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회 )

서 장

1


그날 중부산악지방에서는 사나운 눈보라가 산과 골짜기들을 휩쓸고있었다. 희뿌연 태양도 뽀얗게 흩날리는 눈가루의 회오리속에 가리워지고 우-우- 하는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소리와 함께 몰아치는 세찬 눈보라에 강기슭의 버드나무들은 줄줄이 내리드리운 가느다란 가지들을 머리태처럼 날리며 태질하고있었다.

그 시각 천리전선길을 헤쳐오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의 시창유리를 때리는 하얀 눈가루들을 점도록 내다보고계시였다.

지금은 1997년 12월,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네번째로 보내는 해이다. 아직도 많은 공장들이 숨을 죽이고있고 아빠트의 창가들에 불이 꺼져있으며 철길우에서는 기차들이 자주 멎어서군 하는 시련의 해이다. 하지만 우리는 혁명적군인정신을 홰불처럼 추켜들고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하여 그이께서는 오늘 어느 한 인민군부대의 훈련장에서 울리던 찌렁찌렁한 구령과 총검을 높이 추켜든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을 줄곧 상기하시였다. 《결사옹위》, 《결사관철》 목청껏 웨치며 힘과 용기를 주던 병사들의 함성…

그리고 그이의 기억속에 새겨진 또 하나 인상깊은 한 전사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시였다. 그것은 어느 한 중소형발전소건설공사장에서 있은 일이였다. 오늘같이 혹독한 강추위속에서도 인민군전사들은 정대로 바위를 까고 돌을 나르며 사석언제를 쌓고있었다.

한순간 모자도 쓰지 않고 맨머리바람으로 쇠질통을 지고 달리던 한 전사가 돌부리에 걸채여 모재비로 나딩굴번 하였다. 다부진 몸에 허연 입김을 내불며 걸싸게 일을 제끼던 그 전사는 몇발자욱 비틀거리며 나가더니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러는 그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소리없는 웃음속에 바라보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그 전사가 돌연 《이놈의 돌부리가?》하더니 얼어붙은 땅우에 비쭉이 내밀린 돌부리를 주먹으로 힘껏 쳐갈긴것이였다. 얼마나 드세게 쳤던지 돌부리가 깨여져나가며 그 파편이 제일 가까운 수행원들의 차에까지 날아왔다.

깜짝 놀란것은 그 전사뿐만이 아니였다. 김하천대장을 비롯한 수행원들의 얼굴이 해쓱하니 질리고 멀지 않은 곳에 서있던 그 전사의 지휘관이 《뭐야, 수일이?!》하고 금시 목구멍이 꽉 메여버린듯 거쉰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들의 시점에서는 비상사고가 아닐수 없었다. 다름아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몸가까이 모시고있는 자리에서 그런 일이 생기리라는것을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인들 할수 있었으랴. 수일이라고 불리운 전사의 지휘관은 《일을 친》 그에게 무서운 기상으로 달려갔지만 더 어쩌지 못하고 꽉 부르쥔 주먹만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아주 대단해. 저런 병사앞에서는 어떤 원쑤도 감히 접어들지 못할거요. 그렇지 않소?》

대답이 없었다. 그 누구도 《그렇습니다, 장군님!》하고 대답올릴념을 못했다.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불같은 숨결만 거칠게 내뿜을뿐이였다. 가슴을 찌른 충격이 너무도 컸던것이다.

대위동무.》 이번에는 그이께서 전사와 마주선 지휘관에게 눈길을 주시였다. 《그 동물 탓하지 마오. 드센 힘을 키운 병사인데 그의 기를 꺾으면 되겠소? 그 동무가 얼마나 직심스럽게 훈련을 했으면 얼어붙은 돌부리를 박산내겠는가. 그렇게 훈련을 잘한 병사를 더 내세워주고 자랑해야지. 응?!》

그제서야 지휘관은 허리를 꼿꼿이 펴며 목갈린 소리로 힘차게 대답올렸다.

《알았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음-》

그이께서는 수일이라고 불리운 전사에게도 따뜻한 미소를 보내시였다. 그를 손짓해부르시자 전사는 일여덟발자욱을 날듯이 달려왔다.

《동무 이름이 뭐라구?》

《옛, 림수일입니다!》

엄청나게 높은 목소리였다.

《고향은 어데구?》

《함경북도 길주군입니다.》

병사는 노상 웨치듯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병사의 나이며 부모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시고 종일 돌을 까고 질통을 지는 일이 힘들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힘들지 않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하고 전사는 또 포연처럼 입김을 내불며 더 높은 목소리로 웨쳤다. 《정말입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우린 발전소를 일떠세우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완공의 보고를 올리기 전엔… 그전엔 절대 한순간도 전투장을 떠나지 않을것을… 결의다졌습니다. 이상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리없이 미소를 떠올리면서도 병사가 메고있는 쇠질통이며 산기슭에서 정대와 함마로 바위를 까내고있는 병사들 그리고 강건너편에 일직선으로 늘어선 천막들을 눈여겨보시였다. 그러자 가슴이 저릿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그래서 천막에서 산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안돼. 이 추운 때 천막에서 살다니…》

어느덧 병사는 어려움도 다 잊은듯 했다. 쇠질통을 바싹 당기며 그는 또 청높이 말씀드렸다.

《일없습니다, 장군님! 천막안에 온돌을 놓아서 뜨뜻합니다. 그리고 우린… 동기훈련때마다 이렇게 살면서 습관되였습니다.》

《그래서 모자도 없이 맨머리바람으로 뛰여다니오?》

《아닙니다, 장군님! 더워서 벗었습니다. 한바탕 뛰여다니면 막 땀이 납니다.》

《그러다 감기에 걸리면 어쩔려구 그래, 응? 동무들이 건강해야 최고사령관도 건강해, 알겠소? 당장 모자를 쓰오.》

《알았습니다. 이제 당장 모자를 쓰겠습니다!》

《그래야지. 음-》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소리없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시였다. 《자 그럼… 병사 림수일, 수고하라구. 앞으로 꼭 영웅이 되여야 해, 알겠소?》

《알았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크나큰 흥분을 이길수 없어 목청껏 웨치는 눈물의 대답… 보라. 우리 인민군전사들은 언제 어느때나 《알았습니다!》라는 이 한마디 대답밖에 모른다. 평범한 대답, 례사로운 대답이다. 하지만 그 대답을 지키기는 결코 헐치 않다. 노래에도 있듯이 우리 인민군전사들은 때로 이 한마디 대답을 지켜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는것이다.

그이께서는 오늘 현지지도에서 있었던 그 일을 상기하시며 줄곧 마음이 훈훈해지는것을 느끼시였다. 차창밖에서는 여전히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고있었다. 앞서 달리는 승용차의 바퀴밑에서 눈가루가 회오리치고있다.

승용차들은 골짜기를 얼마간 내리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작은 나무다리를 건넜다. 이제부터는 고속도로와 이어진 경사길을 치달아올라야 한다. 얼음강판에 눈까지 덮여있어 앞서가던 차가 -앙- 용을 쓰는것이 내다보인다.

김정일동지께서 나직이 이르시였다.

《속도를 더 높이시오. 아무래도 우리가 앞서가면서 길을 열어야 할것 같소.》

경적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가 안깐힘을 쓰는 앞의 차를 지나 쑥 빠져나갔다. 처음부터 고속이다. 울퉁불퉁한데는 날아서 넘고 얼음이 덮인데서는 미끄러져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수행원들이 타고있는 뒤차들은 기를 쓰며 따라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얼마후였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는 구배길옆의 눈무지속에 승용차 한대가 구겨박혀있는것이 보였다. 아직 차바퀴가 빙그르 돌고있는것으로 미루어 금시 굴러내린것 같았다.

《차를 세우오!》

그이께서는 부관이 미처 어쩔새없이 손수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시였다.

때마침 한쪽바퀴가 들려 기우뚱해있는 차에서 운전사가 기여내리더니 차에 타고있는 사람을 도와 차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쭈그러든 차안에서 한사람이 겨우 비집고 내리는데 한손으로는 이마를 세게 문지르고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키가 늘씬한 사람, 낯익은 모습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급히 그에게로 마주가시였다.

《이게 누구요. 강창길부총리동무가 아닙니까.》

《?!…》

강창길은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입을 벌리고 찬바람을 헉- 삼키고있었다.

《장군님께서?!…》

《어디 다치지 않았습니까?》

《장군님, 전… 일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음, 다행입니다. 하마트면 큰일날번 했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시였다. 어느새 다른 수행원들도 차에서 내려 아직도 한쪽바퀴가 빙- 돌고있는 승용차를 바로 세우느라고 법석이였다. 그새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총리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강창길은 전후 외국류학을 하고 온 오랜 지식인출신의 부총리이다. 조용하고 침착하면서도 늘 자신만만한 인상이였었다. 허나 지금은 한없는 피로가 그의 얼굴을 그림자처럼 뒤덮고있다. 덕천에 갔다 오는 길이라는데 생산을 추켜세울 아무런 방도도 대책도 없이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만 차가 굴었으므로 그의 표정은 시쁘둥하고 어수선했다.

《덕천이라… 아직 공장이 멎어있단말이지.》

《그렇습니다, 장군님.》

《제일 걸린것이 뭐요?》

《예. 강재가 없고 전기가 딸려서…》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가 더 이상 말씀드리지 못하는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사실이 그렇다. 강재가 없고 전기가 딸리고있다. 나라의 많은 중요 공장, 기업소들이 그때문에 멎어서있다.

부총리동무,》하고 그이께서는 강창길의 퍼릿해진 얼굴을 눈여겨보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어려운것이 많고 부족한것도 헤아릴수 없이 많지만... 용기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우린 이제 〈고난의 행군〉에 이어 강행군을 계속 해야겠는데 부총리동무까지 이렇게 어깨가 처져있으면 되겠습니까?》

《예, 용기를 내겠습니다. 장군님!》

이윽고 눈더미속에서 강창길의 차를 끌어내였다. 세찬 눈보라가 사람들의 솜옷깃을 마구 헤집어놓았다. 맵짠 강추위여서 눈가루가 얼굴을 후려칠 때마다 무수한 바늘끝으로 침을 놓는듯 때끔거렸다. 어떤 사람은 하얀 모래알같은 눈가루를 막으려고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러 수행원들과 부총리를 둘러보며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뭘 그렇게 추워서 그러오. 아무리 혹독한 강추위라도 정을 붙이기탓이요. 이런 날씨에도 제멋은 있거던. 정신이 번쩍 드는게 얼마나 좋소. 응?…》

《예, 좋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대답올렸지만 어쩐지 맥빠진 소리처럼 들렸다. 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색하여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우린 사실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길 없는 어려운 행군에 나섰기때문에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지 않으면 끝까지 가대지 못할수도 있소. 이처럼 어려운 때 끝까지 나를 따르자면 모든것을 다 각오해야 한단말이요. 그것도 비상한 각오를!…》

그러자 세찬 눈보라에 어깨를 웅크리고있던 여러 일군들이 죄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들더니 허연 입김을 내불며 무엇이든 다 각오하고있다고 말씀드렸다.

《좋소. 우린 최후승리의 그날까지 한길을 가야 하오. 중도에서 멎어설 사람은 애당초 따라서지 않는게 좋소. 그러나 일단 같이 떠났으면 떨어질 권리가 없소. 끝장을 볼 때까지 나와 같이 가야 해.》

《알았습니다, 장군님.》

승용차들이 또 부르릉거리며 길을 떠났다. 드디여 고속도로에 올랐다. 눈보라가 휩쓰는 길,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후사경을 통하여 강창길부총리의 차가 힘겹게 따라오는것을 살펴보고계시였다. 차가 낡았는가, 아니면 나이탓으로 인제는 바람같이, 속도높이 달리기를 꺼리게 됐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후사경에 비쳐지고있는, 차츰 멀어져가는 그 차에서 눈길을 뗄수 없으시였다. 한생 변함없이 당과 수령을 받들어 량심적으로, 정력적으로 일해오던 그가 지금은 맥이 진한것만 같아 가슴이 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사실 엄혹한 시련이 겹치기 시작할 때부터 의기를 잃고 패배주의의 오소리굴에 들어박힌 사람들, 우국지사처럼 우그러든 가슴이나 허비고 한숨만 내뿜고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저 강창길부총리는 어떻게 하나 숨죽인 공장을 돌려보려고 용기를 내여 눈길을 헤쳐갔었다. 그러나 준엄한 현실에 부닥치자 그만 의기가 꺾인듯 하다. 그래서 자꾸만 걸음이 떠지고있는것은 아닐가?… 아니, 그래선 안된다. 길을 떠났으면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끝까지 가대야 한다. 도중에 주저하거나 멎어서면 다시는 용기를 되찾지 못한다. 우리는 사생결단의 의지로 이 난국을 맞받아 뚫고나가야 한다. 끝장을 볼 때까지 밀고나가야 한다!…

《차를 세우오.》

그이께서는 강창길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리시였다. 행군대오에서 떨어지는 한 전사를 그냥 내버려두고 가실수는 없었다. 그이께서는 얼마후 강창길의 차가 바투 다가왔을 때에야 다시 출발하도록 이르시였다. 영문을 알지 못한채 멎어서있던 수행원들은 다시금 바람같은 속도로 내달리는 그이의 승용차를 따라 최고속을 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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