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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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 마당으로 나서시였다. 최창걸의 안해는 얼른 일손을 놓고 밖을 내다보았다. 문짬으로 비쳐나오는 희미한 불빛에 바깥마당쪽으로 나가시는 그이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그이의 뒤를 따라 차광수도 문밖을 나섰다.

고개를 드니 그분께서 차광수에게 무어라고 말씀을 하시는것이였다.

아버지, 어머니와 덕걸이는 이미 방안으로 들어가고 마당은 괴괴하였다. 문득 그 녀자의 눈에는 벽에 걸려있는 사령관동지의 군복웃저고리가 띄였다. 벌써 이맘때면 선기가 도는 산골이여서 내의바람인 그이께서 혹 탈이라도 만나실가 근심스러웠다.

녀인은 옷을 벗기여 정히 들고 조용히 문을 나섰다.

남편이 목숨바쳐 지켜야 할분이라고 늘 말하던 생각이 났다.

짓밟힌 조선을 위해, 망국노가 된 인민을 구원하기 위해 반드시 건강하셔야 할분이라고 얼마나 많이 말했던가. 하여 수집음도 잊고 따라나선 녀인이였다.

어둠속이였지만 앞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우물가곁에서 말씀을 나누신다는것을 알았다. 옷을 받쳐들고 그쪽으로 발볌발볌 다가가던 녀인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래일 여기를 떠나자니 창걸동무의 부모님들과 처자들때문에 발길이 무겁습니다. 안해와 젖먹이아이는 물론 늙으신 부모님들께도 창걸동무는 집안의 대들보였겠는데…》

《그래서 오늘 아침 창걸동무의 동생이 찾아와 유격대에 입대하겠다는것을 떼말렸습니다.》

차광수는 어떻게 하나 그이의 심중의 괴로움을 다소나마라도 덜어드리고싶어 담담히 말씀을 올렸다.

《잘했습니다.》

그이께서는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시였다. 날이 흐렸는지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이의 심중도 저토록 어두운것이였다.

《태여난지 아직 한살도 못된 아들을 두고 그렇게 가다니. 참 무정도 한 사람이요.》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하늘을 덮은 비구름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였다. 그 침묵에 숨이 막힐것 같아 차광수가 입을 열었다.

창걸동무의 부인이 참 강한 녀인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허나 속으로는 피를 흘릴겁니다. 우리가 너무 슬퍼하니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려고 마음속으로는 피를 흘릴겁니다. 우리 조선녀인들은 참으로 외유내강한 훌륭한 녀성들입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강하니 비록 아버지를 잃은 어린애지만 마음이 조금은 놓입니다.》

차광수의 말에 그이께서도 긍정하시였다.

어둠속에서 녀인은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어쩌면 저리도 인정이 깊으실가. 부모님들과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슬픔을 안겨주고싶지 않으시여 이 쌀쌀한 깊은 밤 멀리 이곳까지 와서 옛 동지의 이야기를 나누시는 그분이였다.

《지금도 눈앞에 환합니다. 오가자회의때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부르던 모습이…》

차광수의 말을 들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용히 고개를 드시고 밤하늘가를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안광에 어둠속을 배경으로 그때의 일들이 활동사진처럼 흘러가는듯싶었다.

오가자회의 마감날 밤 차광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의를 환기시키고나서 이제부터 우리의 한별동지를 새 존함으로 부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불쑥 꺼낸 말이 아니였다. 이미 그이의 존함을 한 일자에 별성자가 아니라 날 일자에 이룰 성자를 놓아서 《김일성》이라고 부르자는 안은 여러번 제기되였었다.

하지만 자신께서 너무 엄히 반대하시여 미루어오던것인데 그날은 아예 끝장을 보자고 단단히 결심을 했는지 팔을 걷어붙이고나서는것이였다. 후날 차광수의 말에 의하면 오가자의 변대우로인을 비롯한 유지들까지 나서서 젊은이들이 그토록 무맥한줄을 몰랐다고 혀를 내두르는 판에 더이상 우물쭈물할수가 없었다는것이였다.

차광수가 흰 광목천에 큼직하게 쓴 《김일성》이라는 존함을 펼쳐들자 장내는 폭풍같은 환희로 끓어번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뜻밖의 일이라 한동안 침묵을 지키시다가 손을 높이 쳐드시였다. 우선 좌중을 진정부터 시키고나서 절대로 불허한다는 자신의 립장을 무겁게 밝히려고 하시였다.

허나 장내는 정숙하지 못했다.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랐던 흠모의 마음들이 드디여 폭발하여 불길이 솟구치고 불꽃이 작열하는 도가니속같았으니 그이께서도 어쩌는 수가 없으시였다.

한동안이 지난 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손을 들어 겨우 좌중을 눌러앉히고나서 동지들의 마음은 고맙지만 자신은 아버님께서 지어주신 성주라는 이름을 무척 귀중히 여기기때문에 다른 이름은 생각하고싶지 않다고 말씀하시였다.

《나를 별에다 비기는것도 몹시 무안스럽고 송구스러웠는데 태양이라니 이건 사람을 어떻게 만들자는겁니까. 아직 이십대에도 이르지 못한 젊은 사람을 이렇게 추기는것은 나자신은 물론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으로 성주라고 이름지어주신 부모님들께도 죄되는 일이니 제발 그만들 두시오. 그리고 이것은 혁명의 견지에서 놓고보아도 조금도 리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때 불쑥 최창걸이 나서면서 소리쳤다.

《그만두오, 성주동무. 소사하의 어머님께는 우리가 달려가서 승낙을 받으면 되오. 그리고 또 바로 혁명의 견지에서 보아도 우리의 지도자를 태양으로 부르는것이 절박한 문제란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차광수나 최일천이 이렇게 흥분했다면 몰라도 모인 사람들중에 나이도 그중 년장자이고 또 조직원들중에 그만하면 화약내에 푹 절었다는 리종락도, 그앞에서는 자기를 젖비린내 풍기는 아이처럼 낮추는 독립군의 로장인 최창걸이 마치 순진한 소년처럼 얼굴까지 빨갛게 상기되여 격동된 모습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민망하시였었다. 그러나 최창걸은 이번엔 동무들쪽으로 돌아서서 웨쳤다.

《그렇지 않소, 동무들. 오늘 이 최창걸이 말 좀 합시다. 지금 우리 나라를 보오. 우리 겨레를 보오. 어둠에 싸여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는 암흑천지에서 죽기보다도 더 고달픈 인생살이를 정말이지 죽지 못해 해나가는 우리 2천만 동포요. 그래서 백의민족은 누구나 자기들에게 빛을 안겨줄, 새날을 안겨줄 태양을 목숨처럼 바라는것이 아니겠소. 이제 그 불쌍한 우리 겨레에게 빛을 안겨줄 사람은 바로 우리 김성주동무밖에 없소. 그러니 응당 태양에 비기는것이 옳지 않겠소. 이 창걸은 당장 류하로 달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소리높이 웨치겠소. 이제는 우리에게 빛을 안겨줄 해님이 있으니 속을 툭 터치고 앞을 환히 바라보며 살라고 말이요.》

우스개소리외에는 언제한번 긴말을 해본적이 없는 최창걸의 일장연설은 차광수와 같은 열변가들도 무색할 정도여서 모두 열광적인 박수로써 호응하였다. 녀성들은 말할것도 없고 계영춘이같은 사내들의 눈에서도 뜨거운것이 넘쳐흐르고있었다.

최창걸은 가슴속에 닫겨있던 동이라도 터졌는지 다시 김일성동지를 우러르며 말을 이었다.

성주동무, 불속을 걸어가라 명해도 이 창걸은 노래를 부르면서 가겠소. 물속에 뛰여들라 명해도 이 창걸이는 웃으면서 뛰여들겠소. 동무를 위해 최창걸이 어찌 목숨인들 아끼겠소. 성주동무를 태양으로 칭하는것은창걸이나 차광수의 소원인것만이 아니라 2천만 우리 민족의 념원이란 말이요. 그러니 이것만은 불허하지 말아주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차광수가 두손을 높이 쳐들며 웨쳤다.

《우리의 태양 김일성만세!》

모두 소리높이 만세를 불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저 억이 막히시여 아무 말씀도 못하고 두주먹만 불끈 쥐시였을뿐이였다. 그래도 항간에서는 백전로장처럼 받들리우는 최창걸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웨치는 토로앞에서 그이께서는 할말을 찾을수가 없으시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이이시였다.

최창걸이 그이를 칭송한것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그때처럼 흥분한것은 처음으로 보시였었다. 그렇게 열정적이고 소박하던 사람이 일본놈들의 손에도 아니고 동족의 손에 쓰러졌다는것을 다시 상기하시니 가슴이 미여져 터져오는 오열조차 터놓기 힘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눈물을 훔치고나서 갈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일부 동무들이 창걸의 복수를 하자고 하는데 난 동족을 살해하는짓은 절대로 용허할수가 없어 그 제의를 부결했던겁니다. 우리에게 아물수 없는 상처를 주었어도 동족이야 동족이 아니겠소. 우리가 복수를 한답시고 제 민족의 가슴에 총탄을 쏘아박으면 그놈에 그놈이라는 식으로밖에 될수 없습니다. 국민부의 테로행위에 분노하는 우리가 꼭같은 짓거리를 한다면 어찌 그들을 단죄할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기뻐할것은 일본놈들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한가지 해도 오직 민족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까지 동족의 가슴에 칼부림을 한다면 망국의 한을 하늘이 미여지게 안고있는 우리 겨레가 얼마나 가슴아파하고 그들이 누구를 바라보며 살겠습니까. 창걸동무도 그것은 바라지 않았을겁니다. 비록 그자들의 손에 쓰러지면서도…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또다시 눈물을 훔치시고나서 저 멀리 아득한 어둠속의 한곳을 바라보며 서계시였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가녁에서 창걸의 안해는 어둠속에 무릎을 구부리고앉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그분께서 혹 자기의 울음소리를 들으실가 저어하여 손에 정히 받쳐들었던 그이의 옷에 얼굴을 묻고 끅끅 느끼였다. 녀인은 민망스럽게도 드리려고 왔던 그분의 옷을 자기의 눈물로 화락하니 적신다는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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