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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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중대와 함께 전투를 하고있던 최칠성은 사령부가 뒤산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춤을 추듯이 기뻐하였다.
그는 흙먼지가 꺼멓게 오른 얼굴을 번뜩이면서 사령부가 인솔한 부대가 얼마나 굉장한가를 신나게 설명하고 이제는 문제없다고 단언하였다. 연길중대동무들은
화승대를 걸머멘 그가 벼랑턱을 기여올라올 때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전투정황을 살피고있던 그는 불시에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회에 좋은 총을 하나 뺏어가지고 동무들앞에 나타나고싶었다. 그는 더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다래덩굴밑을 빠져 강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는 풀숲에 엎드려 잠간 앞을 내다보다가 팔굽으로 기여나갔다.
얼마 안 가면 《토벌대》 놈들이 엎드려 마을에 대고 총질하는 방천에 이르게 된다. 번개치듯 달려들어 총을 쏘고있는 왜놈 하나를 타고앉아 닭잡듯 해야 할것이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든 알바 아니다. 어찌되든지 될대로 되라지, 한자루 움켜쥔 다음에는 절대로 놓지 않을테니까, 설사 목을 끊는다 해도 그것을 놓을수는 없으니까. 그는 쑥밭에 다리를 벌리고 엎드려 총질을 하고있는 새노란 왜놈병사를 향해 바싹바싹 기여나갔다.
최칠성이 아직 목표물에서 한 30메터 사이를 두고있을 때 전투정황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까닭은 알수 없는것이였지만 어쨌든 그것은 현저하였다. 적들이 불시에 혼란에 빠져 급기야 퇴각을 시작하였다. 아군의 화력이 어떻게나 맹렬하고 정확했던지 놈들은 어데로 빠져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였다. 하여튼 손쓰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가 온것이다. 겁에 질린 놈의 어느것이나 쥐고 당기면 될판이였다.
입가에 웃음을 띤 그가 쑥대가 우거진 방천으로 기여나가는데 모래불에 총을 멘채로 자빠진 놈이 눈에 띄였다. 행운이 이렇게 쉽게 차례질줄은 미처 몰랐다. 굶주린 사람이 밥그릇을 만난것처럼 분별없게 된 그는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나 물탕을 밟으며 그놈에게 손을 뻗치고 달려들었다. 총을 쥐려는 그 순간이였다. 죽은줄 알았던 놈이 누운채로 《꽝.》하고 총을 냅다 갈기는것이였다.
마을에 들어갔다가 뒤늦게 퇴각하게 된 놈이 개활지대에 들어서게 되였을 때 개개 명중사격이 날아오는통에 너무 바빠 풀숲에 죽은척 하고 자빠져 케를 보고있었던것이다.
최칠성은 방금 뛰쳐나온 검정콩알이 자기의 생명을 앗아가고도 남음이 있다는것을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다짜고짜로 그놈의 배를 가로타고앉으며 총가목을 움켜쥐였다. 아래 깔린 놈은 힘이 어떻게나 센지 대뜸 최칠성을 안고 뒤넘이치더니 깔고앉았다. 주먹이 날아왔다. 최칠성은 눈에 별찌가 번쩍하는것을 감각하였고 가슴이 답답한것을 느끼였다. 몇해전에 지주네 집에서 구들을 뜯어고치는 날 흙구뎅이에 들어갔다가 어장이 무너져 깔렸던 그때와 신통히 비슷하였다. 그는 입을 딱 벌리고 악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그놈의 동가슴을 내지르며 온몸의 힘을 끌어 허리를 일으켜세웠다. 두개의 동체가 같은 자세로 우뚝 일어나앉게 되였다. 일어나앉은 그놈은 주먹으로 최칠성의 턱주가리를 불이 번쩍나게 또 내갈기였다. 강타를 받은 최칠성의 목은 이리저리 기울어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지고 손끝이 다 재릿재릿해왔다. 그놈은 최후의 급소를 질러서 조선청년 하나를 보기 좋게 녹초를 먹일 생각인 모양이였다. 얏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주먹이 앞가슴으로 날아들어왔다. 그 찰나 최칠성은 꺽 하고 외마디 목멘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곤드라졌다. 그놈은 승리자의 자부심을 안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다리를 뽑고 일어나 내빼려고 하였다. 그때 최칠성은 갈퀴같은 손으로 놈의 멱다시를 움켜쥐면서 이마로 그놈의 동가슴을 냅다 받아넘기였다.
《이놈아, 해보자. 짚신짝이 이기나 게다짝이 이기나. 젠장.》
최칠성은 목을 뒤로 젖히고 넘어가는 놈의 목줄을 두손으로 내리눌렀다. 시커멓게 터실터실한 흙덩이같은 손이 희멀쑥하고 굵직한 목을 사정없이 압착하였다. 내리누르면 올리밀고 또 내리누르면 또 올리밀기를 대여섯번 거듭하였다. 이윽해서 손바닥에서 깔때기 물먹는 소리같은 꼬르륵소리가 나더니 버드럭거리던 왜놈의 다리가 쭉 펴지고 잠잠해졌다.
《네가 혁명의 손에서 빠져나갈줄 알았니?》
더는 올리미는 힘이 없게 되자 그는 입안에 한줌이나 들어간 모래를 내뱉으며 풀숲에 떨어진 총을 집어들었다.
《야 이 쪽발이새끼야, 네가 이걸 나한테 선사하러 바다건너 멀리까지 왔었구나.》
그는 총가목에 발린 흙을 손바닥으로 썩 문대고나서 침을 또 한번 퉤 뱉고 돌아섰다.
강바닥을 걷는데 발이 배기였다. 그제서야 그는 신이 벗어져 맨발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풀숲이나 들판을 밟을 때면 찔러배겨 걸어낼수가 없었다.
그는 꺼멓게 먼지가 오른 얼굴을 들고 사위를 살펴보았다.
실로 보기에도 스산한 수라장이 펼쳐져있었다.
흙먼지에 덮이고 짓이겨진 풀판에는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리였고 물웅뎅이들에는 벌겋게 피물이 괴여있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면 뉘뉘한 비린내가 풍기였고 어데선가는 아직 무엇이 타고있는 모양인지 잔디판으로 푸르스름한 연기가 날려가고있었다. 쑥대가 서너대 일어선 언덕에는 스물둬서넛났을 놈이 땅에 입을 벌려대고 넙적 엎드려 뻐드러졌다. 눈이 미치는데마다 총알깍지가 널리고 어지러운 발자국이 나있다.
두툼하고 벽돌빛같은 최칠성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더니 드디여 큼직한 앞이가 드러나면서 《허허허.》하고 웃음이 튕겨나왔다.
그는 방금 앗아멘 총을 추슬러올리고나서 또 걸음을 떼였다.
다리를 실룩실룩하며 시체들을 피해 걷다가 흙이 잔뜩 발린 왜놈들의 전투모를 보자 발로 탁 차던지였다. 박통같은것이 데그르르 굴러서 물웅뎅이에 철썩 떨어진다. 그통에 개구리들이 기겁을 해서 물속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런 식으로 얼마간 걷다가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누렇고 번들번들한 야전용가죽가방이 눈에 뜨인것이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굽혀 집어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았다. 속에는 아무것도 없고 방금 어느 놈이 내친 모양인지 비누내가 물씬 풍기였다. 그는 서너바퀴나 꼬인 멜방을 풀어 바로잡고나서 어깨에 훌쩍 올리메였다.
또 한참 걸어가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풀밭에 신짝이 하나 딩굴었다. 그것은 신사구두였다. 둬걸음앞에 또 한짝이 있고 그옆에 안경을 낀 놈이 네활개를 펴고 자빠져있었다. 알룩알룩한 넥타이를 맨것으로 보아 통역관쯤 되는 놈 같았다. 풀우에 딩군 신과 벗은 자기 발을 둬번 번갈아보다가 신짝을 집어 컬레를 맞추어보았다. 발에 신어보니 신통히도 꼭맞았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해보고 발을 굴러보았다.
《괜찮아, 꿩대신 닭이면 어떤가, 맨발보다야 낫지.》
산비탈에 이르러 그는 땅에 주저앉아 길섶에 있는 진흙을 한줌 움켜서 반들반들한 구두코에다 석석 문대였다. 너무 윤이 나는것이 보기 싫었는데 온통 흙을 칠해놓으니 거무죽죽한것이 그런대로 신을수 있을것 같았다. 다음 그는 들판이건 나무그루건 마구 밟아뭉개며 산으로 달아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