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 회)

7

(8)


《야, 너 거 잘 생각했다.》

독고령감은 엄치환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엄치환은 그의 아들 관욱에게 유격대가 부러워 못 견디겠다는 말을 하고 지금 자기네 중대에서는 유격대로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고 했던것이다. 볼이 약간 주글주글해진 독고령감은 담배대를 들고 마당을 왔다갔다하였다.

《내 이제 최참모에게 청을 드려보겠다.》

《그렇게 하라구 승낙할리가 있습니까?》

《안되면 너희들만이라도 내빼서 유격대에 들어가도록 하여라. 나라 임금도 제 싫으면 안한다는데 독립군이야 국록을 타냐, 저희들한테 빚진게 있냐. 제 하구싶은대로 할노릇이지.》

《걱정은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번일까지 치르고나니 딱 싫거던요.》

《내 말대로 해라.》

엄치환은 관욱을 쳐다보며 더욱 난처해한다.

《독립군이란건 평생 따라다녀봤대야 늘 그 꼴이야. 밤낮 군자금, 군자금 하면서 내뛰구 들이뛰구 하다간 사람이 죽고 다리가 부러지구 그 모양이지. 언제한번 톡톡히 쌈을 벌려나 보겠기에 그러니. 겉볼안이라구 내 유격대원들을 보자 대번에 알아봤다. 똑똑들 하고 인사성이 밝구 부지런하구 게다가 너희들 말을 들으니 용감해서 쌈 잘하구, 그러루돼야 조선사람이라구 할수 있지. 너희들 같아서야 뭣에 쓰겠느냐. 팔뚝에 피가 한동이씩이나 괸것들이 시들머들해가지구선…》

독고령감은 독립군에 대한 불만을 엄치환이앞에서 계속 털어놓았다.

한참 푸념을 하고있던 독고령감은 정 그렇다면 자기가 김일성장군님께 인사도 드릴겸 그렇다는 청을 드려보기 위해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독립군을 그만두는것은 마음대로 할터이지만 유격대에서 받아주겠는지가 문제였다. 독고령감은 방안에 들어가 농짝을 열어제끼고 물이 날은 옥양목두루마기를 꺼내입었다. 군복을 입고 총을 메면 아직도 한다한 병사노릇을 할만치 원기왕성한 그는 기운차게 활개를 내저으며 둔덕길을 타고 뒤마을로 들어갔다.

마침 길가의 강낭밭에서 유격대원들이 김을 매고있었다. 뒤에 따라가던 엄치환이 김매는 세사람가운데 최칠성이라는 그 고마운 유격대원이 있다고 하자 독고령감은 자기도 잘 아는 사이라며 어서 가자고 재촉하였다. 두루마기자락을 펄럭이며 강낭밭으로 들어간 그는 밭둔덕쪽에 붙어 김을 매고있는분에게 찾아가 무턱대고 허리를 굽혀 절을 올리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유격대어른들이 죽을 사람을 구해주셨다는데…》

독고령감은 눈정기가 있고 얼굴이 환한 그분이 제일 높은 유격대원이 틀림없을것이라고 진작 믿어버리고만것이였다.

뜻밖에 나타난 늙은이로부터 인사를 받게 된 김일성동지께서는 호미를 놓고 맞절을 하여 인사를 받으시였다.

《우리가 무엇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과분한 치하를 해주셔서 오히려 송구스럽습니다.》

그이께서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독고령감의 손을 잡으신채 밭두렁으로 올라오시였다. 뒤에서 엄치환이가 최칠성이는 그분이 아니고 맨뒤에 있는 사람이라고 귀띔을 하였지만 한껏 도취된 그는 그 말을 들을념도 안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면담을 하시게 되자 최칠성이와 그밖의 대원들은 멀찍이 나서서 정숙을 지키였다.

잔디언덕에 걸터앉으신 그이께서는 권연을 꺼내여 독고령감에게 권하고 성냥을 그어대시였다.

《유격대어른들은 모두 우리들처럼 농군이신 모양이지요?》

담배를 뻑뻑 빨다가 독고령감이 물었다.

《네! 로동자들도 있고 농민들도 많습니다.》

기름진 강낭잎이 석양을 받아 번들번들 빛나는것을 바라보시면서 그이께서는 로인의 심리를 읽고계시였다.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지금 대사가 벌어진것 같습니다, 유격대를 며칠 지내보더니 조선독립이 오래지 않았다는거지요. 떠들썩합니다. 그래 난 지금 김일성장군님을 뵈옵자고 길을 떠났던차입니다.》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그는 계속하였다.

《미안한 말씀을 한가지 드리겠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지금 안마을에 계신다는 말이 옳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저번날 잠간 들리셨다가 어데론가 바쁜 일때문에 떠나가셨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난처해지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시다가 무슨 일때문에 그러시는가고 물으시였다.

《너희들도 여기 와앉아라. 같이 이 어른과 의논을 해보자.》

《무슨 용건인지 말씀하십시오.》

《다른게 아니올시다.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옵고 저같은 사람들이 이제 조선독립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겠는지 좀 여쭈어보자고 해서 그럽니다.》

로인은 이때까지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십년가까이 뛰여다니던 끝에 근년에는 집에 들어박혀 땅이나 파고 밥그릇이나 축내는 신세가 되였다는것을 자세히 말씀드리였다.

그다음엔 또 어떤 볼일이 있습니까?》

《다음은 별것이 아닙니다. 여기 앉은 이 사람이 내 둘째아들이올시다. 여기 독립군에 있습지요. 저 사람을 유격대에 받아주십사 하고 청원을 드리자는것입니다.》

유격대에요?》

《그렇습니다. 겸해서 이쪽 이 사람은 엄치환이라는 사람인데 제가 지내봤습니다만 사람이 아주 착실합니다. 같이 좀 받아주십사 하는것이 저의 소원이올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들어 곤청색으로 물든 먼산을 바라보며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말씀하시였다.

《로인님! 이런것을 하나 생각해보시는것이 어떻습니까? 집안에 총을 든 강도가 뛰여들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생결단하고 때려엎어야지요 》

《그런데 어떤 식구들은 뒤문으로 빠져나갈 생각을 합니다.》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지요. 온 집안식구가 다 달라붙어야 강도를 잡을수 있지요.》

《옳습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하셨지만 왜놈들이 뒤쫓아오면서 총을 쏘는데 이 독립군병사들이 어떻게 살아올수 있었습니까?》

그거야 유격대원들이 살려줬기때문이지요.》

독고령감이 자기 말이 옳다는것을 확인하기 위해 옆에 앉은 엄치환을 돌아다보았다.

엄치환은 마른침을 삼키고나서 고개를 숙여 긍정하였다.

《그렇습니다. 유격대원도 싸우고 독립군도 싸웠으니 그놈들을 물리칠수 있었습니다. 리치는 이렇습니다. 한사람이라도 싸움에서 물러서면 그만치 조국광복에는 불리합니다.》

이런 비유의 방법으로 허두를 떼시고나서 그이께서는 로인이 독립군운동에서 물러선것은 큰 잘못이라는것을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그럼 나는 죄를 지은셈이군요?》

《그렇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이구!》

독고령감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였다. 그는 여태 모든 잘못을 남에게 넘겨놓고 자기는 강건너 불보듯이 해왔다는 자책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그는 가쁜숨을 쉬며 한마디 더하였다.

《아직 늦지 않았을가요?》

《늦지 않았습니다. 아들도 하고 아버지도 하고 또 손자도 해야 합니다. 찍어서 말씀드립니다만 독립군에 있는 아들을 유격대에 받아달라는 요청은 들어드릴수 없습니다. 방금 말씀드린것처럼 우리는 일제를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독립군이나 또 그 누가 무너지기를 원하는것이 아니라 더 강해질것을 바라고있습니다. 우리가 하자고 하는것은 독립군과 손을 잡고 힘을 합쳐 일제를 치자는것입니다. 온 식구가 달라붙어 강도를 때려엎자는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독고령감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하마트면 우리는 큰 잘못을 저지를번 했습니다. 잘못이지요, 잘못입니다. 독립운동을 뒤전에 앉아서 구경을 했으니 얼마나 그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루마기 앞섶을 바로잡더니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 후날 제가 장군님을 만나뵈옵게 되면 머리를 숙여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독고령감의 팔을 잡고 길언덕까지 따라나가시였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