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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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도끼를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시였다. 나무들이 우거지기는 했지만 어느것을 골라잡아야 할지 잠시 생각이 나지 않으시였다. 손쉽게 찍어낼수 있는것은 맷맷하고 감이 좋은 이깔인데 그것은 잔가시가 많이 일고 진이 흘러서 아이들이 있을 초막으로는 적당치 못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덩굴을 헤치고 숲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시였다. 사시나무와 물박달나무가 총총히 들어선 곳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이것저것 골라보시였다. 그것들도 역시 가지가 많고 옹이가 울뚝불뚝하여 좋은것 같지 않았다.

한편 그 넘은쪽 골짜기에서는 전령병 두명과 행금아주머니가 도끼와 낫을 들고 닥치는대로 나무를 찍어다가 막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숲속을 한바퀴 돌아보시고난 후에 웃옷을 벗고 물푸레가 들어선 골짜기로 내려가시였다.

정옥이가 뒤따라 내려갔지만 그때는 벌써 굵직한 물푸레를 한대 찍어 넘어뜨린 뒤였다. 도끼를 어깨우까지 들어올리셨다가 엇가로 내리치면 텅하고 숲이 울리면서 두꺼운 껍질이 끊기고 허연 속살이 드러났다. 거듭 몇번 후려치는 사이에 도끼밥이 땅에 허옇게 널리고 민츨하게 자라오른 나무통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우지직 하고 소리를 내며 나가자빠진다.

한대 또 한대 그렇게 찍어나가시였다. 송구스러운 가슴을 안고 지켜보던 정옥은 끝내 참지 못하고 그이앞에 걸어나가 나직이 말씀을 올리였다.

《장군님! 제가 찍겠습니다.》

《오, 정옥동무 왔소? 아이들은 어쩌고 여기까지 왔소?》

흘러내린 속옷소매를 걷어올리며 그이께서는 뒤를 돌아다보시였다.

저우에서 유격대오빠들이 이깔나무를 적잖게 찍었습니다. 웃설미에 쓸 소나무가지도 해왔습니다.…》

《그렇소? 하지만 이깔보다야 이게 낫지. 그런데 아이들을 버려두고 혼자 돌아다니면 되나. 풀숲에 가시도 많고 벼랑이 있는데. 어서 돌아가보우. 내 몇대만 더 찍어가지고 갈테니까.》

말씀하시는것으로 보아 그이를 일에서 물러서시게 할수는 도저히 없다고 생각한 정옥은 낫으로 가지를 다듬어나가면서 일손을 도우려 하였다.

《빨리 올라가보우.》

《장군님, 저희들끼리도 아이들이 누울만 한 자리를 만들수 있습니다.》

정옥은 찍어넘긴 물푸레나무의 가지를 따며 물러나지 않았다.

가둑령너머 강변에서 만난 후 그이께서는 정옥이의 이악하고 깐지고 드새없는 성미를 알고있었지만 오늘 보니 보통내기가 아니다. 열여섯이라고 하지만 그가 감당해나가는 과업이라든지 생각하는품이 이미 성숙된 한 녀성일군과 다름이 없었다.

벌써 숲속은 어둠에 잠겨 사물을 가리기 힘들게 되였다.

나무를 다 찍고나신 그이께서는 적당한 기장을 남기고 가지를 쳐나가시였다. 그러신 후에 다래덩굴을 끊어 두대 혹은 석대씩 량쪽머리를 묶어 어깨에 메시였다.

《영차!》하고 힘을 쓰면서 바위등을 넘더니 언덕을 씽씽 오르시였다. 정옥이는 그중 통개가 굵은것을 골라 한대를 끌고 언덕을 넘어섰다. 벌써 대원들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자기들이 찍어온 나무로 막을 일궈세웠다. 우에다는 소나무가지를 얹어 바람가림을 하고 바닥에는 새초를 뜯어다 깔았다.

변인철이가 사령관동지를 알아뵙고 짐을 받으려 하였지만 벌써 나무는 땅에 내려놓이게 되였다. 나무를 내려놓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초막을 한바퀴 돌아보고나서 잠간 생각하시더니 변인철에게 삽이 어데 있느냐고 물으시였다.

《아무리 봐도 여기는 경사가 져서 아이들에게 적당한 자리가 못되오. 저기다가 다시 하나 지읍시다. 더구나 이깔나무재목이 마음에 안듭니다.》

변인철이 아무 말도 못하고 어리벙벙해서 정옥이를 쳐다보았다.

《장군님! 이것이면 넉넉합니다. 잘되였습니다.》

정옥이가 장군님앞으로 나서며 끝내 입을 열고야말았다. 군대오빠들의 수고도 수고려니와 다른 때처럼 이슬이나 가리우고 하루밤 지내기에는 그것도 괜찮다고 보는것이였다.

《장군님! 아이들이 벌써 들어앉아 좋아합니다. 다 걷는 아이들이 돼서 일없습니다. 제가 주의하겠습니다.》

정옥이는 거듭 말씀드려 어떻게 하든지 초막을 다시 짓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

《아니요. 다시 지읍시다. 이건 어른들이나 드는것이 좋겠습니다. 저 변동무랑 있게 하시오. 삽을 가져오시오.》

그이께서는 삽을 받아들고 오른쪽언덕에 내려서서 그중 아늑하고 평평한 곳에 자리를 정하시였다. 서너번 날라온 물푸레로 기둥을 세우고 다시 초막을 일쿼세웠다.

정옥동무, 저쪽것보다 어떻소? 마음에 드오?》

《좋습니다. 아주 살아도 될것 같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부모를 잃은 저 어린것들을 우리가 아무데서나 막 재워서 되겠습니까? 우리의 힘이 모자란다면 몰라도 어떻게 단 하루밤이라도 저 애들에게 이슬을 맞게 하며 불편한 길을 걷게 하겠습니까. 내 보기엔 저쪽것보다 훨씬 좋은것 같습니다. 여기 나서도 평평해서 마음놓고 걸을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데나 매달리는 버릇이 있어서 진이 흐르거나 옹이 많은 나무는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어떻게 됐습니까?》

저기서 끓이고있습니다.》

정옥이가 가리키는 언덕밑에서는 행금아주머니가 돌우에 남비를 올려놓고 불을 때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두세번 초막두리를 돌아보며 거듭 미진한데를 손질하시고나서 안에 들어가 새초를 편 자리를 공글어놓으시였다. 구석구석을 짚어가며 자리가 배기지 않는가, 꼬챙이가 올리밀지 않는가 보시고 담요를 펴고 아이들을 안아다놓으시였다.

밖으로 나오신 그이께서는 잠간 생각하시더니 잉크병으로 기름등잔을 만들어 불을 달아놓고야 마음을 놓으시였다.

샘물터에 이르러 정옥이가 떠드린 맑은 샘물로 손을 씻은 후에 그이께서는 바위등에 앉아 땀을 들이시였다.

정옥동무, 그런대로 하루밤 지내고 래일 다시 막을 잘 짓든지 마을로 내려가든지 합시다. 왜놈들은 저 애들한테서 너무나 많은것을 빼앗았습니다. 그렇지만 혁명은 저 애들이 잃은것을 다 찾아주고도 저 애들의 부모들이 바라던 그것을 다 안겨주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수건으로 손을 문대시던 그이께서는 산중턱에 한벌 널린 우등불들을 바라보면서 혼자소리처럼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지금은 저 어린것들이 누울 자리마저 변변한데가 없지만 이제 앞날에는 세상에서 제일 귀중하고 좋은것을 다 저 애들한테 차례지게 해야 합니다. 정옥동무!》

그이께서는 옷고름을 입에 물고 서있는 정옥을 돌아보면서 나직이 부르시였다.

《저 애들을 잘 돌보아주시오. 저 애들이 어떤 아이들입니까. 동무가 잘 아는것처럼 불바다속에서 살아났습니다. 아니, 피바다속에서 건져내였지요.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저 애들을 불쌍한 아이들이기때문에 동정을 해야 한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저 애들은 우리 나라의 앞날의 주인입니다. 우리가 오늘 피흘리며 싸우고있는것도 바로 저 애들의 앞날의 행복을 위한것입니다. 우리가 당한 그 학대와 주림과 굴욕을 어린것들에게 물려줄수 없기때문에 우리는 싸우고있는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지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저 애들은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로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동무가 잘 안다면 그 애들을 어떻게 먹이며 어떻게 잠재우며 또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는가를 알게 될것입니다. 정옥동무! 알겠습니까? 올라가봅시다. 저녁이 너무 늦은것 같습니다.》

우등불가에 서너명의 아이들이 앉았고 정옥이는 팔을 걷어올리고 솥에서 범벅을 퍼내였다.

일어들 나요. 저녁을 먹어야겠습니다. 영남이, 은실이, 어서 일어나요.》

정옥이가 몇번 더 고함을 치고 행금아주머니가 들어일구어서야 아이들이 다 일어났다.

우등불가에 나앉자 집단생활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들은 벌써 정신을 차렸는데 모두 눈이 새별처럼 반짝이였다. 그중에 두세 아이만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냥 졸고있다.

범벅을 담은 그릇이 보를 편 땅우에 주런이 놓이였다. 콩가루를 풀고 산나물을 썰어넣은 범벅덩이에서 김이 물물 났다. 아이들마다 범벅을 담은 그릇이 하나씩 차례지자 좀 큰것들은 먼저 게걸스럽게 떠먹기 시작하였다.

우등불가에 앉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거치른 음식과 그것을 먹고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계시다가 그중 나이 어리고 아직 졸고있는 계집애를 무릎에 들어앉히고 죽그릇을 받으시였다.

《자! 정신을 차려라, 저녁을 먹자.》

무릎에 안긴 다섯살짜리 은실이는 깡뚱 올라간 베치마를 입었는데 잠에 취해서 머리를 그냥 끄떡끄떡한다.

《물부터 마시고 자, 정신을 차려라.》

그이께서는 양푼에서 물을 떠내여 숟가락으로 떠먹여주시였다.

은실이는 얼결에도 먹을것이 있다는데 정신이 가서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거의 무표정해지신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죽을 계속 떠넣어주시였다. 마지막숟가락을 뽑자 은실이는 곧 긴 살눈섭을 내리깔고 졸기 시작하였다. 그이께서는 아이를 무릎에 눕히고 자신의 웃옷을 벗어 덮어주시였다. 머리도 쓸어주고 가슴도 다독다독해주시자 은실이는 눈을 뜨고 한번 올려다보더니 인차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버렸다.

아이들이 저녁을 다 먹자 정옥이는 초막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보아주고 돌아나왔다. 나무가지사이로 반나마 이그러진 달이 빨리 헤염쳐가는데 사시나무가지들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면서 풀판우에 얼룩진 그림자를 던지였다.

《장군님! 은실이를 내려놓으십시오.》

가만두시오. 이 앤 아직 깊이 잠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슴에 안겨 잘 나이인데 이렇게 풀숲에서 달을 쳐다보며 자야 하지 않습니까.》

그이의 음성은 약간 떨리는듯 하였다. 정옥이는 더는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우등불가에 쪼그리고앉아 불을 보았다.

자던 아이가 와뜰 놀라 팔을 내두르며 일어나려고 하였다. 낮에 총소리에 놀란 어린 가슴이 아직 진정되지 못한것이다.

그이께서는 은실이의 팔을 밀어넣어주고 가슴을 다독여주며 나직이 자장가를 부르시였다.


아가야 자장자장 어서 자거라


잔잔한 노래소리에 애무된 은실이는 곧 잠들어버리고 불곁에 앉은 정옥이도 깊은 명상에 잠겨들어갔다.

너울너울 흔들리는 불길을 들여다보고있느라니 그것이 이날이때까지의 모든 추억들로 변해서 하나하나 나타나보이였다.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 까맣게 재티가 오른 첫째의 얼굴, 그것은 다시 입을 벌리고 섧게 울고있는 은실이와 영남이의 얼굴로도 되여보이였다. 삐걱거리는 소달구지에 10여명의 아이들을 싣고 큰골에서 강을 따라 백여리, 거기서 가둑령을 넘고 또다시 장촌으로 내려가 백선생을 만나고 그곳에서 또 남쪽으로 혹은 북쪽으로 왕청, 연길계선을 따라 《토벌》 피해 밤에도 가고 낮에도 걸었다. 헐럭거리는 축에서 제가다리로 흔들리는 달구지바퀴, 몽몽히 피여오르는 연기에 뒤덮인 마을, 헐벗은 아이들, 먹고싶어하는 어린 얼굴들.

무엇보다도 목숨부터 살리고보아야 한다고 초조해서 뛰여다니는 그자신. 명상에서 깨여난 정옥은 자리에서 돌아앉아 잠자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꿈나라로 갔다.

《애들아, 잘 자거라. 그리고 울지 말아라. 너희들이 울면 나도 울고싶어진단다. 너희들은 외롭지 않아. 장군님께서 너희들을 안아주고 보살펴주셔. 듣느냐. 장군님께서 너희들을 잠재우기 위해 지금 자장가를 불러주고계신다. 어서 자거라, 그래서 빨리 크거라.》

정옥이는 팔소매로 눈굽을 찍어내고 잠든 아이들을 보고 또 보았다. 왜 그런지 자꾸 울고싶어졌다.


아가야 자장자장 어서 자거라


자장가소리가 또 들려왔다.

온 세상이 다 잠들어버리는것 같다.

드디여 정옥이도 턱에 무릎을 고이고 긴 살눈섭을 사르르 내리깔았다. 나라가 독립되였다고 두팔을 쳐들고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이 길이 꽉 메게 걸어나온다. 그중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모두 색동옷을 입고 좋은 구두들을 신었다. 아이들은 꽃묶음을 안았다. 저 멀리에서 팔을 벌리고 웃으며 다가오시는이는 장군님이시다. 환호성이 일었다. 정옥이는 자기도 그곳에 뛰여나가야겠는데 암만 달리려 해도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 걸음을 내떼며 팔을 쳐들어 만세를 불렀다.

몸을 비틀고 끙끙거리며 잠꼬대를 하고있는것을 보신 그이께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직이 부르시였다.

정옥동무!》

와뜰 놀란 정옥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환희에 끓던 장면은 가뭇 사라지고 너울너을 춤추는 불길만이 보이였다.

《곤한 모양인데 들어가 누워 자오.》

《아, 아닙니다.》

정옥은 장작개비를 불무지에 집어올려놓으면서 입을 오무리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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