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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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는 쌀을 일고있다. 매끈하게 빗어넘긴 머리와 그밑에 언제나 조용히 내리깔고있는 눈, 당실한 코, 최칠성은 예쁘장한 안해의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다 잊은 일이 생각히운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구석에 놓았던 배낭을 풀었다.

《내 선물을 가져왔소.》

《군대가 선물은 또 무슨 선물이예요.》

쌍가마의 약간 도드라진 입술이 벌어지면서 박속같이 흰 이를 드러내놓는다.

《알아맞춰봐.》

불룩한 배낭을 무릎에 놓고 웃는 최칠성의 그리 크지 않은 두눈이 아예 없어진것처럼 작아진다.

《내가 그런걸 어떻게 알아요.》

《보면 알겠지?》

안해에게 배낭을 훌 밀어주고난 최칠성은 다시 방바닥에 누워서 어쩌는가를 곁눈질해보고있다.

배낭을 끄르던 쌍가마는 몸을 움츠리며 소리를 지른다.

《어마나, 당신두!》

《뭔데 그래.》

《아이참.》

박흥덕이 꾸려준 미역과 쌀이 나왔다.

와삭와삭 소리가 나는 미역춤을 움켜잡았던 쌍가마의 손이 가늘게 떨리기까지 하였다. 오래간만에 맡아보는 향긋한 간내가 코로 스며드는 순간 그는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것은 남편의 열마디 말보다 더 강한 사연을 말해주고있는것이였다. 목덜미까지 빨갛게 된 그는 얼른 배낭을 돌려놓고 들먹이는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 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상에 마주앉게 되였다. 이가 빠진 사발에 조밥 한그릇, 된장찌개와 나물무친것 한접시 그것이 전부이다. 최칠성은 벌떡사발에 떠온 랭수에다 밥을 말아 찌개를 해서 탐스럽게 먹으면서 그동안 보고 들은 가지가지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하루종일 가야 묻는 말 외에는 별로 말을 하지 않던 남편이 말수도 늘었고 또 아는것도 많아졌다. 어떤 때는 손짓, 몸짓도 해가며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한다.

저녁상을 물린 후에 쌍가마는 등잔밑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그는 팔베개를 베고 누워 계속 이야기를 하였다.

유격대에 들어가기 전에 박흥덕이란 친구를 만나서 《공산당선언》때문에 혼이 난 이야기, 군복을 입고 총을 받아메던 이야기 그리고 백두산기슭을 꿰질러 천리행군을 하는 도중에 처음으로 우리 글을 가갸거겨부터 배우게 되였으며 이제는 얼마간 글을 읽고 쓰게까지 되였다고 겸손한척 하면서 홍두깨같은 자랑을 내놓았다. 부대에는 꼬마대원도 있으며 누구나 밥도 짓고 손수 바느질도 한다는것 그리고 재미있는 동무들이 많다는것을 이름과 기질과 성격의 특징을 들어가며 말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그는 홀연 자기의 말재주가 너무나 없는데 놀라는것이였다. 그것은 군복을 입고 총을 메게 되였다는것과 글을 배웠다는 대목에서는 안해가 어느 정도 놀라움도 표시하고 관심을 가지는것 같았으나 그밖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별로 신통히 여기지 않으면서 하던 일만 계속하고있는데 주의가 갔던것이다.

《어때, 대단하지?》

《굉장해요. 꼭 어린애같아졌어요.》

《아니, 뭐? 가만있자, 실은 지금까지 내가 얘기한건 아직 시작이고 이제부터 진짜알맹이가 나올판이야.》

《성질도 막 급해지구.》

《하하, 당신이 알긴 아는구만. 느려빠져가지군 유격대생활을 못해. 절대적으로 그렇게 돼서는 전투가 안된단 말이야.》

쌍가마는 다시한번 놀랐다. 말씨까지 달라지고 부녀회모임에 구에서 내려왔다던 그 사람처럼 절대적이니 뭐니 하는 그런 투의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오는것이다. 쌍가마는 이전에 남편이 입다 벗어놓고간 베적삼의 단추를 달면서 그냥 웃고만 있다.

《자, 이제부터 하는 얘긴 허술히 들어선 안되는거야. 잘 듣소.》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랭수를 한사발 청해서 단숨에 벌떡벌떡 들이키고나서 김일성장군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체 조선인민의 운명을 한어깨에 걸머메신 그이께서는 오래전부터 즉 열다섯살때부터 혁명을 이끌어오셨는데 지난봄에는 무장유격대를 조직하고 령도하고계시며 이번에 그이와 함께 압록강지구까지 갔었다는것을 거침없이 내리설명을 하였다. 그런 다음 바로 그이께서 글을 배우라고 공책을 손수 매여주셨고 본보기글을 직접 써까지 주셨다는것과 그날 너무 감격해서 밤새 자지 못하고 울었다는 말을 하였다.

쌍가마는 손을 멈추고 한결 더 크고 자랑스러워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밤이 깊어지자 풀숲에서는 귀뚜라미가 요란스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최칠성은 이야기를 또 계속하였다. 주로 이때는 랑만에 찬 미래를 과거와 대조하는 방법으로 흥미있게 말하였다. 팔자탓이라고만 알았던 머슴살이는 영영 과거옛말로 되였고 이제 싸워서 조국을 해방하고 착취없고 압박없는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면 로동자나 농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된다고 하였다. 지금은 이렇게 왜놈들때문에 뭇별이 내다보이는 풀막에서 살지만 멀지 않은 앞날에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한 제도에서 살게 될것이라고 하였다.

쑥대가 내리드린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는 끝없는 환상에 사로잡혀 어리벙벙해진 안해를 이리저리 끌고다니였다. 아득한 먼 앞날로 날아가는가 하면 행복하고 단란한 생활을 펼쳐보이기도 하였다. 일손을 멈추고 황홀해진 눈으로 남편을 쳐다보고있는 순진한 쌍가마는 그 모든것을 조금도 의심할바없는 진실로 믿고 그것때문에 무척 즐겁고 가슴이 활짝 열리는것 같았다.

밤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가 날이 샐녘에 잠자리에 들게 되였을 때 최칠성은 방구석에 눕혔던 화승대를 머리맡으로 옮겨놓으며 또 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였다.

유격대원들이 메고있는 한자루한자루의 총에는 깊고 높은 뜻이 깃들어있는데 어떤 총에는 전우의 피가 스며있다고 하였다. 그런 후에 그는 차광수와 함께 통화에서 처음으로 왜놈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봤다는것과 지금까지 말한 그 모든것, 해방도, 독립도, 사회주의도, 행복한 생활도 모두 총을 들고 싸우는데서 얻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다 최칠성은 베개를 가슴에 깔고 엎드린채 안해가 보라는듯이 화승대를 끌어다쥐고 가목도 쓸어보고 방아쇠도 철꺽철꺽 당겨보는것이였다. 쌍가마는 문득 한마디 물었다.

《그게 무슨 총이예요?》

화승대라는거요.》

좋은건가요?》

《그닥 좋은건 못돼. 구식이지.》

《그러니 잘 싸우진 못한가보지요? 좋은 총을 타지 못하신걸 보니?》

《당신 말이 옳아, 잘 싸우지 못했어. 그렇지만 이제 좋은걸 하나 뺏어야겠어.》

최칠성은 어색한 낯을 지으며 솔직한 고백을 하였다. 그의 가장 절절한 소망은 바로 그것이였다. 그는 정색해서 말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말씀하셨어. 무기는 어데서 구하는가? 돈이 있으면 살수도 있고 또 만들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길은 적의 무기를 빼앗는것이다. 이렇게 말이요. 그러시면서 무기를 얻기 위해선 죽음을 두려워 않고 나서야 한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무기는 어데서 타는게 아니라 왜놈것을 빼앗는단 말야. 부녀회원이 그런것쯤이야 알아야지. 하하하.》

말싱갱이에서는 한번도 안해한테 이겨본적이 없는 그가 처음으로 의젓하게 한마디 하였다. 그때 어디선가 멀리에서 울리는 총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흔들며 들려왔다.

《총소리가 나는군요.》

신경이 한결 예민해진 쌍가마가 눈이 커져서 남편을 바라보았을 때 최칠성은 대답하였다.

걱정말어. 그깟놈들이 이제는 제 마음대로 놀아나진 못할테니까.》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의 숨을 내쉰 쌍가마는 곧 등잔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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