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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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일단 물리친 유격대원들은 마을사람들을 구원하는데 달라붙었다. 중간마을을 돌아보고 온 차기용의 보고에 의하면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수십명 남아있다는것과 김정옥이와 백광명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였다.
불의에 타격을 받게 된 적들은 일시 물러섰을뿐이지 아주 퇴각한것은 아니였다. 그렇기때문에 마을을 빨리 비워놓지 않으면 안되였다.
마을에 남았던 늙은이들, 아이들이 다시 아우성을 쳤다.
유격대원들은 재빨리 늙은이들과 아이들을 업어 물을 건늬였다.
비교적 안전한데가 마을뒤 물웃목이였지만 그곳은 물살이 빨라 들어설수 없고 그래도 건늘만 한데는 서쪽으로 트인 넓은 여울이였다. 공교롭게도 그쪽은 적들이 동구밖에서 빤히 바라볼수 있는 곳이였다. 아무데로나 빨리 건너야 하였다.
강판에 사람들이 까맣게 들어섰다.
《동무들도 나만 따라다니지 말고 저 아이들을 업어건늬시오.》
총탄은 우박치듯 물우에 내리박혔다. 이끼오른 물판은 발을 붙일수 없게 미끄러웠고 빠른 물살은 가슴노리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뒤에 있소. 뒤에 또 있소.》
정옥이와 그가 업은 아이를 건늬라는 말씀이시다.
맞은편 기슭에 건너간 마을사람들이 급한 소리를 질렀다.
《저걸 어쩌나, 저걸…》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유격대원들이 물에 뛰여들어 마지막사람을 건네놓았다.
치렬한 사격이 한시간이나 계속되자 날이 어두워졌다.
《누나, 저기
정옥이가 획 고개를 돌리였다.
《뭐라구?》
얼결에 들은것이 전혀 믿어지지 않아 정옥은 첫째를 놓쳐버려서는 안될것처럼 두손으로 어깨를 와락 붙잡았다.
《이자 뭐라고 했니?》
《저기
첫째의 말을 확인한 정옥은 자리에서 팔딱 일어나 물이 철철 흐르는 적삼앞섶을 여미고나서 한걸음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물을 건네준분은 그저 보통 유격대원인줄 알았지
《이게 누구요! 정옥이가 아니요?》
고개를 들어올리지 못한채 정옥은 못박힌듯 서있었다.
그때 또 첫째가 나서며 머리를 꾸벅 숙여 절을 하였다.
《오, 첫째구나!》
《너희들이 여기 있었구나.》
첫째의 가느다란 손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터진 옷을 꿰매고있던 첫째의 누나, 살눈섭이 짙고 얼굴이 동그란 금숙이, 불을 불다가 쳐들었던 녀인의 얼굴, 민들레를 내들며 웃고있던 어린애, 피빛으로 물들어보이던 물웅뎅이 그 모든것이 일시에 떠올라 앞을 스치였다.
이윽해서
감격에 목메인 정옥은 얼굴을 싸쥐고 울었다. 아무리 곤난해도 기를 잃지 않았고 눈물 한방을 흘려보지 않던 그가 마치 어린애모양으로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울지 마오. 소대장이 울면 되나. 자 어서, 이젠 날이 저물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