 약합니다. 명령에 따라 군중이 하나같이 움직여야겠는데 매우 산만합니다. 일제통치기구인 경찰이나 구장, 면장은 없앴는데 그대신 군중들을 통일적으로 이끌 조직이 없습니다.

반제동맹도 있고 공청도 있고 부녀회도 있는데 그 모든것을 하나의 조직에 묶어세우는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해결해야 근거지를 지킬수도 있고 생활을 안착시킬수도 있는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끼리 앉아 이러지 말고 이곳 쏙새골동무들과 토론해봅시다.》

《제가 조직책임자동무들을 불러오겠습니다.》

《아니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면 되니까. 한바퀴 돌아봅시다. 군중들의 동태도 알아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 그이께서는 앞서걸으시였다.

언덕을 내려서니 숲속에서 노래소리가 들리였다. 전광식이 군중들을 모여놓고 유격대원들의 오락회를 벌리였다.

불무지를 크게 일구고 그 두리에 삑 둘러섰다.

아이들, 젊은이들, 아낙네들, 늙은이들이 모여들었다.

밤은 벌써 퍼그나 깊었는데 그들은 웃고 손벽을 치고 떠들어대였다. 그들 대부분이 하루사이에 집과 먹을것과 살림세간들을 죄다 잃었거나 혹은 머리나 팔에 부상 당해 동여맨 사람들이였다. 그렇지만 유격대가 싸워이겼다는 그것때문에 아픈것도 고통스러운것도 몰랐고 또한 잠들수도 없었다.

쏙새골전투에서의 승리,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전광식은 두팔을 쳐들고 이쪽저쪽으로 달려다니면서 선동연설을 두간두간 섞어가며 오락회를 지휘하였다. 그는 이날의 격동된 자리를 《승리자의 오락회》 라고 불렀다.

독창도 있고 합창도 있었고 춤도 있었다. 누구나 있는 재간을 다 내놓았다. 변인철의 구슬프기도 하고 처량한 가락을 띤 퉁소독주도 있었다.

그이께서는 늙은이들이 모여선 등뒤에 가 서서 환희에 끓는 분위기를 자못 만족하게 바라보시였다. 마침 춤이 한창이였다. 춤추는데서도 역시 박흥덕이가 판을 친다. 키가 큰데다가 팔을 좀 우습강스럽게 놀려서 그렇지 차기용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걸이도 어깨가 잘 논다.

그는 다리를 쩍 벌리고 닁큼닁큼 뛰다가 훌쩍 뛰여오르며 한쪽다리로 빙그르르 돌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진봉남이도 팔다리가 매우 녹신녹신해서 보기 좋다. 허리를 살짝 꼬면서 팔을 감아올리는것이 매우 간드러지다. 박흥덕은 난쟁이흉내를 내며 앙금앙금 걸어 돌아가다가 마을청년 하나를 훌 나꾸채 춤판에 끌어들이였다. 와하 웃음이 터지고 손벽장단이 골안을 울린다.

《좋다! 좋지, 후어이. 후워!》

누군가가 홰불을 들어주었다. 얼굴들이 붉어보이고 군복이 더욱 빛을 낸다.

아이들이 눈을 비비며 달려오고 죽을 쑤던 아낙네들이 박죽을 든채로 구경을 한다. 무슨 큰 명절처럼 흥성거리고 간간이 웃음소리와 환호성이 터진다. 전광식이도 춤판에 뛰여들어 팔을 쩍 벌리고 돌아간다. 발끝으로 몇걸음 걸어나가다가 획 돌아서면서 앞으로 나갈가 뒤로 물러설가 흥이 나게 들먹이며 어깨를 으쓱으쓱하다가 빙그르르 돌면서 손벽을 치고 아래우로 팔을 벌리며 발을 구른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신 김일성동지께서 박수를 치시였다.

오락회가 한창일 때에 그이께서는 최진동이와 함께 쏙새골부락책임자들이 있는 웅뎅이로 내려가시였다.

반제동맹, 청년동맹, 부녀회, 농민협회의 부락책임자들과 통일적인 조직체를 내올데 대하여 협의를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장시간에 걸쳐서 이곳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시였다. 해방지구에 대한 범위와 주민구성, 식량형편, 부상자와 환자들에 대한 대책, 공부를 시켜야 할 어린이들의 수 등을 세세히 알아보시고 일일이 대책을 세우시였다. 부락책임자들과 담화를 끝내신 그이께서는 뭇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시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거의 웨치다싶이 큰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내옵시다. 지체해서는 안되겠소. 낡은 제도를 두들겨 마슨 터전우에 우리의 새 제도를 세웁시다. 그것만이 모든것을 해결할수 있는 가장 옳바른 길입니다.》

오래전부터 구상해오던것이 이제 와서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면서 령감을 불러일으켜 하나의 구체적덩어리로 떠오르신것이였다.

흥분을 일으킨 그이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수 있는 최진동이도 이때 무엇을 념두에 둔것인지 딱히 알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혁명에서 커다란 문제가 성숙되였다는것을 직감할수 있었다.

《그렇소! 정권! 정권을 가져야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등불가를 거닐면서 다시한번 웨치시였다.

최동무! 오늘은 이만하고 헤여집시다. 래일 다시 만납시다.》

동무들을 다 돌려보내고난 후에도 그이께서는 그 자리에서 계속 거닐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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