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회)

7

(9)


널다란 강당에 유격대원들과 독립군병사들이 빽빽이 들어앉아있었다. 세걸이는 연단에 나서서 숨을 헐떡거리고있었는데 귀뿌리까지 뻘개져서 어쩔줄을 모른다. 《〈토벌〉가》 부를가 《혁명가》 부를가 망설이는것이다. 안 나가겠다는것을 등을 떠밀어 내보낸 기용이도 안달이 나 괜한 헛기침을 하며 눈만 껌벅이고있다. 한쪽편에 나앉은 박흥덕은 어사 솜씨를 보이라고 웃으면서 고개짓을 해보인다. 무리를 쏟아붓는듯 한 박수소리가 또 터졌다.

세걸이는 숨을 한껏 들이긋고나서 입을 떼였다.


어머니 어머니는 왜 우십니까

어머니가 울으시면 울고싶어요


유격대원들과 독립군병사들이 가득 들어앉은 강당안은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처량한 노래소리가 드넓은 방안에 쟁쟁히 울려퍼졌다. 울음을 머금은듯 한 세걸이의 음성은 끊길듯끊길듯 하면서 용케 이어져나갔다. 들먹이는 가슴에 한손을 가볍게 얹은 그는 방금 어떤 비통한 일을 당하기나 한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장내를 둘러보았다. 독립군병사들이 몰켜앉은 오른쪽에서 땅이 꺼질듯 한 한숨소리가 들리였다. 노래소리는 차차 더 애절하게 울리면서 듣고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쥐여뜯었다. 억울하고 슬프던 가지가지 추억들이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불타는 마을이 떠오르는가 하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정다운 식구들의 얼굴도 언뜩언뜩 나타나군 하였다. 왜놈들의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원쑤를 갚아달라고 웨치던 동무들도 보이였다. 비장한 감정에 잠겨버린 세걸이는 《〈토벌〉가》 2절, 3절을 내처 다 불렀다.

노래가 다 끝났는데도 장내에서는 모두 고개를 숙인채 움직이지 못하였다. 잠시후에야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쳤다.

《아! 뻐근하구만,》

《노래를 잘 부르는데.》

독립군병사들이 웅성거렸다. 《어머니가 울으시면 나도 울고싶다. 그거어쩌문 그렇게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을가.》

다음에는 전광식이 나갔다. 몸이 아래우 그쯘하고 우둥퉁하게 생긴 그는 얼핏 보건대 농촌청년같았다. 그는 고개를 수굿하고 나가서 발을 모으고 차렷자세를 하였다. 슬프고 애절한 노래가 몇가지 거듭되여 무거운 기분에 잠긴 분위기를 활기있고 씩씩하게 돌려놓아야 하였다. 그는 팔을 들어올리고 《혁명가》 합창하자고 하였다. 그가 솜씨있게 팔을 휘두르면서 선창을 하자 전체 유격대원들이 곡조에 맞추어 주먹을 흔들었다. 우렁찬 노래소리가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였다.


게걸든 소리에 목이 쉬리

우리 피 짜내던 놈들아


이 대목에서 노래는 한층더 격조를 띠였다.

유격대원들은 억센 주먹을 더 높이 들었다 내리후리군 하였다. 적개심에 불타는 눈들에서는 푸른빛이 번쩍이였다.

장내가 들썩들썩할만치 합창은 크게 울리였다. 전광식은 두팔을 휘둘러 계속 기운차게 박자를 그었다. 신통히도 독립군병사들만은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유격대와 전혀 다르다는것을 다시 느끼였다. 길을 걸어도 그렇고 노래를 불러도 뒤떨어진것이 확연하였다. 전광식이가 제의해서 유격대와 독립군이 같이 노래를 부르기로 하였다. 같이 부를 노래로서는 《아리랑》이 선택되였다. 노래는 아무거나 좋았다. 우선 목청을 합치고 다음에 마음과 목적을 합칠수 있으면 되였다. 전광식은 장내분위기를 능숙하게 조절하면서 유격대의 혁명성을 보여주면서도 너무 독선적으로 나가지 않게 소박하고 의리가 느껴지게 하였다. 유격대원이 노래 하나를 부르면 독립군에서도 하나를 부르게 하였다. 그는 독립군병사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주려고 애를 썼다. 그는 손을 들고 《아리랑》 첫절을 먼저 불렀다. 뒤이어 장내의 전체 군중이 입을 열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전광식은 느릿느릿 박자를 그었다.

그 무엇인가 구슬픈 정서가 방안에 차올랐다. 그것은 그저 순수한 《아리랑》이 아니였다. 망국의 비운을 통탄하는 울부짖음이기도 하였으며 목숨 바쳐 싸워나가리라는 결의이기도 하였다.

유격대원들과 독립군은 서로 어깨를 겯기도 하고 손을 맞잡기도 하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중에도 최칠성이를 가운데 앉히고 량쪽에 엄치환이와 리동수가 앉은것이 제일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팔을 힘있게 다그어끼고 어깨를 같이 흔들었다.

여흥이 끝나자 황참모가 일어나 《김일성장군님께서 친솔하신 반일인민유격대의 환영모임》이 있겠노라고 한 다음 간단한 취지를 말하고 개회를 선언하였다. 환영모임집행부에는 한가운데 량사령이 앉았고 그의 왼켠에 김일성동지께서 차광수와 함께 앉아계시였다. 량사령의 바른켠에는 황참모와 최참모가 앉았다.

집행부의 바로 앞쪽 래빈석에는 10여명의 마을늙은이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는데 그중에는 백리밖에서 달려온 피상수의 어머니도 흰 수건을 쓰고 앉아있었다.

모임은 이전에 김일성동지께서 흥경 왕청문에 오셨을 때 그이의 지도를 받은 몇명의 청년들이 발기하였는데 중간에서 훼방을 놀던 황참모마저 피상수사건으로 집행부에 나오지 않을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일정한 공식적인 회순이 지나가자 엄치환이 연단에 뛰여나갔다.

엄치환은 서두에서 유격대원들이 험산준령을 넘고 헤치며 자기네 독립군부대를 찾아준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였다.

키가 크고 눈이 시꺼먼 그는 언변이 좋지는 못했지만 북받치는 격정으로 해서 자기 의사를 거침없이 쏟아놓았다.

《배고픈 사람이 밥상을 받은듯도 하고 가물에 비를 만난듯도 합니다. 유격대 여러분은 우리에게 눈을 틔워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유격대가 아니였더면 먼저달에 죽은 오양천이처럼 벌써 땅에 묻혔을것입니다. 저기 앉은 리동수도 그렇고 피상수는 더 말할것이 없습니다. 유격대원들이 독안에 든것 같은 우리를 빼냈구 피상수를 업고 20리를 달려왔습니다. 미음을 떠넣고 피묻은 옷을 빨아주고…》

엄치환은 목이 메여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끓어오르는 격정을 다 쏟을수 없어 그는 벌겋게 된 눈으로 장내를 한번 둘러보고나서 두번세번 감사하다는 절을 하고 연단에서 내려오고말았다.

모두가 박수를 열광적으로 쳤다. 황참모만은 손바닥에 종처라도 났는지 마지못해 투덕거렸다. 허나 황참모는 자기곁에 앉아있는 량사령도 무게가 실리지 않은 박수를 친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나이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약삭바른 황참모는 곁눈질로 사령의 표정을 살피였다. 옆얼굴이 어둑시근한것이 분명 편안치 않은 인상이였다. 유격대지휘관들이 앉은 왼편쪽의 얼굴표정은 알수 없었지만 간교를 모르며 특히 그것을 질시하는 사령의 고정함을 아는지라 그쪽의 표정도 다를바 없으리라 짐작이 갔다.

한순간 황참모의 얼굴에 음충스러운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일순간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량사령과 인상을 같이하는것이 몹시도 중요하다는것을 깨달은것이였다. 하여 그의 얼굴은 인츰 자갈을 삶아먹은듯 한 인상으로 다듬어졌다.

다음은 최칠성이 나갔다. 그는 단단하고 균형이 잡힌 알맞춤한 몸을 연탁앞에 세우고 차렷자세를 하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나서보기가 처음이며 더구나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것은 여태 생각지도 못한것이였다. 가슴속에서 방망이질이 일어나는데 목안은 뿌듯하고 변두가 풀떡풀떡 뛰는것이 알리였다. 그러나 그는 온몸의 힘을 끌어 첫마디를 떼였다.

《저는 유격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10년동안 지주네 집에서 머슴을 살았습니다. 하루 건너 매를 맞고 욕을 먹었습니다. 주인이란 놈은 나무단이 작다고 지팽이로 정수리를 내리치기도 했고 귀를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지 몰라서 허리를 굽히고 뼈가 휘도록 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유격대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떠났습니다. 유격대에서는 저에게 앞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제가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것을 아시고 공책을 매주시고 저의 손을 잡아 기윽, 니은자를 써주셨습니다. 저는 아직 우리 글을 다는 읽고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지 않아 제 눈으로 책을 읽고 제 손으로 글을 쓸수 있게 될것입니다. 저는 또 총쏘는것을 배웁니다. 그것도 아직은 서툽니다. 그렇지만 저는 앞으로 꼭 우리의 원쑤인 왜놈들의 가슴팍에 탄알을 박아넣겠습니다.

장군님께서 저에게 메워주신 총을 들고 이 땅에서 왜놈들을 다 내쫓을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제 몸에 한방울의 피가 남을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독립군에 계신 형님들, 동생들, 우리 힘을 합칩시다. 우리 유격대와 독립군 여러분과 힘을 모으면 더 큰 힘을 낼수 있지 않습니까? 전번날 엄치환씨들이 왜놈들에게 쫓길 때 보니까 우리에게 몇명만 더 있었더면 얼마 안되는 왜놈의 경찰대를 몽땅 다 잡아없앨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하게도 두놈만 죽이고 다 놓쳤습니다. 도망친 놈들은 겁은 좀 먹었겠지만 이제 또 기여올것이 아닙니까? 원쑤들은 아주 잡아없애야 합니다.》

최칠성은 검실검실한 눈을 슴벅거리며 장내를 둘러보기도 하고 고개를 숙여 자기 발등을 내려다보기도 하였다.

독립군들은 술렁대였다.

머슴이였더란 말이지?》

《유격대어른들은 거지반 다 학교를 많이 다닌줄 알았지.》

《이야기를 들읍시다.》

한편 박흥덕은 맨 앞줄에 앉아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잘한다, 머슴아! 더해라, 더. 훌륭하다, 그렇지.》

최칠성은 고개를 들고 내려다보았다. 장내는 밤하늘의 별처럼 눈들이 반짝반짝하였는데 그것이 일제히 자기에게 쏠려있었다.

그는 소리높이 웨쳤다.

《우리는 형제가 아닙니까. 손을 이렇게 꽉 붙잡읍시다.》

얼굴이 붉어진 최칠성은 량손을 들어 마주잡아보이고나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바삐 군중들속으로 뛰여들어갔다.

장내는 환희로 술렁거렸다. 앞줄에 앉은 마을의 로인들은 물론 독립군병사들도 유격대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환희로 들떠있었다.

황참모는 이때다 하고 혼자소리처럼 허나 량사령이 분명히 들을수 있게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서 중얼거리였다.

《판은 유격대판이로군.》

량사령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입을 꾹 다물고 덤덤히 앉아있었다. 허나 관자노리에 굵직한 피줄이 살아나 꿈틀거리는것을 보며 황참모는 속으로 손벽을 쳤다.

(하기야 군장으로서 자기의 수하장병들이 타부대를 동경할 때만큼 약이 오를 때가 있을라구.)

허나 사실 량세봉은 자기네 독립군과 주둔마을의 늙은이들이 반일인민유격대를 환영하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이 꿈틀거리는것은 아니였다. 그는 민족주의사상을 리념으로 하고있는 자기네 독립군이 유격대로부터 빨간 물을 잔뜩 먹고 반일독립의 총구를 무산혁명쪽으로 돌리면서 《조선독립 만세》가 아니라 《세계혁명 만세》 부르짖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때문에 격동하고있는것이였다. 문득 석달전에 제 손으로 처단해버린 공산당밀정인 박아무개의 얼굴이 떠올랐다. 들어만 봐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자의 넉두리에 한달도 채 못되여 20여명의 끌끌한 장병들이 혹했댔으니 공산주의란 사상이 요염한것만은 틀림이 없는것이였다.

그런데 한두명도 아니고 옹근 하나의 부대로 공산주의세력이 들이닥치였다. 여기에 나타난지 며칠도 안되였는데 벌써 통화의 민심은 물론 독립군의 군심까지도 모두 휘동하여 그들을 자기네 마음대로 울리게도 하고 웃기게도 하는것이다. 순간 량세봉의 눈앞에는 유격대의 붉은 기발을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퀭하니 쳐다보며 넋을 잃고 끌리여가는 자기 부대 병사들의 모습이 환각으로 떠올라 머리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별안간 그는 두주먹을 꾹 부르쥐였다. 때마침 독립군과 유격대가 한동아리가 되여 부르던 노래가 끝이 났다. 량세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말이든지 해야지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사실 환영연설은 최참모가 하게 되여있었다. 그러면 유격대편에서 차참모장이 답례연설을 하게끔 안이 짜여있었다. 허나 량세봉은 자기가 연설을 하리라 결심을 했다. 일어나보니 문득 무슨 말부터 해야 좋을지 알수가 없어 초연에 그슬린 로장답지 않게 한동안 갑잘랐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뚜렷이 확정짓지 못한채 자리에서 일어선것이다. 그저 연설의 서두에는 반드시 주인의 체면을 잃지 않게 손님으로 찾아온 김일성장군과 반일인민유격대를 환영한다는 말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둥근닭알모양으로 되여 머리속을 빙글빙글 돌뿐이였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