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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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기같이 생긴 고산자변두리를 따라 길이 나있었다.

사령부는 그 길이 다시 평지로 접어들어 곧게 퍼지는 길가에 위치해있었다. 한때 주막으로 쓴 일도 있다는 그 집은 지붕이 다소 헤쳐내리기는 했으나 꽤 넓고 또 동네변죽이 되여 조용하였다.

원체 구석진 곳인데다 간밤부터 마을 이끝과 저끝에 해당하는 량길목에 유격대보초가 서있어서 수상한 그림자는 얼씬하지 못하였다. 마을인민들속으로 공작을 들어간 사람도 그렇고 지금 사령부앞마당에 대기하고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사랑방의 동정을 살피고있었다.

유격대가 마을에 당도한것은 오늘 아침이였다. 그러나 최창걸의 최후와 고산자의 형편은 밤사이 전대오에 다 알려진데다 사령관동지께서 밤중으로 최창걸의 집에 들리여 유가족들과 함께 밤을 새시였다는 소식까지 다 퍼져있었다.

새벽에 림시로 정한 사령부숙소로 돌아오신 그이의 안색에는 슬픔과 함께 분노가 어리여있었다.

그이께서는 침식을 잊고 곧 사업을 시작하시였다.

우선 류하지구에 대한 료해자료를 보고받으시였다. 최창걸의 동생 덕걸이가 찾아왔고 전에 조직에 관계했던 몇몇 청년들이 잇달아 불리워왔다. 때마침 통화 림시통신련락소를 거쳐온 왕청지구로 갔던 통신원도 한낮에 도착하였다. 딴 지구의 통신원들은 이미 부대가 통화에 있을 때 도착했었고 두사람은 류하방향으로 행군을 하고있을 때 따라잡았다.

사령부는 사람들로 북적 끓었다. 그러나 기침소리 하나, 발자국소리 하나 울리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 분노를 누르고계신다는것을 누구나 알고있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우에 놓인 최창걸의 책 몇권을 만져보며 고산자청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계시였다.

최창걸이가 여기에 내려와서 처음 조직을 꾸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국민부우파의 테로분자들에게 장렬한 최후를 마치기까지의 이야기를 낱낱이 빼놓지 않고 들으시였으며 그중 중요한것들은 수첩에 적어넣군 하시였다. 처음 한사람의 반제동맹원이 체포되고 다음 회장과 부녀회장이 체포되더니 한달어간에 칠팔십리에 널린 조직이 일시에 파괴되고말았다. 그 과정을 들으실 때 그이께서는 지그시 눈을 내리감으시였다.

《조직을 다시 일으켜세웁시다. 동무들이 희생된 최창걸동무를 대신하여 조직을 복구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반제청년동맹에 참가했다는 마을의 두 청년과 덕걸에게 타이르듯이 말씀하시였다.

《그놈들이 귀중한 우리 동지들을 앗아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겁을 먹고 주저앉을수는 없습니다. 동무들이 보는바와 같이 조선인민은 이제는 자기의 혁명적무장력인 유격대를 가지고있습니다. 이 유격대는 동지들의 피어린 투쟁속에서 태여났습니다. 우리 동무들이 메고있는 한자루한자루 총에는 혁명전우들의 피가 배여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그 총을 쏠 때마다 전우와 함께 원쑤를 쓸어눕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동무들, 생각해보십시오. 최창걸동무가 누구를 위해서 자기의 청춘을 바쳤습니까? 자기 개인의 행복이나 안일을 찾자면 그 동무에게도 얼마든지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무는 빼앗긴 우리 나라를 다시 찾고 조선인민을 구원하자는 일념으로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서 싸웠습니다. 최창걸동무가 희생되고 조직도 파괴되고 놈들의 탄압선풍이 판을 치니 일시 당황할수도 있습니다. 사실 동무들이 조직을 탄압속에서 지키고 강화해나가는 방법도 모르고 우리와의 련계도 끊어졌으니 이제까지 일을 못한것은 하는수 없는 일이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주저앉아있을수는 없습니다. 최창걸동무는사업속에서 우리곁에 영원히 남아있게 되는것입니다.》

세 청년이 그이의 절절한 깨우침에 감동되여 눈물이 그렁해 앉아있는데 전광식이와 진일만이가 보고를 하고 들어왔다.

그들은 다섯자루의 보총을 각각 나누어 메고 왔다.

《그건 뭐요?》

그이의 물으심에 전광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올렸다.

최창걸동무가 혁명앞에 남기고간 유물입니다.》

창걸동무가?》

그이께서는 기름바른 흔적이 그대로 알려지는 총 한자루를 받아들고 두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시였다.

《희생되기 몇달전에…》 하고 진일만이가 고개를 푹 떨구고 앉아 말씀을 드렸다.

《이것을 뒤산 분지나무밑에 묻었답니다. 안해의 말을 들으면 창걸동무는 자기가 희생될것도 각오를 다 하고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런걸 그때는 눈치도 못 챘다고 합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점도록 다섯자루의 총을 이리저리 매만져보고 쓸어보시면서 혼자말처럼 조용히 뇌이시였다.

고산자에 혁명의 피가 배였소. 명월구회의방침을 전달하기 위해 통신을 가지고 왔던 박응천동무도 여기서 희생되였소. 이 땅에 꽃이 필것이요. 그리고 우리의 후대들은 여기 이 궁벽한 골짜기에 찾아와서 혁명선렬들을 추모할것이요.》

그이께서는 번쩍 고개를 드시였다. 안광이 번개같은 빛을 뿌렸다. 일순 사위가 숨죽은듯 조용해졌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김일성동지께서는 진일만을 돌아보시며 그에게 말씀하시였다.

진일만동무, 동무는 이 동무들과 함께 고산자지구의 혁명조직을 복구하는 사업에 착수하시오. 우선 반제청년동맹을 꾸려야겠습니다. 최창걸동무가 키운 전날의 핵심들을 찾아내시오.》

《알았습니다.》

진일만이와 마을청년들이 물러나자 차광수가 들어와서 그지간 마을에서의 공작정형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늦은대로 아침식사를 드셔야겠다고 여쭈어보았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에 대한 대답대신 같이 앉아서 통신원들의 보고를 듣자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통신원들이 들어왔다. 사령부는 전투적인 분위기로 들끓었다. 이영이 처져내린 이름없는 산골의 외딴 길가집에 오늘은 조선혁명의 전반적흐름이 모여들어 거창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전령병들이 끊임없이 불리워들어가고 사령관동지의 음성도 새여나왔다.

통신원들의 보고는 앙양되는 혁명의 거류를 생동하게 반영하고있었다. 소사하에서 포치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최진동이도 리광이도 불길속에 뜷고들어가 그이께서 안겨주신 신념의 바위로 든든히 주추를 놓았다.

혁명은 자리를 잡았으며 광란하는 반혁명의 태풍을 맞받아 억세게 틀고앉았다. 북부지구에 나간 그밖에 안도에서 유격대창건을 선포한 즉시로 지방에 나간 동무들도 10월경에는 사령부로 돌아온다는 소식과 함께 그 지구의 정형들도 대략적인 자료들이 종합되였다.

모든 보고와 자료와 소식들은 한마디로 요약하여 김일성동지께서 지피신 한점의 불꽃이 광막한 대지에 번져 온 두만강지구와 북부오지까지 뒤덥기 시작했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무장을 들라!》는 김일성동지의 호소를 받들고 지방마다 사람마다 지혜를 짜냈으며 용감성을 발휘하였다.

어떤데서는 못쓰게 된 권총에다가 골탄칠을 하거난 은지로 싸서 번쩍번쩍 윤이 나게 해가지고는 경찰서에 달려들었다.

어떤 지구들에서는 고추가루봉지와 나무창으로 경찰서와 도선장파출소 뛰여들었다.

자체로 폭탄을 만들어 무기획득투쟁을 과감하게 벌리고있는 지구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베감투를 쓰고 상가집 도살허가를 받으러 간것처럼 가장하고 경찰서에 들어가서 일시에 무기고를 점령해버리는 통쾌한 습격전투도 진행하였다. 일본헌병의 옷을 벗겨입고 경관놈이 따귀를 붙여가면서 총을 빼앗아낸 대담무쌍한 청년도 있었다. 각 지방의 아동단원들도 무기획득에 용감히 떨쳐나섰다.

지어는 빨래하던 아낙네들에게 흐지부지하던 순사놈이 빨래방망이에 얻어맞고 총을 떼우기까지 하였다.

《혁명은…》 하고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들에게 투지와 용기를 주었으며 지혜와 창발성을 주었소.》

그이의 말씀은 신심에 차있었으며 자랑차게 울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각지에 형성되기 시작한 유격근거지에서의 사업정형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돌리시였다. 특히 왕청지구의 보고를 신중한 표정으로 들으시였다.

마반산줄기 한옆에 있는 영평을 중심으로 샘골, 황가촌, 배나무골 등 일여덟개의 부탁을 포괄하는 넓은 지역을 확보하였다는 리광이 보낸 소식을 들으시고 그이께서는 통쾌하게 웃으시였다.

유격대를 지구별로 내오고 해방지구를 확보하는 투쟁이 도처에서 한꺼번에 일어났다. 적들도 어리둥절하여 미처 손도 써볼 사이 없이 여기저기에 해방지구가 솟아올랐다.

한곳에 근거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퍼지기 무섭게 해방지구는 곧 불길처럼 딴 지역으로 번져나갔다.

시대풍조는 급전환을 하였다. 일제가 침략의 마수를 뻗친 그때로부터 이날까지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이사짐을 이고지고 길을 걸었다. 오라는데도 없고 갈데도 없는 그들이였다. 그러나 이 여름부터 사람들의 표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눈에 날카로운 빛을 뿌리며 서둘러 걸었다. 마치 저주로운 운명을 결판낼 시간이 촉박한것처럼 다우쳐 걸었다. 해방지구 유격근거지를 향해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직은 실개천이라고 볼수 있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열어젖힌 창문너머로 뭉게뭉게 구름이 피여오르는 산줄기를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모든 물줄기는 한곬으로 모여들어 바다를 이룰거요. 그렇소. 우리는 이 죄악에 찬 사회를 송두리채 뒤집어엎는 시대의 거류를 이루고야말것이요. 그러기 위하여 풀잎에 맺힌 한방울의 이슬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을것이요.》

문득 차광수의 눈앞에는 밤새 그이의 가슴에 그렇게도 모진 아픔을 주고간 최창걸의 모습이 떠올랐다. 광막한 우주공간과 무궁한 세월을 두고볼 때 각자는 여름밤 풀잎끝에 내리여 새벽이면 해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이슬과 같이 작고 가냘픈 존재라고도 볼수 있다. 그러나 그 이슬이 김일성동지의 가슴에 안겼을 때 거창한 흐름을 이루어 력사를 누비며 흘러 마침내 영원한 바다에 이를것이다.

각 지방의 보고자료가운데 비통한 소식도 없지 않았다. 특히 리동천이 무기획득투쟁과정에 희생되였다는 사실과 그가 남긴 마지막말이 보고되였을 때 김일성동지의 안색은 굳어지시였다.

차광수는 가슴이 떨리였다. 그이께서 안고계신는 혁명의 한바다는 스러지는 하나하나의 이슬방울을 두고 저렇게도 설레이며 파도치며 대지를 안고 몸부림치는것이다. 무건운 침묵이 가라앉은가운데 그이께서 천천히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쌍바라지를 열어젖히시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리동천이라… 우리 페부에 새겨둡시다. 한방울의 이슬도 헛되이 떨어지지 않게 그들에게 출렁이는 바다를 안겨줍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길로 차광수와 함께 동네를 돌아보고 인민들을 만나보시였으며 부락에서의 정치사업정형을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사령부로 돌아오자 고산자에서 입대를 희망하는 100여명의 청년들을 다 만나보고 한사람한사람 결론을 주시였다.

실로 이 하루 그이께서는 온몸에 넘치는 분노와 슬픔을 그대로 사업속에 내뿜으시듯 순시도 멈추지 않고 일을 밀고나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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