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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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 되였을무렵 앞마을이 완전히 불길에 휩싸이게 되자 다음에는 중간마을과 샘물골로 밀려갔다.
최칠성은 민첩한 동작으로 철알을 피해가면서 돌을 안아다가 내리굴렸다. 어떤것은 통채로 굴려내려가고 어떤것은 부서져 수천쪼각의 파편이 되여 놈들의 머리우에 쏟아져내려갔다. 기여오르다가는 내리뛰고 내리뛰다가는 철알에 맞군 하였다.
해가 기울녘에는 유격대편이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되였다. 병력이 적은데다가 위치가 로출되였고 더구나 탄알이 떨어졌다.
《토벌대》놈들은 마치 탄알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있었던 모양인지 이쪽에서 사격이 좀 뜸해지자 더 극성스럽게 달려들었다. 일부는 고지를 향해 전투를 계속하고 다른 일부는 중간마을에서 닥치는대로 만행을 감행하고있었다. 공교롭게도 중간마을은 강을 끼고있었고 강웃켠에는 곧 가파로운 산이 솟아있었다. 당황해난 피난민들이 밀려들다나니 더 뒤로 물러설수 없는 골목에 몰키게 되였다. 피난민들가운데는 연길지구 주민들이 대부분이였지만 그밖에 여러 지방 사람들도 끼여있었다.
유격대는 군중들을 샘물골쪽으로 뽑아 산으로 오르게 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였다.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탄알과 돌로써 놈들의 앞길을 막아보려고 하였다.
형세가 불리해졌다는것을 알게 된 중간마을 군중들은 모두 결사적으로 대항할 결심을 하였다. 돌을 든 사람들, 날창과 곤봉을 쥔 사람들이 어린것과 로인들, 부녀들을 둘러싸고 목숨이 붙어있는 마지막순간까지 싸울 태세를 취하였다.
도수가 높은 은테안경을 낀 백광명선생은 밖에 뛰여나가 아이들을 불러내였다. 30여명의 남녀학생들이 일시에 쏟아져나왔다. 삼간짜리 두채의 귀틀집에 들었던 아이들이 다 나왔다.
그는 집뒤로 돌아가 정옥에게 고함을 쳤다.
《빨리 나오우. 〈토벌대〉가 다 올라왔소. 빨리.》
원래 무기력형인데다가 가슴을 앓고있는 그였지만 얼마나 민첩해졌는지 몰랐다. 흰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은 단발머리 정옥이가 문을 밀어제끼고 밖으로 뛰여나왔다. 그들은 영평에 갔다가 지난달에 여기서 50리나 되는 비석거리에서 만났던것이다.
정옥은 아이들에게 공부시킬 포부를 버리지 않고 끝내 백광명을 끌어오는데 성공했다. 백광명은 《토벌》을 피해 북으로 올라오다가 정옥을 만나 비교적 안전하리라고 본 여기 쏙새골로 들어왔던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빠져야겠소.》
백광명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였다.
《알았어요.》
정옥은 재빨리 집뒤로 사라졌다.
이때 피뜩 백광명의 머리에는 학생들앞에서 당황한 빛을 보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당 한쪽으로 나서며 은테안경이 번뜩이는 얼굴을 들고 고함을 쳤다.
《애들아! 저 산꼭대기를 보아라. 유격대아저씨들이 왔다. 왜놈들을 족친다. 노래를 불러라!》
학생들은 선생의 도고한 웨침소리에 힘을 얻었다.
《우리 유격대다!》
아이들이 환성을 올리였다.
목이 약간 길어보이고 눈이 새까만 첫째가 나팔을 불었다. 그보다 좀 커보이는 상훈이가 선창을 떼자 곧 합창이 시작되였다.
…
나가자 판가리싸움에 나가자 유격전으로
손에 든 무장을 튼튼히 잡고…
…
철알이 바람벽에 툭툭 소리를 내며 꽂히군 한다. 배낭을 멘 아이들이 어깨를 겯고 산마루를 향해 노래를 부르고있다.
백광명은 무명홑섶 양복깃을 잔뜩 추어올려서 한결 더 초라해보이는 차림을 해가지고 마당 한가운데 서서 처절한 심정으로 아이들과 산마루를 번갈아보고있었다.
이제는 갈데올데 없었다. 몇분후이면 《토벌대》놈들이 지난봄에 저 큰골에서 했다는것처럼 날창으로 하나하나 찍어넘겨뜨리든지 집에다 던져넣고 불을 지를수도 있다.
백광명은 지성인다운 예감으로써 자기의 최후가 어떻게 되리라는것을 상상하면서 비장한 결심을 다지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한데 몰리지 말고 분대별로 샘물골쪽으로 빠지라고 이른 다음 아직 한번도 쏴보지 못한 화승대를 들고 한 서너집뒤 귀틀집 벽모퉁이로 돌아가 엎드리였다.
한편 김정옥은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 같이 온 행금이라는 아주머니에게 자기가 지시하기 전에는 아이들을 절대로 흩어지지 못하게 하라고 이른 다음 앓는 아이들을 싸안고 나왔다.
《정옥동무! 좀 기다리우.》
백광명은 옆집으로 나가 그중 큰 학생들을 추려가지고 김정옥이가 맡은 어린것들을 하나씩 업어 물건너까지 나르라고 지시하였다. 아동단원들은 재빨리 방안으로 달려들어가 어린것들을 하나씩 안고 나왔다. 저들이나 그들이나 별로 차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한살이라도 더 먹은 탓으로 그리고 아동단에서 준 훈련으로 해서 훌륭히 자기 임무들을 맡아나섰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토벌대》놈들이 개울을 건느면서 마을에 대고 사격을 개시하였다.
바깥에 인적이 얼씬만 하면 그곳에 대고 줄탄을 퍼부었다.
아이를 안은채 정옥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저놈들, 저놈들!》하고 피타는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학생들은 백광명에게서 무슨 좋은 지시가 있을가 해서 겁에 질린 눈을 번뜩이며 쳐다보았다. 백광명은 눈을 딱 내리감고 이를 부드득 갈면서 앙상한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