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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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광수와 최칠성은 밀밭사이를 걸어나갔다.
밀밭을 지나면 우뚝한 산이 나질것이였다. 산을 보나 들을 보나 초여름의 싱싱한 기운이 흘러넘치였다. 바람이 불 때면 밀밭에 물결이 일며 싱그러운 냄새가 풍겨왔다.
《좋은 때가 왔구만, 최동무.》
차광수는 안경이 번뜩이는 얼굴을 들고 가없이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달가까이 줄창 밀림속을 뚫고 행군하던 그는 자못 상쾌한 정서에 사로잡혀있었다.
《한창 바쁠 때가 되였습니다.》
최칠성이는 바쁜 농사철이 되였다는것을 상기하였다. 감자밭, 조밭 김매기가 한창일 때가 온것이다.
차광수가 몇걸음 앞서고 뒤에 최칠성이가 따랐다. 그들은 군복차림그대로 30리밖에 있는 농촌에 정치공작을 가는 길이였다.
머리우에서 종달새가 울었다. 유리처럼 파랗고 투명한 하늘에 까만 점이 두세개 떠서 나풀거리고있다.
차광수는 문득 고향생각을 하였다.
《최동무네 고향은 회령이라고 했던가?》
《네! 회령서 두만강을 따라 10리 내려가서 얼핏 보기엔 그저 이러루한 촌이지요.》
《좋은 곳이구만. 나는 평북 룡천서 자랐소. 룡천두 좋은 곳이였소.》
그들은 저마끔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이 가슴으로 밀려들어 더 이야기할 여유를 못 가지였다.
차광수가 자란 곳은 룡천에서도 서해기슭으로 썩 나앉은 언덕이였다.
아버지는 철도선로반 로동자였는데 줄창 먼곳에 나다니고 차광수는 책보를 끼고 15리나 떨어진 읍학교에 다니였다. 학교에 가고 오는 때이면 오늘처럼 이렇게 머리우에서 종달새가 울었다. 일요일이면 들판에서 날을 보내였다. 잔디밭에 반듯이 드러누워 종달새를 쳐다보면서 푸른 하늘에 꿈을 날리였다. 랑만은 깃을 치며 하늘높이 날아올라 희망에 부풀은 그를 아무데로나 싣고갔다. 옹노를 놓아 해질무렵에 종달새를 잡아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종달새는 싸리꼬챙이로 자작 만든 조롱안에서 관을 세우고 모이를 쫏는다. 한당대 괭이를 휘둘러 땅을 파고 철길을 다진 늙고 과묵한 아버지는 열흘 가야 아들에게 한마디 말을 하나마나하였다. 외아들로 자란 차광수는 늘 몸이 약해서 부모의 근심거리였지만 누워 앓지는 않았다. 옹근 닷새동안 학교에 가지 않고 방바닥에 누워 딩굴던 그가 하루는 마루에 앉아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더니 조롱을 내려 한쌍의 종달새를 푸른 하늘로 날려보내였다.
《그렇게도 공력들여 기르던걸 무슨 생각이 나서 놔주느냐?》
웃으며 묻는 아버지의 말씀에 차광수는 집을 떠나 일본으로 가보겠다고 하였다. 그후 동경에서 고학을 시작했다고 편지가 왔고 몇해동안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집에 나타났는데 그때는 벌써 딴사람처럼 달라졌다. 한달동안 집에 있다가 만주로 간다고 하면서 또 집을 떠났다.
석달만에 차광수는 집에 편지를 보내였는데 길림에서 훌륭한 혁명의
그후 차광수는
차광수는 웃옷단추를 두개나 터놓고 가슴을 내놓았다. 아무리 더워도 이런 일은 좀체로 없었던 그였다. 입모습에는 노상 웃음이 어리고 활개를 치며 걸어가는 그의 허리에서는 권총이 털썩털썩 방아를 찧었다. 산길에 접어들어 령등을 넘어서서 비탈진 곳으로 내려섰다. 그때 난데없는 총소리가 울리였다. …
《손들어라! 살려준다.》
적들의 고함이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차광수는 산등에 올라 정황을 살피였다. 민틋하게 숙어진 산발끝에서 풀색군복을 입은 《토벌대》놈들이 릉선을 향해 기여올라왔다. 이쪽기슭을 가로질러 달리는것은 흰옷을 입은 조선사람 두셋이였다.
《추격당하는건 틀림없이 우리 조선사람이요. 여기 독립군일지도 모르겠소.》
차광수는 이렇게 말하고나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잠간 망설이였다. 이마가 약간 도드라질사 한 그는 턱을 숙이고 산밑을 내려다보았다. 더는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최동무! 저놈들을 칩시다.》
차광수는 권총을 빼들고 바위등에서 뛰여내려 아래로 달려갔다.
최칠성이도 재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 최칠성은 박흥덕의 38식보총을 빌려가지고 왔던 참이여서 요행 몇방 쏴보게 될수도 있다는 호기심이 부쩍 생기였다. 가슴에서는 벌써 방망이질이 일어나는데 권총을 빼들고 바위틈에 엎드려 내려다보던 차광수는 최칠성을 불러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그런 사정을 알리 없었던 경찰대놈들은 차광수가 매복한 좁은 골짜기로 기여올라왔다. 앞서오는 놈은 모두 10여명밖에 안되였다. 오솔길이 바위를 끼고 돌아가는 모퉁이에서 약 30메터 거리를 두고 권총을 내갈겼다. 첫방에 한놈이 쓰러지고 네댓방만에 또 한놈 쓰러졌다.
최칠성은 나무에 걸어놓고 겨냥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당황한 그는 어쩔줄을 몰랐다. 옆에 있던 차광수가 격발기를 당겨 탄알을 재우고 쏘라고 일러주었다. 묘준만 할 생각에 미처 탄알을 재우지도 않고 방아쇠만 당기였던것이다. 최칠성이 탄알을 재우고 앞을 내다보니 그때는 벌써 적이 골짜기로 흩어져 내리뛰고있었다. 뒤늦게나마 그는 쏘고 또 쏘았다.
경찰대놈들이 물러내려가자 그들은 산마루로 다시 올라가 아까 보던 그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바위밑에 얼굴이 새까만 세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보위색군복에 붉은 별을 단 군모를 보자 대뜸 놀라는것이였다. 당대 그런 군대를 처음 보았던것이다. 하지만 그 군대들에 의해 죽을 고비에서 구원되였다는것을 앞게 된 그들은 달려내려와 땅에 엎드릴만치 허리를 굽히며 절을 하였다.
그들은 엄치환이와 리동수였다. 둘 다 찢기고 피가 묻은 잠뱅이를 입었다. 한사람은 바위밑에 누워서 몸을 뒤틀며 신음하고있었다. 차광수와 최칠성은 달려들어 부상자의 구급처치를 하였다.
최칠성은 웃동을 찢어 붕대를 만들어 상처를 처매였다. 동맥이 끊긴 허벅다리에서는 피가 그칠새없이 솟아올랐다. 헝겊으로 노끈을 꼬아 나무꼬챙이를 끼워서 탕개를 틀어서야 겨우 피를 멈추었다. 들것이 없어 최칠성이 그대로 둘쳐업고 산기슭을 내리뛰였다. 엄치환과 리동수는 옆에서 부축하였다.
《대체 선생님들은 누구들이십니까?》
한 5리까지 오는 동안은 아무 말도 없던 엄치환이 차광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말이요?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요.》
《네? 반일인민유격대라구요?》
《처음 들어서 모를수도 있을겁니다.》
차광수는 반일인민유격대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하고 최칠성에게 부상자를 내려놓게 하였다. 피를 많이 흘린 부상자는 의식을 잃고말았다. 이번에는 차광수가 업었다.
20리 남짓한 길을 한시간 좀더 걸려 들이대였다. 독립군병사들이 들어있는 곳은 삿을 깐 3칸짜리 통칸 온돌방이였다.
부상자를 아래목에 드러눕히고 다시 처치를 하였다. 리동수는 자기네 친구들에게 알리고 엄치환은 최참모를 찾아떠났다.
량세봉이네들이 숨이 턱에 닿아 3소대 병실에 당도했을 때 방금 처치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힌 뒤였다. 독립군병사들이 약을 구해오기도 하고 미음을 쑤어오기도 하면서 들락날락하였다.
키가 큰 어느 한 독립군병사가 약대접을 들고 들어왔다가 《군자금이 사람 잡는다.》하고 한숨 섞인 말을 한마디 하였다. 그때 웃목에 앉았던 최참모가 날카롭게 눈총을 보내여 그는 당황해서 머리맡에 약그릇을 놓고 얼른 나가버렸다.
작년에도 몇번 이런 일이 있었고 금년만 해도 벌써 두번째였다.
유격대원들이 쉴새없이 문안을 왔다.
출입이 좀 뜸해졌을 때 황참모가 나직이 물었다.
《그래 가져오던것은 어떻게 되였느냐?》
《바빠서 바위틈에 쑤셔넣고 왔는데 다시 가봐야 알겠습니다.》
리동수가 대답했다.
《그게 그냥 있을가?》
《황선생!》
최참모가 어성을 높여 황참모를 눌러버렸다.
부상자를 지키고 앉았던 엄치환이 고함을 질렀다.
《상수야, 정신을 차려라! 응, 네가 살아야 우리 셋이
량세봉은 목메여 부르짖는 엄치환의 이 말과 안팎을 싸고도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심각히 받아들이면서 담배만 피우고 앉아있었다. 지금 그의 가슴속에서는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사정없이 모든것이 흔들리여 자리를 드티였다. 독립운동에 나선지 십여년동안 그는 겨레의 희생도 수많이 겪어보았고