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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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밖까지 하얗게 따라나왔던 마을사람들의 모습은 차츰 작아졌다.

그러나 애타는 환송의 웨침은 지금도 간간이 여운을 끌며 들려온다. 유격대는 류하지구 인민들의 간절한 소원과 석별의 눈물 그리고 뜨거운 환호를 가슴에 안고 벌판으로 나서기 위해 산을 내리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꾸만 따라오는 최창걸의 안해와 작별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이의 품에는 최창걸이 남기고간 아들이 안겨있었다. 아직 목가눔도 못하는 물애기였다.

이제는 고산자마을에서도 퍼그나 멀리 와서 부인을 돌려보내야 하겠으나 창걸의 살붙이, 동지의 피덩이인 아기를 품에서 떼여놓기가 너무나 괴로우시여 이처럼 부둥켜안고 내처 걸어오신것이였다. 정말이지 자신께서 가시는 길이 피바다만리, 눈보라만리만 아니라면 해방된 조국으로 가는 그날까지 이렇게 안고있고싶으신 혁명전우의 아들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심중이 이럴진대 아버지를 잃은 아이를 키울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하랴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으시였다. 그런데 지금 이 애의 어머니는 자기를 유격대에 받아달라고 하는것이다.

오늘 아침 그이를 찾아온 최창걸의 안해는 남편의 소원이 유격대에 입대하여 총을 잡고 왜놈들과 싸우는것이였는데 그 남편을 대신하여 자기가 싸울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였었다.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겠으니 근심하지 마시라며 너무나 간절하게 하는 부탁이여서 그 자리에서 선뜻 거절할수 없으신 그이이시였다.

하지만 이제는 말씀을 하셔야 하였다. 언제까지나 따라올수도 없는 길이였고 또 함께 갈수도 없는 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앞에 공손히 머리를 수그리고 서있는 녀인에게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아주머니, 이제는 그만 들어가보십시오.》

간밤에 어디서 얼마나 울었는지 부어오른 눈덕이 벌거우리하게 상기된 녀인이였다. 차광수의 말대로 얼마나 강의한 녀성인지 아직 한번도 눈물은커녕 쓸쓸한 모습도 보이지 않은 창걸의 부인이였다. 하지만 그 견인불발의 대쪽같은 마음속에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내면서 흐르는 끈적끈적하달만치 진한 피눈물을 너무나도 환히 들여다보시는 그이이시였다.

허나 이제 유격대입대를 불허하면 어떻게 생각할는지는 알수가 없으시였다. 여직껏 참아왔던 설음과 슬픔을 왈칵 터뜨릴지, 아니면 기어이 가겠다고 떼를 쓸지 참으로 상처입은 녀인의 감정변화를 가늠할수가 없으시였다.

다음순간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제부터는 창걸의 부인을 남편을 잃은 안해로서, 아버지를 잃은 아이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한명의 녀성동지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창걸의 죽음으로 한명의 동지를 잃은것은 사실이나 바로 그 자리에 그의 안해를 세워두고싶으시였다.

그것은 창걸이 희생되여 생긴 가슴속 한구석의 빈구석을 메꾸시려는 의도에서가 아니였다.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고 동지들과 함께 혁명을 완수하시려는 그이의 신념에서 출발한 의지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타이르는듯 한 어조로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유격대에 입대하는 문제는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녀인이 눈길을 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녀인을 마주보기가 어려우시여 시선을 아이에게로 돌리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품에 안으신 아이를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정채 도는 까만 눈망울에 티없이 맑은 빛을 함뿍 담고 쳐다보는 아이는 신통히도 자기 아버지를 닮아 이 시각 그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있었다. 그런데 손을 들어 그이의 옷깃을 매만지던 아이가 불쑥 《아빠, 아빠.》하고 부르는것이 아닌가.

이틀밤을 안아주셨더니 그 애는 자신을 아버지로 아는것이였다.

《아빠, 아빠.》

아이는 새쭉 웃기까지 하며 계속 부른다.

금방 피여나기 시작한 고사리같이 귀엽기 그지없는 손으로 자신의 볼을 매만지며 《아빠》라고 부를 때 그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희생된 동지에 대한 슬픔과 아직 자기 아버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렇게 어리디어린 아이를 남겨두고 먼저 떠나간 사람에 대한 원망, 이 나라 동서해의 거창한 물로써도 결코 씻을수 없는 국민부테로분자들의 죄악에 대한 불타는 증오, 허나 암흑에 짓눌린 겨레와 짓밟힌 나라를 위해 피를 짜고 뼈를 깎으면서라도 참을수밖에 없는 고통이 하나로 융합되여 뜨거운 격정으로 끓어올랐다.

그토록 강인하던 최창걸의 안해는 아빠를 찾는 아이의 소박한 울부짖음에 더는 주체하지 못하고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눈물을 터뜨렸다. 참고참았던 눈물인지라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까지 터져나오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아이의 볼에 자신의 볼을 꼭 눌러대시고 창걸이 누워있는 멀리 고산자의 뒤산쪽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시였다. 아래 이몸에 쌀알보다도 작은 하얀 이 두대가 뾰죽하니 내민 앙증스러운 입으로 웅얼댄 아기의 두마디 말은 수천의 장정들도 몸부림치게 하는 크나큰 힘을 가지고있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하여 꼭 품어만 주면 누구나 다 아버지라 생각하는 천진스럽기 그지없는 이 어린것에게서 어머니마저 떼여놓을수가 없으시였다.

나라잃은 백성에게 나라를 찾는 일보다 더 중하고 신성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빼앗긴 나라를 찾는 대업에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나서야 한다. 그 일에 늙은이와 젊은이, 남자와 녀인의 경중이 있어서는 안되는것이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부인의 뜨거운 애국심과 불타는 적개심을 충분히 느끼실수는 있었지만 나라도 잃고 아버지마저 빼앗긴 아이에게서 이제 또 어머니까지 떼여놓을수는 없으시였다. 정녕 그럴수 없으시였다.

최창걸의 안해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자기로서도 그치려고 애쓰는 완강한 노력이 엿보였으나 여직껏 애써 참아왔던 눈물인지라 좀처럼 진정을 하지 못했다.

부대는 이미 산을 내렸으나 그이를 기다려 산밑에 머물러있었다. 차광수가 이리로 오는것을 띄여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짓으로 그를 멈추어세우시였다. 최창걸과 유별했던 차광수가 이 마당에 나타나 할수 있는 일이란 녀인을 더더욱 슬프게 하는것밖에 없음을 너무도 잘 아시였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녀인이 스스로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시였다가 심호흡을 크게 하시고나서 말씀하시였다.

《아주머니, 이 애를 잘 키워 아버지의 뒤를 잇게 합시다. 그것이 바로 창걸동무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녀인은 가슴이 끓어올라 대답은 올리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는 그이에게서 아이를 넘겨받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제 돌아갈 길이 먼데 안고가기가 힘들것이니 업고가라고 말씀하시며 손수 아이를 어머니등에 업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발길을 돌리시기가 너무너무 힘들어 또다시 어머니등에 업힌 아이에게로 다가가시였다, 옥엽같은 손을 꼭 쥐여주시니 아이는 또다시 《아빠, 아빠.》하고 부른다. 그러자 창걸의 부인이 얼른 아이를 들춘다. 눈치도 빠르고 웅심도 깊은 녀인이였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가 하는 그 말이 그이의 가슴속을 얼마나 깊고 아프게 허비는지 알수 없는지라 신이 나서 계속 웅얼거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또다시 눈물을 보이실수가 없으시여 앞으로 자주 들리신다는 말씀을 남기신채 결연히 걸음을 떼시였다.

자신께서 걸으시는 길이 보이지 않으시였다. 해빛이 쏟아져내리는 푸른 하늘도 한쪼각 보이지 않으시였다. 새들의 청아한 지저귐소리도, 나무잎을 흔드는 비단결같은 바람소리도 들리시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의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던 초롱초롱한 검은 눈동자와 《아빠》 목메여 찾던 목소리만이 그이의 안광에, 귀전에 방불히 울려퍼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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