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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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죽을 때도 김일성장군 만세를 부르고 죽었습니다. 장군님께서 내 자식을 념려하여 이 험지까지 오셨다니 응당 내가 찾아가 뵈와야 백성의 도리에 합당하지요.》

최필수로인은 당장 두루마기를 찾으며 서둘렀다.

이미 전령병을 사령부로 띄운 차광수는 가까스로 로인을 잡아앉히기는 하였지만 사령관동지께서 상심하실 일을 생각하니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이밤을 슬픔으로 가슴을 태우시며 꼬바기 새우실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되기 바쁘게 부대를 이끌고 오실것이다. 전령병에게 눈치를 보아가며 보고를 드리라고 거듭 부탁을 했지마는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게다가 유가족들을 대하니 가슴이 저려올라 말을 옮기기가 힘들었다.

불행이 있은 때로부터 몇달이 지났고 본시가 강직한 성미들이라 아버지도 어머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비통한 생각에 잠겨있는 차광수를 위로까지 하였다. 그러나 마을이 낸 큰 인물이라고 동네사람들이 말끝마다 칭찬했다는 이야기며 류하일원에서야 그중 뛰여난 사람이였지 하고 회고담을 할 때면 눈굽에 어리는 물기를 최로인은 감추지 못하였다.

그런중에도 차광수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는것은 지금 부엌에서 소리없이 설겆이를 하고있는 창걸의 안해의 모습이였다.

차광수로서는 초면인 녀인이였다. 원래부터 자랑기가 많은 최창걸로부터 말은 많이 들었어도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였다.

소박해보이면서도 어딘가 강단이 느껴지는 녀인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남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대하는품이 낯선이를 대하는것 같지 않았다.

지금 창걸의 안해는 그릇소리 하나 없이 부엌일을 하고있지만 차광수에게는 그의 가슴에 서린 만단사연이 손에 잡힐듯이 선하게 떠오르는것이였다.

토방밑에서 귀뚜라미가 울었다. 열어젖힌 방문으로 여름밤이 지새는 신비로운 가락이 부드러운 바람에 실려왔다. 모기불도 이미 스러지고 이슬에 젖은 풀대들이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있다.

동산우에 달궈놓은 낫가락같은 벌거우리한 그믐달이 솟아올랐으나 사위는 그냥 첩첩 어둠에 묻혀있었다.

《애야, 이제는 들어가 자거라.》

아래방에서 시름없이 담배대를 물고있던 최필수로인이 부엌에 대고 소리치더니 움쭉 일어나 열어젖힌 장지문설주를 잡고 웃방을 넘겨다보았다.

《이거 로독이 심하시겠는데 사사로운 걱정때문에 쉬시지 못하게 해서 안됐소이다. 애, 덕걸아, 어서 손님 자리 봐드려라.》

《아버지, 말씀 낮추십시오. 제 하루밤 창걸이방에 이렇게 앉아 옛일을 회상하며 지내고싶습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장지문을 닫으십시오.》

《에그, 정성도 지극하지. 세상인심이 각박해진다는것이 다 헛소린가보웨다.》

아래목에서 안로인이 혀를 차며 한마디 하였다. 원래 해소병이 심했다는 최창걸의 어머니는 불행이 있은 다음부터는 심화병까지 덮쳐 한달이면 보름이나 자리에 누워있다는것이였다.

덕걸은 아버지가 그러거나말거나 형이 쓰던 책상머리에 한손을 올려놓고 앉아 깎아놓은것모양 움직일줄 몰랐다.

책상에 놓여있는 몇권의 책과 그옆에 세워놓은 자그마한 액틀을 번갈아 매만지며 차광수 역시 고개를 떨구고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책상도 책도 최창걸의 손때가 묻은것이였다. 그리고 액틀에는 화전에 있을 때의 최창걸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차광수는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바깔마당에서 망을 보던 진일만이가 뛰여들어왔다.

참모장동지, 사령관동지께서 오십니다.》

《뭐?》

차광수는 급히 군모를 집어쓰며 일어섰다.

《부대가 다 오오?》

《부대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광식동지랑 모시고 오는것 같습니다.》

차광수는 진일만이와 주거니받거니 마당을 질러나가다가 급히 되돌아서서 최필수로인과 덕걸에게 말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십니다.》

《네, 장군님께서밤중에요?》

로인은 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어 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여보, 내 두루마기… 야 덕걸아, 그 고매끼 이리 보내라.》

김일성동지께서는 마당에 들어서자 멈추어서시였다. 그이의 마음속걱정이 력력히 느껴지던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멎자 갑자기 사위는 천길 정적속에 묻혀버렸다.

그이께서는 진일만의 보고를 듣고 고개만 끄덕이시였다. 그리고는 토방에 나서서 허둥거리는 최필수로인내외를 바라보시였다.

최필수로인은 두루마기고름을 미처 매지 못한채 넘어질듯이 마당복판으로 달려나갔다. 구원을 청하듯 앞으로 쳐들어 내민 로인의 두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아버님!》

김일성동지께서는 성큼 앞으로 나서서 로인의 앙상한 어깨를 잡으시였다.

《장군님, 기다렸소이다. 내 살아 생전에 이렇게 만나뵈오니 당장 죽는대도 한이 없겠소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시였다. 밤이슬이 소리없이 내리여 깊이 고개 숙이신 그이의 흩어진 머리카락우에, 이미 축축해진 군복어깨우에 차분히 잦아들었다.

《아버님,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참상까지 당하시니 심중이 오죽하시겠습니까? 가슴 터지게도 우리 창걸동무는 동족상잔의 마수에 희생되였습니다. 그것이 더 가슴 아픕니다. 그러나 아버님, 창걸동무는 헛되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숨지는 마지막순간까지 화전에서의 맹세, 카륜에서의 맹세를 지켜 혁명을 위해서 영웅답게 싸웠습니다.》

철썩 간장이 녹아내리는듯 비통한 그이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훑어내리였다.

밤이슬이 내렸다. 미루나무 설레이던 뒤동산언덕우에서 소쩍새가 피타는 목소리로 울어댔다.

그러나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전우의 비보를 접하기 바쁘게 20리 밤길을 단숨에 달려오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슬픔에 잠겨 말없이 서계시는 이밤, 이 마당에 바람 한점 얼씬 못하였다.

밤이슬만 소리없이 내리고 또 내리여 가슴에 눈물의 바다를 지니고서도 울수 없는 그이의 아픈 마음을 대신해줄 따름이였다.

마당 한귀에 서있던 창걸의 안해가 얼굴을 싸쥐고 부엌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러자 안로인이 토방끝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장군님, 우리 장군님, 창걸이가 살아있었다면… 장군님을 뵈옵고 얼마나 기뻐했을가.》

《어머니…》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용히 다가가 안로인을 부축해 일으키시였다. 로인은 그이의 소매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물결치는 어머니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손수건을 꺼내여 눈물을 훔쳐주시였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창걸동무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살아있습니다. 우리가 창걸동무를 대신하겠습니다.》

그러자 로인은 더한층 세차게 어깨를 들먹거리더니 목메여 부르짖었다.

《장군님, 하늘이 굽어봅니다. 장군님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만든 자식을 두었으니 이 에미에게 무슨 한이 있겠습니까. 부디 장군님께서장군님께서 오래오래 장수를 누려주십시오.》

부엌안에서도 울며 보채는 애기를 안고 눈물을 씹어삼키는 녀인의 흐느낌소리가 새여나왔다. 토담을 향해 돌아서있는 최필수로인은 뒤로 젖힌 얼굴로 자주 두루마기고름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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